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형태가 말하는 데스티니 차일드, "손맛 느껴지는 2D의 정점 보여주겠다"

인터뷰 | 박태학 기자 | 댓글: 108개 |




'창세기전 세대' 게이머에게 김형태란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다.
그냥 그림체가 튀었다. 기자도 미술 전공하는 학생일 때라 유심히 봤다.
일러스트집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봐라? 여캐 그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이 허벅지를 봐, 꿈틀거리는 느낌이 장난이 아냐.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하고 일러스트집 돌려봤다. 다들 좋아했다.
이거 참, 남자를 아는 사람인 게 틀림없다.

15년이 흘렀다.
당시 미술 전공하던 학생은 게임 전문 기자가 됐다.
그리고 남자를 아는 남자 김형태를 만났다.
내가 키보드 두드리는 사이 그는 회사 대표가 되어 있었다.

그가 총괄한 '데스티니 차일드'에 대해 물었다.
아티스트 김형태가 그린 '허벅지'같은 게임.
그때도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대놓고 움직인다.
이거 참,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간담회에서 미처 듣지 못했던, 조금 더 깊은 질문을 꺼냈다.




▲ 시프트업 김형태 대표 (좋은 포즈다)





■ "진짜 열심히 그렸다. 최근 10년 간 그린 거 두 배 이상으로."

카프 :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대략적인 로드맵을 발표하시긴 했는데요,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고 싶어요. '데스티니 차일드'를 지금 어디까지 개발한 상태인가요?

김형태 대표(이하 김형태) : 등장하는 캐릭터가 500종인데, 일단 기본적인 리소스 부분은 120% 이상 진행됐어요. 그런데 게임이라는 게 기술이나 리소스로만 완성되는 게 아니잖아요. 서비스 쪽 기획은 작업이 아직 한창이에요. 기왕 하는 거 완벽하게 만들어야지. 담금질이라 생각하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 안 하려고요. 내년 2월에 CBT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유저 분들 의견을 받고 개선해나가고 싶어요.

카프 : 맞다, 500종이죠. 이게 정말 의외였어요. 일러스트 퀄리티도 그렇지만 일단 하나하나 움직이니까... 이거 개발 비용이 상당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숫자가 적은 것도 아니니까요.

김형태 : 예전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아마 '블레이드&소울' 마무리하고 엔씨소프트 나올 때였던 것 같은데... '일러스트레이터 본연의 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었거든요. 그렇게 선포하고 제가 회사를 딱 퇴사한 다음에 아예 새 회사를 차려버리니까 하하,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아니, 그림 그린다더니 웬 대표냐고. 그런데 사실 바뀐 건 별로 없어요. '데스티니 차일드'에 내가 그린 그림만 100종 가까이 돼요. 꾸엠님 작품이 107개고요. 제가 회사 차려놓고 마냥 논 게 절대 아니에요.

카프 : 엔씨소프트 나온 시점이라면 작년 1월 아닌가요? 올해 말까지면... 약 2년 정도 시간이었는데... 회사 세우는 데 들인 시간 빼면, 그림 그리는 것도 되게 빠듯했을 것 같은데요.

김형태 : 아, 정말 열심히 그렸어요. 진짜로. 요 2년 간 100종 그린 게 어느 정도냐면요. 제가 그 전에 10년 간 그렸던 일러스트 숫자와 비교해도 두 배 이상 많은 거예요.



▲ "이중에서 100개 정도는 제가 그렸어요."


■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가벼우면서도 잔잔한 감동이 있는 이야기."

카프 : 공식 홈페이지 처음 나왔을 때 보고 딱 느낌이 오더라고요. '김형태가 정말 콘셉트 확실하게 잡고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캐릭터 움직이는 거 중심에 딱 세워 놓고 다른 데는 하나도 안 꾸몄어요. 캐릭터 강조하는 데 9, 배경이 현대 시점이라는 거 보여주는 데 1 투자했죠. 그 외 게임에 대한 설명은 거의 극비 수준이었어요.

김형태 :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공개한 이유는 단순해요. 그 캐릭터가 유저분들 눈에 빨리 익었으면 좋겠고, 더 빨리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그랬어요. 캐릭터들마다 갖고 있는 성격이 다 다르거든요. 외모, 성격, 말투, 그리고 행동으로써 유저들에게 다가가 인사하라고 우리가 등 떠밀어준 거죠.

