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토탈워 사가: 트로이 - 미소스', 팬티레슬링에서 신화로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9개 |

역사로, 신화로 바라보는 일리아드



몇 년 전까지, '토탈워' 시리즈는 언제나 비슷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 기반의 대전략 게임' 기간이 로마의 제국 시대든, 일본의 전국 시대든 시대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시대를 배경으로 전투와 외교를 통해 패권을 잡아나간다는 기본 컨셉 자체는 똑같았습니다. 전투가 더 복잡하고 구체적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하츠 오브 아이언이나 크루세이더 킹즈,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등을 유통하는 패러독스 게임들과 비슷한 맥락을 이어왔죠.

이런 시리즈의 기조가 단번에 박살난 계기가 2016년, '토탈워: 워 해머', 이른바 '햄탈워'의 등장이었습니다. 워 해머의 세계는 분명 높은 완성도와 짜임새를 가진 세계관이지만, 기본 자체가 판타지입니다. 원거리 병과가 하나도 없이 시체로 이뤄진 뱀파이어 카운트나, 1티어부터 떡장갑을 두르고 느릿느릿 전진하는 드워프의 등장은 기존 토탈워 플레이어들에겐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더불어, '역사'에 관심을 지닌 게이머가 다수를 차지하던 토탈워 팬덤도 큰 폭으로 확장되었죠. 그리고 이 때부터, 토탈워 시리즈는 '역탈워(역사 토탈워)'와 '햄탈워'라는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됩니다.



▲ 기존 시리즈를 아예 '역탈워'로 분리시켜 버린 '토탈워: 워해머'

그 중에서도 '역탈워'에 속하는 '토탈워 사가: 트로이'는 비교적 최근 출시된 시리즈 최신작입니다. 햄탈워 시리즈와 '토탈워: 삼국(이른바 '삼탈워')'가 연타석 홈런을 쳐내는 가운데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CA)는 마치 전속 장편 작가가 변덕으로 펴낸 단편선 느낌으로 '토탈워: 사가'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브리타니아의 왕좌'에 이은 두 번째 토탈워 사가로 출시된 타이틀이 바로 오늘 말씀드릴 '트로이'이죠.

물론 그 뿐이라면, 이렇게 굳이 리뷰를 진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미 '트로이'는 출시된지 1년 가까이 되었고, 제가 아닌 다른 기자가 담당하긴 했지만 본편에 대한 리뷰는 당시에 게시되었으니까요. 굳이 오늘 다시 이 '트로이'를 꺼내든 이유는 이번달 업데이트된 '미소스' DLC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DLC를 통해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는 또 다시 자신들이 설정한 경계를 넘어섰기 때문이지요.



게임명 : 토탈워 사가: 트로이 - 미소스
장르명 : 전략 시뮬레이션
출시일 : 2021.09.02.
개발사 :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
서비스 : 세가
플랫폼 : PC

관련 링크: '토탈워 사가: 트로이 - 미소스' 오픈크리틱 페이지


'역탈워'의 고질적 문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기존의 역사 기반 토탈워 시리즈들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오늘 말씀드릴 핵심 주제와도 관련되어 있으며, 오늘 다룰 게임의 의미를 느끼려면 기존 '역탈워'들을 한 번쯤 재조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물론, 역사 기반 토탈워 시리즈라 묶어 말하긴 하지만, 시리즈 내에서도 게임 간 차이는 상당합니다. 시대상에 걸맞는 여러 독특한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는가 하면, 최신작으로 올 수록 기본 시스템의 근간이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한 묶음으로 묶어 말하는 이유는, 이 모든 '역탈워' 시리즈가 결국 하나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아는 만큼' 재밌다는게 문제

문제는 이겁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게임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토탈워를 하는 게이머들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 '결국 토탈워는 뽕맛에 하는 게임이다'라는 겁니다. '로마 토탈워'의 팔랑크스, 미디블 토탈워의 중기병 랜스 차징, 토탈워: 삼국에서 혼자 일기당천을 벌이는 여포와 관우처럼, 토탈워의 재미는 게이머가 기존 미디어에서 학습했던 '멋진 요소'를 실제로 구현해 구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에서 재미의 절반 이상이 만들어집니다.

이 말은 곧, 해당 시대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관심이 없다면 좀처럼 재미를 붙이기 어렵다는 말이 됩니다. 로마 시대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 '로마 토탈워'를 할 이유가 무엇이며, 전국 시대에 관심이 없는 게이머가 '쇼군: 토탈워'에서 무슨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요. 지금이야 나락으로 갔지만 시리즈 내에서도 수작으로 평가받고, 동양권에서 대히트를 친 '토탈워: 삼국'도 일부 서양 웹진들은 혹평을 가했습니다. 삼국지를 전혀 모르니까요.

'햄탈워'처럼 시체가 일어나고, 공룡 탄 공룡이 나오고, 기계공학 쥐돌이들과 엘프 소드마스터가 뒤엉키는 세계라면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웬만한 게이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뷔페처럼 깔아 두었으니 그냥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하면 그만이거든요. 하지만, '역탈워'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고증에 안 맞거든요.



