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언제까지 중계진의 사과를 들어야 하나

칼럼 | 신연재 기자 | 댓글: 97개 |



지난 20일, 농심 레드포스-담원 기아전 2세트가 약 한 시간 가량 지연됐다. LCK 측 공지와 관계자의 이야기 모아 재구성한 타임라인은 다음과 같다.

시작은 경기 시간으로 '18분 6초'에 걸린 퍼즈였다. 사유는 '에포트' 이상호의 점멸 비활성화. 영감 룬 중 하나인 '기묘한 장치(마법공학 점멸)'에서 발생하는 버그다. 전날 LCK CL 한화생명e스포츠-프레딧 브리온전에서 해당 버그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심판진은 그 부분을 주시하고 있었고, 버그를 확인해 선제적으로 퍼즈를 걸었다. 5분도 안 돼, 크로노브레이크가 확정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경기는 재개되지 않았다. 추가적인 설명도 없었다. 다음 공지는 최초 퍼즈 후 50분이 훌쩍 지나서야 중계진을 통해 공유됐다. 크로노브레이크 시스템 오류로 재경기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크로노브레이크를 돌릴 때마다 데이터가 바뀌는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고, '판정승' 조건도 충족되지 않아 재경기가 결정됐다.

이번 일이 큰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번 서머 들어 이런 버그와 퍼즈, 지연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혹은 같은 버그가 올해뿐만 아니라 더 예전에도 경기를 중단시킨 적이 있다는 점에서도 라이엇 게임즈는 무책임하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다.

개막전부터 등장한 스왑 버그는 2주간 경기 시작을 수차례 지연시키며 불편함을 야기했다. 팀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버그는 개막 이전부터 존재했다. 서머를 준비하면서 스크림 6판 중 2판은 버그로 인해 재시작을 해야 했다고. 게임단은 한 달이 넘게 버그를 겪고 있던 거다. 개발사 입장에서 그럴싸한 이유는 있겠지만, 이 정도면 방치다.

└ 관련 기사 : '스왑 버그?' LCK, 잦은 게임 시작 지연으로 불편함 야기

더 심각한 건 라이엇 게임즈가 해결하지 못한 버그에 LCK와 심판진의 미흡한 대처가 더해지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예가 이번 사태로부터 불과 일주일 전인 13일 진행된 한화생명e스포츠-T1전이다. 이날 2, 3세트 연이은 버그와 퍼즈가 나왔는데, 해결 과정이 순탄치 못했다.

2세트는 '구마유시' 이민형의 룬 버그였다. 자신이 지정한 룬이 오류로 인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구마유시'가 경기 시작 4분 경 퍼즈를 요청했다. 이에 LCK는 해당 버그를 사전에 고지한 바 있고, 경기를 진행하지 못할 치명적인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해 속행을 결정했다. '구마유시'는 '쾌속 접근'이 없는 애쉬로 2세트를 진행했다.

3세트에서는 '오너' 문현준의 강타 재사용 대기 시간 버그가 발생했다. 경기 초반, '온플릭' 김장겸은 '오너'가 강타를 3회 연속 사용하는 것에 의문을 표했고, 인게임 보이스를 들은 한화생명e스포츠 측 코치진이 심판에게 제보했다. 이후 심판진이 실제 경기 영상을 확인하는 시간을 거쳤고, 뒤늦게 퍼즈가 걸렸다. 그리고, 논의 끝에 버그 발생 시점 직전으로 크로노브레이크가 결정됐다.



▲ '구마유시'의 잃어버린 5킬

퍼즈가 됐을 때는 이미 T1이 일방적으로 5킬을 챙기며 게임을 거의 터트린 상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2세트 룬 버그로 피해를 입은 '구마유시'는 7분에 5/0/0이 된 역대급 칼리스타를 기록에서 삭제해야 했다. 만약 버그 발생 직후 퍼즈가 걸렸다면, 피해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LCK는 심판의 선제적 조치가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고 설명했지만, 이미 정글러인 '오너'와 '온플릭'의 입에서 버그가 언급됐고,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심판이 있었다. 즉각적인 퍼즈가 더 현명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게다가 심판진이 크로노브레이크 시점과 경기 재개 타이밍을 T1 선수들에게 제대로 공지하지 않아 다시 한 번 퍼즈가 걸리는 상황도 나왔다. 이는 프로 경기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심판의 미흡한 대처는 7일 펼쳐진 한화생명e스포츠와 리브 샌드박스의 경기에서도 있었다. 1세트 27분 경, 경기가 잠시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뚜렷한 설명 없이 경기가 재개됐는데, '프린스' 이채환의 개인 방송을 통해 뒤늦게 이유가 알려졌다. '프린스'는 승리 후 공식 인터뷰에서 불편함을 드러낸 바 있었다.

당시 '카엘' 김진홍 쪽 컴퓨터에 대회 필수 프로그램이 중간부터 꺼져 있었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심판이 해당 프로그램을 실행하라 요청했다고 한다. 문제는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 도중이었다는 거다. 팀 게임을 해봤거나 자주 봤던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귀환 타이밍은 쉬는 시간이 아니다. '프린스'는 '카엘'과 소통이 끊겨 퍼즈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선수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가 날 일이다. 게임 도중 외부의 개입은 당연히 퍼즈가 먼저여야 한다.

인게임 버그가 라이엇 게임즈 본사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계속해서 논란의 도마에 오르는 대회 운영과 심판에 관련한 이슈는 LCK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일단, 가장 시급한 건 '전달력'이다. 지금은 문제 발생 시 중계진을 통해서만 상황을 설명하고, 결과를 전달한다. 때문에 사과도 중계진의 몫이고, 그걸 보는 불편함은 시청자의 몫이다.



▲ NS-DK전 재경기 이유를 설명하는 중계진

얼마 안 가 풀리는 간단한 퍼즈는 중계진의 즉각적인 설명을 통해 쉽게 설명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사건처럼 퍼즈가 길어지고, 크로노브레이크나 재경기 여부 등 판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결정권자의 전문적이고 책임감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스타 리그처럼 심판이 직접 나서는 거다.

스타 리그에서는 경기에 배치된 심판을 공개하고, 이슈가 발생하면 직접 공지를 하도록 했다. 당연히 자신의 실수나 오심에 대한 책임도 졌다. 실제로 심판이 판정 오류를 인정하고, 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사례가 있다.

경쟁적인 스포츠에서 심판은 단순한 진행 요원이 아니다. 경기의 승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선수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이다. 선수들과 한 무대에 서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일련의 사건들로 미루어 보아 LCK는 아직도 심판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다 전문적이고, 책임감 있는 심판과 그런 심판을 만들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장 인기 있는 e스포츠 종목이라면서 버그는 너무 많고, 가장 영향력이 높은 리그라면서 대처는 지나치게 미숙하다. 이미 전세계적인 점유율과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게임사도, LCK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사태가 몰락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