카프 : 꾸준히 캐릭터를 강조하는데, 이 친구들을 통해서 뭘 보여주고 싶은 건가요?

김형태 : 인물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이야기요. 시프트업에서는 장르명을 아예 '네러티브 RPG'라고 불러요. 모든 캐릭터가 다 이야기에 녹아들도록 만드는 게 첫 번째 과제였어요. 주인공과 그 동료들, 하나하나에 다 신경 많이 썼어요.



▲ "빨리 유저분들과 친해지길 바랄게."


카프 : 그럼 뼈대가 되는 이야기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는데, 어떤 느낌의 시나리오인지 살짝 알려주세요.

김형태 : 막 시장에 나온 초대형 RPG들처럼 장엄하거나 그런 얘기는 아니에요. 빨간 뿔머리 남자애가 주인공인데, 마계에서 온 악마의 후손이라는 설정이거든요. 악마 후계자들에게 월 40만 원씩 나오고, 이 돈으로 지상에서 원룸 잡고 살면서 즐겁게 살아요. 그런데 이 친구가 마왕 자리 후보에 의도치 않게 등록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자신의 세력을 많이 넓히는 게 마왕의 조건이고, 그 과정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거죠.

카프 : 뭔가 되게 현실적이면서도 그게... 약간은 가벼운 느낌도 들고.

김형태 : 주인공부터가 악마스럽지 못해요. 진짜 생활밀착형 주인공이거든요. 그러니 게임 분위기가 그렇게 무거울 수 없죠. 제가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되게 좋아하는데 거기 나오는 것처럼 운명을 건 이야기, 이런 묵직한 분위기는 아니고... 시시한 농담 따먹기 같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복선이 있어요. 요즘 SNS 보면 그러던데... 시시한 얘기를 쭉 나오다가도 갑자기 감동적인 이야기로 전개되고 막 그럴 때 있잖아요. '데스티니 차일드' 이야기가 그래요. 처음엔 되게 유치한데 같이 가다보면 의외의 감동이 있고 그런.

카프 : 메인 배경을 강남으로 잡으셨는데, 월 40만 원 받는 생활밀착형 주인공이 살기에는 조금 빠듯한 장소 아니에요?(웃음)

김형태 : 배경을 강남으로 한 건... 저희 사무실이 강남에 있어서.(웃음) 꼭 강남에서만 얘기가 진행되는 건 아니고 나중에는 여의도도 가고 그래요. 메인이 강남인 건 '욕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악마들의 데이터베이스 수집에 적합한 곳 같았죠. 아, 그리고 주인공 집은 강남 아니에요. 월세 좀 싼 곳에 살아요. 강남으로는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고.



▲ 속세에 궁둥이 깔고 눌러 앉은 주인공. 이래뵈도 마왕 후보다.


■ "잘 안 보이던 부분도 다 그렸다. 아예 개발툴도 그쪽에 최적화된 걸 썼다."

카프 : '데스티니 차일드'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거잖아요. 막 펄떡펄떡 움직이는 캐릭터. 그런데 이게 좀 특이하더라고요. 2D 캐릭터가 부드럽게 움직이는 게임은 많았지만, 뭐랄까...이건 부피감이 느껴지는 움직임이었어요. 허벅지가 막 꿈틀대는데 그 위로 반사되는 빛까지 움직이는 거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형태 : 캐릭터랑 배경은 일본의 '라이브 2D' 툴하고 3D 툴을 같이 사용해서 만들었어요. 시각적인 면에서는 유니크하게 보이고 싶었어요. 그, 게임 내 이펙트 만든 툴이 프랑스산이거든요. 현지 본사에서 '너희가 이 툴을 쓴다고?'라며 깜짝 놀라는 거예요. 긴가민가 하더라고. 나중에 프랑스 대사관 통해서 개발자들 만났고, 우리 게임에서 어떻게 그 기술이 적용되는지 보여주니까 그때서야 허락해주더라고요.

카프 : 그 툴이 어떻길래 그렇게 푹 빠지신거예요?

김형태 : 손으로 그린듯한 느낌을 주는데 최고거든요. 진짜 장난이 아닌데... 우리 게임 콘셉트가 그거였으니까 안 쓸 수가 없더라고요. 궁극에 달한 '손맛'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타격감 같은 손맛이 아니라, 진짜 하나하나 손으로 그린 듯한 그 느낌 있잖아요. 손 그림이지. 손 그림.

