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망겜 탐지견' 기자의 4년 만의 LoL 도전기

기획기사 | 신동근 기자 | 댓글: 71개 |



내 직책은 인벤 e스포츠팀 기자. 우수한 e스포츠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능력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다양한 e스포츠 종목에 대한 이해도다. 대회가 열리는 수많은 게임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빠르게 지나가는 경기 화면을 이해하고 간결하되 짧지 않게, 그리고 빠르게 글로 풀어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e스포츠 기자로 활동하는 우리들은 숙련된 '겜돌이'들이라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누가 뭐래도 역시 LoL에 대한 이해도라고 할 수 있다. 현 e스포츠 대회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LoL이니 말이다. 인벤 e스포츠팀 기자들은 이따금씩 집에 있을 때 서로를 불러 듀오, 3인큐, 때로는 5인큐를 돌려 e스포츠 기자로서 노력을 다하고, 게임이 끝나면 내가 캐리했네 네가 못해서 졌네 등의 정치를 디저트로 곁들인다. 즉, LoL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e스포츠 기자인 우리들에게는 마치 전공필수과목을 이수하는 것과 같으며 때때로 돌리는 다인큐는 조별과제와도 같은 셈이다.

하지만 나는 LoL을 하지 않는다. 인벤 내에서도 '망겜 탐지견' 역할을 맡고 있는 나는 오히려 LoL을 제외한 온갖 비주류 게임들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한국에서 LoL 빼고 '망겜' 취급 안 받는 게 뭐가 있겠냐만은. 쓰레쉬가 출시되기 전에 LoL을 접었으니 그때가 시즌3로 넘어가는 프리시즌 초창기 즈음이었다. 10명이 넘어가는 인벤 e스포츠팀 기자 전체를 통틀어 LoL을 전혀 플레이하지 않는 사람은 나 하나 뿐. 하지만 어쨌거나 LoL을 했던 적은 있었기에 최소한 게임을 볼 줄은 안다. 때문에 옆 자리에 앉은 동료 기자들이 LoL을 하고 있으면 종종 그걸 구경하곤 한다.

내가 LoL을 구경하고 있으면 동료 기자들은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듯한 신기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곤 한다. 평소 LoL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걸 구경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리고 동료 기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플린님은 누구보다도 LoL을 사랑하면서 그 본심을 숨기는 걸까?"라고. 사실은 내가 누구보다 LoL을 좋아하지만 도타2를 오래 플레이했기 때문에 그 자존심 때문에 이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LoL을 싫어하는 척 코스프레를 한다나. "사실 플린은 LoL을 하고 싶어한다"란 소문이 어느새 강제로 사실이 되어버려 나는 동료 기자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LoL을 재설치해야했다. 그렇게 뼛속부터 '아싸'의 기질이 가득한 반골(反骨) 기자는 4년 만에 타의로 LoL에 들어왔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LoL 신 클라이언트라는 것 같다. 내가 LoL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너무 형편없는 클라이언트 성능이었다. 세상에 2016년도에 리플레이 기능조차 지원하지 않는 게임이라니. 20년도 더 전에 나온 스타크래프트도 리플레이가 있음을 감안하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던 LoL에 신 클라이언트와 함께 리플레이 기능이라니. LoL에 대한 평판이 적대적에서 중립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아직 LoL을 시작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계정을 쓰지 않았던 탓에 계정이 잠겨버렸던 것. 무슨 이유에선지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는 에러가 계속 뜨면서 도타2의 기운이 잔뜩 묻은 나를 LoL 클라이언트가 자체 검열하는 듯했으나 크롬에서 재시도를 한 결과 단번에 통과했다. 역시 플랫폼은 크롬이다.

4년 만에 접속한 LoL 클라이언트는 상당히 많이 바뀌어있었다. 새로 추가될 캐릭터인 카밀의 일러스트가 중앙을 가득 채웠고, 공지란과 각종 이벤트 및 세일 스킨 광고는 하단에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내가 LoL을 했을 때는 클라이언트 중앙에 온갖 이벤트 알림만 가득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앞으로 추가 예정인 챔피언도 보여주고 세상 참 많이 좋아진 것 같다.

간만에 LoL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 순간, 나는 내가 LoL을 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진입장벽을 피부로 깨닫게 됐다.







LoL의 장점을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낮은 진입장벽'이라고 답변한다. 그만큼 LoL은 AOS 게임치고 동일 장르의 타 게임들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4년 만에 LoL을 접할 때 나는 이 말에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당장 어떤 캐릭터를 시작하고 싶은데 RP나 IP가 없어서 캐릭터를 할 수 없었고, 설령 그 캐릭터가 있다고 해도 룬을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특성은 어떻게 찍어야할지 그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사람 입장에서 큰 진입장벽이었다. 게다가 특성 카테고리도 분명 공격, 방어, 지원 이라는 심플한 항목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뭔지 당장 알아보지도 못할 흉포, 책략, 결의란 이름으로 바뀐 바람에 옆 자리의 동료 기자에게 이게 무슨 특성들이냐고 물어봐야만 했다.

