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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팬픽] 애증(愛憎)의 마녀 -8편-

괴물왕자
댓글: 4 개
조회: 452
추천: 10
2015-12-09 21:30:09
1. 본 내용은 μ's 멤버의 캐릭터를 따와 만든 오리지널 스토리 입니다.
2. 폭력적인 묘사나 안타까운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3. bgm과 같이 들으면 더욱 재밌습니다. 모바일 같은 경우, bgm 링크를 타고 재생시키면 보다 원활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4. 작품에 관한 모든 댓글과 추천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8편-

 이제와서 밝히지만 마녀의 숲에는 무려 산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말하지 않은 만큼,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산적들은 산적답지 않았기 때문에...
                                -유명저서 '마녀' 中 p.51 다섯째 줄-



 사박사박─

 "정말로 말씀해주시는거죠?"

 저벅저벅─

 "응! 반드시 한다냐."

 사박사박─

 "흐음..."

 저벅저벅─

 "지금 이 린을 못 믿겠다는거냥!"

 사박사박─

 "아, 아니요. 딱히 그런 말은..."

 저벅... 우뚝─

 "응? 왜 갑자기 멈춰?"

 "여기에요."

 "냐?"

 "이 나무가 노조... 아. 


에리는 무의식적으로 노조미의 이름을 말할 뻔 했지만, 노조미 스스로 알려주기 전까지 남에게 그녀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말라는 니코의 말을 가까스로 떠올렸다.


 "흠흠, 다시 말씀드리면 이 나무가 바로 마녀의 집이라구요."

 "...에에?"

 "현관은 저 위의 나무구멍이에요."


여기는 노조미가 사는 거목 근처.

현재 에리의 옆에서 스스로 '린' 이라 부르는 여자애가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하며 같이 왔다.

물론 익숙한 이름이다시피, 에리를 위협했던 산적 중 나머지 산적으로부터 '린쨩' 이라 불렸던 인간이다.

어째서 이 산적은 염치불구하고 에리를 따라왔을까?

또한 에리는 왜 이 산적을 데리고 왔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
.
.

잿빛의 늑대가 습격한 날 이후로, 마녀의 약 덕분인지 에리의 어깨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동시에 에리에게 있어 오전은 노조미에게 빵을 갖다주는 시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찾아갈 때마다 가끔씩 니코나 마키를 만날 수는 있었지만, 노조미를 보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니코의 말에 따르면 노조미는 최근 자신의 요술을 위한 재료들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태생이 곰인 호노카는 에리의 냄새를 잘 맡는지 가거나 오는 길 중, 한번씩은 꼭 마주쳤다.

노조미의 요술 덕분인지, 그 때마다 곰의 모습으로 말을 걸어서 에리가 가끔씩 놀라곤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호노카가 말하기를 에리가 돌아간 이후에, 자신은 노조미의 집에서 나와 원래 살고 있던 굴로 돌아갔다고 했다.

에리가 호노카에게 스스로 인간형으로 변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호노카는 그럴 수 있지만 단지 아직까지 원래의 모습이 더 익숙해서 이렇게 다닌다고 답했다.

이렇게 오전은 마녀 일당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지만, 그 이후의 시간부터 해야되는 집안일과 할머니를 챙기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에리의 할머니는 이 마을에 온 이후로 칙칙하게 있던 에리가 점차 밝아지는 것을 보고 내심 기뻐하는 것 같았다.

물론 마녀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채로.


 사박사박─ 


오늘도 작은 발이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사박사박─

 "흥, 흐흠~♪"


콧노래를 부르는 에리가 빵바구니를 들고 노조미의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박사박─

 '오늘도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다, 헤헤~'


마녀 일당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녀에게 있어 즐거운 시간.


 사박사박─


그렇게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던 와중,


 사박... 우뚝─


사건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우냐아아..."


저 앞에 누군가가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엎어져있었다.

몸은 정말 곧은 1자 형태로 누워있고, 고개는 돌리고 있는 상태라 뒤통수 밖에 안 보였다.

에리가 마녀의 숲에서 사람을 본 적이라고는 산적을 만났을 때 빼고 없는지라, 갑작스러운 상황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줘야 된다는 것이 그녀의 신조.

그 의지가 이미 에리의 몸을 움직이게 하여 허둥지둥 그 사람을 향해 다가가게 만들었다.


 "냐아아..."


하지만 다가갈수록 그 사람의 복장이 낯이 익었다.

짧은 상의와 바지, 검은색 깔맞춤, 그리고 어렴풋이 보이는 복면...


 "배고프다냐아..."


그리고 특이한 말투.

