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구마모토는 어떻게 잠만보 성지가 되었나?

게임뉴스 | 문영호 기자 | 댓글: 40개 |



지난 3월 4일부터 13일까지 일본 구마모토현 전역을 비롯해 온천으로 유명한 오이타현의 유후시, 벳푸시에 잠만보의 출현율이 증가하는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잠만보는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초대 주인공인 '레드'가 사용하는 포켓몬 중 하나로, 포켓몬 GO에서는 망나뇽과 함께 1세대 최강의 포켓몬으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2세대가 추가된 지금도 여전히 체육관 배틀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평소에 야생의 잠만보를 만날 기회는 매우 드물다. 기자 역시 잠만보를 알에서만 얻어봤을 뿐, 아직까지 야생의 잠만보를 만나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이벤트 기간 동안 구마모토 등에서는 잠만보를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현장을 찾은 트레이너들은 전했다. 특히 구마모토현 남쪽의 야츠시로시는 다른 지역보다 잠만보의 출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안논의 출현 소식까지 전해져 많은 트레이너들이 야츠시로를 찾았다.

지방자치단체인 구마모토현 역시 이번 이벤트를 반겼다. 구마모토현은 '많은 관광객이 현을 찾아 주위 풍경도 즐기길 바란다'고 밝히며 '피해 복구가 이어지고 있는 장소 등 위험한 곳의 출입은 자제해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구마모토에 사는 트레이너들도 타지에서 온 트레이너들을 환영하는 뜻을 밝히며 유용한 정보를 함께 공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 신칸센을 타고 야츠시로로 향한 일본 트레이너. (출처 : 트위터 @daitetujin0528)



▲ 구마모토의 한 트레이너는 환영 축전을 그리기도 했다. (출처 : 트위터 @nabekamo)

일본에서 특정 포켓몬의 출현율이 증가하는 이벤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11월에는 미야기현과 이와테현, 후쿠시마현 등 도호쿠 3현에서 라프라스의 출현율이 오르는 이벤트가 진행된 바 있다.

당시 3개 현 중 미야기현이 이벤트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미야기현은 태평양 연안의 이시노마키시에서 오프라인 이벤트를 여는 한편 4개 지역에서 포켓스탑 무료 투어를 실시였으며, 잉어킹 포획 대회 등의 이벤트와 스마트폰 무료 충전 코너 등을 운영하기도 했다. 특히 나이언틱과의 협력 아래 해안가의 주요 지역에 포켓스탑을 추가로 설치하기도 했다.

미야기현의 지역 언론인 카호쿠 신문에 따르면, 당시 미야기현은 이벤트를 위해 3,000만 엔, 우리 돈으로 3억 원의 추경 예산을 편성했으며 이 중 5천만 원은 나이언틱의 시스템 개수 비용으로 책정했다. 또한, 3억 원의 예산 중 40%인 1억 2200만 원이 남았으며, 미야기현 의회는 이 예산을 올해로 이월해 7월에 제2회 이벤트를 개최할 것을 결정했다.



▲ 지난 11월에 실시된 일본 도호쿠 지역의 라프라스 출현율 증가 이벤트 공지



▲ 미야기현 이시마키시에서 열린 포켓몬 GO 이벤트 (사진 : 나이언틱 카와시마 마사시 디렉터)



■ 대지진이 남긴 공포, 포켓몬 GO로 지워보자!

· 동일본 대지진, 구마모토 지진이 직격했던 4개 지자체
· 피해 복구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으로 인해 관광객 회복은 더뎌
· 나이언틱과 협력해 관광객 유치에 나선 지자체


수억 원의 예산을 사용해 모바일 게임의 오프라인 이벤트를 개최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일본에서도 미야기현의 3,000만 엔 추경 예산안이 알려지자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구마모토와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4개 현을 하나로 묶는 공통 분모가 '대지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자체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를 느낄 수 있다.

