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 각종 논란으로 기로에 선 데스티니 차일드, 무너진 신뢰를 쌓아야 할 때

기획기사 | 김강욱 기자 | 댓글: 188개 |




참 오랜만의 카드게임이다. 김형태라는 이름 석 자는 출시 전부터 CCG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데스티니 차일드’는 수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대작이었다. 지난 2월 CBT 이후 게임의 완성도를 위해 출시를 무기한 연기한다는 발표가 나온 후에도 모두 같은 마음으로 게임을 기다렸다. 그리고 8개월, 그 이름과 시간에 부끄럽지 않은 수려한 일러스트와 개선된 시스템으로 무장한 데스티니 차일드는 출시 5일 만에 양대 마켓 매출순위 1위를 거머쥐며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그다지 길지 않은 기간 지나온 날들이 그다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독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높은 순위만큼이나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지난 10월 27일 출시된 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나간 날이 없었으니 참으로 지독한 성장통이다.

첫 번째 논란은 작업에 참여한 일러스트레이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논란이 된 일러스트레이터는 자신의 트위터에 ‘메갈리아’ 회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올렸고, 이를 본 유저들은 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메갈리아 이용자일거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소식을 접한 각 게시판은 삽시간에 뜨거워졌다. 논란이 커지자 시프트업과 넥스트플로어는 곧바로 그 일러스트레이터가 작업한 일러스트를 전면 교체하겠다고 말해 상황은 정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논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일러스트 교체 공지가 올라가자 개발사인 시프트업에 근무했다고 밝힌 또 한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트위터에 글을 올려 “자신도 ‘메갈리아’ 이용자니 자신이 작업한 내용물을 모두 게임 내에서 삭제하거나 현재 삭제된 일러스트를 복구하라”는 요구를 한 것. 이에 넥스트플로어에서는 “이미지 논란 관련 추가 안내” 공지를 통해 “추가 논란이 발생될 여지가 있는 이미지를 교체할 예정”이라 응수했다.

공식 카페에 올라온 공지사항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이슈는 일단락되었다. 사안의 가치판단은 차치하더라도 문제가 되는 일러스트를 전량 교체한다는 판단은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일러스트레이터 논란에 대한 게임사의 판단과 행보는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논란은 빠르게 사그라졌다. 하지만 이 사건이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것은 당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 논란이 된 이시스 일러스트




▲ 시프트업에서 일했다던 다른 일러스트레이터까지 나타나 논란이 확대됐다.




▲ 이시스 일러스트는 슬라임으로 변경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사태 이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두 번째 논란이 발생했다. 실제 차일드 뽑기 확률이 공지된 내용과 다르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게임사는 공식 카페를 통해 5성 차일드의 뽑기 확률을 1.44%라고 공지한 바 있다. 하지만 한 유저가 3,600만원 상당의 크리스탈을 사용, 차일드를 뽑아 정리한 자료를 근거로 5성 차일드 등장 확률이 1.44%보다 훨씬 낮다는 주장을 했다.

확률 오기는 게임의 근간인 차일드 획득에 대한 기댓값을 크게 바꿀 수 있는 부분이기에 유저들의 반응 역시 뜨거워졌다. 첫 번째 자료를 접한 한 유저는 총 5,640회를 뽑은 녹화 방송을 공개하며 공지된 확률이 틀렸음을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주장했다. 영상에서 나온 5성 등장 확률은 약 0.75%. 두 번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충분히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표본이 충분히 쌓이면서 좋은 캐릭터로 분류되는 차일드의 등장 확률이 그렇지 않은 차일드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식 서비스에서는 사라졌다고 공지된, S와 R이라는 ‘등급 내 등급’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자료가 공개되자 각 커뮤니티에서는 “유저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게임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음날 새벽, 공식 카페에 확률 논란에 대한 공지가 올라왔다. 현재 공지된 확률은 뽑기에서 3성 차일드가 등장할 때 조금씩 쌓이는 마일리지를 모아 5성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5성 확정 뽑기권’에서 얻는 5성까지 포함한 확률이고, 같은 등급 내에서도 상위, 중위, 하위로 그룹을 나눠 확률을 차등 적용했다는 내용이었다. 투명한 운영을 위해라는 이유로 그동안 사용한 크리스탈을 모두 돌려주는 파격적인 보상을 했지만, 결국 확률 자체는 변경 없이 기존 수치를 그대로 유지했기에 유저들로부터 “확률 오류가 아닌 확률 사기”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 출처 인벤 ‘작은냥이’ 유저 게시물




