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동물의 숲의 탈을 쓴 타르코프

게임뉴스 | 정수형 기자 | 댓글: 8개 |

2년 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한창 인기를 끌었을 때 닌텐도 스위치가 있었지만 그리 관심을 두진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해보긴 했지만, 오랫동안 붙잡고 하진 않았죠. 이유는 별 거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힐링 게임이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귀여운 동물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섬을 꾸미는 재미도 분명 있긴 하지만 그보단 크고 묵직한 샷건 친구와 악마를 퇴마하는 재미에 더 끌렸었거든요.

동물의 숲을 하면서 늘 떠오르는 건 "저 녀석의 탐스러운 가구를 뺏고 싶다"라던지, "너굴이가 없으면 갚아야 할 빛도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사악한 생각뿐이었으니 정상적으로 게임을 즐길 정신머리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힐링 라이프에 적응하지 못한 채 멀리 떠나버렸지만, 한편으로 아쉽게 느껴지더군요. 만약 동물의 숲을 베이스로 하되 좀 더 자유로운 생활, 그러니까 무법 지대의 느낌이 난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죠.



게임명: 롱빈터(Longvinter)
장르: 생존, 크래프팅
출시일 : 2022. 2. 25
개발 : Uuvana Studios
배급 : Uuvana Studios
플랫폼: PC

지난 2월 25일 출시한 '롱빈터(Longvinter)'는 이런 니즈에 딱 맞는 게임입니다. 동물의 숲이 떠오르는 아기자기한 캐릭터, 그래픽에 PvP 시스템을 더한 게임이거든요. 현재 얼리 엑세스로 출시되어 동물의 숲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즐겨볼 순 없지만, 기본적인 채집부터 농사, 낚시, 건물이나 가구 제작 등 생존 게임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는 모두 갖추고 있죠. 이 게임의 주요 특징은 앞서 말했듯 유저간 PvP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게임은 온라인 멀티 서버에서 진행되며, 섬과 섬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생존을 목적으로 활동하게 되는데요. 총기나 도끼 등의 무기를 휘둘러 다른 플레이어를 쓰러트리고 아이템을 강탈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혹은 남이 가꿔둔 농작물을 몰래 훔쳐갈 수도 있죠. 느낌만 동물의 숲을 떠올리게 할 뿐, 결과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게임이라고 봐도 됩니다.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섬에서 사이 좋게 지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하지 않는 이상 그런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도 일단 돈이 최곱니다

아무튼, 본격적으로 게임을 해보니 기본적인 흐름이 여타 생존 게임과는 조금 다르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생존 게임은 주변에서 줍는 재료를 갖고 생활에 필요한 건물이나 물건을 만들면서 차례대로 빌드업을 쌓게 되는데요. 이와 달리 '롱빈터'는 대부분의 활동이 자본 만능주의였습니다. 게임 내에서 필수로 여겨지는 집은 텐트를 돈 주고 사야 했으며, 나무를 베거나 낚시를 할 때 필요한 도구들 역시 웬만하면 거의 다 상점에서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합니다.

가령, 대표적인 생존 게임으로 꼽히는 '러스트'의 경우 주변 나뭇가지와 돌만 있으면 돌도끼를 만들어서 빠르게 나무를 채집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모으고 제작을 통해 발전할 수 있죠. 그에 반해 '롱빈터'는 나무를 채집하기 위해선 돈을 벌어 상인에게 도끼 혹은 전기톱을 사야 합니다. 돈을 버는 방법 역시 상인에게 주변 열매를 팔거나 낚시로 물고기를 파는 방식이니 게임 진행에서 상인과의 교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제작을 통해 활동의 바리에이션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어 삶의 질을 넓힌다는 점에서 동물의 숲과 꽤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요. 게임 내에 아이템을 제작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별도의 제작책을 얻어야 했고 또 제작하는 아이템 중 일부는 상인에게 구매할 수 있기도 해서 생존 게임임에도 돈의 가치가 꽤 높았습니다. 결국,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채집하기 위해선 상인에게 도구를 사야 했기 때문이죠.