지난 11일은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6년이 되는 날이었다. 우리에게는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가 녹아내려 방사능이 유출된 사고가 가장 인상에 남지만, 후쿠시마뿐만 아니라 북쪽의 미야기, 이와테현에서도 지진해일(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아 태평양 연안이 말 그대로 '쓸려나가는' 참사도 벌어졌다. 특히 미야기현에서는 후쿠시마나 이와테현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구마모토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4월 14일에 규모 6.5의 지진이 덮친데 이어 16일에는 그보다 강한 규모 7.3의 지진이 구마모토를 강타했다. 두 차례의 지진 모두 일본 기상청에서 매기는 최고 진도인 7이 기록되었으며, 우리 돈으로 3조 원에 육박하는 피해가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에 비해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피난소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도로와 철도 등 부서진 시설이 차례차례 고쳐지며 지진과 해일이 남긴 상처는 적잖이 아물었다. 하지만 대지진이라는 단어가 남긴 공포는 사람들의 뇌리를 쉬이 떠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프라가 복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호쿠 3현과 구마모토를 찾는 관광객의 수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 대지진의 직격 당시의 미야기현과 구마모토현 (사진 : 아사히)



▲ 작년 가을에 기자가 방문한 구마모토. 지진의 상흔은 남았지만, 도시는 기능을 회복했다.

도호쿠 3현과 구마모토 현으로서는 외부에서 온 관광객이 지진 피해의 복구 현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도록 하여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그리고 좋은 인상을 품고 돌아간 관광객들에 의해 해당 지역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지자체가 선택한 방법이 '포켓몬 GO'였다.

포켓몬 GO를 이용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움직임은 포켓몬 GO의 일본 출시 직후부터 일본 전역에서 나타났다. 포켓스탑과 체육관이 그려진 관광 지도를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으며, 일부 지자체에서는 현 지사가 앞장서기는 모습도 나타났다. 그리고 도호쿠 3현과 구마모토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포켓몬 GO를 운영하는 '나이언틱'과의 직접적인 연계를 택했다.

4개 지자체와 나이언틱은 지난해 8월에 기자회견을 열어 '포켓몬 GO와 연계한 관광 사업을 진행'할 것을 밝혔다. 이를 통해 지자체나 게임사에서 단독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한 포켓스탑 확충이나 특정 포켓몬의 출현율 증가 등이 이뤄졌다.



▲ 지난 8월, 대지진의 직격을 맞은 4개 현과 나이언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 : 아사히)



■ 예산 대비 100배의 경제 효과... 인식 변화의 가치는 무한대

· 미야기현, 1억 8천의 예산으로 200억의 경제 효과 발생
· 지진 피해 현장을 유저들이 직접 방문해 눈으로 확인
· 막연한 불안감 종식에 따른 관광 산업 활성화 기대


'지진 피해 지역의 현황을 직접 보여주며 좋은 인상을 남기고, 이를 지역 관광 산업 재기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목적은 라프라스와 잠만보의 출현율 증가 이벤트에서도 드러났다. 라프라스는 하천변이나 호숫가에서도 나타나지만, 출현율 증가는 지진해일이 할퀴고 지나간 해안가로 한정되었다. 이를 통해 '쓰나미 피해 지역이었던 곳이 이렇게 되살아났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오프라인 이벤트가 도호쿠 최대의 도시이자 신칸센 정차역인 센다이시가 아닌, 최대 피해지역인 이시노마키시에서 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프라스가 특정 지역으로 한정되었다면, 잠만보는 구마모토 전역을 넘어 이웃한 오이타현의 유휴시와 벳푸시까지 확대되었다. 이 두 도시는 유후인 온천이나 벳푸 온천 등으로 유명해 한국인들도 즐겨 찾는 온천 여행지이지만, 작년 지진의 영향을 받아 관광객이 반토막난 바 있다.

