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딜찍누? '르모어'에 그런 건 없다

게임소개 | 윤홍만 기자 | 댓글: 4개 |



블랙앵커 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SRPG '비포 더 던'이 웹젠과 손잡고 '르모어: 인페스티드 킹덤(이하 르모어)'로 타이틀을 바꾼 지 7개월여 만에 마침내 얼리액세스를 시작했습니다. 이름이 바뀌었지만, 게임의 핵심이 되는 시스템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플레이어는 지옥도로 변한 세상에서 생존자들을 규합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좇아 이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여정은 아닙니다.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가끔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싸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변종(괴물)만이라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세상에 가장 무서운 건 뭐니 뭐니 해도 또 다른 생존자인 법이죠. 그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미쳐버린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광신도가 되어 플레이어를 노립니다.

'비포 더 던'으로 몇 차례 게임쇼에서 얼굴을 내비친 바 있는 '르모어'는 그때마다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없이 무거운 분위기에 전략성이 극대화된 요소로 호평받았죠.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지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르모어'는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요.



영웅이 아닌,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이들의 여정




SRPG로서 다른 게임과 차별화된 '르모어'의 특징을 꼽으라면 전략성의 극대화를 들 수 있습니다. SRPG를 표방하는 게임은 많지만,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전략(Strategy)이라는 요소가 다소 모호하게 그려지곤 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적과 아군의 능력치에 큰 차이가 없거나 혹은 레벨 등으로 찍어 누르는, 이른바 딜찍누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요는 다소 무리하게 적들 사이에 뛰어들어서 다 쓸어버리는 플레이를 해도 리스크가 적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르모어'는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생존자들은 약합니다. 잘 쳐줘도 적과 비슷한 수준인 데다가 무기 역시 허접한 것들이 대부분이죠. 일대일이라면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어떻게든 이길 수 있겠지만, 그다음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앞을 막아서는 적은 한둘이 아니고 체력도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스테이지를 진행하면서 얻은 음식 등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해야 하죠. 당연하게도 음식 역시 넉넉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르모어'는 자연스럽게 최대한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적을 처치하는 식의 '전략'을 플레이어에게 요구합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건 아닙니다. 적을 하나씩 일점사하면서 진행한다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겠지만, 적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들은 아군을 인식하게 되면 괴성을 지르면서 동료를 부릅니다. 다대다 상황이 강제될뿐더러 달라붙었을 경우 붙잡히게 되면서 움직일 수도 없게 만들죠. 벗어나기 위해선 붙잡은 적을 처치하거나 스킬로 밀쳐내야 합니다. 행동력 하나하나가 소중한 상황에서 사실상 손해를 강제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난관을 플레이어는 전략적으로 헤쳐 나가야 합니다. 괴물, 광신도 상관없이 적들은 기본적으로 시야와 소리로 상대를 인식하는 만큼, 돌멩이나 동전을 던져서 따로 유인하거나 다른 곳을 본 후 처치하는 식입니다. 이를 응용하면 괴물과 광신도를 서로 싸우게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 모두가 적인 상황. 괴물 외에 광신도 등 다른 세력이 등장한다면 이이제이를 노려보자

그럼에도 전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은 언제든 찾아옵니다. 앞을 가로막는 적을 처치하거나 해야 할 때죠. 이때야말로 플레이어의 전략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최대한 안전하게 적을 공격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돌멩이나 동전을 던져 시선을 돌리게 한 후 시야 밖에서 공격을 하는 것부터 방벽 등의 장애물을 세운 후 대각선 방향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로, 혹은 창처럼 공격 범위가 긴 무기로 공격하는 식이죠.

다수의 적이 몰려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타입의 적이 오는지 침착하게 파악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일망타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앞서 아군 캐릭터들은 약하다고 했지만, 한 가지 적들과 비교했을 때 더 나은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행동력입니다. 행동력은 무기 행동력과 전술 행동력 2가지가 있는데 무기 행동력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기를 휘두르거나 스킬을 쓰거나 할 때 사용되고 전술 행동력은 이동하거나 보조 도구를 쓰거나 할 때 사용됩니다. 그리고 행동력이 넉넉하다면 한 턴에 몇 차례나 행동을 반복하는 것도 가능하죠.



▲ '르모어'의 전투는 판을 짠 후 내 턴에 한방에 정리하는 묘수풀이와 흡사한 느낌으로 진행된다

이를 활용해 플레이어는 최대한 유리하게 상황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적이 눈치채지 못했다면 돌멩이나 동전을 던져서 잠시 시간을 번 후 방벽을 설치해서 최대한 안전할 수 있도록 판을 짜는 식이죠. 블리스터라는 변종이 다가온다면 적의 특성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죽거나 충돌 피해를 입을 경우 폭발하는데 적들이 몰려들었다면 갈고리로 끌어당겨서 충돌을 유도하거나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활이나 창, 그것도 아니라면 돌멩이를 던져서 처치하는 식으로 다수의 적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무기별 특징이나 각 캐릭터의 스킬, 특전 역시 간과해선 안 되겠죠. 아군 턴이라고 안전한 건 아닙니다. 적들은 맞아주기만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공격 범위 안에 있다면 반격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적들의 공격 범위 밖에서, 혹은 한 번에 적을 처치하는 식으로 전략을 짜야 하죠. 공격 범위 밖에서 어느 정도 체력을 깎은 상태에서 붙잡힌 캐릭터로 확정 처치를 하는 식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다수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아군과 자리를 바꾸는 식으로 다수의 적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죠.