사람이라고는 산적 밖에 안 만났다고 했지만, 지금 누워있는 저 사람도 이미 자신이 마주쳤던 산적 중 한 사람인 '린쨩' 이었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이 사실을 알아차린 에리는 순간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고민했다.

그냥 도와줄지, 아니면 상황을 좀 더 지켜볼지.

하지만 린쨩의 입에서 너무나도 처량한 소리가 나오는지라 차마 매몰차게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국 복잡한 생각을 뒤로 하며 에리는 다시 움직였다.


 "저기..."


용기를 내 겨우 가까이 간 에리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뒤통수 밖에 안 보이던 린쨩의 머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리는 린쨩의 퀭한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

 "...?"

 "......"

 "저기요...?"

 "...아아아아아?!?!"


잠시 동안의 정적 후, 린쨩이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깜짝놀란 에리의 심장이 툭 튀어나올 뻔 했다.


 "너너너너, 너는 그 때의 꼬마!!!"

 "...예?"


린쨩도 에리와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노조미에게 호되게 당했던 것이 너무나 강렬하게 새겨져 있는 상태라, 같이 있었던 에리 또한 적대시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에리 때문에 마녀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세를 고쳐잡은 린쨩은 에리를 노려보며 외쳤다.


 "이번엔 호락호락 당하지 않아! 너를 간지럼으로 괴롭히고 그 마녀도 복수해줄거다냐!"


말그대로 엉뚱한 데에다 화풀이하는 셈.

나름 무기도 지니고 다니는 산적의 복수 방법이 겨우 '간지럼' 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잠시 넘어가자.

어찌됐든 졸지에 도우러 온 에리만 험한 꼴 당하게 생겼다.

하지만...


 꼬르르륵─

 "자! 이제 각오해르아냐아아아아....."


뱃속이 요동치는 소리가 린쨩의 움직임을 무력화시켰다.

그 소리에 맞춰 다시 힘없이 쓰러진 린쨩은 아까와 똑같은 상태로 엎어지고 말았다.

너무나도 변화무쌍한 모습에 에리만 당황할 뿐이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도, 린쨩은 미동도 하지 않고 엎어져 있다.

아무래도 공복이 심해서 그런지 힘이 다 떨어진 것 같았다.

결국 그 정적을 깨기 위해 에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

 "...왜 부르냥."


린쨩은 퉁명스럽게 받아쳤으나 에리는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말했다.


 "이 빵이라도 드릴까요?"


그러자 린쨩은 고개를 휙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빛나고 있었다.


 "빠, 빵...?"

 "네, 많이 배고프신 것 같은데 이거라도 괜찮으시다면..."


에리는 주섬주섬 바구니에서 빵 한 덩이를 꺼냈다.

그리고 린쨩의 얼굴 앞에 갖다대자 그녀의 입에서 침이 약간 흘렀다.


 "꿀꺽..."

 "얼른 드세요."

 "으으으으... 적의 동정을 받을 수 없다냐!"


그녀는 그런 몸의 반사적인 반응을 거부하기 위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빵의 고소한 향기가 린쨩의 코를 무참히 유린하기 시작했다.

이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린쨩은 결국 고개를 다시 빵쪽을 향해 돌렸다.


 "진짜 먹어도 돼...?"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되묻는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에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모습이 필시 천사처럼 보였으리라.

결국 린쨩은 글썽거리는 눈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얼굴 절반을 가리던 복면을 걷고는, 에리의 손에 있던 빵을 낚아챈 뒤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맛있어, 맛있어!"


빵을 우걱우걱 먹으면서도 감탄을 연발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에리는 흐뭇하게 웃었다.

순식간에 빵을 다 먹어치운 린쨩은 아예 더 먹고 싶다고 졸라댔다.

에리는 기꺼이 빵을 한 덩이 더 꺼내주었다.

린쨩은 그것도 단숨에 먹고나서 더 달라고 했다.

에리는 우물쭈물하다가 한 덩이 더 줬다.

맛있게 먹던 린쨩은 더 요구했다.

당황한 에리는 살짝 고민했지만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결국 주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반복.

또 반복.

어느새 바구니가 텅텅 비게 되었다.

그 많던 빵들이 전부 린쨩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허망한 표정으로 빈 바구니를 보던 에리를 향해 린쨩이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야~ 덕분에 살았다냐. 배고파서 곧 죽나, 싶었는데... 린을 도와주다니 정말 착하네!"

 "'린'...?"

 "아, 그건 내 이름이다냐."

 "아하, 저는 '에리' 라고 해요."

 "그렇구나, '에리쨩' 이라니... 뭔가 세련된 이름 같아!"

 "'에리' 인데요..."

 "아무렴 어때~ 어쨋든 이름이 이쁜걸!"