오프라인 이벤트에서도 이러한 목적은 드러난다. 작년 11월 12일에 열린 포켓몬 GO의 오프라인 이벤트는 도호쿠 최대의 도시이자 신칸센 정차역인 센다이가 아닌,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이시노마키시에서 개최되었다. 구마모토현은 올 4월의 지진 발생 1주년을 앞두고 여러 홍보 활동을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주에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마스코트 캐릭터인 '쿠마몬'의 탄생제 이벤트를 개최했다. 잠만보의 출현율 상승 이벤트가 같은 시기에 진행된 것도 지진 피해 복구의 홍보를 극대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쿠마몬'의 이벤트도 동시에 진행해 집중적인 관광객 유치를 노렸다 (사진 : 쿠마몬 홈페이지)

잠만보의 출현율 증가 이벤트의 효과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없다. 하지만 이를 짐작할 만한 전례를 도호쿠 3현, 특히 미야기현이 상세하게 남겼다. 미야기현은 라프라스 출현율 증가 등 포켓몬 GO 이벤트를 통해 19억 9400만 엔, 우리 돈으로 약 200억 원의 경제 효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야기현의 J리그 프로 축구 구단인 베갈타 센다이에 의한 경제 효과 220억 원에 육박하는 수치라고 미야기현은 덧붙였다. 당시 소비된 예산이 1억 8천만 원으로 추정되므로, 사용한 예산 대비 100배 이상의 경제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또한, 미야기현은 라프라스의 출현율 증가 기간 동안 이시노마키시의 이벤트 현장을 찾은 인원은 10만 명이며, 이 중에서 3만 명이 외부에서 온 관광객이라고 밝혔다.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들에 의한 인식의 전환과 이를 통한 관광 산업의 활성화까지 고려하면, 포켓몬 GO 이벤트로 얻은 경제 효과는 결코 200억 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구 1위의 도쿄나 2위 카나가와에서 신칸센으로 2시간 거리인 미야기현과 달리, 구마모토현은 도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게다가 미야기현에서 열린 것과 같은 오프라인 이벤트도 개최되지 않아 관광객 유치나 경제 효과는 미야기현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구 9위인 후쿠오카현에서 구마모토를 찾은 사람들이 많았고,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에서 구마모토까지 신칸센으로 3시간 거리이며, 이른바 '골든 위크'라고 불리는 황금 연휴를 앞둔 만큼 이벤트의 효과를 평가 절하하기는 아직 이르다.



▲ 관광객 수가 급감했던 유후시와 벳푸시에도 잠만보 이벤트가 벌어졌다 (사진 : 오이타현)



■ 사람을 움직이는 게임만이 가능한 전략

· 유저들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위치 정보 기반 게임
· 기업과의 파트너십 계약을 통해 매출 확보
· 일본에서는 지자체와의 공동 협력 확대해


나이언틱의 독특한 비지니스 전략 역시 구마모토가 잠만보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큰 요인이다. 포켓몬 GO는 많은 모바일 게임과 달리 확률형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지 않는다. 게다가 하이퍼볼이나 풀회복약같은 고급 아이템은 유료로 팔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위의 다른 모든 유저에게도 이로운 효과를 주어 Pay-to-Win과는 전혀 상반되는 '루어 모듈'이라는 아이템도 있다.

포켓몬 GO는 아이템 판매를 통해 유저들에게서 매출을 창출하는 대신 GPS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 특성을 살렸다. 포켓스탑 이용을 위해서는 유저들이 해당 장소를 직접 방문해야 하는 성격을 이용해, 다른 기업의 점포에 포켓스탑이나 체육관을 설치하는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나이언틱의 이러한 행보는 포켓몬 GO가 아닌 전작인 '인그레스'부터 시작되었다. 인그레스는 2014년 11월에 일본의 편의점 체인인 '로손'과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바 있으며, 지난 2월에 포켓몬 GO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일본의 식음료 회사인 '이토엔'은 2015년 7월부터 나이언틱의 인그레스와 컬래버레이션 이벤트를 시작한 오랜 인연이기도 하다.