▲ 공지가 올라왔지만 불만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확률 사태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정상적인 플레이를 위협하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 논란이 불거지고 있던 것. ‘드라이브 핵’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영상에는 간단한 조작으로 메모리를 조정해 드라이브 스킬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내용이, ‘데스티니 차일드 VIP 모드’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영상에는 일반 공격이 만 단위의 피해를 입히는 광경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유저들은 경악했다. 조작을 원하는 숫자를 추적해 메모리를 찾아 조작하는 방식은 게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방법이다. 오프라인에서 플레이하는 게임이라면 모를까, 서버와 지속적으로 통신하는 게임이기에 영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유저도 다수였다. 하지만 실제로 유저 경쟁 콘텐츠인 ‘데빌 럼블’에서 위 방법을 사용해 점수를 올렸으리라 의심되는 유저들이 하나둘 등장하면서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결국 게임사는 14일 저녁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 제재 안내’ 공지를 통해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해 게임 내 부당 이득을 취한 사용자가 있음을 인정했다. 28명의 유저가 제재 조치를 받았지만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자신도 해봤는데 제재를 당하지 않았다”며 공공연하게 해당 방법을 사용하는 유저가 있을 것이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 불법 프로그램에 대한 커뮤니티 반응




▲ 불법 프로그램 사용에 대한 공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쪽에서 불법 프로그램 논란이 확대되는 동안 다른 편에서는 왜색 논란이 대두됐다. 사건은 13일 저녁, 한 유저가 게시판에 클라이언트를 분해(언패킹)해 내부의 파일을 확인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해당 유저가 올린 글에는 일본어로 번역된 대사와 함께 일본이 배경이 된 스크린샷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의구심을 느낀 유저들은 게임 내 사용된 배경 이미지를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게임에서 한국이라 표현된 지역이 사실은 일본이었다.”는 증거 이미지들이 쏟아졌다. 서울의 야경은 사실 도쿄타워에서 본 야경이었고, 철원의 일러스트는 시즈오카를 배경으로 했으며, 일본의 신사를 그대로 묘사한 일러스트도 나왔다.

이에 더해 메인 화면의 ‘월드맵’ 아이콘의 한국 지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표기되지 않아 공분을 샀다. 이를 본 유저들은 “한국 서비스는 일본 서비스를 위한 테스트 아니냐.”라 주장했다. 각 커뮤니티를 통해 시프트업의 김형태 대표의 “해외 진출 예정은 없다”는 발언이 회자되며 유저들의 배신감은 극에 달했다.



▲ 점이라도 찍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논란이 이어지자 넥스트플로어에서는 “향후 글로벌 서비스에 있어 우선적으로 논의되는 지역이 일본인 것이 사실이지만, 일본 서비스나 시기에 대해서는 정해진 사실이 없다”라 말하며 “관련 이미지와 텍스트는 일본 서비스 여부와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일본 이미지가 게임 내에 사용된 것에 대해서는 “일본 내 외주 업체를 통해 제작되는 과정에서 업체 자체적으로 샘플을 공수하여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 유저에게서 시작된 클라이언트 언패킹 사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확대됐다. APK 파일을 분해해 내부에 있는 일러스트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내부 데이터를 공유하기 시작한 것. 여기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신규 콘텐츠에 대한 정보도 대거 유출됐다. 출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던 ‘온천’이 유저 간 경쟁 콘텐츠일 것이라는 내용과 현재 최고 등급인 6성을 넘어선 8성 차일드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있었다.

