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디아블로3는 빵점짜리 게임이었습니다"

리뷰 | 박태학 기자 | 댓글: 403개 |




■ 이런 게임이 왜 88점이나 받았지?

네. 솔직히 이해 안됐어요.

물론, 직역한 그대로의 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디아블로3'가 구린 게임은 아니었어요. 2D에서 3D로 넘어온다고 했을 때 가장 큰 걱정이 '타격감'이었는데, 오히려 더 좋아졌습니다. 블리자드의 주특기 중 하나인 유저 편의성 역시 발전한 모습이었고요.

전체적으로 '디아블로2'가 처음 등장했을 때 들었던 평가와 비슷했습니다. 전작에서 유저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접속불가' 사태까지 갖고 왔어요. 모든 면에서 '디아블로2'의 명성을 이어가겠다는 블리자드의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농담인 것 아시죠?)

어쨌든 싱글 플레이가 주는 경험만 놓고 본다면 메타크리틱 평점 8.8을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다른 매체와는 상반된 독특한 시각으로 게임을 보는 '폴리곤(Polygon)'은 무려 만점을 줬어요. 솔직히 100점까지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어쨌든 해외 매체에서는 호평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평점을 곧이 곧대로 믿어서는 안되는 거 다 아시죠?. 게임이 가진 고유한 특수성, 그리고 게임 웹진이 갖는 리스크를 고려해야 하니까요. '디아블로3'는 비교적 높은 메타크리틱 평점과 매우 낮은 유저 평점(2014년 3월 6일 기준 3.9점)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디아블로3'의 콘텐츠는 다른 패키지 게임에 비해 참 독특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4시간에서 길게는 10시간 정도면 콘텐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마무리되는 기존 패키지 게임과는 다르죠. 물론, 경우에 따라 여러 번 플레이해야 진국이 우러나는 게임이 있긴 합니다. 그리고 '디아블로'는 이러한 반복 플레이가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헌데 게임 웹진들은 시간이 없습니다. '디아블로3' 정도 되는 공룡급 타이틀이 등장했는데 1~2주를 게임 파악에만 투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낭비인거죠. 유저들은 평점이 곁들여진 리뷰를 통해 간접 체험을 하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공유합니다. 게임이 게임인지라 웹진들은 최대한 빠르게 '콜로세움'을 만들어야만 했고요.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디아블로'는 콘텐츠 구성이 기존 게임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디아블로3'를 해 본 유저분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1회 차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쫄깃한 타격감과 부드러운 그래픽, 개선된 편의성이 피부로 느껴지는 단계이며, 시나리오 역시 한창 신선할 때지요. 한 번만 즐긴다면 평점이 나쁠 이유가 없었습니다. 출시 초기 불거졌던 서버 문제가 주로 아시아 지역에 치중되었다는 것도 '디아블로3'의 전체적인 평점이 높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디아블로3'는 대다수의 온라인 게임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게임의 본모습을 확인 가능합니다. 랜덤 맵 시스템이 어느 정도 생성 폭을 보여주는지, 아이템 구조 확인 및 줍는 재미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하죠. 최고 레벨 이후 즐길 만한 요소로 무엇이 준비되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그리고 이러한 '디아블로3'의 특징들이 각각 잘 어우러지면서 높은 시너지를 가져다 주는지 체험해 봐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패키지 게임보다는 온라인 게임을 평가하는 프레임이 더 어울리는 그런 작품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를 모두 파악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빙산의 일각만 보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죠.

'디아블로3'가 보여준 엔드 콘텐츠 구성,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재미에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는 유저 분들이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 결론이요. 어느 정도 '디아블로3'를 플레이했다면 88점까지 주기는 어렵다는 거죠.



▲ 처음 할 때는 참 재미있었는데...


■ 갑작스럽게 다가온 2.0 패치, 소감은... "게임 새로 산 기분"

그래요. 유저들의 평가가 바닥을 쳤던 이유는 저도 압니다. 원래 블리자드는 혁신적인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기존에 있었던 재료들을 잘 모아 기가 막히게 끓인 후, 자신들만의 별첨 스프를 첨가해 맛깔난 요리를 선보이는 데 전문입니다.

하지만 '디아블로3'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재료들은 잘 모았지만 그게 대부분 '디아블로2'의 잔재였다는 게 첫 번째 문제였고, 설상가상으로 전작처럼 시공간을 초월하는 중독성을 우려내지도 못했습니다. '디아블로2'에서 메피스토가 유니크 아이템을 마구 퍼주는 사망전대 역할이었던 게 마음이 아팠나 봅니다. 그들이 내놓은 해답은 유저들의 파밍 욕구를 원천부터 차단하는 극악의 전설 아이템 드랍률이었죠. 유저들은 좋아할 리 없었고요.

