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C2016] "PD가 원하면 나는 쓴다" 황상훈 기획자의 '실전 시나리오 라이팅'

게임뉴스 | 지민호 기자 | 댓글: 6개 |


▲ 블루사이드 황상훈 기획자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황상훈 기획자는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를 비롯해 네오위즈, 소프트맥스, 게임하이 등의 회사에서 '블레스', '창세기전4', '서든어택' 등의 게임 개발에 참여한 베테랑 게임 개발자다. 현재는 블루사이드에서 기획자를 맡아 게임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시나리오에 대한 중요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게임이 엄청나게 발전된 지금, 시나리오는 게임의 재미와 맛을 살리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오히려 시나리오가 없는 게임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작년 IGC에서도 '이상적인 게임 개발'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경험이 있는 황상훈 기획자는 IGC의 마지막 날 행사에서 '실전 시나리오 라이팅 - PD가 원하면 나는 쓴다 -'라는 주제로 연단에 섰다. 그는 '시나리오 라이터'가 시나리오 작성 시 실제로 하는 일은 무엇인지와 작업을 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로가기] [IGC2015] "오랫동안 좋은 게임을 만들려면?" 황상훈이 말하는 이상적인 게임 개발


■ 강연주제: 실전 시나리오 라이팅 - PD가 원하면 나는 쓴다 -

⊙ 게임 제작의 실제

얼마 전에 '키시모토 요시히로'라는 저자의 '게임은 이렇게 만들어진다'라는 책을 읽었다. 수많은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한 책이다. 게임 기획을 하려면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을 관찰하고, 무엇이든 기록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고 한다. 디렉터, 기획자, 아티스트를 구분할 것 없이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사실은 나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게임을 만들지, 어떤 스토리를 만들지를 구상하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게임 개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못한다.

실제로는 게임 구상 시간은 조금이고 나머지는 계속 게임 제작의 연속이다. 호기심을 가질 시간은 매우 적은데 게임 제작만 계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PD가 구상을 미리 다 해놓는 경우도 많다. 이 게임은 무슨 게임인가는 대부분 PD가 정해둔다. 그리고 게임 구상도 중요하지만, 대부분은 구상보다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 PD가 구상한 게임에 대해 걸맞은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게임 안에 넣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사실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 PD의 일인지 시나리오 라이터의 일인지는 프로젝트에 따라 다르다. 다만, 막연하게 스토리가 좋은 게임만을 원한다면 그때부터 비극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 게임 시나리오 작성의 문제

이번 강연을 진행하는 동안 'PD'라는 말을 많이 할 것이다. PD는 게임의 총괄, 개발의 실 책임자, 게임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 높으신 분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일단은 PD라고 통칭하겠다.

나는 리니지2, 블레스, 창세기전 4, 서든어택, 킹덤언더파이어 2 등의 프로젝트에서 일을 해왔지만, 실은 은근슬쩍 번역자로 일하거나 잡지 필자와 같은 일을 했던 중고 같은 신입이었다.

스토리가 좋은 게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예가 있을 것이다. 파이널 판타지라든지 하얀 마녀라든지. 그리고 잡지사 출신으로서 게임 시나리오는 당시의 잡지에 꾸미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 내면 될 거라는 막연한 인식이 있었다. 그래도 게임 기반의 만화도 있었으니 이런 것을 참고해서 작업을 시도했다. '타이의 대모험'같은 만화 말이다.








'RPG'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모험담이다. 어떤 이유로 집을 떠나서 스승을 만나고 문지방을 넘어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가 최종적으로는 다시 돌아오는 것이 모험담의 기본 구조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는 책이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모험을 기반으로 한 게임에는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 퀘스트, 울티마, 네버엔딩 스토리 등이 있고 영화에서는 반지 원정대나 해리포터 시리즈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어쨌든 이 모험담을 기승전결로 구분한다면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 거의 모든 모험담의 구조

1. 일상에 대한 묘사 → 일상 붕괴 사건 → 여행을 떠남
2. 시련을 만남 → 동료나 조언자를 만남 → 시련의 해결 (상황에 따라 시련 반복)
3. 여행의 목적(큰 시련)을 만남 → 실패 → 조언과 희생을 통해 클리어
4. 갈등해소 → 일상복귀






