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XEL, 이곳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

리뷰 | 박광석 기자 | 댓글: 3개 |

온갖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는 SF 판타지


지난 12일, 신작 3D 액션 어드벤처 게임 'XEL'이 스팀을 통해 정식 출시됐습니다. 이 게임은 이상한 세계 XEL에 난파된 주인공 소녀 리드(Reid)가 되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 그리고 XEL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가는 SF 판타지 게임입니다. 시간을 뒤틀어서 해결하는 시간 퍼즐, 회피와 쳐내기, 장비 액션으로 구성된 콤보 시스템, 출시 기념 20% 할인가 판매, 여기에 정식 한국어화까지 지원하는 이 게임은 상당히 매력적인 신작으로 비춰졌습니다.

게임이 정식 출시된 지 수일이 지났음에도 마땅한 한국어 리뷰는 커녕 한국어로 작성된 유저 평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이 게임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직접 플레이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한 세계 XEL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 자리에서 바로 게임을 구매했고, 즐겨보았습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XEL에 숨겨진 비밀 같은 것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나을 뻔 했습니다. 적어도 당장은 말이죠.



게임명: XEL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2. 7. 12.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타이니 로어(Tiny Roar)
서비스: 어셈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PC, Switch
플레이: PC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오픈크리틱 페이지


말 못할 비밀과 사연을 품고 있는 세상, XEL에 어서오세요




게임은 수상한 장소에 불시착한 소녀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소녀는 자신이 누군지, 왜 이곳에 떨어지게 됐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소형 로봇의 '삐비빅' 뿐인 기계음을 전부 알아듣고 소통하는 것을 보면 평범한 인물은 아닌 것 같지만, 이 세계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상태에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는 점은 플레이어와 같습니다. 플레이어가 소녀의 경험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배경 설정인 셈이죠.

기억을 되찾기 위한, 그리고 자신이 불시착한 곳이 어딘지 알아내기 위한 소녀의 모험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맨손으로 시작된 여정 중에 도착한 고철 폐기장에서 칼과 방패를 찾고, 이 세계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하나둘 마주하며 '리드'라는 이름을 얻게 된 소녀는 자신이 떨어진 곳이 우주를 떠도는 우주 방주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주 방주 XEL은 초원부터 사막, 정글, 늪지, 설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엔 다양한 개체들이 저마다의 생태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배가 아닌, 하나의 행성이라고 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죠.

이후 소녀는 XEL이 수년 전부터 활동을 멈춰버린 채 그저 표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방주를 다시금 움직이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여정에 나서게 됩니다.


스토리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우주급으로 그 규모를 키워가는 장대한 SF 스토리, 그리고 소녀와 플레이어가 모르고 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새롭게 이어지는 모험을 계속 따라가며 즐길 수 있는 것이 'XEL'이라는 게임이 가진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어색한 부분 하나 없는 완벽한 한국어화로 즐길 수 있는 것도 이 게임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강점입니다. 단순히 영어 대사를 한국어로 잘 옮겨냈다는 수준을 넘어서, 캐릭터들의 대화 속 재치 있는 말장난까지 현지화된 것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SF 스토리를 이해하려할 때 번역이 엉망이면 금방 몰입이 깨지기 쉬운데요. 적어도 XEL의 스토리에선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평소에 멸망한 미래와 우주 서사, 방주가 등장하는 SF 스토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XEL의 스토리는 또 하나의 즐거운 경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시공간을 넘나드는 SF 스토리, 그리고 '성장하는 경험'이 주는 재미는 확실하다



그런데 이거, 2022년도 게임이 맞나요?



▲ 고전 게임을 하고 싶은 개발자의 마음이 본편에도 너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주인공 리드의 모험에 등장하는 XEL 속 여러 비밀과 마주하는 과정은 참 즐거웠습니다.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랜만에 부가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 없이 순수하게 모험을 떠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지나지 못할 것 같았던 길을 여행에서 얻은 장비를 활용하여 통과하고, 주변의 상자를 부숴서 체력회복을 위한 하트를 찾고, 이런 자잘한 요소들 하나하나가 모이다 보니 마치 닌텐도64 시절의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것 같은 정겨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반가운 기분도 잠시,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고 있으니 개발자가 너무 과거로 회귀하려고 한 것은 아닌가 싶은 부분이 여럿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도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저 편의에 대한 배려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고 할까요.

