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배틀필드 2042', 정신없이 만족스러운 전장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32개 |

대대로, '배틀필드' 시리즈와 '콜오브듀티' 시리즈는 묘한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지만, 사실 FPS 팬들은 이 경쟁 심리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BTS와 봉준호 감독 중 누가 나은지를 비교하는 느낌이랄까. '문화 산업'이라는 큰 틀에서는 묶여 있지만 K-POP과 영화 산업이 다르듯, 콜오브듀티 시리즈와 배틀필드 시리즈 또한 엄연히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게임이다. 뭐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간단히 차이점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콜오브듀티가 백병전 상황에서의 건파이트에 개발력을 쏟아붓는다면, 배틀필드는 철저히 '전장'의 구현에 초점을 둔다. 알보병들끼리 개인 장구를 갖추고 투닥거리는 상태에서의 디테일은 콜오브듀티가, 전체적인 전장의 구현과 스케일은 배틀필드가 압도적이다.

10월 4일, 미디어 대상으로 진행된 '배틀필드 2042'의 오픈 베타 테스트에서, 이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대규모 전장 구현'이라는 배틀필드 시리즈의 방향성에서도 정점에 놓인 '배틀필드 2042'. 플레이 가능한 맵은 '궤도' 하나 뿐이고, 모드 또한 하나 뿐이지만 올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가 어떤 모습일지 살짝이나마 살펴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예상대로 난장판이 된 전장, 줄어든 보병 비중

일단 예상대로다. 배틀필드 2042의 최초 발표 당시, '128인'이라는 참전 인원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8:8, 16:16, 32:32. 참전인원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전장의 복잡도가 두 배로 늘어나는건 아니다. 네 배, 열 배로 늘어난다. 기존 배틀필드 시리즈의 참전 인원이 64인이었는데, 그럼에도 게임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인원 수가 그 두 배가 되었으니, 대충 상상해도 얼마나 정신없는 전장이 펼쳐질지 상상이 될 거다. 그런데 상상 이상이다. 시리즈 최신작인 만큼 전장 또한 커졌지만, 이 정도로는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게임의 흐름도 전작 대비 많은 부분에서 바뀌었다. 일반적으로 배틀필드 시리즈의 게임 구도는 두 가지 경우의 수로 흘러간다. 서로 꼬리를 무는 뱀처럼, 주력의 공격 방향이 엇갈릴 때는 쉴 새 없이 거점을 뺏고 뺏기길 반복하게 되며, 우연찮게 서로의 공격 방향이 맞닥뜨릴 경우는 어느 한 쪽이 완전히 밀릴 때까지 치열한 접전이 펼쳐진다.



▲ 주 전선의 구별이 무의미할 정도

하지만, 배틀필드 2042는 워낙 참전 인원이 많다 보니 '주력'의 기준이 모호하다. 사람 많은 곳에 스폰해 우르르 몰려다니는 아군 속에 섞이는 것이 배틀필드 게이머들의 기본 심리일진데, 이번 게임은 아군 영역이라면 어디든 아군이 넘쳐나니 대충 아무곳에나 떨어져도 곧장 최전선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정 경로를 따라 전선이 생성되기보다는 맵 전체에 걸쳐 넓은 전선이 펼쳐진다.

전장의 불규칙성을 대변하는 '자연 재해'와 '맵 기믹'도 전장의 복잡도를 높이는 원인이다. 트레일러 영상에서 공개되었던 회오리 바람은 실제로 게임 내에 랜덤으로 발생하는데, 비행 장비들과 낙하산을 펼친 보병 등 바람에서 자유롭지 않은 모든 것들이 중심으로 빨려들어간다. 게다가 거센 바람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도 없어지기에 전선의 한복판을 쓸고 가기라도 하면 아예 전선이 리셋되어 버린다.




▲ '레볼루션'급은 아니었지만, 특정 조건을 달성할 때 볼 수 있는 맵 기믹도 재미있는 부분

전장의 복잡도가 올라가고, 인원 수가 늘어나면서 전략적 분대 플레이도 전작에 비해 어려워졌다. 이전엔 작은 보트나 헬기로 적 후방에 침투해 뒤에서부터 거점을 점령하는 플레이가 주효했으며, 일반적으로 후방 거점은 방어 병력이 아예 없거나, 길 잃은 한두명이 존재했기에 분대가 손발만 잘 맞는다면 분대 플레이는 가장 쉽게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방법이 되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도 어렵다. 길을 잃고 후방에서 해메는 병력이 한둘이 아닌데다, 부족한 인원 슬롯을 채우기 위한 봇들이 후방에 드물지 않게 스폰되다 보니 한 분대 정도로는 후방을 뚫어내기 어려운데다 뚫는다 해도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이전과 같은 후방 침투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두 분대는 뭉쳐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 비었구나 싶어서 오면 뜬금 봇(꽤 잘싸움)이 등장

전체적인 느낌으론, 전장의 구현과 보병 개인의 영웅적 활약이라는 저울에서 전장의 구현쪽에 조금 더 무게추가 실린 느낌이다. '배틀필드 2042'의 보병들은 정말 쉴 새 없이 죽는다. 물론, 이에 대한 대비도 적절히 이뤄져있긴 하다. 전작들에 비하면 TTK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늘어나 길가다 픽 쓰러지는 일은 드물지만, 눈 먼 총알에 맞아 죽는다거나, 엄한 폭발에 휘말린다거나 하는 식의 죽음은 피할 수가 없다.