이 모험담에서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이야기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라는 육하원칙에 따른 내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상 세계와 비일상 세계의 백그라운드, 주제, 갈등 요소 등이다. 여기까지는 글을 쓰는 이야기이고, 어느 정도 분량의 스토리를 쓸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위에 있는 모험담의 구조에서 주인공이 시련을 만나고 해결하는 부분을 몇 번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성장하는 지에 따라 분량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보스에서 두 번째 보스까지 가기 전까지 몇 번의 전투를 행해야 하는가?', '몇 번의 전투를 행해야 두 번째 보스의 공격을 버티고 승리할 수 있는가?'와 같은 이야기도 분량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이제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이 있어야 하는데 리니지 2를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주인공은 누구인가? 일단 게임의 문제점은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이 적다는 것이다. 전투와 이동 외에 무언가를 하려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배경도 제한되고 시점도 PC를 중심으로만 진행된다. 게다가 NPC는 PC의 행동에 의해서 반작용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추가로 MMORPG라면 주인공을 특정하기도 어렵고 주인공들끼리 상호 작용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만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제어가 안 된다. 그리고 엔딩도 없다. 이런 문제들은 글을 쓰는 동안에는 인지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글에서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가능하고 배경적 제한이나 할 수 있는 것의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글과 같은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이 힘들다.

MMORPG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도 있다. 먼저 모든 PC에게 각기 다른 갈등을 부여할 수 없다. 게다가 퀘스트로 획득할 수 있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명검'을 너도나도 들고 다니고, '세계에서 하나뿐인 마신'을 너도나도 쓰러트리는 문제도 발생한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그래서 게임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 아래와 같은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 게임 시나리오 작성 시 검토할 문제

- 주인공은 PC인가?
- 그는 특정한 과거를 갖는가?
- 그는 정해진 일을 겪는가?
- 그에게 어떤 일을 시킬 수 있는가?
- 그의 행동으로 인해 세계가 바뀌는가?
- 바뀐 세계와 주인공은 피드백을 주고받는가?

※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웅담이 어울리는 상황인가?





MMORPG와는 다르게 스토리 텔링이 힘든 경우도 있다. '아크메이지'라는 게임이 있는데 자신이 설정한 행동에 따라 자원을 생산하고 다른 유저를 공격하는 등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이 글로 표시되는 형태의 게임이다. 그런데 이런 게임에서는 스토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게임의 경우에는 모험담의 기승전결에서 '기' 부분인 배경설정과 목적만을 설정할 수 있다. 나머지는 유저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까지만 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MMORPG의 스토리를 작성한다면 일단 이 게임은 뭘 하는 게임인가를 파악해야 이에 맞춰서 제약과 방향성이 생겨난다. 당시 리니지 2의 설정 문서를 봤을 때 스토리는 대략 '주인공인 바츠가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악신의 부활을 막는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리니지 2는 공성전을 통해 경쟁하고 레이드를 통해 협력하면서 가장 강한 자, '지존'이 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맞춰서 갈등 요소를 넣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과연 공성전과 레이드는 스토리적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오프닝 후에 레벨링, 레이드, 공성전이 무한 반복되는 '기승~' 구조가 끝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실렌은 언제 부활할지 알 수가 없고 바츠는 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다. 게다가 바츠는 PC가 아니다. 바츠 및 주요 NPC라도 PC가 말을 걸 때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공성전으로 성주가 되느라 바쁜데 실렌의 부활이 무슨 상관인가?








결국, 모험담을 전부 넣을 수는 없으니 몇몇 중요한 갈등 부분이라도 잘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해진 설정 속에서 인물이나 배경을 변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이 일어나는 갈등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에피소드식 스토리 텔링'이 필요하다. 이 방식은 오래 방영해야 하는 장편 드라마 같은 곳에서 자주 사용된다.

먼저 '주인공은 성장하지 않는다'가 중요 포인트다. 주인공이 도착한 A란 마을에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무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후 다음 B 마을로 간다. 그리고 이 A란 마을에 도착하기 전과 사건을 해결하고 떠난 후에 주인공의 설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하지만 사건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계속하면 재미가 없으니 사건의 규모, 적의 규모, 해야 할 일을 늘리는 식으로 갈등을 심화시킨다. 레이드의 경우에는 사건도 적도 해야 할 일도 복잡하게 늘림으로써 중요도를 살릴 수 있다. 다만, 공성전의 경우는 독립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내용이라 스토리와 연결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혈맹'에 대한 배경설정을 멋있게 잘 만든 후 기회를 봐서 플레이어에게 알려주고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설정을 잘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관, 연표, 우주관, 지도, 마법설정, 경제설정 등은 얼핏 보면 필요 없어 보이지만 모두 필요한 내용이다. 어쨌든 이런 설정을 잘 쓰기 위해 연습하고 싶다면 쓸만한 결과물을 찾아서 관련 설정을 뽑아내고 해당 설정을 기반으로 다시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된다. 이런 것을 '동인지'라고 한다.