▲ 돈 벌기에는 낚시가 제일 편했습니다



▲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씨앗을 심어 농사를 지을 수도 있죠

믈론, 상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희귀한 재료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재료는 섬 곳곳에 있는 버려진 컨테이너나 시설에서 파밍을 해야 했으며, 그중에선 총기류도 포함되어 있죠. 다만, 아직 이런 희귀 재료의 종류 자체가 많지 않고 섬을 이동하다 보면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생존 게임이라면 당연하게 제공하는 허기와 목마름, 신체 상태 이상을 알려주는 시스템이 없었는데요. 아무래도 '롱빈터'가 추구하는 생존이 아무것도 없는 야생에서 자급자족하며 생존을 이어가는 느낌보다는 어느 정도 인프라가 갖춰진 섬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을 꾸려가는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한편, '롱빈터'는 명확한 목표가 없는 게임입니다. 크고 작은 여러 섬에서 유저는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죠. 게임 내에서도 유저에게 딱히 강요하는 장치가 없는데요. 굳이 목표를 세운다면 모든 도감 채우기와 집 꾸미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어쨌든 흔한 NPC들이 주는 퀘스트도 없고 심지어 튜토리얼조차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저 섬에서 원하는 대로 살아가면서 나만의 집을 짓고 여러 장비를 파밍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면 됩니다.



▲ 총 맞기 싫으면 필사적으로 손 흔들어야 합니다

참고로 유저 간의 교류는 손을 흔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게임 내에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제공하지 않다 보니 모든 캐릭터가 똑같이 생겼습니다. 지나가면 닉네임도 따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만약 친구와 같이 게임을 한다고 해도 말없이 옆을 지나가면 모르고 지나칠 가능성이 큰데요. 이때 손 흔들기를 사용하면 캐릭터가 열심히 손을 흔들면서 자신의 닉네임을 보여주게 됩니다. 일종의 피아식별 개념인 셈이죠.

게임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손 흔들기였는데요. 만약 손을 흔들지 않고 주변 주민에게 다가가면 자칫 총에 맞아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뜻 이해 안 가고 무서운 이야기지만 실제로 초반에 손 흔들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다가갔다가 총 맞고 비명횡사 당했으니 확실합니다. 앞서 말했듯 '롱빈터'는 PvP를 제공하는 게임입니다. 파티를 맺는 시스템도 없고 사실상 게임 내에 모든 유저가 적이 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서버 내에 모든 사람이 친구가 아닌 이상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생존 영화만 봐도 낯선 이가 다가오면 경계를 하지 않습니까? 굳이 영화뿐만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도 신원불명의 사람이 나에게 다가온다면 경계를 하기 마련이니 인사를 통해 낯선 이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어딘가 옳은 행동이라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귀여운 캐릭터가 해맑게 손을 흔드는 행동 자체가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고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같더군요.



▲ 시작 섬에 으리으리해 보이는 곳이 있어서 가봤더랬죠

사실 게임을 하기 전에는 나름 행복한 섬 라이프를 생각했습니다. 무법 지대의 느낌은 어느 정도 성장이 이뤄진 후에 고인물이 넘치는 섬에 갔을 때 시작되지 않을까 싶었죠. 하지만 막상 게임에 들어오니 절 반겨준 건 경기관총이 내장된 자동 터렛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에 접근해봤는데 일정 반경 내에 접근하니 분당 수십 발의 총알을 발사하며, 캐릭터의 몸을 벌집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롱빈터'는 서버 단위로 게임이 진행되는 방식으로 게임 내에서 공식으로 제공하는 서버 외에 개인이 만든 서버도 존재합니다. 공개 서버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시작부터 완벽한 무법 지대로 되어 있는데다 이미 게임을 씹고 뜯고 즐긴 유저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한적한 서버로 가니 시작부터 자원도 풍부했고 나름대로 진행을 해볼 수 있었는데요.