카프 : 그 프랑스산 툴 이름이 뭐죠?

김형태 : 'TV 페인트'. 원래 애니메이션 만드는 데 쓰는 툴이에요. 그쪽 사람들이 그러던데, 한국에서 정품 사서 쓰는 회사는 저희가 처음이래요.

카프 : '데스티니 차일드' 흥행 결과에 따라서 이게 레퍼런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김형태 : 실력있는 사람이 쓴다는 전제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정말 좋아요. 기계적인 자동화 물리효과가 없고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데, 그만큼 아티스트의 센스와 능력이 발휘될 여지가 크거든요. 그런데 이게 대중화될지는 솔직히 의문이에요. 우리도 구매 문의할 때 엄청 고생했거든요. 뭐 딱히 유통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생각하면 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죠.(웃음)

카프 : 엔씨소프트에서 하신 작업은 쉐이더 물리 기반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이쪽 노하우는 전혀 없었던 건데. 한편으로 보면 굉장한 도전이고요. 이게.

김형태 : 엔씨소프트에서 3D 그래픽 기술의 정점을 접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그것 나름의 재미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2D에서 절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 그렸죠.(웃음) 이펙트도 하나하나 손으로 다 그리고. 또 캐릭터 움직이는 것도 전부 손으로 동작 잡아준 거고. 라이브 2D 최대 장점이 그것이니까요. 치마, 머리카락, 끈, 허벅지 위로 흐르는 광원까지... 기계적인 물리가 하나도 없어요. 다 손으로 직접 설정하고, 이런 걸 보통 '디지털 바느질'이라고 불러요.

▲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디지털 바느질 과정


카프 : 그냥 듣기만 해도 업무량이 짐작이 되는데요.(웃음) 이거 그냥 2D 일러스트 그릴 때와 비교하면 작업 시간이 거의 2~3배는 늘었을 것 같은데...

김형태 : 일이 많아진 건 사실인데요... 음, 그래도 이걸로 얻는 게 더 많았어요! 하나하나 사람 손으로 만들어야만 나오는 감동이란 게 있잖아요. 그걸 유저분들한테 전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캐릭터 개발 관련해서 가이드라인이 어느 정도 잡혔어요. 옛날에는 엄청 오래 걸렸는데 이제는 아티스트 한 명이 일주일에서 일주일 반 정도 써서 캐릭터 하나를 만들어요. 이 정도 수준의 인력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일본 현지에도 거의 없을 거예요.

카프 : 지금 시프트업 소속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몇 명이에요?

김형태 : 저랑 꾸엠님 외 두 명 더 계시고, 외부 아티스트 도움도 받았어요. 제가 모실 수 있는 분들 기준으로 작가진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구성했죠.

카프 : 2D로 딱 끝내는 그림하고, 이렇게 막 움직이게 만드는 그림하고 개발 과정에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 작업 들어갈 때 꼭 기억해야 할 게 있다면요?

김형태 : 가려진 데도 다 그려야죠. 치마를 보면, 그 치마가 이렇게 막 펄럭이잖아요. 그럼 그 펄럭이면서 슬쩍슬쩍 보이는 다리 부분도 다 그려야 돼요. 파츠를 나눠서 옷을 하나하나 입히는 방식이라고 해야 되나? 그렇게 그릴 수 밖에 없으니까 이 작업이 힘들죠. 그리고 애니메이션 팀도 그리는 센스가 있어야 하는데, 2D 아티스트가 깜빡하고 놓친 부분이 있으면, 그부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잘 메꿔줘야 하거든요.



▲ 평소 보이지 않는 곳까지 그려야 한다.


카프 : 이 작업이 레퍼런스 되기 어렵다는 게 좀 이해가 되네요. 기술을 알아도 함부로 도전을 못할 것 같아요. 얘기 들어보니까.

김형태 : 시중에서 비슷한 게임을 보기는 어려울거예요. 저희가 막 '독창적인 게임을 내겠어!' 하고 의도한 건 아닌데, 작업 방식이 이러다보니 일단 유사 작품이 나올 가능성은 적다고 봐요.

