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승자가 떠나는 리그

칼럼 | 장민영 기자 | 댓글: 31개 |



오버워치 리그의 우승자들이 떠나가고 있다. 2019 시즌 우승자에 이어 2020 시즌 우승자마저 타 게임의 프로게이머로 전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샌프란시스코 쇼크에서 20 시즌 우승의 주역인 '안스' 이선창은 은퇴 선언 후 올해 3월 말에 T1 발로란트 팀으로 향했다. 발로란트 전향을 밝히기 전 '안스'는 개인 방송을 통해 "오버워치라는 게임이 가면 갈수록 수준이 떨어진다"는 일침을 남겼다. 그는 실력의 균형이 맞지 않는 매칭 시스템과 언제부턴가 사라진 업데이트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떠났다.

리그의 우승자 한 명이 떠나는 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19 시즌 우승자인 '시나트라'가 "오버워치에 흥미가 떨어졌다"고 말하면서 "프로 의식이 결여됐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당시에도 오버워치를 향한 비판도 있었지만, 그의 발로란트 프로 전향은 신작에 관한 기대 정도로 여겨지곤 했으니까.



▲ 리그 우승 후 전향한 '안스'(출처 : T1)

그런데 올해마저 리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우승자가 떠났다. 본질적인 문제가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가장 아쉬운 점은 1년이 지나도 리그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패치 노트는 굳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출시된 에코는 작년 4월 15일에 나온 최신 영웅이다. 그마저도 다른 영웅의 기술을 복제하는 특성이 있기에 특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메타는 당연히 바뀔 리가 없다. 작년에 우리가 봐왔던 것을 영웅 로테이션 시스템에 맞춰 착각 속에 돌려보는 것이다. 돌진-라인 조합이라는 틀에 맞는 영웅들의 구성만 바뀔 뿐이다.

현 오버워치 프로게이머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개막을 앞두고 4월 13일에 진행한 미디어데이에서 '카리브' 박영서는 "작년과 비슷한 메타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조합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리그 연패를 달성한 쇼크의 '최효빈'은 "신 영웅이 나오거나 새로운 패치가 있지 않은 한 변화는 없다. 메타마다 예전에 했던 최적화된 조합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스스로 새로운 조합과 영웅의 활용법을 찾아냈던 프로들에게도 이젠 신선함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그렇게 미디어데이 현장엔 변화 없는 리그를 향해 질문할 거리가 사라진 기자들, 식상한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프로들만 남았다. '대망의'라는 말이 붙어야 할 개막전을 앞두고 모인 자리는 고요했다.

정체된 상황을 뒤집을 만한 한 방으로 오버워치2 출시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기약 없는 오버워치2의 출시에 모든 것을 걸기에 시간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유명 게임단에게서 투자를 줄인다는 말이 들려오고, 우승자 외에도 여러 오버워치 프로들이 종목을 전향하고 있기에 그렇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말처럼, 오버워치2가 나오기 전에 그 토대마저 사라질 수 있다.

블리자드는 우승자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장 먼저 느껴본 게임사다. 스타크래프트1의 임요환-이영호와 같은 우승자들을 필두로 20년이 넘은 게임의 리그와 이벤트를 아직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호 중심의 '택뱅리쌍' 외에도 이들을 넘어서려고 했던 선수들, 이를 지켜보는 팬들이 함께 해왔다. 스타판은 이영호와 같은 대표적인 인물들이 리그와 게임이 잘 되길 바라는 진심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 발로란트 프로로 뛰고 싶다는 레전드 류제홍(이미지 출처 : 발로란트 유튜브)

오버워치 역시 이들의 영향력을 잘 알 것이다. 작년에 진행한 루나틱 하이 vs 러너웨이라는 레전드 매치를 통해 이들의 인기와 존재감을 실감해보지 않았는가. 그런 '레전드'로 불리는 전 프로들마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까지 왔다.

오버워치 리그엔 아직 뉴욕의 '쪼낙' 방성현, 필라델피아의 '카르페' 이재혁, 쇼크 '최효빈-바이올렛-슈퍼' 등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우승자들이 남아있다. 이들 역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오버워치와 의리로 끝까지 가기만을 바라고 있다면, 개인에게 너무 무책임한 말이다. 오버워치2가 모든 것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기보단, 게임과 리그는 이들에게 긍정적인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믿음을 먼저 줘야 한다. 그 시기를 앞당기지 않으면, 내년에는 더 많은 우승자들이 리그라는 외양간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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