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 시리즈#1] 일본의 심리 호러 명가, '칠라스 아트'

인터뷰 | 박광석 기자 | 댓글: 9개 |
'외길 시리즈'에서는 급변하는 세태와 외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철학에 의거하여 우직하게 외길을 걷는 국내외 게임 개발사들을 만나봅니다.

이번 시간엔 '동인 게임'의 하위 분류로 구분되며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일본의 인디 업계를 조명해보았습니다. 그 기념비적인 첫 번째 순서로는 1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의 공포 게임을 차례차례 출시하며 국내 호러 팬들에게 '가성비 호러 맛집'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그야말로 호러 외길을 걷는 인디 게임 개발사 '칠라스 아트(Chilla's Art)'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기사 내 실명 표기가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일본풍 심리 호러 명가' 꿈꾸는 인디 게임 개발사

Q. '칠라스 아트(Chilla's Art)'를 모르는 유저들을 위해, 먼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칠라스 아트는 형제 둘이서 게임을 만들고 있는 작은 인디 게임 개발사입니다. 가끔 아내의 도움을 받는 정도이고, 작업 대부분을 둘이서만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형 혼자서 게임을 만들고 있었는데,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여 제가 가세한 느낌이죠. 주로 공포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 사명은 '친칠라'에서 따왔다. BI 역시 친칠라의 일러스트


Q. '칠라스 아트'는 이제 명실공히 호러 전문 개발사가 됐죠. 한국에서도 '가성비 공포 게임 맛집'으로 소개될 정도예요. 2018년부터 쭉 공포 게임을 개발 중인데, '공포'를 메인 컨셉으로 잡게 된 이유가 있나요?

-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단순히 공포 장르가 좋았어요. 어릴 적부터 공포 게임과 공포 영화를 즐겼고,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포 게임만 만들게 된 것 같아요.



▲ 스팀에서 칠라스 아트를 검색하면, 20종 이상의 공포 게임들을 만나볼 수 있다


Q. 그런 면에서 지난 2018년에 출시한 'Sphaera'는 특별한 게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칠라스아트에서 만든 거의 유일한, 공포가 아닌 장르의 게임이니까요. 이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도 궁금합니다.

- 실망하실 수도 있겠는데, 그냥 만들어본 거지 특별히 다른 의미는 없었어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러한 시행착오 과정에서 탄생한 게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Sphaera'는 공포 명가 칠라스 아트의 의외의 면을 엿볼 수 있는 게임이다


Q. '칠라스 아트'는 일본의 민간설화와 도시전설을 모티브로 삼아 공포 게임을 만들고 있죠. 많은 괴담 속에서 괜찮은 소재를 선택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기획 단계에서 '이건 무섭겠다'라는 확신이 드는 것을 선택하는 편인가요?

- 칠라스 아트에서 만드는 공포 게임은 크게 '서바이벌 호러'와 '심리적 공포'의 두 가지 세부 장르로 나뉩니다. 여기서 '심리적 공포' 게임을 만들 때는 정말 평범한, 주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일본의 풍경을 담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무서운 요소를 발견하면, 이부분을 담아내어 게임을 만드는 식입니다.



▲ 편의점, 카페, 주택가 등등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심리적 공포 요소를 발굴해내는 방식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입되고, 공포는 배가된다


Q. 신작의 출시 주기가 정말 짧은 것도 칠라스 아트의 강점이죠. 여러 작품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노하우는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의 장편을 오래 만드는 대신 짧은 단편을 빠르게 출시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 저희는 기획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너무 크게 내지 않고, 제작 과정은 효율적으로, 그리고 세세한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걸 노하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지는 모르겠네요.

또한 '일본풍의 호러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렇게 떠오른 무수한 아이디어를 어떻게든 빨리 구체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단시간에 여러 작품을 만들게 됐습니다. 어떻게든 신작을 계속 내면 유저들의 반응을 꾸준히 살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 소재를 봤을 때 떠오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자는 마음이 다작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런 면에서 일본은 심리 공포물 개발자에게 있어 '보물창고'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Q. 지난 2021년 6월부터 한국어 지원이 적용됐고, 덕분에 한국 사용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졌습니다. 인디 개발사가 외국어를 지원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국어를 지원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 정말 감사하게도 팬분들이 '한국어 번역을 할 테니, 게임에도 적용해달라'는 요청을 해주셔서 감사히 받아들였습니다. 지금도 역시 한국어 번역을 하고 싶다고 말해주시는 팬들이 번역을 담당해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신청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 "만드는 것은 공포 게임 뿐이지만, 매번 새로운 것을 배우는 마음으로"

Q. 지난 2019년에 발매한 'Okaeri'를 기점으로 VHS 필름을 연상시키는 노이즈 블러 효과가 칠라스 아트의 작품에 자주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출이 공포 게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시나요?

