[기자수첩] 에이전트 법제화의 필요성에 대하여

칼럼 | 신연재 기자 | 댓글: 69개 |
역대급으로 시끌벅적한 스토브 리그다. S급 선수들 다수가 FA로 풀려난 까닭도 있지만, 부정적인 이슈도 여러가지다. 암암리에 이루어지던 템퍼링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팀 간의 현금 트레이드 협상은 감정싸움으로 번져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팀과 선수 간의 이적 협상에 끼어든 한 에이전시가 보여준 행태였다.

탑시드 에이전시는 T1과 다년 계약 상태인 '칸나' 김창동을 특정 팀으로 이적시키기 위해 공식적인 입장문을 내며 여론전을 펼쳤고, 그 과정에서 고인이 된 존 킴 전 T1 COO까지 언급하는 도의적으로 어긋난 모습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T1 측 기자회견을 통해 탑시드 에이전시의 주장은 법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사실임이 밝혀지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탑시드 에이전시는 T1의 반박에 대해 추가 입장을 전하지 않고 있다.



▲ 기자회견 중인 T1 최성훈 단장

또 문제가 된 부분은 LCK의 태도였다. 탑시드 에이전시는 "LCK 사무국이 당사의 주장이 합당함을 인정해 담원 기아와 이적을 추진하도록 T1 측에 강력 권고했다"고 밝혔는데, T1은 기자회견에서 LCK가 에이전시의 주장만 믿고 사실 여부도 조사하지 않은 채 담원 기아로의 이적을 강력히 권고했고, 이는 팀의 권한을 침해하고 공정성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지탄했다.

해당 이슈가 불거지자 LCK는 "T1이 에이전시 측에 협상 권한을 부여한 사실을 에이전시 측이 입증했기에 LCK는 에이전시 측과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권고했다. LCK는 특정 팀과의 이적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해명했다. LCK는 약속을 지키라고 강제성이 없는 '권고'를 했을 뿐 특정 팀과 계약을 체결토록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

하지만, 권고 조치만으로도 LCK의 행동은 분명 문제가 된다. 시간의 흐름상 이미 농심 레드포스와 이적 협상을 하고 있던 T1 입장에서는 에이전시와의 약속을 이행하라는 권고를 압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LCK가 누군가의 일방적인 주장만 듣고 LCK에 소속된 팀에게 압력을 가한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그 '누군가'는 LCK가 제도적으로 인정한 적 없는 에이전시였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행동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에이전트의 법제화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에이전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대부분이 공감하는 바다. 선수들의 몸값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고, 프랜차이즈화까지 되면서 선수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분명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수는 아무래도 법적인 문제에 있어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에이전트를 둠으로써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또한, 협상의 과정에서 각자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논쟁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을 에이전트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선수와 게임단이 얼굴을 붉히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현재 LoL e스포츠씬에서는 다수의 에이전시가 활동하고 있고, 에이전트를 두고 있는 선수도 꽤 많다. 잘 알려진 에이전시로는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쉐도우 코퍼레이션, 탑시드 에이전시, 아지트, 이버프 등이 있다.

리코스포츠에이전시에는 '기인' 김기인, '엄티' 엄성현, '에포트' 이상호, '코어장전' 조용인(리코스포츠에이전시 공식 홈페이지 기준) 등이 속해 있고, 탑시드 에이전시는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데프트' 김혁규, '칸나' 김창동, '케리아' 류민석, '라스칼' 김광희를 품고 있다. 쉐도우 코퍼레이션은 '바이퍼' 박도현, '에이밍' 김하람, '베릴' 조건희, '제카' 김건우, '오너' 문현준 등과 계약 상태이고, 그 외 아카데미나 유망주 다수를 육성하며 프로 데뷔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에이전트가 종목사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e스포츠 판에 등장하면서 여러가지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칸나'와 탑시드 에이전시 사건의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 합의와 협의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에이전트가 과연 LCK로부터 공인 에이전트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반대로 공인 에이전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여러 LCK 팀은 물론 소속 선수에게까지 피해가 되는 행동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을까.

또한, 비공인 에이전트로 인해 LCK 팀들은 템퍼링의 위협에 시달릴 수도 있다. 현재 LCK는 템퍼링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규정은 템퍼링 범위를 선수 및 코칭 스태프, 팀 임직원, 팀, 게임단, 게임단주로 제한한다. 에이전트에 대한 이야기는 없기 때문에, 에이전트는 노골적으로 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상 템퍼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9.2.12 템퍼링 금지

선수 및 코칭스태프, 단장을 포함한 팀 임직원, 팀, 게임단 및 게임단주는 다른 팀과 선수 계약이 체결된 선수를 직접적으로 유인, 회유하거나 고용 계약 등을 제안할 수 없고, 해당 선수가 소속 팀과의 계약을 위반하거나 해지하도록 유도하여서는 아니 된다. 선수 및 코칭스태프, 단장을 포함한 팀 임직원, 팀, 게임단 및 게임단주는 다른 팀을 통해서만 해당 팀 소속 선수의 계약 현황에 대해 문의할 수 있고, 이적을 제의할 수 있다. 소속팀을 통하지 않은 연락을 받은 선수 및 코칭스태프는 그 즉시 소속팀에 해당 내용을 알릴 의무가 있고, 만약 알리지 않을 경우 페널티를 부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선수가 에이전트에게 특정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는 표현을 하고, 에이전트가 그 팀에 슬쩍 이야기를 흘려도 공식적으로는 이를 문제 삼을 수 없다. 그리고, 현실에서 모든 에이전트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계약 기간을 보호받아야 하는 팀 입장에선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라이엇 게임즈 측은 해당 내용에 대해 "에이전트 제도에 대한 필요성은 당연히 인정하고 있으며, 에이전트 제도의 도입 시점과 형태에 관련해서 LCK 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고 전했다. 선수들의 몸값이 억대, 10억대를 넘어선지 한참이고, 이미 프랜차이즈화까지 된 상황에서 다소 늦은 행보가 아닐까 싶다. 하루빨리 선수와 팀 모두가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 에이전트 제도가 정립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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