 "헤헤헤, 린씨 이름도 귀여워요. 아무튼 기운을 차리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스스로 '린' 이라고 칭하는 이 산적은 빵 하나 때문에 자신의 본분을 잊었는지, 어느새 통성명까지 하며 에리에게 살근하게 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는 금방 호의를 품는 성격인 것 같았다.

에리 또한 그녀에게 빵을 준 보람을 느꼈는지 대체로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과거에 쫓던 자와 쫓기던 자의 입장 차이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놀라운 '관계 개선' 이었다.

뭐, 흉폭한 곰마저 포용한 에리이니 어찌보면 큰 일도 아닐수도.

그나저나 마녀 일당을 위해 구워온 빵이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에리에게 있어서 곤란한 상황이었다.

다시 갔다오기엔 이미 짧지 않은 거리에 도달했고, 그렇다고 그냥 빈 손으로 가자니 민망했다.


 "두목님의 활 가지고 장난 좀 쳤는데 그만 들켰지 뭐야~ 그렇다고 하루 종일 굶기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한다고 생각한다냐!"


어느새 린은 묻지도 않은 자신의 상황을 떠벌떠벌 말하고 있었다.

이 말에 에리는 적당히 맞장구쳤지만 마음은 이미 심란한 상태였다.


 "그러고보니 지금 어디로 가고 있던 거냥? 어린애가 이 험난한 숲을 지나봤자 득될 것이 없다냐."


이어서 순수한 질문이 나오자 에리는 어떻게 답해야할지 살짝 고민하던 중,


 "설마 마녀에게 갖다준다던가? 막 이러고, 아하하!"


라며 장난스럽게 말한 린의 목소리에 그만 흠칫해버리고 말았다.

불행히도, 린은 그 찰나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진짜?"


순식간에 가늘어져버린 린의 눈매가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자, 에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했다.

자신에게 처음 대했던 태도만 봐도 이 산적이 마녀에게 악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일부러 노조미에 대한 얘기를 언급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들켜버린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거짓말을 잘 못 하는 에리는 결국 그 사실을 인정해버렸다.


 "역시 마녀의 하수인이었어! 지금 그 마녀는 어디 있는거냥!"

 "자, 자주 집을 비워서 저도 잘 몰라요..."

 "거짓말하면 린이 맴매해 줄 거다냐!"

 "후에에..."


흥분한 린이 소리를 지르며 다시 한번 날뛰려는 찰나, 문득 스치는 생각이 그 성급한 행동을 제지시켰다.


 '아니야, 아니야. 마녀를 만나도 또 당할 것이 뻔하다냐. 이 꼬마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가봤자 못 만날 것 같기도 하고... 잠깐, 그럼 집에 주인이 없을 확률이 높다는 뜻인가?"


겨우 진정된 린은 생각이 정리되자 갑자기 싱글싱글 웃었다.

무서울 정도로 표정을 싹 바꾼 모습에 에리는 혼란스러워 했다.


 "흥분해서 미안하다냐. 아무래도 마녀한테 당한 것이 있어서..."

 "아, 괜찮아요..."

 "그런데 말이야, 마녀의 집에 들어가 본 적 있지?"

 "네? 그렇긴한데..."

 "혹시 집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알아? 이래 보여도 인텔리? 인트리어? 하여튼 집안 꾸미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렇다냐."

 "에에, 그런가요?"

 "응응!"

 "흐음, 글쎄요... 저도 많이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고풍스러운 장식물들이 방마다 있었고, 책장에는 옛날 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어요. 그리고 여러가지 신기한 물건들이 아무데나 놓여져 있었고, 또... 아, 주방 찬장마다 다양한 식재료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네요."


최대한 성의있게 답하기 위해 에리는 눈동자를 위로 돌리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톡톡 치면서 기억나는대로 답해줬다.

순진한 에리의 답에 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정말 바보같이 착한 꼬마다냐! 역시 마녀가 사는 곳이라 듣기만 해도 값비싼 물건들이 많을 것 같아. 그렇다면 이 꼬마가 마녀의 집까지 자연스럽게 데려다 줄 수 있도록 하고, 재빨리 집을 털어버리는 거야. 마녀가 쓴 물건이라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겠지! 그럼 두목님도 린을 용서해 줄 거다냐.'

 "후후후..."


린이 고개를 돌리며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자 그 속마음을 모르던 에리는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잠시 후, 상쾌한 표정을 띄며 에리를 향해 돌아본 린은 등 뒤로 손깍지를 끼고 허리를 숙이더니, 짐짓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린이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역시 남의 것을 함부로 먹은건 잘못 한 것 같아. 아무래도 사과하러 가야겠다냐."

 "헤에..."


이제는 에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린을 바라볼 차례였다.