▲ 고증에 맞는 알보병 전장 되시겠다

해당 시대에 관심없는 게이머들에게 역사 기반 토탈워 시리즈가 줄 수 있는 재미는 그저 숫자와 상성 놀음 밖에 없습니다. 이 병종의 공격과 방어 스탯이 어떻게 되고, 돌격 보너스는 어떻고, 대보병 대기병, 사정거리는 어떤지 등을 보면서 군단 덱을 짜고, 진형을 짜서 전투를 돌리는 정도의 재미죠. 그리고 이마저도, 기존 토탈워 게이머가 아니라면 힘듭니다.

토탈워라는 게임 자체가 절대 쉬운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죠. 전략을 좋아하는 게이머들도 초심자라면 적응까지 한참 시간이 걸리는 게 토탈워라는 시리즈입니다. '역탈워'의 한계는 이겁니다. 분명 재미는 있는데,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이머 계층이 무척 제한적이며, 그렇지 않은 게이머들은 재미를 느끼기 전에 게임을 이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죠.



▲ 그래도 배경 색감은 참 이뻐져서 좋다



'신화'가 섞인 역사의 모습

'토탈워 사가: 트로이'도 이 역사 기반 토탈워들의 똑같은 한계를 공유했습니다. 일리아드가 다루던 고대 그리스 시대는 분명 매력적인 시대긴 합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웅에 집중하는 미디어에서나 그렇습니다. 브레드 피트가 아킬레우스로 분한 영화 '트로이'만 봐도 그렇습니다. 에릭 바나의 헥토르나 올란도 블룸의 파리스, 아킬레우스는 상영 시간 내내 스크린의 주역이지만, 일반 병사들은 사실 배경에 그칠 뿐이죠.



▲ 전쟁을 다룬 것 치곤 영웅 몇 명한테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 '트로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시대는 고증 상 청동기 시대입니다. 저 멀리 고구려의 모팔모가 강철검을 만들기보다도 천 년은 더 전의 시대라는 거죠. 그 시대에 병종이 다양해 봐야 뭐 얼마나 다양하고, 또 그 병종들로 관객들의 뽕을 채워줄 요소를 뽑아내려 해 봐야 뭐가 나오겠습니까.

'토탈워 사가: 트로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의 시스템이 어떻고, 밸런스가 어떻고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컨셉'이 문제라는 거죠. 병종이 얼마 안 됩니다. 이렇게 저렇게 이름을 붙여서 티어를 나누고, 조금씩 스탯의 차이는 두고 있지만 결국 근접은 도끼, 곤봉, 검, 창이며 원거리는 투석, 투창, 활입니다. 거기에 말 탄 녀석들좀 섞어주고, 괴수를 모티브로 했다는 특수 병종 몇을 끼얹어 주면 게임의 모든 병종이 나옵니다.



▲ 어찌 이렇게 이름난 자들이 많은지

게다가 청동기 시대에 걸맞게 무장도 뭔가 빈약해 보이고 중갑이라 해도 로마 시대 로리카만 못한 갑옷들이다 보니 팬티레슬링 게임이라는 멸칭이 붙었습니다. 이른바 '뽕'을 채워줄 요소가 너무 부족한 거죠. 이는 '토탈워 사가'의 전작인 '브리타니아의 왕좌'도 공유하던 문제였습니다. 영국인이 아니면 큰 관심이 없을 잉글랜드 역사인데다 시대 배경도 중세 암흑 시대를 다루다 보니 이쪽에 심취한 이들을 제외한 게이머들은 색스 워리어만 기억나는 판이죠. 참고로 색슨족 전사라는 뜻이지 다른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앞서 말한 역탈워의 한계를 지녔던 게임에 신화적 판타지를 끼얹은 게 이번 '미소스' DLC입니다. 시스템 상으로 크게 변한 것은 없습니다. 캠페인 맵이 조금 변하고, 그리폰과 케르베로스, 히드라를 꺾어 영입할 수 있는 미션이 추가되는 정도지요. 그럼에도, 게임의 느낌은 굉장히 달라졌습니다.



▲ 이랬던 탕구리가



▲ 고어불이 되어 돌아왔다

스탯 좋은 유격투창병이던 '하피'는 진짜 비행 유닛이 되어 패잔병 처리와 적 원거리 병종 카운터용으로 변했으며, 강력했지만 그래봐야 도적떼 단장이던 미노타우르스는 진짜 소가 되었습니다. 이세계에서 비스트맨의 든든한 국밥을 담당하던 고어불이 돌아온 느낌이죠. 스파르토이는 단순히 강한 창병에서 진짜 도자기인형같은 용아병이 되었고 일부 병종은 마치 햄탈워의 영체 유닛같은 비주얼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거대 괴수들까지 더해지니 팬티만 입은 병사들이 투닥거리던 전장이 굉장히 풍요로워졌죠.