엔딩이 없다는 말을 했지만, 큰 갈등을 해소하는 형태의 엔딩은 있을 수 있다. 파이널 판타지 11이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하나의 거대 에피소드를 끝내면서 엔딩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시즌이 시작되면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그리고 드물게 '파이널 판타지 14 렐름 리본'같이 진짜 예외도 등장한다. 서버를 닫으면 진짜 엔딩을 낼 수 있다. 대신 엔딩이라는 것이 서버를 닫으면서까지 내야 하는 요소인지는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 설정 작성 시 주의할 점

스토리 파트의 주요 업무는 세계관 설정, 스토리 전개, 게임 적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설정은 막 쓰면 되는가? 안 된다. 잘 써야 한다. 게임 제작 사이클을 보면 설정 작업은 보통 게임 구상 때 하는 일인데 이 과정을 안 거치는 PD도 있다. 그러다 보면 늦게 들어가서 갑자기 게임 구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설정 작업은 왜 하는가? 일반적으로 게임 개발은 설정, 기초 시스템, 컨셉 아트가 상호 작용을 하고 여기서 나온 컨셉 아트를 기반으로 해서 최종 결과물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여기서 설정 작업은 결과물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개연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된다. 그래서 결과물과 괴리된 설정은 괴리된 결과물을 낳게 된다.





사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게임을 구상하는 PD가 무엇을 하자고 설정, 기초 시스템, 컨셉 아트에게 알려주면 이들이 열심히 작업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구상된 게임 형태를 기반으로 하면 설정은 기초 시스템, 컨셉 아트와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각 콘텐츠는 연관성을 가지면서도 독립적으로 작업이 가능해야 하고, 어디 쓰일지에 대한 계획이 확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말 멋진 검이 필요하다'라고 요청하기보다는 '이 멋진 검은 만렙이 된 유저가 복권에 당첨되면 주는 검이다'라고 요청하는 것이 더 잘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게임 개발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처음에 이루어지는 게임 구상과 설정, 기초 시스템, 컨셉 아트의 연계인데 여기서 게임 구상이 나머지 세 파트의 방향을 결정한다. 따라서 PD는 머릿속에 있는 게임을 세 파트에게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만일 PD가 뜬구름을 잡는다고 해도 나머지 세 파트는 '이 뜬구름은 사실 이런 것이다'라고 협력하면서 하나의 내러티브를 이루어야 한다.

다만, 주의점이 있다. 이 단계에서는 프로토타이핑의 결과에 따라 시스템이나 게임 구상이 바뀌면서 설정이 갈아엎어지고 그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계시켜둔 각종 설정까지 유기적으로 갈아엎어진다. 물론 시스템과 컨셉 아트도 마찬가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아크메이지' 같은 게임에서 1등을 하면 전설의 나무 아래에서 고백을 받는다는 식의 엔딩을 붙일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갈아엎어져도 그나마 괜찮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우선하고 사소한 것은 나중으로 미뤄야 한다. 예를 들어 게임 안에 RvR(Realm vs Realm, 진영 단위 대규모 전투)가 있다면 월드 설정보다는 이들이 싸우는 이유를 우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춰 월드 설정을 쓰면 다른 것이 갈아엎어져도 버틸 수 있다. 스토리가 중요하다면 무기 설정보다 인간관계 설정을 우선하면 편하다.

그리고 '아키타입'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아키타입이란 '험지의 성녀', '철모르는 공주'와 같이 듣는 순간 생겨나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말하는데 이런 아키타입을 갖추고 있으면 스토리를 다시 진행하기 쉬워진다. 인물 외에 월드에서도 아키타입이 존재하니 소설들이나 각종 설정을 열심히 읽고 분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설정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설정은 스토리가 아니니 이 단계에서 굳이 재미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유기적'인가를 봐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개연성'만 있으면 리얼하다고 할 수 있다.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PD가 시나리오 라이터에게 많이 요구하는 부분이다. 물론 이후에 전개될 스토리를 뒷받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 컨셉은 굳건해야 한다.

