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밍 기어 공룡 기업의 원산지를 좁히면 십중팔구 미국으로 드러난다. 또는 메인보드나 그래픽카드 분야를 모태로 둔, 든든한 뒷배를 바탕으로 가파르게 성장한 대만의 기업도 있겠다. 다소 의외인 지역, 독일도 있다. 브랜드 명칭과 로고만 보면 고양이 관련 용품인지 게이밍 기어 브랜드인지 헷갈릴 만한 업체, 로캣(Roccat)이 속한 나라다.
본사 소재지 또한 의외다. 보통 독일의 대기업은 바이에른 주, 특히 뮌헨에 위치하는데 로캣은 독일 함부르크(Hamburg)에 위치한다. 햄버거 스테이크의 원산지이자 우리흥이 소속했던 팀, 그 지역이 맞다. 어찌 되었든 로캣은 '장인의 나라' 독일 기업답게, 제품 빌드 퀄리티가 훌륭한 편이다. 누가 독일의 기술력은 세계 제일이라고 그랬던 것 같다.
회사 설립일은 2006년으로 타 업계와 비교한다면 비교적 '새내기'에 준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게이밍 기어 시장 진출이 빠른 곳은 90년 후반 내지 00년 초반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게이밍 기어 대열에 늦게 합류한 로캣은 후발주자나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선발대가 먼저 차지한 점유율 파이를 앗으려면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매력을 어필해야 한다. 로캣은 높은 제품 퀄리티, 품질 대비 합리적인 가격, 프로게임단과의 협업 등 다양한 전략을 내세워 게이밍 기어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짧은 역사로 새내기 반열에 속하지만 풋내기는 결코 아니라는 얘기.
로캣은 회사 설립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콘(KONE) 마우스 제품군을 발매해 게이밍 기어 저변을 다졌다. 이 라인업은 오늘날까지 로캣의 스테디셀러로 거듭난다. 시작은 비대칭 구조와 12개의 추가 버튼과 마우스 전면부터 후면까지를 가로지르는 RGB LED가 적용된 콘 XTD가 1번 타자였다. 결과는 초구 안타.
콘 XTD가 쏠쏠한 판매고를 보이며, 로캣은 원히트 원더에 그치지 않고 제품을 개량하고 발전시켜 꾸준히 후속작을 선보였다. EMP, AIMO, PURE, PRO 등 최신 기술과 트렌드를 반영하여 콘 라인업에 추가했고, 이외에도 BURST, KAIN, KOVA 등 새로운 라인업에 대한 개발도 과감했다.
게이밍 마우스뿐만 아니라 키보드, 헤드셋 심지어 마우스 패드라는 카드도 꺼냈다. VULCAN, MAGMA, PYRO 등 탁월한 가성비를 보이거나 자체적으로 개발한 스위치를 적용한 제품을 내놨다. 레이저, 로지텍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 성능과 빌드로 호평을 이끌어냈다. 가성비 및 높은 퀄리티가 새로운 분야에서 흥행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여러 라인업을 향한 로캣의 자신감은 게이밍 기어 '키마헤' 분야의 완성을 꾀했다. 로캣 헤드셋은 2017년 칸 프로(KHAN PRO)를 필두로 시작되었으며, 칸, 엘로, 노즈, 렌가 등 여러 제품을 꾸준히 내며 노하우와 입지를 쌓아 올렸다. 또한, 로캣은 2019년 미국의 게이밍 오디오 전문 기업인 터틀비치에 인수되어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을 더욱이 확대했다.
로캣 헤드셋은 터틀비치의 기술을 접목해 초격차 기술 경쟁을 본격화했다. 터틀비치는 헤드셋 및 게임패드 전문 제조업체로 프로스펙스 글래시스 릴리프 시스템(Prospeces™ Glasses Relief System), 가상 7.1 채널 3D 오디오 등 헤드셋 관련 기술에 두각을 나타내는 업체다. 로캣 기업은 터틀비치에 인수되며, 자사의 제품의 여러 기술을 적용해 경쟁력을 심화했다.
제품 빌드 퀄리티로만 승부를 본다기 보단, 게이밍 문화 또한 적극 활용했다. 2007년 이래로 10년 넘게 자사 업체의 이름을 딴 e스포츠 프로게임단 Team Roccat을 운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젠지(Gen.G) e스포츠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 등 전략적 협업 관계를 지속하는 추세다.
사실 로캣과 젠지의 인연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배틀로얄 장르의 광풍으로 배틀그라운드 프로게이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1세대 배그 프로게이머라고 할 수 있는 윤루트 선수가 Gen.G 출신이었던 것. 그는 국내에 로캣 브랜드와 로캣 콘 퓨어 오울아이(OWL-EYE)를 전파한 장본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 로캣과 젠지의 관계는 특별하다 못해 각별한 수준이었다.