블리자드 측도 답답했을 겁니다. 판매량이야 흠잡을 데 없었지만, 그간 쌓아온 프랜차이즈의 명성에 굵직한 상처가 새겨졌으니까. 출시 직후 꾸준한 패치로 조금씩 단점을 보완했지만, 한 번 돌아선 유저들의 마음을 돌릴 만한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아시잖아요. 원래 한 번 떠나면 쉽게 안 돌아오는 거.

그렇게 지지부진한 시간이 흐르는 듯 했습니다...만, 출시된지 약 2년이 지난 2014년 2월 27일, '디아블로3'는 대격변을 맞이합니다. 새로 부임한 조쉬 모스키에라 디렉터의 지휘 아래 지금까지 모아온 피드백을 총집결한 대규모 업데이트를 감행한거죠. 말 그대로 뿌리부터 갈아 엎은 2.0.1 패치가 그 주인공입니다.





확 높아진 아이템 드랍률을 보여준 '전리품 2.0', 맞춤옷을 입은 듯 스마트해진 레벨 디자인과 최고 레벨 이후의 육성에도 높은 의미를 부여해주는 '정복자 2.0'이 적용된 2.0.1 패치. '디아블로3'를 오래전부터 지켜봐왔던 제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업데이트 후 게임 켠지 20분 만에 떨어지는 전설 아이템을 보니 게임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요. 제가 웬만해서 눈물이 안 나는 사람인데 눈물이 나왔습니다.

지난 과거를 보죠. 일부 스탯이 자동으로 오르던 예전의 정복자 시스템은 60레벨 이후 파밍에 지친 유저들을 위해 블리자드가 생각해 낸 '작은 보상' 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짰어요. 아이템은 안나오고 욕만 나올 정도로 극악한 드랍률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요.

새롭게 도입된 '정복자 2.0'은 설령 아이템이 잘 나오지 않더라도 파밍에 투자된 유저들의 소중한 시간을 충분히 보상해 줍니다. 정복자 레벨로 얻는 스탯은 옵션이 세분화되었고, 무엇보다 플레이어에게 투자 권한을 양보한 점이 마음에 듭니다. 물론, 재분배 역시 언제든지 무료로 가능합니다.

'정복자 2.0'의 가장 큰 장점은 계정 내 캐릭터 간 정복자 레벨이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즉, 새 캐릭터를 키울 때 매우 편하며, 캐릭터 맞춤으로 변경된 난이도와 어우러져 빠른 성장을 도와줍니다.

'전리품 2.0'은 게임을 재평가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입니다. 아이템 드랍률 상향 뿐만 아니라 장비 자체의 질도 높아졌고,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직업에 따라 최적화된 스탯이 붙어 나오는 등 여러모로 '줍는 맛'이 강해졌습니다. 특히 전설 아이템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옵션이 많이 붙는데, 캐릭터의 아이템 세팅 및 스킬 세팅 전반에 영향을 주는 매우 큰 요소입니다. 즉, 국민 세팅, 국민 트리라는 게 묽어졌고, 대신 유저의 개성을 드러낼 여지가 커졌다는 거죠.

사실 아이템 거래가 안된다는 것부터 '국민 세팅의 종말'을 강요하는 느낌입니다만, 어쨌든 기분 좋은 변화로 보여집니다. 오랫동안 '디아블로3'를 즐겨왔던 유저라면 거의 새로운 게임을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겠더군요.

물론, 상위 1% 내 들어가는 유저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99%의 유저들은 새롭게 재정비된 '전리품 2.0' 시스템에 좋은 점수를 주리라 생각합니다.



▲ 아이템에 따라 주 스킬이 천차 만별로 나뉩니다.


각 콘텐츠 간의 시너지도 뛰어납니다. '정복자 2.0'과 '전리품 2.0'은 '디아블로3'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양대 시스템입니다. 서로 기대어 놨는데 어느 한 쪽이 무너진다면, 이번 패치 역시 장기적인 고평가를 받을 수는 없었겠지요.

아픈 과거에서 교훈을 얻은 '디아블로3'는 최적의 효율을 찾았습니다. 대폭 개편된 정복자 시스템은 사냥 자체에 목적을 둔 유저에게 만족감을 주는 최소한의 장치이며, 여기에 풍부한 전리품이 더해집니다. 캐릭터 성장 동선이 대박 아이템 획득 여부로 갈렸던 예전과는 다릅니다. 완만하게 오르면서 레벨 디자인도 한 층 촘촘한 모습입니다. 즉,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맛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됐습니다.

난이도는 플레이어의 캐릭터 성능에 따라 나뉩니다. 같은 '고수' 레벨을 하더라도 30레벨 캐릭터와 60레벨 캐릭터가 마주하는 몬스터의 수준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보통' 난이도는 굉장히 쉬운 편이면서 드랍되는 아이템의 품질은 상위 난이도와 큰 차이가 없어 초보 플레이어라도 자립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됩니다. 물론, 숨가쁜 전투에서 희열을 느끼는 유저들을 위해 최고 난이도인 '고행'을 6단계로 구분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고요.