이에 흠칫한 린은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에리쨩도 이것 때문에 곤란한 것 아니었어? 마녀에게 갖다줄 빵이 없어져서 말이야."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면 중간에 빵을 다 먹어치운 당사자인 린이 직접 가서 사과하면 문제는 해결된다냐! 자초지종 잘 설명하면 린이 갖고있는 죄책감도 덜고, 에리쨩의 입장도 괜찮아지고! 가재치고 도랑잡는 거다냐!"

 "...마지막에 말씀하신 속담, 반대인데요."

 "엑... 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야! 만약 자리에 없으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냐~"


린의 어색한 말투에, 에리는 더욱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결국 마음 속에 담아뒀던 말을 꺼내기로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에 린씨는 저를 해치려고 했잖아요? 그런 사람을 제가 어떻게 믿고..."

 "린은 사람을 다치게 한 적은 없다냐!!!"


생각보다 강한 답변에 에리의 몸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무의식적으로 큰 소리를 내버린 린 또한 그런 자신에게 놀랐는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 지금까지 사람들의 몸에 상처 하나 안 냈어. 보통 위협만 하면 알아서 소지품을 내놓기 때문에... 전에 에리쨩을 쫓아간 것도 입막음 하려고 쫓아간 것 뿐이고, 단도를 휘두르려 했던 것도 몸에 안 닿게 할 셈이었지. 왜냐하면 나도 그렇고, 우리 두목도 그렇고 그런 것을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냐..."

 "..."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무기를 휘두르는 거다냐. 정말이야, 믿어줘..."


린의 진심어린 말이 통했는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에리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보니 사정을 대신 말씀해주신다면야 저한테도 좋을 것 같아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에리는 린의 의견에 수긍하고 말았다.

지금 보니 딱히 무섭지도 않았고, 오히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버린 것이다.

얼떨결에 승낙을 받은 린은 알아줘서 고맙다고 밝게 답하고는 등을 돌려 씨익 웃었다.

욱해서 마지막에 진실을 얘기해버렸지만 예상보다 그 점이 플러스 요인이 된 것이다.

어찌됐던 간에 자신의 계획이 잘 풀리자 린은 기분이 좋은 나머지, 활기차게 외치며 씩씩하게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텐션 올라간다냐! 자, 빨리빨리 가자구~!"

 "아, 그 쪽 방향이 아니에요!"


이리하여 사악한 산적은 순진한 꼬마를 꼬드겨 기묘한 동행을 자처하게 된 것이다.

마녀의 집은 털겠다는 포부를 담은 엉성한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

하지만 이 때의 린은 몇가지 사실을 깨닫지 못 했다.

.
.
.

우선 깨닫지 못 한 첫번째 사실은 마녀의 집이 현재 눈 앞에 높게 뻗어있는 거목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린이 나무타기에 자신이 있다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높았다.


 "...높아."

 "네?"

 "너무 높아, 높다구!!! 왜 이런 말을 안 해준거냥!"

 "그야 안 물어보셨으니까..."


에리에게 따져봤지만 들려오는 답변은 너무도 맞는 말이다.

평범한 집이라고 생각은 안 했지만, 아예 '집 형태' 가 아닐 줄을 그 누가 쉽게 예상할 수 있었을까.

이래서야 들어가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나가서 도망치는 것이 큰 걸림돌이 되고 만다.

일단 집주인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마녀는?"

 "글쎄요, 오늘도 나간 것 같기도 하고?"


집주인이 나갔다는 말에 안심하려던 찰나,


 "아, 그래도 괜찮아요!"


뒤이어서 손뼉을 짝, 치며 얘기하는 에리의 말이 린의 계획에 또 한번 충격을 주었다.


 "위에서 아무나 내려올 때 말씀하셔도 되니깐요."

 "냐...?"


이것이 깨닫지 못 한 두번째 사실.


 "마녀만 없으면... 빈 집이 되는게... 아니었어...?"

 "에?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집에 마녀 혼자만 살지 않았다.

아무래도 식솔들을 데리고 사는 듯 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마녀는 낡은 폐가나 오래된 성에서 혼자 사는 이미지였는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이건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

'빈집털이' 의 정의 자체가 충족되지 않는 셈이다.


 "우냐아아아아......"


계획의 차질로 생긴 복잡한 심정이 린의 표정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이대로 강행돌파 할 지, 아니면 들키기 전에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야할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선택하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리면 곧 내려올..."

 "기다릴 필요 없다냐..."

 "네?"


에리가 상황파악을 하기도 전, 어느새 린은 나무를 붙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리, 린씨!!! 뭐하는 거에요!"

 "여기까지 알려줘서 고맙지만, 이젠 내 할 일을 하는 것 뿐이야!"