이는, 냉정하게 보면 게임의 호불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배틀필드 2042'에서는 아무리 개인이 게임을 잘 해도 게임을 캐리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전투기나 전차, 헬기 등을 능숙하게 다루면 무게감이 생길 수 있겠지만, 인원 수가 늘어나면서 길 가던 알보병이 우연찮게 대전차포나 대공미사일을 들고 다닐 확률도 두 배가 되었다.




▲ 잘 날아가다 터질 확률도 두 배

실제로 중무장 장비들은 전작들에 비해 모자람 없이 강력하지만, 전작들만큼 게임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다만, 전장 그 자체의 분위기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이만한 경험이 없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폭발, 빗발치는 총탄과 대규모 접전의 압도적 감성은 '배틀필드 2042'의 주목할 만한 강점이다.



더 커지고, 더 편해지다

게임 내적으로 보이는 가장 큰 변화는 전장의 스케일이다. 대표 모드인 '컨퀘스트'를 기준으로 전작들이 대여섯 개의 개별 거점들을 지니고 있었다면, 이번 작품부터는 각 거점에 하위 거점이 생겼다. 예를 들면 A,B,C,D,E 로 구분되던 거점이 A-1, A-2, B-1, C-1, C-2, D-1, D-2, E-1 으로 구분되는 형태(하위 거점이 없다면 하나만 존재)다. 하위 거점을 양 팀이 양분하고 있다면 해당 지역은 '대치 구역'으로 되어 어느 쪽에도 티켓 이득을 주지 않으며 이 대치 구역은 게임의 최전선이 어디인지를 게이머들에게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할도 함께 맡는다.

'배틀필드4'부터 본격적으로 활용된 수평적 전장의 활용도 눈여겨볼 부분. 이번 베타에서 참여할 수 있는 '궤도'맵의 경우 그리 많은 고지대가 존재하는 맵은 아니지만, 그래도 곳곳에 고지대로 이동하기 위한 장치들이 존재하며, 실제로 고저차를 낀 전투도 굉장히 활발하게 벌어진다.




▲ 고저차를 낀 전투가 빈번하게 벌어진다

로드아웃과 총기 부착물의 관리는 이전보다 훨씬 편해진 편. 이는 총기 부착물을 실시간으로 바꿀 수 있는 '플러스 메뉴' 시스템의 도입 덕분인데, 실제로 굉장히 편하다. 굳이 리스폰을 하지 않아도 잠깐의 시간만 있다면 근접전용 리플렉스 사이트와 줌 인 스코프를 변경할 수 있으며, 전방 손잡이를 달고 중거리 접전을 하다가도 돌파의 필요성이 생기면 잽싸게 하부 유탄 발사기를 장착해 공세에 나설 수 있다.

사실 비현실적인 시스템이긴 하지만, 하여튼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사전 로드아웃의 복잡성도 줄었다. 로드아웃을 짤 때 무기 부착물을 세세히 지정해 줄 필요가 없으니 무기와 가젯, 폭발물만 선택하면 끝. 부착물은 일단 스폰된 후에 달려가면서 하나씩 바꿔줘도 문제가 없다.




▲ 플러스 메뉴 시스템으로 전투 중에도 손쉽게 부착물을 교체할 수 있... 으악

'스페셜리스트'는 생각보다 '캐릭터'라는 느낌이 강하게 오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배틀필드 시리즈의 전통적인 병과 구분에 가까우며, 전작인 '배틀필드V'를 플레이한 유저라면 익숙한 '전투 역할'에 고유 외관을 씌운 형태라 보아도 무방하다. 의무병 병과는 공통적으로 분대원 외 부활이 가능하고, 부활 시 체력을 가득 채워준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병과 내 스페셜리스트에 따라 의료 장비의 메커니즘이 살짝 달라지는 정도랄까.

스페셜리스트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이 상이할 수는 있지만, 무기나 가젯 등의 로드아웃은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큰 차별화가 느껴지진 않는다. 타 게임들과 달리 궁극 스킬이라던가, 매우 강력한 패시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 의무병을 해도 어썰트 패키지를 장착하면 그냥 치료기 든 돌격병이다



전작 대비 아쉬워진 부분은 없을까?

