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매력적인 심해 탐험을 살리지 못한 퍼즐

리뷰 | 정수형 기자 |

아트로 시작해서 아트로 끝나는 게임


햇빛조차 닿지 않는 칠흑 같은 심해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인류는 바다 일부분만 탐사에 성공했다는 어떤 글을 읽은 뒤부터 종종 떠올렸던 주제다. 어쩌면 아직 인류가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가 있을 수 있고 혹은 잊힌 외계 문명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지의 공간이 주는 이러한 설정은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스파이럴 서커스 게임즈에서 개발한 실트(Silt)는 심해를 배경으로 탐험하는 잠수부의 이야기를 그린 게임이다. 다만, 평범한 잠수부도, 심해도 아니다. 기괴한 흑백 아트 스타일로 잘 알려진 Mr Mead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실트만의 심해는 어딘가 섬뜩하면서도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심해와 그곳을 여행하는 잠수부, 일단 게이머의 흥미를 끌기엔 충분한 키워드다. 그렇다면 게임 플레이를 어떨까? 흑백 아트에서 짜임새 있는 퍼즐과 내러티브로 이름을 알린 림보처럼 이 게임 역시 또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게임명: 실트(Silt)
장르명: 어드벤처
출시일: 2022.06.01
리뷰판: 1.0.1
개발사: Spiral Circus Games
서비스: Fireshine Games
플랫폼: PC, PS, Xbox, NSW
플레이: PC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기묘하고 매력적인 심해 탐험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어떤 줄에 묶인 잠수부가 등장한다. 뜬금없이 등장한 잠수부가 왜 묶여있고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지 게임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실트는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지만, 딱히 상관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게임은 대사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나오는 영어는 기껏해야 튜토리얼 단계에서 키 설명 정도일까. 그마저도 단순한 영어고 또 읽어보지 않고 그냥 눌러보면 바로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실트는 게임 내에서 별다른 안내를 해주지 않는다. 세상은 온통 흑과 백으로만 이뤄져 있으며, 기묘한 분위기와 정적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일으킨다. 게임을 진행하면 할수록 나오는 수수께끼의 기계들과 소름 돋는 모습의 심해 생명체만이 플레이어를 반길 뿐이다. 심해라는 장소가 주는 긴장감과 주변 풍경, 흑백의 세계는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게임에 몰입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비주얼적인 모습 외에도 고막을 사로잡는 사운드가 몰입감을 한층 더 높여줬다.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BGM은 때론 잔잔하게, 때로는 격하게 요동치며, 플레이어의 심리를 자극한다. 흑백의 아트 그래픽과 BGM 덕분에 확실히 게임을 하는 내내 보는 맛과 듣는 맛은 좋았다. 이런 느낌의 게임을 평소에 즐겼던 게이머라면 게임 플레이 및 시스템과 별개로 그냥 사서 하면 무조건 만족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다.

게임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장치는 배경과 BGM뿐만이 아니다. 상황에 맞춰 줌인, 아웃되는 카메라 움직임은 해당 상황을 보다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가령, 튜토리얼 초반에 줄에 묶여 갇혀 있던 지역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줌 아웃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그저 어떤 심해 동굴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서히 실체가 드러날수록 눈에 담기는 비주얼은 소름 돋게 만들기 충분했다. 만약, 카메라 움직임 없이 이 부분이 지나갔다면 그저 그런 장소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이처럼 격한 반응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실트가 풍기는 분위기는 이전 흑백 스타일의 게임들과 비교해서 전혀 꿀리지 않았다. 전후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수중이라는 특징을 잘 살려 배경의 디테일을 꼼꼼하게 채워넣었고 기괴한 아트 스타일은 BGM, 카메라 움직임과 어우러져 엔딩 직전까지도 게임의 몰입도와 궁금증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심해 공포증만 없다면 정말 흥미진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심해를 채우기엔 부족한 생명체와 단조로운 퍼즐

다음은 실트의 게임 플레이를 살펴볼까 한다. 사실 끝내주는 분위기를 제외한다면 실트는 단점밖에 남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실트는 잠수부가 심해를 탐험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는 맵의 퍼즐을 풀면 다음 맵으로 이동하는 방식이며, 튜토리얼 단계를 제외하면 총 네 개의 챕터로 구분된다. 챕터마다 심해의 테마가 달라지고 그에 맞춰 퍼즐도 조금씩 달라진다.

주인공인 잠수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 사람이라고 봐야 할 지도 의문인데 자신의 혼 비슷한 걸 빼서 다른 생명체 혹은 사물에 빙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같은 빙의 시스템은 실트의 퍼즐을 푸는데 핵심으로 작용하며, 상황에 맞춰 맵에 등장하는 생명체에 알맞게 빙의해 주어진 과제를 풀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줄이 길을 막고 있고 내 옆에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심해어가 헤엄치고 있다면 플레이어는 심해어에 빙의해서 줄을 끊고 다음 맵으로 이동할 수 있다.