국내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 열풍과 게이밍 기어의 중요성이 맞물린 시기. 배그 1세대 프로게이머인 윤루트 선수의 주력 마우스가 로캣 콘 퓨어 오울아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로캣의 국내 인지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오죽했으면 여러 배그 프로게이머들까지 찾아 '오울아이 유저=배그 유저'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기의 비결은 손에 착 감기는 비대칭 그립, 묵직함과 가벼움 중간에 위치한 적절한 무게다. 앞서 높은 판매고로 훌륭한 비대칭 디자인을 입증한 콘 XTD와 유사한 쉘을 채택했다. 특히 마우스 세로 길이가 짧아 보편적으로 서양인보다는 동양인이 쥐기 편했으며, 마우스 높이가 낮은 편에 속해 클로 그립뿐만 아니라, 팜 그립에도 어울리는 전천후 마우스로 평가받는다. 더군다나 무게는 88g으로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로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았다.
19년 하반기에는 콘 퓨어 오울아이의 계보를 잇는 2세대 제품이 등장했다. 제품명은 콘 퓨어 울트라로, 여러 방면에서 전작 대비 성능 향상 및 개량이 이루어진 마우스로 평가받는다.
먼저 마우스 센서의 변화다. 기존 콘 퓨어 오울아이의 PMW-3361이 PMW-3381로 변경됐다. 3381 센서는 3389의 튜닝 버전인데 레이저사가 독점하고 있던 해당 센서가 만료됨에 따라, 다른 제조사들도 사용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최대 DPI는 16,000까지 지원해 더 빠르고 정확한 포인팅이 가능해졌다.
또한, 무게 감량에 성공하며 비로소 '경량' 타이틀을 갖게 됐다. 마우스 내부 타공 기술을 통해, 기존 88g에서 66.5g까지 무게를 낮췄다. 사용자들은 향상된 에임 서칭, 장시간 게임 플레이 시 손목 피로도 저하를 장점으로 꼽았다.
경량 마우스가 트렌드로 정착하던 시기, 수많은 마우스 제조사가 외부에 육각형 구멍을 뚫는 타공을 선보인 반면, 콘 퓨어 울트라는 내부 빌드에 타공을 거쳐 먼지 및 머리카락과 같은 이물질이 PCB로 침투하는 것을 방지해 많은 유저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또, 1세대 콘 퓨어 오울아이와 비슷한 그립감을 유지했다. 전작에 이어 2세대로 넘어오는 유저는 따로 그립에 대한 적응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 신규 유저는 콘 퓨어만의 그립감에 입문이 가능하고, 기존 유저는 익숙한 그립감에 더 좋은 스펙의 마우스를 사용하게 되는 것.
IT 하드웨어 제품의 화이트 감성과 깔맞춤이 가능한 화이트 버전은 물론, 남자의 심금을 울리는 핑크 버전 '콘 퓨어 코랄'도 출시해 인기를 지속했다. 또한, 'KAIN 202 AIMO'를 시작으로 '콘 프로 에어', '버스트 프로 에어', '콘 XP 에어' 등 무선 마우스 개발에 몰두했다. 최근에는 자체 개발 스위치 TITAN을 포함한 무선 마우스 '콘 에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경량 외에도 개성을 중시한 형형색색의 디자인이나 무선 트렌드도 빼먹지 않았다는 의미다.
로캣은 한국 시장 진출 이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높은 제품 퀄리티, 시장 유저들 특징에 맞는 디자인 설계, 합리적인 가격, e스포츠 산업 접목 등.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져 자신들만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취장보단(取長補短).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한다는 뜻이다. 로캣 마우스의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인 콘 퓨어가 풀어야 할 다음 과제는 '무선'이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게이밍 주변기기는 물론이고 여러 전자 기기 영역에서도 무선이 도입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콘 퓨어만의 독보적인 쉘 디자인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트렌드, 소위 '요즘 대세'인 무선 기술을 추가하는 과감한 시도는 명인의 나라 독일 기술력을 인정받을 절호의 기회이자 앞으로 로캣이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될 것이다.
라인업 강화 등 치밀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도 필요하다. ROG, 어로스, 레이저, 로지텍, 스틸시리즈 등 롱런하는 게이밍 기어 업체들의 특징은 프리미엄 제품군 확장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마이너 한 분야긴 해도, 꾸준한 수요가 있기에 인기가 지속되는 것이다. 로캣은 현재도 라인업이 탄탄한 편이지만, 로우엔드부터 하이엔드까지 과감하게 제품군을 확장해 나간다면 더욱 오래 지속되는 게이밍 기어 업체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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