유닛이 바뀐 만큼, 전투 양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전형적인 보병, 궁병, 기병의 상성에 몇 가지 변수가 더해지는 정도였다면, 전장에 괴수를 집어던질 수 있게 된 지금은 괴수를 카운터칠 창병과 궁병 보호를 위한 호위대 구성을 신경써야 하는 등 신경써야 할 요소가 더 늘어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전보다 조금 엉성해졌을지언정, 매력은 훨씬 커졌습니다. 어차피 고인물들이야 외형 좀 바뀌는거보단 유닛 스탯이 어떻게 바뀌었나, 전술이 어떻게 바뀌었나 정도에 더 집중하겠지만, 관심조차 없던 이들에게 시그널을 보낼 만한 게임이 되었다는 건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죠.



▲ 다양해진 병종 만큼 전장에서 신경써야 할 것도 많아졌다



'미소스'로 바라보는 CA의 변화

'미소스' DLC를 플레이하면서, '어쩌면 이것이 애초에 옳게 된 게임 아닐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히트를 쳤던 '토탈워: 삼국'의 경우 정사 모드를 따로 만들어 고증을 중시하는 플레이어들을 배려하면서도, '연의' 모드를 통해 실제 역사보단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의 세계관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장수 혼자서 수백명을 쓸어담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이 연의 모드에서는 가능했죠. 게임의 배경을 '삼국 시대'로 볼 것인지, 혹은 '삼국지'로 볼 것인지를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토탈워 사가: 트로이'의 배경인 트로이 전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트로이 전쟁은 서사시로 기록된 전투인 만큼,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만, 그 기록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신화와 역사의 믹스라는 다소 애매한 위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료로 취급하자면 역사서가 될 수 있지만, 보는 시선에 따라서는 그저 신화의 한 에피소드로 해석할 여지도 남아 있죠.



▲ 솔직히 좀 뜬금없이 나온 히드라긴 하지만 재밌으면 됐지

'미소스' 이전의 게임 본편은 일리아드를 CA의 임의로 재해석했습니다. 미노타우르스는 소 뼈를 뒤집어쓴 도적 대장으로, 하피는 여성으로 구성된 유격 투창병으로 만들었으며, 퀴클롭스는 외눈박이 괴물이 아닌 코끼리 뼈를 뒤집어 써 눈이 하나인 것 처럼 보이는 강력한 야만 전사 정도로 풀이했죠.

하지만, '미소스' DLC와 함께 CA는 두 가지 시선을 덧붙였습니다. '신화'라는 판타지를 더한 모드, 그리고 삼탈워의 '정사'와 비슷한 '역사' 모드를 추가했죠. 일리아드를 사료로 볼 것인지, 신화로 볼 것인지를 게이머가 직접 선택할 수 있게끔 만들어 두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눈여겨볼 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결과물인 '신화'모드보다 기존에 없었던 '역사' 모드의 추가입니다.



▲ 이제는 게이머가 원하는 대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역사' 모드는 앞서 말했듯 삼탈워의 정사 모드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영웅들은 호위병을 대동하고 다니지만 매우 약해 일반 보병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신화적 유닛은 등장하지 않으며, 신들을 숭배해 얻는 버프도 현실적인 수준으로 바뀝니다. 말 그대로 현실적인 당시 전장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거죠.

이는 앞선 '정사' 모드와 마찬가지로 토탈워 시리즈의 기존 팬덤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은 모드입니다. '햄탈워' 등장 이후 삼탈워에 이르기까지, 게임 내에 거대 괴수가 등장하고 인간같지 않은 초인들이 잡병들을 쓸어담으면서 많은 기존 팬덤 구성원들은 '이러다 전통의 역사 기반의 전략 시뮬레이션 시리즈가 판타지 뽕맛 게임이 되버리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와중 신화 모드와 함께 역사 모드를 함께 추가했다는 건, CA가 전통의 팬들을 결코 버리고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 이런 거 넣어도 '역사'는 버리지 않겠다는 뜻

'미소스' DLC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기존의 CA는 자신들이 역사 기반의 게임을 만든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게임 내에 고증과 어울리지 않는 비현실적 요소를 넣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현실성과 고증이야 말로 그들의 자부심이니 말이죠. 햄탈워는 '가상이니까', 그리고 삼탈워는 '소설 기반이니까' 큰 문제가 없었으나 '토탈워 사가: 트로이'를 출시할 때만 해도 신화적 유닛을 굳이 우겨서 현실적인 버전으로 바꿔버릴 정도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번 DLC에서 CA는 스스로 정한 선을 살짝 넘었습니다. 일리아드가 아무리 신화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해도 결국 실제 역사에 등장했을리 없는 신화적 유닛들을 추가하고, 이를 통해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내면서도 동시에 역사 모드를 추가해 기존 팬덤을 달래는 투트랙 노선을 취했죠. 토탈워 팬들에게는 꽤 반가운 소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CA라면 당연히 이렇겠지'보다는 또 어떤 색다른 재미가 나올지 한 번쯤 상상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죠.



평점 : 8.0
장점
  • 신화 유닛의 추가로 풍요로워진 전장
  • 기존 팬덤을 위한 '역사' 모드
  • 높은 수준의 그래픽 비주얼과 신화 묘사
단점
  • 여전히 인기 없는 시대적 배경
  • 청동기라는 한계에 제한된 병종
  • 대부분을 바다가 차지하는 좁은 캠페인 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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