빙의를 활용한 퍼즐 풀이는 초반에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심해어마다 고유의 능력이 있으므로 이러한 능력을 생각해서 퍼즐을 푸는 게 참신하기도 했고 또 심해어를 조작하는 부분에서도 나름의 재미가 느껴졌으니 말이다. 빙의는 잠수부에서 심해어로, 또 심해어에서 다른 심해어로 이동할 수 있어 때론 변칙적인 풀이 방식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퍼즐에서 즐거움이 느껴진 건 딱 초반까지였다. 중후반으로 갈수록 퍼즐은 재미보단 굉장히 귀찮게 느껴졌는데 너무 단순하고 쉬웠기 때문이다. 일단, 등장하는 심해어의 수가 챕터 통틀어서 양손에 꼽을 정도이며, 특정 심해어를 제외하면 챕터마다 중복되는 개체가 존재한다. 매번 새로운 심해어가 등장해서 괜히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 필요까진 없지만 그래도 퍼즐 어드벤처를 만들 생각이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다채롭게 꾸밀 필요가 있어 보였다.




만약, 심해어의 수가 적더라도 퍼즐이 신선하고 재미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퍼즐 풀이가 너무 직관적이다. 마치 세모 모양에 세모 블럭 넣고 네모 모양에 네모 블럭 넣어야 하는 3~4세의 어린아이들 장난감처럼 퍼즐을 보는 순간 풀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줄이 길을 막고 있는 맵에는 반드시 이빨 심해어가 존재하고, 어떤 벽이 길을 막고 있다면 순간 이동할 수 있는 심해어가 옆에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심해어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 보이기도 하다. 결국, 실트의 퍼즐은 빙의를 통해 심해어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니 심해어의 숫자가 퍼즐의 풀이와 정답에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퍼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해어의 수가 턱없이 모자라니 테마가 달라진다고 한들 비슷한 느낌의 퍼즐만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마지막 챕터에서는 갑자기 액션 어드벤처 느낌의 피지컬을 요구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움직임을 선보여야 했는데 이는 퍼즐이라기보단 그냥 액션에 더 가까웠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높아진 난이도는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 게이머에게 흥미보단 당황스러움과 짜증을 유발할 수 있다.

액션을 가미한 플레이 방식을 선보이고 싶었다면 막판에 무작정 때려넣는 것이 아니라 초반과 중반에서도 적절하게 섞어서 플레이어가 충분히 대비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혹은 아예 시작부터 후반 챕터처럼 맵을 구상했다면 섬뜩한 심해 세계와 맞물려 게임 플레이에서도 확실한 차별성과 만족감을 채워줄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내러티브도 아쉽게 느껴진다. 왜 잠수부는 심해를 탐험하고 있으며, 심해에 존재하는 기계 장치는 왜 존재할까? 그리고 이따금 나타나는 또 다른 잠수부의 정체는 무엇이며, 기계 장치 내부에 존재하는 고양이를 닮은 석상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게임에서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일절 제공해주지 않으며, 따라서 플레이어는 순전히 본인의 상상력만 갖고 이러한 의문을 풀어나가야 한다. 마치 심오한 내용을 담은 저예산 영화를 보는 것 같달까. 만약, 열린 결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마 실트의 내러티브는 그저 알 수 없는 지루함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종합해보면 대사 없이도 게임을 즐기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플레이의 직관성을 살린 부분은 충분히 칭찬해주고 싶다. 다만, 퍼즐을 게임의 핵심 플레이 요소로 넣을 생각이었다면 무분별한 직관성을 자제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주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모호하게 퍼즐을 짜는 것보단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지만, 이 때문에 퍼즐이 단순해진다는 단점을 감내해야만 했다.

심해를 배경으로 한 분위기 있는 게임, 쉬운 퍼즐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게임을 추천한다. 2~3시간의 비교적 짧은 플레이 타임의 게임치곤 흑백의 독창적인 아트 덕분에 꽤 깊은 여운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모호한 느낌만 드는 게임에 흥미가 없다면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 섬뜩하지만 매력적인 흑백 심해 디자인
  • 훌륭한 아트와 빠져드는 BGM
  • 대사 없이 모든 진행이 가능한 직관성
  • 양손에 꼽을 정도로 종류가 적은 심해어
  • 지루하고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퍼즐 설계
  • 의미를 알 수 없는 내러티브
  • 급격하게 어려워지는 레벨 디자인

리뷰 플랫폼: PC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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