-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가 직접 촬영하는 '홈비디오' 느낌을 주고 싶어서 도입한 것이 VHS 필름 연출입니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실제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사실감을 전달하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 낡은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실제 현장에 방문한 것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Q. 플레이어에게 기괴한 인상을 전달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단순한 모델링 위에 실사 얼굴을 입히는 연출이 있죠. 게임 안에 들어가는 인물의 얼굴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지인들의 사진을 활용하는 편인가요?

- 실제 지인들의 사진을 사용한 적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리얼루션(Reallusion)'의 캐릭터 크리에이터 기능을 활용해서 게임 속 인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 실제 사람의 얼굴 이미지를 활용한 캐릭터는 작품 속에 녹아들어 기괴함을 더한다



▲ 인디 개발자들이 3D 모델링을 만들 때 자주 활용하는 '리얼루션'의 캐릭터 크리에이터


Q. 여태껏 만든 20종 가량의 타이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꼽는다면?

- 아무래도 '빨간 망토(Aka Manto, 赤マント)'가 아닐까 싶네요. 개인적으로 칠라스 아트의 게임들 중 가장 무섭다고 생각하는 작품이에요. 아직 칠라스 아트의 공포 게임을 접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게임도 이 작품이고요. 물론 저희가 만든 모든 게임을 다 해보시길 바라는 것이 본심이지만요(웃음).



▲ 개발자가 뽑은 베스트는 '빨간 망토', 괴성을 지르며 쫓아오는 살인마를 피하는 게임이다


Q.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역시 '야근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칠라스 아트를 알게 된 이들도 많죠. "개발자가 분명 편의점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다"는 재미있는 감상도 많았는데, 정말 실제 경험이 담긴 작품인가요?

- 지금의 아내가 학창시절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어서, 아내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듣고 참고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상상해서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가장 최근에 발매한 게임 '폐점사건'의 카페 아르바이트 파트 역시 대부분 상상을 기반으로 제작했습니다. 실제로 해당 업종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본다면 어색한 점이 많이 보일 거에요.

▲ 영상 출처: '수탉' 유튜브 채널


Q. '돌아가는 길'에서는 3인칭 생존 게임 장르에 도전한 바 있습니다.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가 높이 평가된 작품인데, 이러한 방식에 도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 새로운 것을 도입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소규모 인디 게임 개발사지만,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계속 성장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자리에 머물지 않기 위해 항상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이후 '심야방송'에서는 운전 요소를 도입했죠. 매번 다른 요소를 도입하고 있지만, '공포'라는 큰 틀은 유지하는 모습입니다. 혹시 다른 장르의 게임을 개발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 공포 장르를 무척 좋아하다 보니, 앞으로도 계속 공포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속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면서 지금까지 만들지 않았던 다른 장르의 공포 게임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예를 들자면 서바이벌 호러 게임 같은 것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 매번 새로운 시도를 더하며 경험을 쌓고, 다른 장르의 공포를 준비하고 있는 칠라스 아트


Q. 칠라스 아트의 게임들은 대부분 짧고 스토리 중심이다 보니, 스트리머의 방송으로만 게임을 접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편입니다. 스트리머 방송은 게임을 홍보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게임 전체의 실황 방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 유튜브나 트위치 같은 매체를 통해서 칠라스 아트의 게임을 알게 된 분들도 많으실 거로 생각하고,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보는 것과 실제로 플레이하는 것은 다른 경험을 선사하므로, 방송을 보더라도 직접 플레이해보거나, 아니면 '다음 작품은 내가 직접 해볼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칠라스 아트는 짧은 기간에 다수의 게임을 내는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다음'을 생각해주시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난 3월에 발매된 '폐점사건'에서는 조작 요소도 많이 더해졌다


Q. 꾸준한 작품 활동과 별개로 오프라인 활동이 거의 없다 보니, 칠라스 아트에 대해 궁금해하는 유저들이 많습니다. 사실 개발자가 일본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인데요. TGS 등 오프라인 이벤트에 참여할 계획은 없나요?

- 당장은 오프라인 이벤트에 참여할 계획은 없습니다. 저도 그 소문은 들은 적이 있어요. 칠라스 아트는 일본인이 맞습니다(웃음). 해외 거주 기간이 길어서, 어색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Q. 가장 최근 작품 이후로 두 달쯤 지났으니, 또 신작이 나올 때가 됐네요. 현재 개발 중인 신작은 어떤 게임인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합니다.

- 신작은 일본의 공중 목욕탕인 '센토'를 무대로 하는 심리 공포 게임입니다. 이번 작품 역시 일본 문화를 바탕으로 하며 필요에 따라 VHS 필름 연출을 적용할 수 있고, 멀티 엔딩이 있습니다.





▲ 스팀을 통해 공개된 신작 '지옥 목욕탕', 일본 특유의 정취와 한층 발전한 그래픽이 눈에 띈다


Q. 끝으로 한국의 공포 게임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칠라스 아트는 게임 하나하나를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매일매일 즐겁게 게임 개발에 임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게임을 플레이해주시는 유저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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