먼저 시점입니다. 탑 뷰에 가까운 쿼터뷰, 게다가 원경으로 시점이 고정되어 있어서 복잡한 오브젝트가 가득 들어찬 지역에서는 가시성이 심하게 떨어졌습니다. 높은 구조물이나 벽에 막혀서 진행 방향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잦았죠. 벽을 투과해서 가려진 너머를 비춰주는 기능이 없으니, 이런 곳을 지날 땐 '아마 이렇게 이어져 있겠지'라고 상상하며 눈대중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끔 카메라를 돌려주는 구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배려가 반영된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는 불합리한 맵 구조입니다. 게임에는 '점프'가 없는데 고저 차로 경로를 구분하는 부분이 다수 등장하다 보니, 너무나 당연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세밀한 단차에 막혀 먼 길을 빙 돌아가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무릎 아래 높이의 울타리, 작은 잔디나 버섯에 막혀 지나가지 못하는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손에 들고 있는 칼로 나무 벽은 잘만 자르고 진행하면서, 왜 바닥의 풀은 자르지 못할까'라는 진지한 고찰에 빠지게 됩니다. 그간 쌓은 몰입이 다 깨져버리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죠.



▲ 통과해서 가라고 친절하게 뚫어준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벽일 때가 많다



▲ '무릎을 조금만 들면 올라갈 것 같은데...' 싶은 길에 막혀서 빙 돌아갈 때는 착잡한 마음이 먼저 든다



▲ 틈과 틈을 넘을 때는 또 뛴다. 할 줄 알면서 안 한다고 생각하니 더 괘씸하다

세 번째는 자동 저장 시스템 결여입니다. 플레이어가 여태까지의 진행도를 저장하려면, 꼭 맵에 배치된 분홍색의 시간 기둥을 찾아서 터치해야만 합니다. 플레이어의 체력을 채워주는 사원 같은 요소라도 겸하는가 싶지만, 시간 기둥은 그저 저장을 위한 오브젝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장을 깜박 잊고 게임오버라도 된다면, 그간 스토리를 얼마나 진행했건, 재료를 얼마나 모았건 전부 수포로 돌아가 버립니다.

네 번째는 퀘스트 경로 안내, 혹은 힌트 기능의 부재입니다. 맵은 방대하고, 맵을 이동할 때 작은 장애물 하나 때문에 먼 길을 빙 돌아서 가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다음 목표로 향하는 방향이 어딘지, 퀘스트 마커는 커녕 어떠한 안내도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플레이어의 자율성에 맡겨 온전히 '모험'한다는 느낌을 극대화시키는 부분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앞서 소개한 여러 불편점들이 겹쳐지는 탓에, XEL에서 무작정 맵을 헤매는 과정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더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게 됐습니다.



▲ 꼭 필요할 땐 안보이는 시간 기둥. 갑자기 게임을 꺼야 하는 상황이 오면 참 난감하다



▲ 정확히 어디로 가서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안내가 없다. 그 와중에 맵은 참 넓다

다섯 번째는 자동 루팅 기능, 혹은 루팅 시의 편의성 기능 미비입니다. XEL에서의 전투와 사냥은 경험치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레벨 시스템도 없고요. 순전히 무작위로 등장하는 재료를 파밍하기 위해 벌어지는 전투들로 채워졌는데요. 적을 쓰러트리고 난 뒤에 드랍되는 아이템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게이머를 배려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적이 쓰러진 뒤 미세한 타이밍으로 약간 늦게 드랍되는 아이템 때문에 다시 돌아서서 떨어진 아이템을 주우러 가는 일이 빈번하고, 아이템에 '딱' 맞게 부딪히지 않으면 획득이 되지도 않습니다. 원경으로 바라보는 시점 때문에 아이템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잦은데, 이렇다 보니 전투와 파밍 과정 전체가 스트레스로 채워집니다. 뭔가 강화를 하려면 재료를 줍긴 주워야겠는데, 가면 갈수록 전투를 피하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 적을 쓰러트렸지만 아이템을 줍지 못한다. 맵 구조와 루팅 시스템, 시점이 만들어낸 환상의 콜라보