카프 : 거의 뭐... "만들테면 만들어 봐" 이런 느낌이라서.(웃음)

김형태 : 저희 게임이 대박이 나서. 그 다음에 이 분야 관련한 시장이 생기면 저희야 영광이죠. 그리고 만들기 어렵다고 해도 유저들의 수요만 있다면 결국 발전형 게임이 나올거예요.

카프 :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 게임은 PC나 콘솔 쪽에서도 거의 못 본거 같아요. 일단, 아까 말씀하신 TV 페인트는 한국에서 처음 구매한 곳이 시프트업이니까, 적어도 한국 게임사는 이런 작업 한 적이 아예 없다는 말인데.

김형태 : 보통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모바일 게임은 PC 게임보다 품질 떨어진다고. 어떤 데서는 '거의 다 따라잡았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게 곧 '아직은 뒤쳐져 있다'는 의미잖아요. 저도 어느정도 공감은 하는데... 그렇다고 전에 나온 작품들보다 못난 걸 내놓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럼 3D로 가야되나 생각도 해봤는데 뭐랄까, 내가 가진 걸 제대로 못 보여줄 거 같더라고요. 일러스트레이터로써 더 좋은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노력을 했고, 그 결과가 이제 좀 보이는 것 같아요.

카프 : 그 비전이 뭐에요? 모바일 게임의 궁극이라던가...

김형태 : 하하,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모바일 플랫폼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이는 캐릭터를 우리가 만든 것 같다, 이런 말이에요. 열화된 이미지가 아니라, 모바일 자체에서 최고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캐릭터 확대해도 또렷하고. 화면 작다고 막 뭉게지는 데도 없고. 이 캐릭터가 그냥 원본이에요. 세로화면 모드에 최적화 된.



▲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화질. "확대해도 안 뭉게져요."


■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이 다 말렸다. 100장 정도 쌓이니까 희망이 보이더라."

카프 : 기술 쪽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어요. 누가 이미 걸어간 길도 아니고, 툴 사용법조차 모르는 상황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게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거 처음에 사내에서 반대 의견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김형태 : 많았죠. 엄청 많았죠. 한 캐릭터가 200파츠 정도 되는데, 이렇게 쪼개서 그려가지고 캐릭터 하나 완성하는 거... 처음에는 한 명이 거의 한 달동안 그렸어요. 그거 본 주위 사람들이 '이거 일정 못 맞춘다', '너무 오버 코스트같다'고 다 그랬죠.

카프 : 그런데 그걸 쭉 밀고 가신 건가요?

김형태 : 제가 고집부렸어요. 사람들은 다 말렸는데 라이브 2D 툴 써서 만든 결과물 보니까 그냥 2D 일러스트가 안 보이더라고요. 바로 팀원들 끌어왔죠. 예전부터 같이 활동한 이중엽 팀장도 데려왔고, 그 외 실력있는 분들은 최대한 모시고 난 다음에 다 같이 공부했어요. 캐릭터 살아있게 만드는 데 집중하자, 생명력 불어넣는 작업을 목표로 잡고.

카프 : 하나하나 처음부터 시작하신 건데, 그래도 결국 반대표가 줄어들었으니까 개발 진행하시게 된 거잖아요.

김형태 : 뭐, 저희가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씩 하나씩 그리다보니까 어느새 캐릭터가 100개, 200개 쌓이더라고요. 그쯤 되니까 '와, 이거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특히 제가 고무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기기상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이걸 해냈다는 거고.

카프 : 라이브 2D가 일본제 툴인데, 이렇게까지 활용한 게임이 있었어요? 저는 못 본 것 같아서...

김형태 : 저희가 업계 '최고' 수준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최초'는 맞을 거예요. 이거 써서 캐릭터 이렇게까지 많이 만든 게임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우리는 게임 안에 NPC하고 배경까지 다 이걸로 만들었거든요. 그래서인지 라이브 2D 일본 본사에서도 저희 게임에 관심 되게 많이 보이고 있어요. 공식 홈페이지 가보면 꾸엠님 캐릭터가 메인에 떠 있고 그래요.



▲ 라이브2D 공식 홈페이지. 꾸엠의 일러스트가 첫 장에 걸렸다.


카프 : 그간 잘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을 써서 만든 거잖아요. 이렇게 되면 막 욕심같은 거 생기고 하지 않아요? 회사 대표로써, 아티스트로써 개발팀에 요구하는 포인트가 있었을 것 같은데.

