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릴리트, 이나리우스로 보는 성역 이야기

게임뉴스 | 박이균 기자 | 댓글: 27개 |
※ 디아블로4 캠페인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디아블로4 스토리에서 성역의 인간들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천사인 이나리우스와 악마인 릴리트가 서로 눈이 맞아 네팔렘, 즉 인간이 생겨나고, 사는 무대인 성역 또한 창조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많은 일이 생겨났고, 이번 디아블로4에서는 두 창조자가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지요.

네팔렘이라는 단어는 디아블로 시리즈에서 정말 많이 들어본 단어일 것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디아블로의 인간이 네팔렘이며, 천사와 악마의 혼혈인 덕에 천사도 악마도 뛰어넘을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 이나리우스와 릴리트로부터 인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큰 틀에서 네팔렘과 인간은 같다고 봐도 되나, 대체로 진정한 힘을 끌어낸 인간만 네팔렘으로 부르곤 합니다. 다만 디아블로 3 시점 이전까지는 세계석이란 물건으로 인해 네팔렘의 힘이 약화되었고, 때문에 대부분은 그냥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틀을 깨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고, 대표적으로 디아블로 3의 주인공이 네팔렘으로 불립니다. 일단 스토리 상으로도 내로라하는 대악마들을 다 처단하고, 검은 영혼석으로 다른 대악마의 힘을 모두 받은 디아블로마저 다시 때려잡고, 그 힘을 이어받은 대천사 말티엘마저 쓰러뜨리는 놀라운 업적을 이뤘지요.

이렇게 강력했던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디아블로 4의 주요 미스테리 중 하나인데요. 디아블로 3 엔딩 시점에서 티리엘이 '이렇게 강력한 존재가 타락하면 어떡하지?'라고 고민했는데, 일단 디아블로 4의 세상이 온전히 남아있다는 점에서 몇십조 단위의 대미지로 세계를 절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물론 그렇다고 성역이 살기 좋은 곳인 것은 아닙니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나리우스와 릴리트가 성역 및 인간을 만든 이유는 천사와 악마간의 영원한 전쟁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네팔렘을 만들고 보니 자신들을 뛰어넘는 너무나도 강력한 잠재력을 가졌고, 여기서부터 동상이몽이 시작됩니다.

이나리우스는 이 핵폭탄 같은 녀석들을 전부 폐기하고자 했고, 릴리트는 대신 '네팔렘을 끌고 천상과 지옥을 싹 쓸어버리면 평화가 오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가치관 차이로 둘 사이가 틀어지고, 결국 이나리우스가 릴리트를 공허로 추방해 버리면서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나리우스도 천상에 위협적인 일을 했다는 죄로 쫓겨나게 되지요.

이렇게 방치된 성역을 남겨두느냐 파괴하느냐에 대해 천사들끼리 투표를 해서 마지막 티리엘의 한 표 덕에 성역이 생존하게 되었다던가, 악마들이 네팔렘의 힘을 탐내 지배하려 계속 시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 그리고 지금까지도 성역은 혼란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첫 등장, 릴리트의 행보는?
릴리트는 디아블로4 이전에는 스토리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디아블로 2에서 보스 몬스터로 잠깐 등장하긴 했는데, 이후 설정도 바뀌었으며 디아블로 3에서 배경 스토리로 언급되는 정도였습니다. 사실상 게임에서는 보지 못했지요. 이외에는 소설 '죄악의 전쟁'에서 아주 강력한 네팔렘 울디시안을 포섭하려다 실패한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디아블로 4에서 메인으로 등장했고, 일단 현재 메인 빌런이긴 합니다. 물론 캠페인을 완료했다면 릴리트는 페이크 최종 보스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지만요.



▲ 스토리에서 큰 떡밥을 남기고 먼저 죽은 릴리트


릴리트는 대악마 메피스토의 딸이라는 꽤 높은신 분임에도 스토리에서 자기 발로 분주하게 뛰어다닙니다. 자그마한 동네 교회에 직접 등장해서 시골 목사를 죽이는 데 참여도 하고, 이외에도 엘리아스를 데리고 여기저기 뛰어다닙니다.

디아블로 4에서 릴리트의 행보는 꽤 단순합니다. 아직 자기 힘을 되찾지 못한 아빠 메피스토를 집어삼켜 강해지겠다는 큰 목표를 두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형태가 됩니다.

1. 메피스토를 집어삼키고 싶다.
2. 그러려면 메피스토가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3. 그 길은 악마 아스타로트가 열 수 있다.
4. 아스타로트는 예전에 인간들에게 봉인되었다.
5. 그렇다면 봉인 위치를 아는 녀석과 봉인 여는 법을 아는 녀석을 회유한다.


플레이어는 이러한 릴리트의 발자취를 밟아 추격했고, 마지막 순간 메피스토의 코앞에서 릴리트를 처단하는 것으로 현재까지의 디아블로 4 스토리가 마무리됩니다.

릴리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면 천사도 악마도 다 정리한 후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죽어 없는 상태에서 메피스토 및 대악마들이 풀려나면 큰일이 날 것이라고 하면서요.

구체적으로 어떤 큰일이 일어날 지는 모르겠으나, 대악마들이 다 풀려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직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네이렐이 메피스토가 담긴 영혼석을 들고 가버리는 트롤도 했지요. 곧 풀려날 대악마들을 막아내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 이후로 이어질 듯합니다.



▲ 영혼석을 들고 떠나버린 네이렐부터 이야기가 꼬여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좋아?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언뜻 '예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네팔렘의 힘도 강력하겠다, 릴리트의 말을 따라서 천상과 지옥 싹 다 평정해 버리고 성역에 평화를 찾는다는 것은 꽤나 달콤한 제안입니다.