게임 제작의 전제 조건은 게임 구상 부분이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 구상 외의 나머지 세 파트에서 '이 게임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계속 의견을 나누고 수정할 수는 있으나 함부로 게임 구상과 설정을 뒤엎어버릴 정도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는 다 같이 힘을 합쳐서 하나의 깃발을 멋지게 깃발을 꽂으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온갖 깃발이 꽂히는 상황이 발생하고 누군가는 깃발을 뽑으려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특히 심한 것이 바로 'IP가 있는 경우'다. 원래는 세 파트에서 이야기하고 하고 있는데 그사이에 IP라는 것이 추가되는 것이다.





IP가 추가되는 경우 가장 큰 문제는 게임에 대해 유저들이 바라는 것들이 많아지고 커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추억까지 미화되면 게임이 제공해야 하는 방향성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IP가 팀 전체를 흔드는 것이다. 그리고 다들 한 마디씩 더하고 싶어 한다. 개발진이 원작 팬이라면 더 문제다. '나의 살라딘은 이렇지 않아!'같이 말이다.

사투 끝에 누군가는 깃발을 얻어낼 것이다. 그런데 '나를 따르라!'고 해도 사람들이 그 깃발을 따라갈까? 절대 안 따라간다. 따로 자리를 만들어 한 명씩 만나 설득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설정은 굳건해야 한다.








⊙ 시나리오 연습하기

시나리오를 잘 쓰기 위해서는 타인이 바라는 시나리오를 잘 쓰게 되는 연습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이 아닌 타인이 바라는 시나리오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는 아키타입을 제작하고 활용하는 연습을 하면 좋다. 아키타입은 인물과 배경, 시츄에이션에서 적용할 수 있는데 이 중에서 시츄에이션이 중요하다. 아키타입으로 배경과 인물을 만들어두고 사랑, 싸움, 배신 등의 시츄에이션을 연습해보는 것이다.

아키타입으로 시츄에이션을 만들다 보면 '패턴'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분명 시츄에이션 안에 들어 있는 인물이나 배경은 다른데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꼭 다 만들어 볼 필요 없이 남이 만든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떤 아키타입이 어떤 시츄에이션을 행하면 어떤 느낌 혹은 어떤 패턴이 나타나는지를 체크해보자.








아키타입도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한다. 단순한 밈(Meme, 비유전적 문화 요소)도 그렇지만 아키타입이나 시나리오의 패턴도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옛날에 썼던 글을 다시 봤을 때 글이 낡아 보이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글에 들어간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아키타입과 패턴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또한, 수용층은 '나는 이런 글을 읽고 싶다'라는 식으로 계속 욕망한다. 이런 것은 '소설가가 되자'나 '조아라'에 올라오는 글의 패턴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신이 만드는 게임과 비슷한 게임들은 어떤 시나리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키타입에 따라 시나리오 패턴을 만들었다면 이 패턴이 게임에 들어갔을 때의 형태를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이 패턴이 슈팅에 들어간다면?'ㅡ 'RPG에 들어간다면 어떨까?' 등 게임 장르에 따라 형태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또한, '컷신이 있는가?', '이벤트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가?', '캐릭터별 초상화는 있는가?' 등과 같이 장르별로 가능한 시스템적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시츄에이션을 생각했다면 이제 게임 시스템으로 표현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나의 장면을 구성한 뒤에 컷신, 이벤트컷, SRPG, 슈팅, 퀘스트, 배경 등 다양한 시스템으로 표현해보는 것이다. 만약 표현할 수 없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도 생각해야 한다.

다른 게임을 플레이해 보고 스토리 텔링 기법을 중심으로 '역기획'을 해보는 것도 좋다. 어떻게 해서 저런 '맛'을 만들어 낸 것인가? 저 '맛'을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언더테일'만 해도 대화창은 있지만, 서브 요소인 '세이브&로드'를 굉장히 잘 활용한 게임이다. 여기서는 '맛'을 내는 방법만을 시도해보자.