▲ 이토엔이 제작한 인그레스 전용 기계. 자사의 로고가 없을뿐만 아니라 제품도 팔지 않는다.

지진 피해 지역으로 유저들을 불러 모은 것 역시 포켓몬 GO가 처음이 아니다. 나이언틱은 이미 2014년부터 인그레스의 오프라인 이벤트를 미야기현에서 개최한 바 있다. 처음에는 나이언틱의 자발적인 행동에서 시작된 100명 규모의 소규모 이벤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되며 5천 명 이상의 인그레스 요원들이 지진 피해 현장을 찾았고, 지자체인 미야기현과는 우호 협력 관계를 쌓아왔다. 그 결과 10만 명의 포켓몬 GO 트레이너들이 이시노마키를 찾는 성과로 이어졌다.

구마모토의 잠만보 이벤트에 앞서, 나이언틱과 일본의 포켓몬 컴퍼니는 지자체와의 공동 협력을 확대할 것을 발표했다. 희망하는 지자체에게 공식 로고 등의 소재나 양식, 이용 가이드라인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여 지자체에서 포켓몬 GO 관광 지도를 제작하는 것을 돕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도를 제작한 지자체에는 몬스터볼 모양의 쓰레기봉투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 결과 후쿠오카현과 교토부가 참여하여 포켓스탑이나 체육관과 함께 지역의 주요 관광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관광 지도를 제작했다.

유저들의 성숙한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인그레스와의 컬래버레이션을 담당했던 일본 이토엔의 마케팅 담당자는 강연 내용을 통해, 인그레스 요원(유저)들의 모습이 계속적인 이벤트 추진에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요원들은 자발적으로 인그레스 포털로 지정된 자판기의 지도를 제작하거나 이토엔의 음료만 이용하는 모습도 보이는 동시에, 오프라인 이벤트 현장에서 배포된 음료의 빈 병을 자발적으로 수거하는 등 성숙한 모습이 컬래버레이션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밝혔다.



▲ 2014년의 인그레스 이벤트. 맨 앞 줄에 존 행크 나이언틱 대표가 앉아있다.
(사진 : 나이언틱 카와시마 마사시 디렉터)



▲ 나이언틱과의 협력을 통해 교토부에서 제작한 포켓몬 GO 관광 지도



■ 한국에도 성지가 나타날 수 있을까?

일본의 구마모토가 잠만보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데는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 사회를 일으키고자 하는 지자체의 과감한 결정과 게임사의 적극적인 협력, 그리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GPS 위치 정보 활용 게임의 특징이 하나가 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포켓몬 GO의 행보는 다른 국가보다 빠른 편이다. 포켓몬 GO가 가장 먼저 출시된 미국에서는 스타벅스, 스프린트 등과 파트너십 계약을 맺기까지 5개월이 걸렸지만, 한국에서는 출시 1개월 만에 세븐일레븐, 롯데리아 등 롯데 그룹의 계열사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포켓몬 GO가 큰 인기를 얻은 데는 포켓몬스터라는 IP의 힘이 가장 크다. 하지만 위치 정보를 이용하는 게임의 특성은 유저들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 이를 살린 비지니스 전략과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에서는 포켓몬 GO가 단순히 게임으로 그치지 않고 유저들을 매장으로 유인하는 간판이자 침체된 지역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활력소가 되는 데 성공했다.

작년의 속초, 그리고 둥지로 지정된 공원 등을 통해 한국에서도 포켓몬 GO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검증되었다. 이 때문에 이미 어떤 지자체에서는 포켓몬 GO를 활용하기 위해 나이언틱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구마모토와 비슷한 유형의 이벤트가 열리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 한국에서도 포켓몬 GO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음은 이미 검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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