또한 이나리우스랑은 다르게 릴리트는 자식인 라트마의 죽음에 대해 무척 씁쓸하게 여기기도 하고, 전반적인 발언에서 인간을 정말로 사랑하는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참 좋은 모습이지만... 인간을 아낀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방법은 무척이나 거칩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데, 당장 플레이어도 제물이 되어 죽을 뻔하다 구사일생했었습니다.

결국 보면 인간을 아끼긴 하는데, 자신의 뜻을 이뤄줄 강한 네팔렘만 아낀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자유라는 것도 인간을 험난한 환경에 던져 각자도생시킨 후, 네팔렘의 힘을 빨리 각성시켜 도구로 쓰겠다는 느낌이 강하지요.

아스타로트의 봉인을 풀기 위해 직접 때 보면, 힘으로 바로 굴복시키기 보다는 나름 합리적(그리고 악마적)으로 거래를 시도하거나 설득을 했었는데요. 이런 화술을 봤을 때 피를 보는 수단을 자제했다면 지금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역시 악마답게, 무자비한 일들을 참 많이 저질렀습니다


한편 이나리우스는?
디아블로 세계관의 천사는 우리가 흔히 아는 천사와 비슷한 외양을 가져 생김새가 말끔한 편이지만 생각까지 멀쩡한 녀석은 별로 없다는 사실은 전작부터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인간 및 성역을 탐탁치 않아 하는 천사가 많았기에 성역의 존망에 관한 투표에서도 티리엘 덕으로 간신히 성역이 보존되기도 했고, 지혜의 대천사였으면서 대악마들보다 더 많은 인간을 죽인 말티엘같은 케이스도 있지요.



▲ 킬 수만 보면 말티엘이 1등일 것입니다


이나리우스도 마찬가지로 멀쩡한 녀석은 아닙니다.

우선 이나리우스는 천상에서 탈주해 적 진영인 악마와 눈이 맞으며 인간과 성역이라는, 천상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일을 다 벌였고 그 결과로 천상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 죄로 천상과 지옥이 서로 평화 협정을 해야 했던 큰 사건에서 이나리우스는 볼모가 되어 지옥으로 가 오래간 고문당했지요.

이후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옥에서 풀려나게 되고, 이후 이나리우스는 성역에서 근근이 살아가며 늘 천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다만 그 돌아가기 위한 방식이 조금 잘못되긴 했습니다.

'내가 비록 잘못하긴 했지만 지옥과 악마들을 시원하게 때리고 나면 인정해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천상의 생각과는 상관 없이 성역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광신도 집단을 키우면서 악마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웠습니다.

이나리우스가 오만한 인물이란 것은 디아블로 4에서 처음으로 그를 만날 때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검은 호수를 건너기 위해 축복이 필요한 플레이어가 찾아가지만, 이나리우스는 플레이어를 문전 박대해 버리는데요.

이후 사제 프라바가 '널 안 죽인 정도면 축복이지'하고 대신 축복을 주는 걸 보면, 평소 이나리우스의 행실도 알 만합니다.



▲ 티리엘 같은 천사를 기대했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이외에 복수심이 너무 불타는 바람에 지옥으로 가는 열쇠를 가졌던 자식 라트마도 홧김에 죽여버리고, 정작 그의 지팡이에 숨겨져 있던 열쇠는 찾지도 못하는 등 감정 컨트롤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영 좋지 못한 모습도 계속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결국 디아블로 4 캠페인 후반부에 이나리우스는 직접 기사단을 이끌고 릴리트를 처단하러 출격합니다. 그리고 릴리트에게 창도 찔러넣고 승리를 예감하며 천상이 응답하길 기다리지지만, 반응이 돌아오질 않지요. 이나리우스의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천상이 침묵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절망하던 와중 이나리우스는 릴리트에게 역공당해 퇴장하게 됩니다. 완전히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지옥으로 끌려가 타락한 모습으로 재등장을 할 수도 있겠네요.



▲ 아이템도 안 주고 먼저 가 버린 이나리우스


그래서 아빠가 좋아?
디아블로 4 스토리를 쭉 감상하고 나면, 빈말로도 이나리우스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습니다. 릴리트도 상태가 썩 좋은 건 아니지만 이나리우스는 호감을 갖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다만 조금 불쌍하게 여길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천상과 지옥의 영원한 전쟁에 지쳐 성역으로 도피했다가, 결국 악마에게 오래간 고문받은 만큼 상태가 멀쩡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혼란한 성역에서 좀 광신적인 면모가 있지만 종교를 차려 여러 사람을 지탱해 주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그 광신적이라는 부분도 많이 거칠긴 합니다.

대표적인 예라면, 뇌물을 살짝 받아서 네이렐의 어머니를 광산으로 들여보냈던 비고의 끔찍한 최후가 있을 것입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 실수 때문에 동료 기사들이 여럿 죽었던 만큼 가벼운 죄는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고통과 목숨을 대가로 움직이는 갑옷을 입고 전투하며 굉장히 고통스러운 '참회'를 치를 정도는 아녔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기사단의 막장 행보가 다수 보여집니다.

결국 성역의 인간에게 남은 답은 악마 릴리트도 천사 이나리우스도 아닌, 플레이어가 릴리트를 처치하고 메피스토를 봉인했듯 스스로의 길을 찾는 것 뿐으로 보입니다.



▲ 비고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플레이어가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 성역의 운명은 결국 인간 스스로, 그리고 플레이어가 선택하며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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