시나리오를 연습할 때 '밀기'와 '꼬기'라는 기술이 있다. 특정 구성 요소에 대한 패턴 파악을 마쳤다면 이를 비틀거나 슬라이드 시켜서 재구성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성별 반전이 대표적인 '꼬기' 방법이라면 '밀기'는 슈팅 게임에 RPG게임의 시스템인 퀘스트를 넣어보는 것이다.

실제로 제작해보는 것이 가장 좋지만, 제작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다른 예제를 최대한 많이 접해서 최소한 머릿속에서라도 그릴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이 좋다. 게임도 많이 하고 글도 많이 보자.





⊙ 모든 PD는 거짓말을 한다.

원래 이 강연의 제목은 '모든 PD는 거짓말을 한다'였다. '시나리오 라이터는 글만 쓰세요.'같은 거짓말을 한다. PD가 게임의 구상을 가지고 있는지, 게임 내에서 시나리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비전이 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열심히 써도 소용이 없다. 우리가 PD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은 아래와 같다.

◆ 시나리오 라이터가 PD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

○ 우리 게임에서 스토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 월드를 표현하기 위한 양념 /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 /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 감정의 조율사

○ 우리 게임 스토리에서 주인공은 PC인가? NPC인가?
- 나의 이야기를 하는가 / 타인의 이야기를 보는가 / 영웅은 누구인가

○ 스토리 텔링을 위한 시스템은 무엇이 있는가? 그것을 충분하지 않다면 어디까지 더 만들 수 있는가?

○ PC의 아바타성은 얼마나 지켜져야 하는가?
- PC의 과거를 설정할 수 있는가 / PC는 아키타입인가 / 커스터마이징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PD에게 위와 같은 질문들을 해서 답을 받았다. 그런데 그 대답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PD는 게임에 대한 비전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거로 될까?', '빼 먹은 것이 있지 않을까?', '다시 갈아엎어야 하나?', '저 사람을 대체할 사람이 있나?', '날짜 안에 만들 수 있을까?' 등의 이유로 거짓말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PD 자신이 '내가 이 작품을 통해 뭘 얘기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해?'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현실적인 문제다. 대부분의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고 상황에 따른 변수가 많다. 모든 PD는 기대와 투자를 받아서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서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한다. 그저 더 잘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 고민하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PD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상황이 변화하면 최고의 결과도 함께 변한다는 것이다. 돈이 들어왔거나 더 좋은 것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거나. 주로 주말에 영화를 보고 오면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혹은 외부의 압박이 있을 수도 있다.

단순하게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갈아엎기라는 요소도 있다. PD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을 작업 도중에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작업을 통째로 갈아엎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갈아엎기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일단 퀄업은 막을 수 없다. 이를 막으려면 시장 상황, 개발 기간, 세계정세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이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다만, '솔직히 이건 이렇게 하고는 싶은데 이렇게밖에 못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두면 미리 대비는 할 수 있다.

갈아엎기는 막을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된다. 가장 좋은 것은 PD가 머릿속에 완성된 게임이 있는 것이지만, 보통은 클라이맥스 부분만이 준비되어 있다. 추리 소설을 예로 들면 '살인 사건'에 대한 내용은 준비됐지만, 그 현장까지 가는 과정과 이를 표현할 효과까지 준비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질문을 해야 한다. '여기에 이런 효과를 넣을 수 있을까?', '우리 게임에 어울리는가?', '이거 추리 소설 맞나?'와 같이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PD는 목적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가는 방법을 완벽히 알지는 못한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차, 비행기, 배 등을 이용할 수도 있고 목적기까지 가는 케이블카가 있을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 좋을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거짓말과 갈아엎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PD에게 제시해야 한다. 물론 제시를 해도 돈이 없거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 못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목적지에 가는 방법을 같이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게임이 무엇인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라.

◆ 최종 정리

1. 게임에 맞는 글을 써라
- 게임은 소설과는 다르다. 게임에 어울리는 글을 써라

2. 설정은 명료하고 개연성 있게
- 개연성은 인과 관계와 통일성을 말한다. 재미보다 더 중요하다.
- 백그라운드는 모두가 공유하는 요소다. 재해석의 여지를 주지 마라.

3. 많이 이야기하라
- 동료들은 모두 다 생각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
- 특히 PD와 이야기하라.

4. 많이 연습하라
- 많이 접하고, 분석하고, 뜯어내고, 변형시켜라.
- 이들을 관통하는 정서가 무엇인지 파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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