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저들의 목소리'가 바꾼 쿠키런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9개 |
수년 전 아이돌 판에서 시작된 트럭 시위는 온라인 커뮤니티 이상의 파급력을 보여주며 e스포츠, 그리고 게임 업계 전반으로 퍼졌다.

2021년 주요 게임사들이라면 빠지지 않고 자사 게임의 이름이 내걸린 트럭 한두 번쯤은 받았고, 이는 이전보다 쉽게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정말로 게임에 대한 소비자 권리 제고를 목표로 했든 젊은이들 표심 잡기 노림수였든, 어쨌거나 정치권에서 게임을 게이머들의 시각에서 더 크게 관심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보통의 게이머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기들 편들어 주는 일이니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지난 수개월을 되돌아봤을 때 염원과 분노를 트럭으로 실어 보냈던 각각의 게임 이용자들이 모두 행복해졌느냐고 묻는다면 고개가 대뜸 갸웃해진다.

소통을 강조하며 간담회를 열었지만, 약속한 변화가 먼 미래로 잡혀있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자신들의 권한 밖의 일이라며 숙인 고개 정수리만 바라봐야 했다. 어떠한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경우도 있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유저 입맛대로 모든 게 당장 바뀔 수야 없겠지만, 유저들은 그저 입에서 나와 사라져버리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 트럭을 보내진 않았다.

9일 저녁, 업데이트 후 열흘 만에 주요 이슈에 대해 롤백에 가까운 변경과 환불을 약속한 데브시스터즈의 행보에 더 눈이 가는 이유다.




앞서 데브시스터즈는 쿠키런 시즌6 공개와 함께 대규모 변경 사항을 업데이트했다. 쿠키런은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수많은 쿠키를 조작하는 러닝 게임이다. 특히 보물이나 쿠키 등급에 따라 점수 차이는 있지만, 콘텐츠마다 다른 쿠키를 사용하게 하고 기본적으로는 점프와 슬라이드. 간단한 두 버튼을 조작한다는 플레이어의 실력이 중요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시즌6에 새롭게 추가된 수호카드는 그간 게임의 핵심을 뒤흔들었다. 수호카드는 새로운 별도의 버튼으로 발동되며 등급과 합성 등을 통해 PvP 콘텐츠 최종 점수에 주는 영향력이 커지도록 구성됐다. 뽑기 역시 기존에 없던 별도의 재화로만 얻을 수 있어 지나친 과금 유도 콘텐츠로 유저들의 반발을 샀다.

이 외에도 속도 감소나 쿠키의 첫 능력 발동(첫변) 삭제 등이 함께 패치 내용에 올랐다. 개발진의 목표는 뚜렸했지만, 유저들이 생각하는 쿠키런 고유의 게임성을 해친 모양새가 됐다.

결국 쿠키런 유저들은 트럭을 보냈다. 트럭 위 전광판은 업데이트 내용의 롤백을 요구하는 문구를 쐈다. 일부 유저들은 게임 내 계정명을 변경해 데브시스터즈에 문제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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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시스터즈의 결정은 변화를 되돌리는 것이었다. 일찌감치 속도 보물의 중첩 삭제를 되돌리는 결정을 한 데브시터즈는 뒤이어 삭제한 첫변 복구, 그리고 수호카드 영향력의 대폭 축소를 약속했다. 특히 수호카드는 떼탈출, 경기장, 길드전, 챔피언스리그, 쿠키의 도전 등 다른 플레이어와의 경쟁 개념이 담긴 콘텐츠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도록 변경됐다.

카드의 가치가 급락했으니 그사이 수호카드 관련 상품을 구매한 사람들은 반발할 게 뻔한데 이는 환불로 해결하고자 했다. 공지 이전에 구매한 결제건은 변경이 이루어지는 7월 28일까지 환불을 진행하고 환불하지 않은 유저에게는 아이템 회수 없이 별도 보상을 약속했다.

유저들의 목소리에 데브시스터즈가 롤백에 가까운 변화를 알린 셈이다.

그간 여러 불만이 쌓이고 터져 나온 타 게임의 갈등과 달리 쿠키런의 업데이트에서 유저들의 요구는 비교적 명확한 편이긴 했다. 그래도 게임 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변경을 알린 데브시스터즈의 기민함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유저들의 목소리가 얼마든지 통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데 있다.

국내 게임 시장은 한동안 현물로 게임을 소유할 수 있는 패키지 시장이 거의 문을 닫다시피 했다. 그 사이 온라인과 모바일이라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 시장을 주도했고 패키지 게임의 자리는 스팀 등의 디지털 마켓이 대신했다. 이 서비스들에서 유저 것은 없다. 게임 아이템, 계정, 내돈 주고 샀다고 생각한 게임 역시 그저 업체로부터 대여받았을 뿐이다. 거센 불만은 개발 방향을 이유로 눌리고, 이용 약관이라는 벽에 찌그러졌다.

그사이 게임에 대한 애정과 그 게임만이 가진 특징에 쉬이 떠나지 못하고 쓴소리를 하는 유저는 '망겜'하나 못 버리는 '호갱'으로 취급됐다. 유저들의 목소리에 변경을 예고한 쿠키런의 이번 발표는 우리 게이머가 '호갱'이 아니라 고객이자, 게임을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임을 확실히 알렸다.




2021년 연이은 트럭 시위로 유저마다 바꾸고자 한 것은 많았지만, 원하는 해결 과정은 대개 같았다. 바로 소통이다. 그리고 제대로 되지 않은 소통으로 유저들의 불만은 되려 커져갔다.

하지만 뭔가 거창한 행사쯤을 마련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논의중입니다'가 아니라 잘못됐다고 지적받은 부분에 정말로 귀 기울이는 것.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고칠 건 고치고, 남길 부분은 어떻게 남길지 알리고 고민하는 것. 이게 유저들이 바라는 진짜 소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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