그나마 나는 상황이 좀 나은 편이었다. 시즌2 당시에 웬만한 룬은 다 사뒀고 룬 페이지도 잔뜩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룬을 준비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어떤 형태의 룬이 필요하고 특성은 어떻게 찍어야하는지는 챔피언 공략실에 가면 대부분 나오니까. 역시 커뮤니티는 인벤이다.




연습 따위 100번 해 봐야 1번의 실전만 못하다는 견해를 가진 철저한 실전파인 나는 봇전 따위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바로 큐를 돌렸다. 시즌2 때는 플레이 버튼을 찍자마자 '쿵'하면서 큐가 잡혔는데 이젠 무려 30초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4년 동안 대체 LoL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약 4년 만에 LoL에 접속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쉬었던 사람이 다시 LoL을 하려고 할 때는 주변에서 보통 서포터를 추천해주는 편이다. 하지만 LoL의 중심, LoL의 꽃이 어디던가? 바로 미드 아니겠나.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해 높은 레벨과 고급진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막힌 탑, 바텀을 뚫어준 뒤 한타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그런 자리. 모두의 존경과 선망, 주목의 대상이 되는 그들. 관심종자인 나는 미드를 포기할 수 없었다.




미드 아리 '원챔충'이었던 나는 녹슬지 않은 속도로 누구보다 빠르게 아리를 선택했다. '원챔충'이 챔피언 픽 하는 속도가 느려서야 쓰나. 같이 하는 사람이 몇 년간 LoL을 하지 않은 생초보란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아군들은 별 말 없이 미드를 양보해줬다. 내가 예상한 그림은 누군가가 마스터 이 미드 정도를 고르고 내가 미드를 가겠다며 우기다가 싸우는 그런 구도였는데 이제 그런 일은 기억 속의 안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된 걸까?

다시 보니 픽 화면도 꽤 깔끔하고 예쁘게 변했다. 전에는 거무튀튀한 색이 배경의 대부분이었다면 이젠 눈이 즐거운 아리의 일러스트가 배경을 꽉 채우고 있다. 게다가 챔피언 밴픽 단계에서 남이 선택한 챔피언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이 꽤나 세련된 멋을 갖추지 않았나. 덤으로 아리 일러스트도 좀 바뀐 것 같고... 구 일러스트나 신 일러스트나 아리는 사랑이다.

게임에 들어갔더니 바뀐 점이 굉장히 많았다. 정글에 폭발하는 씨앗이 심어져 있지를 않나, 유령은 퇴치당했는지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는 새 떼가 눌러앉았으며 작골은 분열을 하고... 아이템도 내 기억 속의 아이템 중 절반 정도는 사라진 기분이다. 아리의 필수품이었던 죽음불꽃 손아귀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갈 곳을 잃은 나는 무슨 아이템을 사야할지 감도 잡지 못한 채 롤챔스에 아리가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선 성배를 갔고, 이유도 모른 채 욕을 한 사발 먹어야 했다.



▲ 비록 솔킬을 당했지만



▲ 로밍으로 더블킬도 따내고 나름 할 만큼 했다



▲ 나아아는 잘했는데 우리 정글이~~~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했다. 아이템이 너무 많이 바뀐 탓에 어떤 캐릭터로 무슨 아이템을 가야할지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분명히 내가 롤챔스에서 아리를 봤을 때는 선템이 무조건 성배였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일이 잘못됐던 것일까.

아리로 선 성배 가는 짓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팀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이제는 추천 아이템에 뜨는 아이템대로 가면 제 몫은 한다고 한다. 내게 있어 LoL 추천 아이템이라 함은 구인수의 격노검, 내셔 남작의 이빨 따위나 주구장창 띄워주는 믿고 거르는 그런 존재였는데 이것도 환골탈태 했다.

게다가 이번 프리시즌은 암살자 챔피언 리메이크가 진행된 직후. 많은 수의 챔피언들이 꽤 개성있는 스킬로 무장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멋'을 갖추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내 눈에 그간 LoL 챔피언들의 스킬 디자인은 하나같이 거기서 거기였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챔피언인 아우렐리온 솔, 탈리야, 아이번 같은 챔피언들은 꽤나 임팩트 있는 자신만의 스킬을 갖고 나오면서 깊게 파고들 만한 거리가 있는 챔피언이다. '개성'이라고 해 봐야 카직스나 렝가 정도가 최고점이었던 4년 전의 LoL과는 매우 달랐다. 어쩌면 그런 챔피언들이 많아져서 내가 적응을 못하고 있는 건지도...