시점 조작, 자동 저장, 맵에 표시되는 퀘스트 마커, 아이템이 흡수되는 듯한 루팅 연출은 최근 출시되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 언제부터인가 당연하다고 느껴왔던 유저 편의 요소들입니다. 이런 편의 기능이 저절로 '짠'하고 나온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은, 어쩌면 XEL의 게임플레이가 주는 긍정적인 부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발자는 게임 소개 페이지를 통해 XEL에 "올드 스쿨 게임 플레이를 담았다"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과거와 똑같은 경험을 통해 추억을 되살리고 싶은 일부 플레이어를 제외하면, 편의 기능의 부재는 단순히 불편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개발자 스스로 자각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XEL은 지금 당장은 궁금해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게임입니다. 현재 빌드에는 플레이 경험을 전체를 망칠 수 있는 다양한 버그들이 게임 전반에 산재해있습니다. 이동할 때 스케이팅하며 움직이는 NPC, 단차가 있는 땅과 땅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 하게 되는 버그, 사다리를 타도 땅에 착지하지 못하게 되는 버그, 같은 자리에 서서 사정없이 몸을 흔들고 있는 몬스터 등등 하나하나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버그들이 정말 쉽게 눈에 띄고 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한쪽 방향만 보도록 고정되는 버그입니다. 마치 패드의 조이스틱이 쏠렸을 때처럼 공격도, 방어도, 구르기도 한쪽 방향으로만 하게 되는 버그인데, 이때 적과 만나기라도 하면 정말 속수무책입니다. 게임을 다시 시작하면 버그 상태가 해소되지만, '시간 기둥'을 터치하지 않으면 게임의 진행도를 저장할 수 없는 게임의 시스템적인 부분과 만나서 그야말로 최악의 버그가 됐습니다.



▲ 20분 이상 진행했는데 세이브 포인트도 안보이고, 전투 중에 버그가 발생했다면? 웬만한 호러 게임 안 부럽다

이처럼 여러 버그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SF 판타지를 담은 독특한 스토리와 시간을 뒤트는 요소가 녹아있는 퍼즐 요소가 취향에 맞고, 무엇보다 '올드 스쿨' 감성의 게임에서 불편함보다 추억을 느끼는 플레이어라면 한 번쯤 구매를 고려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실 기사에 전부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게임 플레이 중에 '이건 꽤 참신한데?' 싶은 독창적인 퍼즐을 마주하게 되는 일도 있었거든요, 현재 출시 기념으로 정가보다 2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고 있기도 하고요. 게임 구매 결정에 참고하실 수 있도록 퍼즐 풀이 과정과 보스전 플레이가 담긴 추가 영상을 준비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영상도 함께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또 퍼블리셔인 어셈블 엔터테인먼트는 본편에 사운드트랙과 아트북을 함께 담은 꾸러미인 '세이브 더 월드 에디션'을 구매하면, 판매 금액의 10%를 해안가에서 이민자들을 구조하는 단체인 'Sea Watch'에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디 개발사를 응원함과 동시에 자선 단체에 지원까지 할 수 있으니, 공익적인 부분도 있는 셈이죠.

개발사는 15일, 정식 출시 후 3일 만에 첫 번째 버그 패치를 내놓기도 했는데요. 모든 부분이 완전히 고쳐진 것은 아니나, 유저 피드백을 받고 더 나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개발자가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그대로 전해지는 소식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민자 지원이라는 좋은 뜻을 품고 출시된 인디 게임인 만큼, 점차 개선되어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며 응원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 시공간을 넘나드는 SF 판타지 서사
  • 불편 포인트 없는 완벽한 한국어 지원
  • 게이머가 부당함을 느끼게 되는 맵 구조
  • 딱딱하고 단조로운 전투 시스템
  • 최소한의 배려도 느껴지지 않는 편의 기능
  • 정식 빌드임에도 게임 곳곳에 산재한 버그

리뷰 플랫폼: PC (출시 빌드)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