결국 린은 억지로 집에 쳐들어가 노조미의 집에 머물고 있는 다른 인물들을 재빨리 제압하고, 값나가는 물건들을 최대한 챙겨 달아나기로 했다.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깝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론이다.

물론 그 물건들을 가지고 어떻게 내려갈 지는 이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오래된 거목의 껍질은 매우 울퉁불퉁하고 단단했을 뿐더러 숲 속 생활을 꽤 오래 한 몸놀림 덕분인지, 빠른 속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위험해요! 얼른 내려오세요!!!"


린은 자신의 배를 채워준 은인의 다급한 외침도 무시하며 꾸역꾸역 올라갔다.

본래 산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것일까.

그렇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있는 린은 이후에 깨닫지 못 했던 나머지 사실 하나를 곧 알게 되었다.

.
.
.


 "뭐야, 저 인간은..."


한편 소란스러운 소리에 나무구멍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니코는 의아해 한 목소리로 마키에게 물었다.

옆에 있던 마키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감을 표시했다.


 "어라? 저 인간, 가끔 산책하다가 본 적 있어. 변변치 않은 산적인 것 같던데..."

 "산적? 어째서 산적이 지금 이 나무를 기어오르고 있는거야?!"

 "그야 나도 모르지."


지상에서는 에리가 안절부절하며 그 수상한 인간에게 내려오라고 연신 소리치고 있었다.


 "에리도 같이 있는데...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니코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걸."

 "...설마."

 "응?"


마키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에 꽉 쥔 주먹을 갖다댔다.


 "저 산적에게 협박 당해서 여기까지 안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던가...?"

 "뭐어~?! 어째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전에 노조미가 잠깐 얘기했잖아? 에리가 산적에게 당할 뻔 했을 때 구해줬다고."

 "아, 맞다..."

 "그 때의 자신을 방해했던 노조미에게 그 복수를 하기 위해 에리를 이용한게 아닐까? 지금까지 봐왔던 산적이라고는 저 인간이 속한 무리 밖에 없었으니 거의 확실할거야."


마키의 엉성한 추리에도 니코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과연... 그럼 어느 정도 아귀가 맞네."

 "뭐, 사정이 어찌됐든 에리를 협박한데다가 감히 여기를 침범하려고 하다니 배짱도 좋네."

 "이 나무를 맨몸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부터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니코가 다시 내려다보니 그 산적은 이미 절반까지 올라와있었다.

몸놀림이 보통 인간보다 뛰어난 듯 보였다.


 "아아~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 내쫓아야지."

 "그런데 그랬다가 괜히 다른 인간들을 끌고 오면 어떡해? 그럼 심각한 상황이 될 거라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내가 아까 '산적 무리' 라고 표현했지만 그래봤자 2, 3명 밖에 없었어. 인간이 이 숲에 머물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지. 무슨 일이 생겨도 우리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을거야."


힘있는 마키의 주장에 니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리를 만난 이후로 별 일이 다 생기네. 그럼 다시는 여기 오고 싶어할 생각이 못 들게 혼쭐낼 준비 좀 해볼까."


니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허리가방을 찾으러 갔다.

.
.
.


 "우와, 경치 한 번 끝내준다냐."


나무껍질에 매달린 린은 공포심도 없는지 넓게 펼쳐진 숲의 풍경을 보고 감탄했다.

곧있으면 나무구멍에 도착한다.

처음으로 마녀가 사는 집을 본다고 생각하니 내심 두근거렸다.


 "두목의 칭찬이 머지 않았어!"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 린은 콧노래를 부르며 나머지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드디어 나무구멍에 손을 걸치게 되었다.


 "드디어 다 올라왔...!"

 푸드드덕─

 "우와아앗?!"


정복의 성취감을 느끼기도 전, 웬 박쥐 한 마리가 갑자기 나무구멍 안에서 튀어나오더니 이내 린의 머리를 향해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린은 하마터면 나무껍질을 잡던 양손을 놓칠 뻔 했지만, 다행히 한 손은 고정시킬 수 있었다.


 끼게게겍─!!!

 "저리 가, 저리 가라구~!"


박쥐를 내쫓기 위해 나머지 한 손으로 허둥지둥 휘두르던 린은 얼른 나무구멍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시 나무껍질을 붙잡고 몸을 올렸다.

하지만.


 "안녕?"

 "에?"


눈 앞에 고양이 귀를 단 소녀, 니코가 싱긋 웃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이상하다고 깨닫기도 전에,


 "그리고 잘 가니코♪"

 휘익─

 딱─!


니코의 손에 있던 돌맹이가 재빠른 속도로 린의 미간을 강타했다.


 "아얏!!!!"


그 고통에 외마디 비명을 지른 린은 실수로 양손을 놓치고 말았다.