없었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존재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타격 인디케이터와 시각, 음향 효과. 상대를 처치해도 메시지가 매우 작게 노출되기 때문에 확실히 처치했는지 확인하기 어려우며, 총기를 맞출 때의 효과가 미약해 내가 상대를 때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허공에 총을 쏜 건지 구분이 어렵다. 전작만 해도 이 부분에 대한 문제가 크게 와닿지 않았기에 더 아쉬운 부분.

마찬가지로, 장비를 타격할 때도 타격감이 굉장히 아쉽게 다가온다. 전작은 대전차포로 전차를 파괴할 때 굉장한 파괴 효과와 타격음이 뒤따랐지만, 이번 작품은 내가 부순 건지, 아니면 다른 아군이 부순 건지 잘 알 수가 없다. 화면 한 켠에 자그맣게 메시지가 출력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살짝 부족한 느낌. 전작의 경우 활약을 할 때 내가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주루룩 올라가 합산되는 걸 보는 것도 게임의 재미 중 하나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이를 느끼기 참 어렵다.




▲ 뭔가 굉장한 활약을 해도 점수가 오르는 쾌감이 없다

한 가지 더 살짝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의무병 병과의 부활 메커니즘인데, 전작의 경우 시대적 배경에 따라 제세동기가 아닌 몰핀 주사기를 사용하다 보니 상대를 직접 붙잡고 목덜미에 주사기를 꽂아넣는 형태였다. 타겟 지정형 부활이었기 때문에 빗나가는 경우도 없었는데, 본작은 4편과 동일하게 제세동기를 비벼 튀겨주는 방식을 사용했다. 부활이야 문제 없이 되지만, 비비는 과정에서 타겟팅이 어긋나면 부활 과정이 멈추는데다, 부활에 성공해도 앞서 말한 빈약한 인디케이터 때문에 성공한 건지 구별이 쉽지 않다. 제세동기로 상대를 튀기는 공격법을 고려했기에 도입한 방식 같지만, 공격과 부활 용도에 따라 애니메이션을 다르게 설정했으면 어땠을가 하는 아쉬움은 살짝 남는다.

물론, 이는 게임 내에서도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고, 베타에서 정식 출시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숱하게 고쳐지는 부분이기에 크게 문제삼을 부분은 아니다. '베타니까'라는 네 글자로 설명이 가능한 정도의 아쉬움 정도라고 해야 할까.



▲ 뭐시여 내가 살린겨?

그 외 게임에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몇몇 버그들도 눈에 띈다. M키를 눌러도 전체 맵이 열리지 않는다거나, 넷코드 문제인지 공중에서 수평으로 순간이동하는 전투기라든가, 총기 로드아웃이 부활할 때마다 초기화되는 문제, 게임에 참여했더니 맵 지하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문제 등등 말이다.

이 또한, '베타니까'로 설명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베타에서 겪은 버그에 대해 수정할 것을 약속했으나, 실제론 수정되지 않고 본편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경우는 지금까지 여러 게임에서 적잖이 발생했었고, 작년 말, 버그 논란으로 문제가 되었던 대작 게임 또한 베타 시점에서는 버그가 모두 수정될 것이라 밝혔던 바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이 버그들은 정식 출시 시점에서 볼 수 없기를 바라는 바다.



▲ 지형을 뚫고 보이는 낙하산, 도무지 몰래 올 수가 없다.

처음으로 돌아와, '배틀필드 2042'의 전체적인 감상을 짧게 정리하면, '배틀필드답다'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배틀필드의 시그니쳐라 할 수 있는 대규모 전장의 구현은 이전의 어떤 작품들과 비교해도 부족함 없이 표현되었으며, 전작 대비 늘어난 인원 수가 이 분위기에 힘을 더한다. 다만, 이 개발 방향에 의해 병사 개개인의 무게감이 줄어들고, 활약의 여지가 줄어든 바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전보다 어려울 뿐, 어느 게임이든 게임을 이끄는 고수는 결국 등장하기 마련 아니던가.

'배틀필드' 시리즈로는 수 년 만의 근미래/현대 배경, 그리고 이전의 '배틀필드다움'이 더 강력하게 반영되었다는 점 만으로도, 시리즈 팬들에게 배틀필드 2042는 충분히 플레이할만한 가치가 있는 타이틀이 아닐까 싶다. 글로만 읽어서 잘 모르겠다 하면, 직접 해봐도 무방하다. EA 플레이를 구독했거나, 게임을 예약 구매했다면 지금 당장 오픈 베타를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 무려 128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멀티플레이
  • 유려한 그래픽과 날씨 및 환경 효과
  • 본편보다 재미있는 포탈 모드
  • 지나치게 넓고 단조로운 전장
  • 치명적이면서도 너무나 많은 버그
  • 총기 및 장비들의 총체적 불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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