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게임이기에 성립하는 영상 드라마 'TELLING LIES'

리뷰 | 정필권 기자 | 댓글: 12개 |

개인적으로 영화와 게임의 중간점이라 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무비'는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 장르라고 평가하고 싶다. 양쪽의 장점을 가져온 장르라는 특징은 곧, 자칫하면 이도 저도 아닌 타이틀로 마감될 가능성을 남긴다. 영상과 게임이라는 두 다른 문법을 가진 존재를 어떻게 섞고 활용할 수 있는지 깊은 고이 필요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2015년 샘 발로우가 제작한 '허 스토리(Her Story)'는 독특한 스탠스를 보여준 타이틀이라 할 수 있다. 실사 촬영된 영상을 활용한 구성, 반전 있는 시나리오, 게임으로서의 완성도까지 갖추며 매체들의 호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영상의 연출을 의도적으로 제한하여 게임 시스템상에서 반전을 깨달을 수 있도록 구성하며 장르 측면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확실하게 강조했다.

'허 스토리' 출시 이후 햇수로 5년. 샘 발로우는 전작과 유사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신작 '텔링 라이즈(Telling Lies)'를 선보였다. 유명 배우들의 열연, 선택과 결과라는 게임의 문법을 깊게 고민한 타이틀을 말이다.





'선택' 그리고 '제한'
인터랙티브 무비에서 중요한 것

영상 위주로 구성된 장르 '인터랙티브 무비'에 있어서 선택이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을 선택이라는 개념을 통해 정의하고 있어서다. 플레이어가 영상에 개입하는 선택 과정은 '플레이를 한다'는 생각으로 연결되고,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계기가 된다.

샘 발로우의 전작, '허 스토리(Her story)'가 그러했듯 텔링 라이즈에도 플레이어의 선택은 큰 의미가 있다. 해당 장르를 꾸준히 만들어 온 샘 발로우이기에, 시스템적으로 마련한 확실한 제한과 선택으로 궁극적인 이야기가 달라지도록 설계를 해뒀다.




텔링 라이즈에서 우리는 랩탑 하나를 지켜보는 인물이 된다. 이 랩탑을 이용해 약 82개의 동영상을 살펴보고 하나의 사건 기저에 있는 이야기를 되짚어 나가게 된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되짚은 과정은 선형적이지 않다. 흐름에 따라 차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키워드를 입력해 하나씩 알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검색 결과가 한 번에 노출되는 것도 아니다. 다수의 검색 결과가 나오더라도 화면에 표시되는 것은 오직 다섯 개. 허 스토리에서도 주어지던 의도적인 제한은 이번 타이틀에도 이어졌다. 다른 수도 아니고 5개로 검색 결과가 나온다는 점은 텔링 라이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한다.




게임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모든 영상은 등장인물 한 사람의 시점, 대화만이 녹화되어 있다. 화면 너머에서는 다른 등장인물이 있으나, 오직 한 사람의 목소리와 대화에서 단편적인 정보만 제공된다. 즉, 하나의 영상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시점에서 녹화된 영상이 존재함을 의미하며, 하나로는 모든 대화의 맥락을 알 수가 없다는 뜻이 된다.

그렇기에 다섯 개만을 보여주는 제한은 곧 최소 1개의 대화는 물음표로 남는다.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 도출되는 5개의 검색 결과물 중 2쌍은 같은 시간의 영상이고 남은 하나는 다른 시간대의 영상이라면? 뒷이야기를 알아내기 위해 상대의 대화를 추리하고 올바른 키워드를 잡아내기 위해 영상을 살펴보는 흐름을 낳는다.



▲ 키워드를 선택하고 다시 검색을 돌리며, 진실을 찾는 과정이다.

어떠한 키워드를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는 플레이어의 선택. 여기서 나오는 결과물은 정렬되지 않은 날 것의 자료다. 마치 흩어진 퍼즐 조각들의 집합처럼 보인다. 정렬 없이 흩어진 자료들을 키워드라는 최소한의 가이드를 이용해 무작위로 탐색하는 과정에 가깝다.

따라서 텔링 라이즈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비선형적인 구조로 이루어진다. 시간대는 물론, 인물 관계, 이면에 숨어있는 진실까지.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은 플레이어 스스로 기준을 잡지 않으면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된다. 네 명의 주연과 더불어, 여러 조연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그렇기에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순서대로 배열하고 추측하는 과정 전부가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 '모니터 밖 인물'이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달라지는 '결과'
선택에 대한 피드백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검색 결과물은 최종적으로는 '다른 결말'로 이어진다. 게임의 엔딩에 도달해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파편화된 영상과 대화, 플레이어가 관심을 둔 부분, 검색한 키워드는 엔딩 이후 제공되는 보고서를 채운다.

전체 영상 중에서 얼마나 많이 확인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키워드를 관심 있게 보려 했는지. 영상에서 어떤 대사를 북마크 했는지와 태그에 어떠한 키워드를 사용했는지. 그간의 선택과 행동을 종합에 각각 다른 결과물을 내놓는다. 흩어진 영상 속에서 플레이어가 만든 기준이 이야기의 결말을 결정한다.



▲ 검색 키워드, 태그, 북마크, 시간과 횟수. 모든 과정이 결과를 정한다.