동시에 린의 몸은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냐아아아아?!?!?!"


그 와중에도 혹이 난 이마를 문지르던 린은 처음 겪는 속도에 정신이 없었다.

비록 이 험하디 험한 마녀의 숲 속에 지내면서 언제든지 죽을 각오를 했어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 순간을 맞이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겁에 질린 린의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꼬리를 끌며 같이 낙하했다.

지상에 다가올수록 에리의 비명이 날카롭게 자신의 귀를 뚫었다.


 '아, 역시 은혜를 원수로 갚지 말라는 두목의 말이 옳았다냐.'


그런 덧없는 깨달음을 느끼며, 앞으로 자신의 몸을 박살낼 땅이 얼마 남지 않자 린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
.
.


 "이제 정신이 번쩍 들었지?"


어디선가 자신을 타박하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린은 벌써 하늘나라에 도착했나 싶어서 질끈 감았던 두 눈을 살짝 떴다.

거기에는 불과 몇 센티미터 차이 안 날 정도로 가까운 지상이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이 허공에 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린은 벌써 유령이 됐구나..."

 "뭐라는 거야, 아직 살아있거든?"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린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마키가 머리의 날개를 활짝 펼친 채로 노려보고 있었다.

두 손으로 린의 몸뚱아리를 잡으면서.


 "...에?"

 "하여튼 인간들이란... 하긴, 노조미의 명령만 없었으면 너 말이 맞았겠네."


이것이 린이 깨닫지 못 한 마지막 사실.


 "날개에 머리가 달려있는 거냥?!?!"

 "시끄러워!!! 반대거든?!"


마녀의 집에 있는 식솔들은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이 풍경을 지켜보고 있던 에리는 가슴을 쓰러내리며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달라냐... 가 아니라 봐주세요."


흠 잡을데 없이 완벽하게 절 하는 모습으로 린이 사과했다.

그 앞에는 팔짱을 낀 마키, 어느새 내려온 니코, 그리고 안절부절 못 하는 에리가 서있었다.

이미 사건의 전말은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들은 터였다.


 "그러니까 협밥당해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갖다줄 빵을 얘가 다 먹어치웠고, 그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하기 위해 찾아왔는데 사실은 도둑질 하려고 온 것이다?"


니코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자 린과 에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키는 두통이 일어난다는 듯, 이마에 손가락을 짚으며 이어서 말했다.


 "우리가 먹보도 아니고 굳이 그런 상황 설명하려고 인간을 여기까지 하다니... 잘 들어. 우리가 이 숲에 자리를 잡은 것은 최대한 인간들이 못 오게 하기 위해서야. 너가 인간을 끌고 오면 그 목적의 의미가 없어지잖아? 앞으로 이런 이상한 인간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끌고 오지 말라고."

 "응..."

 "린은 이상하지 않다냐."


린이 무어라 투덜거려도, 에리는 반성하는 듯한 목소리로 작게 대답했다.

이 때 니코가 린을 째려보자 투덜거리던 그녀의 입은 쏙 들어갔다.

마키가 몇 마디 더 꾸중하는 사이, 니코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중지시켰다.


 "이제 그만 됐어. 그정도면 잘 알아들었을거야."

 "그래도..."

 "그리고 에리, 마키의 말을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마. 얘도 너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니콧♬"

 "자, 잠깐! 무슨 말을 하는거야!'


장난스러운 니코의 말에 발끈하는 마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생각보다 크게 화를 내는 것 같지 않아보여서 에리는 살짝 안심했다.

잠시 투닥거리던 마키는 겨우 진정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어쨋든 이 침입자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건인데... 노조미가 올 때까지 붙잡아서 기억을 없앨까?"

 '기, 기억을...?'

 "마키, 그건 너무하잖아. 좀 더 나은 방법을 써야지."

 '휴우...'

 "그러니 개구리로 변신시키자. 그럼 기억이 되살아날 건덕지도 없이 해결이야♪"

 '개구리?!?!"

 "차라리 개구리로 만들 바에야 이렇게 하는건..."


자신을 앞에 두고 인간이 아닌 소녀들이 떠드는 내용들을 가만히 듣고있자니, 린의 정신은 점점 아득해져가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있다간 빼도 박도 못 하게 당한다는 위험의 경보가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어느새 니코와 마키는 처벌 얘기에 푹 빠져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인생이 끝날 것 같다냐. 재빨리 도망치자!'


고개를 살짝 든 린은 주변 눈치를 살살 보았다.

그러다가 니코와 마키가 서로의 시선을 마주치며 즐겁게 얘기하는 순간, 재빨리 일어났다.

그리고.


 타다다다다다닥─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고 느껴질 정도의 속도로 줄행랑을 쳤다.