▲ 과거에 비하면 얼마나 풋풋한 채팅인가

무엇보다 LoL의 채팅 환경은 내가 플레이하던 당시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바뀌어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내가 아리로 첫 플레이를 했을 때 카타리나에게 솔로킬을 당하던 순간 이미 나는 여러 분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되었을 터. 그러나 성배라는 아이템 트리를 욕할 때 빼고는 게임이 어떻게 흘러가든 크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4년 전, 내가 LoL을 접은 데는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골드에서 플래티넘으로 가는 승급전 2승 2패 후 다섯 번째 게임에서 5픽이 시작과 동시에 "mid or feed"를 외쳤고, 그걸 본 1픽이 말투를 트집잡으며 "저런 놈은 버릇을 고쳐야한다"며 둘이 함께 트롤링을 했던 것이다. 아직도 그 둘의 챔피언이 기억난다. 하나는 하이머딩거에 하나는 르블랑. 20분 내내 둘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적 미드로 돌진만 했고, 그 와중에 서로 부모님 안부를 묻기 바빴다. 서포터를 했던 나는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 승급에 실패했고, 둘을 리폿했으나 다음 게임들에서 또 만난 후 증오만을 남긴 채 모든 컴퓨터에서 LoL을 삭제하고 두 번 다시 설치하지 않았다. 쌍으로 트롤링을 해서 한 사람의 승급전을 망쳤던 그놈들은 지금 뭘 하고 지낼까.

고의 트롤과 욕설. LoL을 피폐하게 만든 주범들이었으나 그간 이들에 대한 제재라곤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라이엇이 본격적으로 데마시아 시스템을 도입한 후 4년 전 수준의 소돔과 고모라는 더 이상 찾기 힘들어졌다. 최소한 내가 직접 본 바로는 그랬다. 전 라인에서 솔로킬이 터지더라도 일부러 게임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고, 욕을 하기보다 그냥 조용히 게임만 하다가 20분에 서렌을 칠 뿐이었다. 옆 자리에서 동료 기자들이 제출한 리폿 결과가 처리됐을 때 알림까지 띄우면서 알려주는 걸 보면 확실히 게임 환경이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깨끗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LoL을 하면서 4년 전과 가장 크게 바뀌었다고 느낀 것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미드라는 헛된 망상을 버리고 얌전히 서포터 레오나를 골랐고, 다행히도 이번에는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레오나는 스킬이 바뀌지도 않았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고, 벽과 같았던 아이템 트리는 그냥 추천 아이템대로 간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내가 기여한 바는 거의 없었고 같이 라인을 섰던 원딜러에게 위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울어야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LoL을 했더니 게임은 대부분 졌지만 그래도 꽤 간만에 맛보는 신선함이었다. 예전과 굉장히 많은 부분이 바뀌어서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5게임을 한 후에야 내가 게임 내내 장신구란 것을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단 사실을 깨달을 정도였지만 말이다.

적응하기 힘들다고 투덜댔지만 LoL이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은 금방 체감할 수 있었다. 4년 내내 한 번도 LoL을 한 적이 없는 나조차 '다음 판에는 이겨야지' 하면서 게임을 돌렸으니까. LoL이 200주 넘도록 PC방 랭킹 1위를 수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여기서 나온 게 아닐까.

신 클라이언트가 적용되면서 리플레이 기능도 마침내 생겼고, 밴픽 화면도 훨씬 미려하게 변했으며 데마시아 도입 후 상대적으로 훨씬 깨끗해진 채팅창까지. LoL은 더욱 더 뛰어난 '갓겜'으로 거듭나기 위해 시즌7에도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LoL은 이번에도 수많은 유저들이 즐기는 최고의 게임 중 하나로 남지 않을까.








이 기사를 다 쓴 것은 수요일. 그 후로 나는 LoL을 정말 많이 플레이했다. 왜 내가 4년 동안 이런 게임을 하지 않았을까? 이러려고 내가 LoL을 지웠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도, e스포츠 기자로서도 이제서야 빈 톱니바퀴 부품을 찾은 느낌이다.

그런데 최근 이틀간 나는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꿈에서 무언가가 나를 부르고 있다... 지켜보고 있다... 쫓고 있다... 그들의 원한 섞인 피가래가 내 고막을 찢는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잠에서 깨고 나면 그 실체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사무실에서도, 퇴근길에도, 집에서 LoL을 할 때도 누군가 자꾸 날 쳐다보는 것 같다. 기분 탓인가?

그나저나 요즘 컴퓨터만 켜면 스팀에 저절로 로그인이 되면서 도타2 하나밖에 없는 라이브러리가 펼쳐진다... 컴퓨터에 바이러스라도 침투한 것일까? 이 기사를 올리고 나면 스팀에 들어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해 봐야겠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