김형태 : 기술적이라는 말과 대칭될 수도 있는데요. 저는 '정성'을 넣어달라고 했어요. 자동화할 수 있는 것도 일일이 손으로 다듬어서... 이게 되게 옛날 방식일 수 있는데, 그래도 사람 손길 닿은 느낌 최대한 넣어서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많이 했죠. 개발팀이 엄청 힘들었을 거예요. 툴이 일본어로 되어 있다보니 처음에 딱 받아든 사람은 황당했겠죠. 이걸로 뭘 하라고?(웃음)

카프 : 그냥 완전히 1단계부터 시작한 거잖아요. 여기 계신 아티스트 분들 모두 나름 업계 베테랑일텐데.

김형태 : 그러니 기술적으로 부탁할 건 사실 별로 없었어요. 툴에 대해서는 저보다 훨씬 많이 아니까. 내가 했던 조언은 그러니까, 이 그림은 이렇게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캐릭터 성격은 좀 독특하니까 여기에 포인트를 주는 게 어때요, 이야기에 이렇게 연결하는 게 좋겠어요... 뭐 이런 내용이었죠.

카프 : 인터뷰 오기 전에 시프트업 채용공고를 둘러봤는데, 주로 캐릭터 아티스트 위주로 뽑더라고요. 게임 보니까 배경이나 오브젝트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던데, 어떻게 밸런스를 맞춘 거예요?

김형태 : 배경은 마그나카르타 때부터 저와 같이 일하셨던 분이 도와주셨어요. 게임업계 아티스트는 아니고 프랑스에서 현대미술 전공한 작가 분이시거든요. 사진도 엄청 잘 찍으세요. 전시도 많이 하셨고.

카프 : 주요 게임 세계관이 현대잖아요. 우리나라 게임들은 주로 판타지가 배경이고 현대 세계관은 잘 안 쓰는 편인데... 그 분께서 이쪽에 조예가 있으신 것 같아요.

김형태 : 그 분을 중심으로 현대 세계관 전문 아티스트 분들을 어렵게 어렵게 모았어요. 그리고 '데스티니 차일드'가 현대 배경만 있는 게 아니고, 사람의 마음 속과 합쳐지면서 나오는 곳도 있거든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판타지 감성을 만들어야 하니까... 저희도 처음 시도해보는 거였고.



▲ "배경 퀄리티는 걱정 안 해요. 정말 실력 좋으신 분 모셨습니다."


■ "출시할 때는 용량이 300MB 정도 될 거다."

카프 : '데스티니 차일드' 홈페이지에서도 느꼈고, 영상 보니까 솔직히 좀 걱정도 들더라고요. 캐릭터 숫자도 숫자지만 다 움직이니까, 용량이 진짜 어마어마할 것 같아서.

김형태 : 솔직히 용량이 작지는 않아요. 한 500MB?

카프 : 500MB요? 어, 그건 제 생각보다 훨씬 작은데... 이게 그 안에 다 들어가요?

김형태 : 처음에 런칭할 때는 캐릭터 좀 추려서 300MB 정도 될 거예요. 그리고 차차 업데이트 하면서 용량도 은근슬쩍 늘어나겠죠.(웃음)

카프 : 이거 외국에서는 오퍼 없었어요? 김형태라는 아티스트는 일본에서도 꽤 유명한 편이고, 지금까지 작업한 게임도 외국에 많이 나갔잖아요. 주목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요.

김형태 : 연락이 없는 건 아닌데요. 그런데 '데스티니 차일드' 배경도 그렇고, 저는 굉장히 한국적인 게임이라고 보거든요. 그리고 우리나라 유저들에게 인정 못받으면 외국 나가서도 가망 없다고 봐요. 진짜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게임이 나왔다' 이런 말 나올때까지 절대 포기 안 할거예요. 일단, 당장 외국 나갈 계획은 없어요. 그리고 '데스티니 차일드'에 들어간 대사가 소설책 6권 분량인데다 거의 구어체라 번역도 어려워요.(웃음)



▲ "한국적인 게임, 우리나라 게이머에게 먼저 인정받고 싶어요."


■ "블레이드&소울 때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카프 : 지금까지는 아트 디렉터로써,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로써 프로젝트 참여하셨잖아요. 이제 한 회사 대표가 되셨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뭔가 좀 다른 느낌이 들지 않나요?