뒤에서 니코와 마키의 깜짝 놀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린은 그마저도 무시하며 달려나갔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려졌다고 생각하자 린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헤헹~! 린이 이렇게 순순히 잡힐 것 같아? 다음 번에는 꼭 저 마녀의 집을 털테니까 조심하는게 좋을우냣!!!"


그 순간, 푹신한 무언가에 부딪쳐서 넘어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사람과 부딪친 감촉이었다.

한창 기세좋게 달리고 있던 차에 방해를 받자 순간 짜증이 난 린은 그 대상을 향해 소리쳤다.


 "뭐냥! 잘 도망가고 있었... 는...... 데.........."


거기에는 검은 망토와 고깔모자를 쓴 노조미가 서있었다.

옆에는 빗자루가 사람인 것마냥 꼿꼿이 세워진 채로 둥실둥실 떠다녔다.

식은땀이 흐르는 린과 달리, 노조미는 태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니는 저번에 봤던 녀석이고마."

 "아, 아하하... 네......"

 "왜 앞도 안 보고 위함하게 달렸건 기가?"

 "그게... 급한 볼일이 생각나서......"

 "그렇구마. 길 막아서 미안하데이. 얼른 가래이."

 "네, 그럼 이만... 헤헤헤......"


무사히 넘어가는 상황인 것 같아 린은 마음 속으로 안도하며 노조미의 옆을 뻣뻣한 움직임으로 지나쳐갔다.


 저벅저벅─


그렇게 몇 발자국을 갔을까.


 "그런데 말이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노조미의 목소리가 린의 발목을 붙잡았다.


 "도둑질 하려던 죗값은."

 딱─!

 "치루고 가야하지 않겠나?"


뒤이어서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리자 린의 발 밑에 있던 나뭇잎들이 넘실넘실 날아올랐다.

그것은 곧 맹렬한 속도로 휘몰아치는 작은 폭풍이 되어 린의 몸을 감싸더니,


 "결국 이런 결말인 거냐아아아앙!!!"


린의 절규와 함께 순식간에 날려보냈다.

.
.
.

니코와 마키, 에리가 허겁지겁 쫓아왔지만 이미 상황은 끝나있었다.

우루루 몰려온 그녀들을 향해 노조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 없는 새에 또 재밌는 일이 있었나보제?"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하찮은 일이었어."


니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짧게 일축하였다.


 "그나저나 저렇게 그냥 보내도 되는거야?"


약간의 걱정이 서린 마키의 말에 노조미는 풋, 하고 웃으며 답했다.


 "상관없데이. 오늘의 카드가 저 애는 위협거리도 안 된다고 말했으니 걱정없을끼다."


그 말에 니코와 마키는 살짝 안심했고, 에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노조미의 카드는 말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일단 에리는 자신의 가벼운 행동에 대해 노조미에게도 사과할 필요를 느꼈다.


 "미안해, 노조미. 내가 모르고 데리고 와버렸어. 앞으로는 조심할게..."


우물쭈물하며 사과하는 에리를, 노조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에리의 머리에 손을 올리더니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쓰다듬에, 에리는 살짝 당황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데이. 그래도 그것이 인간을 데려와도 좋다는 뜻은 아니래이. 여기서 봤던 일과 겪었던 일도, 전부 우리들만의 비밀로 하는기다. 그 조건이 지켜져야,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는기라."


그렇게 살짝 주의를 준 노조미는 쓰다듬었던 손을 거두고, 빗자루와 함께 자신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져서일까.

에리는 노조미가 쓰다듬었던 머리 부분에 양손을 올리더니 살짝 얼굴을 붉혔다.

잠시 후, 정신차린 에리는 이미 움직이고 있는 마키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그 모습에 니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식, 웃고는 자신도 움직였다.


────────────9편에 계속...

.
.
.
.
.


 "죽는 줄 알았다냐..."


태풍이 안착시켜준 지점에서, 린은 터덜터덜 걸어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어딘가에 겨우 도착하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있던 산적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와 린을 맞이했다.


 "어디 다녀온거야, 린쨩... 너무 늦어서 걱정했잖아."

 "미안해, 카요찡."


에리가 마주쳤던 산적 중 나머지 하나인 '카요찡' 은 린의 손을 꼬옥 붙잡고 동굴로 들어갔다.

그 동굴은 바로 마녀의 숲에 머무는 산적 무리의 본거지였다.

사실 산적이라고는 린, 카요찡, 그리고 두목 뿐으로 총 3명 밖에 없어 '무리'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어색했다.

둘이 도란도란 얘기할수록 동굴 깊숙이 들어갔고, 그럴수록 불빛이 점점 보였다.

동굴 끝에 다다르자 많은 횃불이 그 곳을 밝히고 있었다.