다만, 텔링 라이즈에서는 직접적인 선택은 없다. 게임 엔딩의 트리거가 되는 영상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나, 작은 선택이 모이고 모여 결말로 이어진다.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엔딩이 찾아오며, '엇' 하는 순간에 게임은 끝을 맞이한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플레이어가 어떤 영상을 보았는지에 따라, 같은 장면은 다른 의미와 해석을 갖는다. 이 장면은 제작자인 샘 발로우가 의도한 부분처럼 보인다. 모니터 밖 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각 등장인물들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도 다른 결과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 어떤 이야기를 봤는가에 따라서 마지막 영상의 감정선도 달라진다.


'이야기' 그리고 '연기'
장르의 가장 큰 장점

스포일러를 피하는 수준에서 설명하자면, 게임의 제목처럼 모든 등장인물 사이는 크고 작은 거짓말들이 채우고 있다. 주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데이빗(배우: 로건 마셜그린, 톰 하디 아님)을 중심으로 나머지 세 명의 주인공과 다수의 조연이 등장해 열연을 펼친다.

비선형적인 흐름으로 촬영이 진행되었음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완성도가 높다. '로건 마셜그린'이 보여준 통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표정 연기, 말투, 어조의 변화는 물론이고 갓 성인이 된 사회 운동가를 연기한 '알렉산드라 십'의 감정선 변화 등 눈여겨볼 장면들이 많다.

이외에도 아역 배우와 함께 상실, 사랑을 보여준 '캐리 비셰이', 인터넷 어딘가에서 진행되는 음란 방송 호스트의 퇴폐적인 이미지를 잘 살린 '안젤라 사라피언'까지. 주요 인물 네 명의 연기가 게임을 채운다. 격정적인 카메라 연출이 없음에도. 한 영상의 1/2가 침묵으로 채워져 있음에도. 대사의 강도와 표정 연기로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 볼거리다.



▲ 주연 네 명의 연기는 일품.

게임의 트레일러에서는 '하나의 거짓말을 찾는' 것이 게임의 궁극적인 목적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게임 플레이에서 텔링 라이즈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진실'보다는 이야기의 구성에 무게감을 둔다. 사건의 중심이 되는 거짓말은 게임 초반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다, 선택과 결과에 따라 주인공이 달라지는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비선형적인 이야기는 일종의 옴니버스 구조처럼 느껴진다. 플레이어인 우리가 등장인물 중 누구에 몰입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양상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개발자는 이야기의 시작과 결과만을 고정해 두고 과정은 플레이어에게 맡긴다. 개발자가 설계한 대로 이야기를 수용하는 구조를 탈피하고자 위함이다.

그러므로 첫 플레이에서는 각각 다른 후일담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감정선이 머무는 캐릭터는 서로 다를 테니까. 확실한 결말이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비판의 시선을 던져볼 수 있겠지만, 이를 두고 잘못 설계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듯하다.

비선형적인 영상, 이야기를 하나의 줄기로 분류하는 과정이 텔링 라이즈의 핵심이어서다. 플레이어 스스로 어떤 인물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텔링 라이즈의 이야기는 치정극이 될 수도. 막장 불륜이 될 수도. 정치와 피해자에 대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 무얼 보아왔는가에 대한 답이다.


인터랙티브 무비 장인, 샘 발로우
무엇이 이걸 게임으로 만드는가

영화와 게임의 중간 어디인가 즈음에 자리 잡은 '인터랙티브 무비'라는 장르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장르임에는 분명하다. 선택이라는 요소를 영화에 접목하기는 했지만, 게임 구성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허술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장르이기도 하다. 반대로 영화에 선택을 넣었을 때,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 선택을 어떻게 게임답게 활용하느냐에 대한 답이다.

하지만 '허 스토리'와 같이 꾸준히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를 만든 샘 발로우는 조금 다른 시각을 전한다.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보다, 선택에서 나오는 플레이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것에 맞춰져 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영상미를 억제하고 게임 플레이에 비중을 둔다. 게임의 장르, 표현 영역에서 실사 영상이 활용될 뿐이며, 게임 시스템의 범주를 넘어가지 않는다.



▲ 영상의 집합에서 게임으로.

영상 매체로서는 성립하기 어려운 다이얼로그식 대화, 비선형적 이야기 구조. 거듭된 선택이 결말로 이어지며, 플레이어의 뇌 내에서 조립되는 시나리오까지. 행동에서 얻어가는 보상(결말)을 작품의 중심에 두려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같은 장르의 게임과도 대비되는 독특한 시도이기도 하다.

게임의 시작부터 엔딩까지 약 세 시간 미만. 짧은 분량임에도 '텔링 라이즈'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택과 행동을 통해서 결과물로 스토리를 얻는다는 구조. 보상의 역할을 하는 스토리의 흥미로움. 실사 영상을 가득 채운 배우들의 열연까지.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인터랙티브 무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전작인 허 스토리를 플레이했던 사람에게 있어서 '텔링 라이즈'는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는 타이틀이 되기 충분하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식 한국어화까지 완료되어 게임을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샘 밸로우가 게임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 '텔링 라이즈'는 스팀과 iOS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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