김형태 : 게임 처음 만들어보는 거 같아요.(웃음) 뭐... 생각해보면 처음 만드는 게 맞는 것 같고요. 예전에는 그냥 아트 디렉터로 참여했는데, 지금은 그림 그리는 것 뿐만 아니라 게임이 제작되는 과정에도 다 관여하고 있거든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일하면서 깨닫는 부분도 엄청 많고. 무엇보다 게임을 '만들기 위해' 그리는 그림은 내 생각과 좀 다르다는 걸 배우게 됐어요.

카프 : 어떤 면에서 다르다는 말씀이신가요?

김형태 : 게임은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을 기본으로 하잖아요. 그게 잘 이루어지려면 이야기랑 캐릭터, 그리고 플레이가 다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하고요. '데스티니 차일드'에 나오는 캐릭터 500종이라는 게 그냥 숫자만 채워놓은 게 아니에요. 이 녀석들을 유저 분들과 최대한 친숙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카프 : 아트디렉터로 참여했을 때와 지금의 작업 방식이 다르다는 의미인가요.

김형태 : 달라진 부분이 없잖아 있어요. 예전에는 말 그대로 '멋지게' 그리는 데만 집중했거든요. 아니, 거의 집착이었지. 팔 장신구만 해도 오브젝트 엄청 오밀조밀하게 파서 그리곤 했는데... 이런 디테일이 게임 분위기랑 어울리지 않을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어요. '창세기전'이나 '블레이드&소울'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비교하면 훨씬 가벼운 느낌으로 그렸어요. 물론, 분위기 묵직하게 둔 캐릭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카프 : 지금 '데스티니 차일드' 캐릭터를 조금 가볍게 그렸다고 하셨는데... 음, 솔직히 제가 보기에는 별로 차이 없어 보여요. 그림체가 워낙 개성이 강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다 잘 그린 것 같아요.(웃음)

김형태 : 하하, 그렇게 봐 주시면 저야 너무 고맙죠. 유저 분들도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고요.

카프 : 김형태라는 이름은 게이머 사이에서도 유명하잖아요. 시프트업이 대표님 회사인 만큼, 게임에 대한 주목도도 엄청 높은데... 이런 시선에 대한 부담도 있으실 것 같아요.

김형태 : 부담... 엄청나죠. 사실 저는요. 가진 실력에 비해서 엄청 잘 풀린 케이스예요. 아, 운이 좋았다고 말하면 오해하실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엄청 좋은 분들을 만나서 게임 개발 참여하게 된거죠. 소프트맥스 최연규 실장님, 엔씨소프트 배재현 부사장님도 그렇고, 저를 많이 믿어주시는 분들을 만나서 사랑받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두려워요. 더군다나 제가 참여한 게임 중에서 '데스티니 차일드'가 가장 적은 인원으로 만든 게임이에요.





카프 : 책임감이 엄청날 것 같은데.

김형태 : 그렇죠. 그래서 정말 혼을 기울였어요. 지금까지 '블레이드&소울' 만들 때 제일 열심히 일한 줄 알았는데, 이거 만들 때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데스티니 차일드' 만들면서 병원도 입원했고 그때 체중도 14킬로나 빠졌어요. 그런데 아프다고 막 누워버리고 해도, 결국은 이거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거잖아요. 중간에 병원 나와서 작업하고 다시 입원하고 그랬어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까지 살았던 게 처음이거든요.

일단 저는 유저들이 우리 게임에 너무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카드 게임이라고 부르던, RPG라고 부르던 상관 없어요. '못보던 거네? 안해!'라고 거리 두지 마시고, 그냥 '데스티니 차일드' 자체로 봐 주셨으면 해요. 간담회에서 내년 2월에 CBT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거 일정 맞추기 위해서라도... 저희 정말 열심히 만들고 있거든요.

두렵고. 부담 엄청나고. 유저 분들이 얼마나 기대 많이 하는지 아니까... 기대 이상일수도, 아니면 기대 이하일수도 있을텐데,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 있으면 꼭 피드백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겸허하게 수용하고 발전할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여기 건물 화장실에도 붙어있는 말인데요.
'시련이 너를 파괴하지 않으면 너는 성장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저를 파괴하지만 않으신다면, 저는 정말로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어요.
그거 극복하려고 정말 열심히 하게 되거든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에요.


[▲ 데스티니 차일드 공식 트레일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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