주변에는 자신들이 여행객으로부터 갈취한 전리품들이 즐비하게 널려있었고, 한 쪽 구석에는 마른 식량들이 쌓여져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에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가벼운 갑옷 차림을 한 소녀가 다소곳하게 앉아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있었다.

남색의 긴 생머리가 그녀의 모습을 언뜻 요조숙녀처럼 보이게 만들면서, 동시에 강인한 기세가 '두목' 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다녀왔어, 두목..."


양탄자 주변에 서게 된 린은 쭈뼛쭈뼛거리며 인사를 건냈다.

하루종일 굶는 벌을 받긴 했지만 아무래도 활 가지고 장난친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렸고, 아무런 보고도 없이 늦게 찾아왔으니 보나마나 두목이 화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목' 이라 불러던 소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호박색 눈동자에 광채가 서렸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두목은 린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카요찡이 당황하며 앞을 막아서서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두목은 그녀의 몸을 옆으로 살짝 밀쳐내고 말았다.

그리고 린 앞에서 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자신의 뺨을 때리는 줄 알고 린이 눈을 질끈 감는 순간,


 "어서와요, 린."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말과 함께 올라갔던 두목의 손은 이미 린을 포옹하고 있었다.

예상 밖의 행동에 잠시 눈을 깜빡거리던 린은 그제서야 이 상황을 알아차렸다.

두목 또한 린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린의 눈에 눈물이 살짝 핑돌았지만, 꾹 참고 잠시 동안 두목의 품에 안겼다.

심각한 상황으로 변하지 않자, 카요찡 또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다.

.
.
.


감동적인 상봉 후, 린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해줬다.

두목에게 벌 받은 시점 이후로 먹을 것을 찾다가 기운이 없어 엎어진 점, 중간에 '에리' 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를 만난 점, 빵을 얻어먹은 점, 마녀의 집에 찾아간 점, 도둑질 하려다 실패한 점, 결국 마녀의 요술에 날아갔던 점 등 전부를.

생각보다 두목은 진지한 표정으로, 카요찡은 신기한 표정으로 들어줬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얘기를 다 들은 두목은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흥미로움을 표시했다.


 "그나저나 린."

 "응?"


갑작스러운 두목의 부름에 린의 귀가 쫑긋했다.


 "그 여자애에게 허기에 대한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그런 식으로 행동했던 건가요?"

 "에? 그건..."

 "제가 뭐라고 그랬죠?"

 "...'은혜를 원수로 갚지 말라' 고 했다냐......"

 "그런데도 당신은 제 가르침을 어겼군요."

 "그거야 린은 두목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조용. 이유가 어찌 됐든, 그건 잘못된 행동입니다."

 "우으으..."

 "거기다가 무모하게 혼자서 마녀의 집에 침입하려 했다니, 까딱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구요?"

 "바, 반성하고 있습니다아..."


두목의 꾸중에 린의 몸은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목은 몇 번 더 린에게 설교를 하였다.

설교에 지친 린의 기운이 다 빠져나갈 무렵,


 "그래도..."


두목은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네요. 고생 많았어요, 린."

 "에...? 린, 잘 한거야?"

 "네. 아무래도 희귀한 정보니깐요."


얼떨결에 칭찬받았던지라 잠시 벙쪄있던 린은 이내 환한 표정을 지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분이 매우 좋은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본 카요찡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슬슬 계획을 세워야겠군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살짝 털며 말한 두목의 제안에 린과 카요찡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두목, 설마 마녀의 집에 가려구...?"

 "안 된다냐! 정말 위험하다구!!!"


카요찡의 말을 받아 흥분한 린도 재빨리 만류했다.

하지만 두목은 여유있게 웃으며 받아쳤다.


 "누구나 마녀에 대한 공포만 있을 뿐, 실체를 확인할 용기는 없었죠. 왜냐하면 '불확실' 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이를 확신할 정보가 있습니다. 정보만 있으면 무엇을 하더라도 성공 확률이 높아져요. 우리는 사람을 해치진 않지만 이래뵈어도 '산적' 입니다. 실존하는 마녀가 사는 곳이면 무엇을 가져와도 값어치는 높을 터. 거기다가..."


어딘가로 뚜벅두벅 걸어간 두목은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광택이 있는 나무 '활' 이었다.


 "제 실력까지 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죠. 안 그런가요?"


그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언제 반대했냐는 듯이 린과 카요찡의 입에 웃음기가 걸렸다.


 "맞아! 우리에게는 두목이 있다냐!"

 "지금부터 계획 짤 준비를 할게!"


그렇게 동굴은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며 하루의 끝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마녀의 집을 타깃으로 한 비밀 작전을 짜며.

Lv75 괴물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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