▲ 블리스터가 있다면 충돌을 적극적으로 이용해보자

특전은 이러한 전략적인 플레이의 방점을 찍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캐릭터는 고도화를 하면 2개의 특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더욱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하게 됩니다. 에드윈의 지원 공격은 적이 자신의 공격 범위 안에 있을 때 다른 캐릭터가 해당 적을 공격하면 매 턴 1회 지원 공격으로 추가타를 날릴 수 있으며, 디어뮈드는 적을 처치하면 전술 행동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디어뮈드의 경우 전술 행동력을 소모해 무기 행동력을 회복하는 스킬을 지닌 데다 기본적으로 주어진 양손 도끼의 경우 대각선을 포함해 전방 3칸을 공격할 수 있는 만큼, 다수의 적을 한 턴에 해치울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르모어'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지형지물은 물론이고 어떤 적들이 있는지, 보조 도구는 어떻게 활용할지부터 유인할 때는 누구를 유인하는 게 좋을지까지 적을 처치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말 그대로 전략을 쥐어짜야 하죠.



▲ 때로는 유리한 위치로 적을 끌어당기거나



▲ 캐릭터들의 스킬을 고려해서 진형을 짜는 등 전략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생존을 위한 선택은 전투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략적인 판단, 그리고 선택에 대한 건 전투에서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캠프에서도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선택을 마주하게 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무대로 한 작품들을 보면 자원이 없어 곤란해하는 경우를 수두룩하게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마저 위태로운 경우죠. '르모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간신히 캠프를 꾸렸지만, 지옥도로 변한 세상은 모든 것들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먹을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무기마저 없는 상황이죠.

이런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음식 등의 자원을 어떻게 쓰는 게 효율적일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르모어'에서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한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닙니다. 잃은 체력은 그대로이기에 캠프에서 음식을 조리해 먹음으로써 회복해야 하죠. 그렇다고 있는 음식을 전부 먹는 게 능사인 건 아닙니다. 배고프면 패널티를 받고 배부르면 이점을 얻기도 하지만, 스테이지에서 얻을 수 있는 음식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체력이나 포만감을 채우겠다고 한 번에 다 먹었다간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 캠프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을지 먹는다면 얼마나 먹을지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마냥 아꼈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죠. 음식과 재료는 유통기한이 존재하기에 놔두면 상합니다. 정 체력이 없거나 배가 고프다면 상한 음식으로 인한 페널티를 감내하고 먹을 수도 있겠지만, 좋은 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죠.

무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적을 공격하거나 방패로 막는 모든 행동에는 내구도가 소모됩니다. 고치기 위해선 별도의 자원이 필요하죠. 음식과 마찬가지로 이런 자원들은 넉넉하지 않습니다. 스테이지를 진행하면서 몇 개씩 얻는 정도에 불과하죠. 그렇기에 수많은 무기 가운데 어떤 걸 고칠지, 그리고 어떤 걸 개조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게 좋을지 플레이어는 선택해야 합니다. 잡다한 무기들을 분해해 재료로 만들고 특정 무기를 개조하거나 강화하는 식으로 몰방할지, 혹은 여러 무기를 돌려쓰는 식으로 쓸지 말이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선택 미션으로 와이번을 구해줄 경우 채집 기능이 활성화되어 이미 클리어한 맵으로 가서 재료를 채집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재료가 부족한 건 여전합니다. 한 번 채집을 보낸 맵에서는 다시 채집할 수 없기 때문이죠. 결국, 캠프에서도 플레이어는 전투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선택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략(Strategy)과 생존(Survival)이 공존하는 SRPG '르모어'의 얼리액세스 첫인상은 여러모로 합격점을 주기 충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자칫 어느 한 쪽으로 매몰될 수 있는 생존과 전략의 균형잡기에 성공한 모습부터 하드코어한 난이도, 한없이 어두운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블랙앵커 스튜디오의 정극민 대표가 몇 차례나 빌드를 엎어가면서 쌓아올린 노력이 마침내 빛을 발한 느낌이었죠.

다만, 못내 아쉬운 점 역시 있었습니다. 인디 게임의 태생적인 단점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얼리액세스 버전에서 선보인 7개의 스테이지에 더해 7개의 스테이지를 추가함으로써 총 14개의 스테이지를 구현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본편의 스토리가 워낙 단편적이다 보니 단순한 세계관이나 설정을 소개하는 데에서 그친다는 점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아직까지는 스토리에 대한 부분보다 하드코어 SRPG로서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UX 역시 더 고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메뉴창의 경우 보통 ESC키로 여는 게 국룰이건만 '르모어'는 F10키로 열어야 해서 어색하게 느껴진 거였죠. 다만, 이러한 몇몇 아쉬움을 제외하면 얼리액세스에서 게임성을 검증받기 위한 '르모어'의 행보는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전 '비포 더 던'일 때부터 추구해 왔던 게임성은 여전했기 때문이죠.

'르모어'는 오는 2024년 상반기 중 글로벌 정식 출시 예정입니다. 얼리액세스를 통해 게임성 검증에 나선 만큼, 다양한 피드백을 통해 한층 완성도를 끌어올려 전세계 SRPG 게이머들이 즐기는 '르모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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