이런 공개 서버 외에 따로 즐기고 싶다면 개인 서버를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현재는 게임 내에서 서버를 만드는 기능이 없고 게임 외적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가볍게 즐길 생각이라면 이미 만들어진 서버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3월 7일을 기준으로 한국어를 지원하면서 국내 서버도 조금씩 생겼으니 오픈 카톡 방이나 카페에서 한국 관련 서버를 찾아간다면 좀 더 쾌적한 플레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 벨튀는 결코 허용하지 않는 세상

개인적으로 '롱빈터'가 밀고 있는 게임의 특징 중 하나가 PvP기 때문에 무법 지대와 같은 플레이 자체에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다만,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조차 만들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플레이가 이뤄진다는 부분에선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만약, 게임을 전혀 모르는 초보자가 이 게임을 시작할 경우 공개 서버에서 시작할 텐데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상태에서 무시무시한 터렛을 만나게 된다면 아마 열이면 아홉은 게임을 그만두고 환불을 할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 중 한 명이 끝까지 붙잡고 게임을 한다고 쳐도 게임 내에서는 어떠한 규칙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순수하게 게임 내의 유저들의 활동에 맡겨야 합니다. 다만, 그렇기엔 유저들의 성향이 모두 제각각인지라 기본적인 안전장치 없이 흘러가게 되고 초보자는 순수하게 무법 지대에 속해있는 게임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게임을 접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적어도 게임이 제공하는 기초적인 부분에 대해서 가이드라도 제공해준 뒤 이후에 본격적인 '롱빈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진행하는 것이 어떨까 싶었습니다.

또한, 게임 내에 테러에 대해서 너무 무방비하다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게임 내에서 다른 유저가 설치한 가구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해칠 수 없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남이 힘들게 만든 가구를 쉽게 부술 수 없게 한 것 같은데요. 문제는 이를 악용해 남의 집 앞에 터렛을 깔아두는 플레이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 처음 들어온 유저가 파밍을 통해 터렛을 만든 후 활발하게 움직이는 유저의 집 근처에 터렛을 설치해서 집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플레이를 펼치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 추후에는 게임 내에서 서버를 만들 수 있는 기능을 넣어주길...

해당 유저는 어떻게든 집 밖에 나가려고 시도했지만 다른 사람이 설치해놓은 터렛을 부술 수 없어 결국 집을 포기했고 이후에 해당 섬에서 그 유저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롱빈터'는 계정 저장이 아니라 서버에 내 정보가 저장되는 방식의 게임인지라 서버를 이동하면서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서버를 옮길 때 내가 그동안 꾸려왔던 모든 것을 잃어야 하므로 이런 테러 자체에 굉장히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현재 '롱빈터'의 스팀 평가는 복합적으로 대부분 이러한 테러 행위와 부족한 콘텐츠를 불만으로 꼽고 있습니다. 게임 자체는 동물의 숲을 연상시킬 만큼 꽤 재미있고 만족스럽지만, 그 외에 요소에서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높다고 평가되지만, 현재의 모습만 봐선 게임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만 구현해두고 나머지는 얼리 엑세스라는 껍데기를 두른 채 넘기려는 느낌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만, 게임의 완성도와 별개로 '롱빈터'의 첫 느낌 자체는 괜찮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어우러져 섬을 꾸며나가고 도감을 완성하는 재미는 확실히 좋았거든요. 섬을 괴롭히는 테러범을 총으로 응징하기도 하니 단순한 힐링 게임보단 변수가 많아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직 얼리 엑세스 초기 단계인 만큼 앞으로 더 다양한 콘텐츠를 추가하고 '롱빈터'만의 특색을 더해간다면 단순히 동물의 숲을 따라 한 게임이 아닌 재미있는 생존 게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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