유저간 거래 방식도 과감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경험치 획득량 증가나 장비 수준 상향은 게임의 재미를 높여주는 퍼즐 조각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2.0 시스템에서 완전히 바뀐 거래 구조는 '게임을 즐기는 방향'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0 버전을 기준으로 전설 등급 이상 아이템은 유저간 거래가 제한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화 거래도 막혔죠. 3월 18일에 경매장이 닫힌다면, 사실상 지금까지 이루어지던 유저간 거래 시스템의 80~90% 정도가 제한된다는 의미입니다.

출시 초기에 터진 아이템 및 보석 복사 사건으로 금화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도 경매장의 폐쇄 원인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는 아니였지요. 극악한 드랍률, 그리고 골드 거래의 대중화는 '디아블로'가 가져야 하는, 아니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파밍'의 본질을 흐려놓고 말았습니다. 캐릭터를 꾸준히 성장시키는 재미는 사라졌고, 대신 억 소리 나는 아이템 하나 주워 인생 역전하는 상황이 빈 자리를 메꿨습니다. 물론, 드랍률이 지독하리만큼 낮아서 대다수의 유저들은 역전을 경험하지 못했고요. 파밍에 지친 유저에게 남은 것은 언인스톨 뿐이었겠죠.

만약 이러한 아이템 드랍률에 변화도 없이 그냥 거래 시스템만 막혔다면, 그야말로 '디아블로3'에 지옥도가 펼쳐졌을 겁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전리품 2.0'으로 활로를 뚫어 놓았지요. 기존보다 강화된 아이템들은 굳이 거래를 하지 않더라도 끊임없는 만족감을 제공합니다. 여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전설 아이템 드랍률이 어우러져 성장의 재미에 초점이 맞춰졌고요. 초기 '디아블로3'가 노렸던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을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패키지 게임의 재미를 강화하겠다는 블리자드의 처절한 의지가 느껴졌달까요.



▲ 새로운 이벤트로 성장 동선에도 리듬감을 줬습니다.


패치와 함께 도입된 클랜 및 커뮤니티 기능도 나름 깔끔합니다. 대형 MMORPG에 비하면 너무 간소화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싱글 플레이 재미를 극대화하려는 이번 패치의 콘셉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커뮤니티는 반드시 가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꾸준히 대화를 주고받는 커뮤니티 멤버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솔로잉의 고독이 대폭 줄어들거든요. 또한,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정보와 아이템도 심심찮게 게시되곤 합니다. 거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요소를 삭제한 '디아블로3'가 방편으로 내놓았다고 보기에는 완성도가 무척 뛰어납니다. 뭐랄까, 저는 '디아블로3' 전문 라디오를 켠 채 게임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외에도 변경점은 많습니다만, 전부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디아블로3'를 즐기고 있는 유저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하니까요. 웬만한 정보는 이미 여러 차례 프리뷰로 나가기도 했고요.

제 소감도 성역에 복귀한 대다수의 유저 반응과 마찬가지입니다. 완성도가 높은 패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과장 좀 보태어 이번 패치가 확장팩이며 이것을 1만 5천 원 정도에 판다고 해도 샀을 것 같습니다. (물론... 고민은 많이 했겠지요.)



▲ 위 - 게임트릭스, 아래 - 네이버 트랜드 통계, '디아블로3'의 최근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 2년이 지난 뒤 자신의 평점을 되찾다.

인벤 웹진팀에서 가장 먼저 '디아블로3' 2.0 버전을 플레이했고, 많이 변화된 모습에 놀랐습니다. 여러 동료 기자들에게 전파했고 약 1년 반 만에 성역으로 돌아온 동료 기자들 역시 '이제 좀 할만하다'는 평을 내놓았습니다. 옆자리 김지연 기자는 '디아블로3'에 일말의 관심도 없던 유저였음에도 요즘 참 열심히 하더군요. '디아블로3'의 개선 방향이 긍정적이라는게 그 모습을 보니 와닿았습니다.

반대로도 생각해 봤습니다. 이 정도로 괜찮았을 게임을 그렇게 즐겨왔다는 데서 오히려 화가 날 정도였어요. 완성도에 있어서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블리자드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2.0 패치 덕분에 알 수 있었어요. 예전 '디아블로3'는 정말 빵점이었다는 걸.

어쨌든 블리자드는 '디아블로3'의 근본적인 문제를 인정했고, 확장팩에 앞서 대폭 개선된 2.0 패치를 내놓음으로써 유저들의 관심을 붙잡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성전사로 아드리아에게 정의의 쓴 맛을 보여준 뒤, 뜬금없이 등장한 말티엘을 조용히 시키는 일만 남았죠. 저는 준비됐습니다.



▲ 기다려, 오빠가 복수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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