또한, 게시판에 올라온 이미지 중에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신규 차일드나 스킨으로 추정되는 이미지도 다수였다. 일러스트가 중요한 카드 게임에서 게임 일러스트가 대부분 공개되는 심각한 상황이 이어졌다. 심지어 일러스트 파일을 수정한 선정적인 이미지를 공유하는 유저까지 등장했다. 이에 대해 넥스트플로어 관계자는 언패킹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며 이후 언패킹을 방지하기 위한 보안을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기사에 언급된 어플리케이션 파일(.apk)을 분해하는 '언패킹'은 저작권법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부적절한 스킨을 적용하거나 스킨의 불법적 변형을 유통하는 것은 "회사가 제공 또는 승인하지 아니한 불법 프로그램을 제작, 판매 이를 홍보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불법 행위입니다.



▲ 일본 젠코지 신사를 그린 일러스트




▲ 야경 역시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한 일러스트이다.




▲ 일본 이미지 논란에 대한 공식 카페 공지사항





데스티니 차일드가 겪었던 모든 논란들은 하나하나가 게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사태를 키운 것은 다름 아닌 늑장 대처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안일한 대처였다.

안일한 대처는 게임 출시 이후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진행된 할로윈 이벤트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었다. 기간 내에 일정 금액을 결재하면 특정 차일드를 받을 수 있는 이벤트였지만, 얻을 수 있는 차일드에 대한 정보는 일러스트 외에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것. 유저들은 “상품 정보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일단 물건부터 사고 보라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이후 공식 카페를 통해 확정 보상인 ‘메브’의 능력치와 스킬을 공개했지만 조금 늦은 대처였다. 마찬가지로 현재 진행 중인 결제 이벤트 확정 보상인 ‘하데스’의 스킬 변경안 공개 역시 상향과 하향을 떠나 빈축을 사고 있다.

비슷한 상황은 이후 벌어진 확률 논란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게임 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차일드 뽑기의 확률을 어떠한 언급도 없이 마일리지 확정 보상까지 포함해 공지한 것이다. 유저 입장에서는 5성 획득 확률 1.44% 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1회 뽑기에서 5성 차일드가 등장할 확률이 1.44%’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다. 만약 확률에 마일리지 확정 보상이 포함되어 있다면, 기존에 응당 그런 내용을 함께 공지했어야만 했다. 같은 등급 내에서도 획득 확률이 다르다는 사실 역시 기존에는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었다.

게임사와 유저의 관계에서 확률, 신규 캐릭터, 콘텐츠 추가, 스킬 개편 등 다양한 부분의 정보의 비대칭성은 필연적이다. 물론 내부적으로 공개할 시기를 조율하거나 수정이 필요한 요소 등 완전히 공개하기 어려운 정보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는 모두가 이해하는 사안이다. 때문에 유저들은 이 모든 것을 숙고해 발표한 게임사의 ‘공지’를 믿는다. 믿을 수밖에 없다. 이는 유저와 게임사 사이의 최소한의 신뢰이다.

공지의 내용이 잘못되었음을, 밝히지 않는 내용이 있었음을 아는 순간 게임사와 유저와의 신뢰 관계는 금이 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밝혀야 하는 부분은 완전하게 밝혔어야 한다. 거짓말만 나쁜 것이 아니다. 때로는 불완전한 정보가 거짓보다 더 큰 위협이 된다.

최근 논란이 된 불법 프로그램 역시 믿음의 문제이다. 유저는 자신이 즐기는 게임이 공정하길 원한다. 물론 불법 프로그램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처가 얼마나 빠른가, 그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나이다. 그렇기에 이번 불법 프로그램 논란은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간단한, ‘설마 했던’ 방법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상황에 대한 공지는 너무나도 미약했다.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한 사람에 대한 제재는 응당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정책상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해도, 방법이 너무 쉬웠기에 향후 계획에 대한 언질 정도는 있었어야 한다. 심지어 클라이언트 언패킹을 프로그래밍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지며 게임 내외로 보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데스티니 차일드는 기로에 섰다. 유저가 문제를 제기하면 게임사가 그에 대해 그동안 밝히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게임사의 신뢰도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밖에도 여러 사건 사고가 있었다. 신뢰가 무너지는 동안 유저들도 같이 지쳐갔다. 오래 가는 게임이 될 것인가 논란에 묻혀 사그라질 것인가. 한국에서 제대로 된 게임이 나왔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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