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발 저를 해외 게임 행사에 보내지 말아 주세요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10개 |
To. 누구든 회사에 저보다 높으신 분

저를 해외에 보내지 말아 주세요.
팀장님, 편집장님, 대표님.
누구든 회사의 높은 분이 이 글을 본다면
부디 저를 해외 게임 행사에 보내지 말아 주세요.

이건 제가 벌써 카드 한도가 이미 가득 차
휴식 시간에 어디 놀러 나가 사고 싶은 것 마음대로 못 사는
절제 없는 직장인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모르는 외국어를 들으면 몸 안에 송충이라도 넣은 듯
절로 움츠러드는 1개국어 능통자라서가 아닙니다.

외국의 음식은 집밥처럼 입에 딱 맞고
목에 텁텁하게 걸리는 미세 먼지 없는 시원한 공기도 좋아요.
대부분 게임 행사를 위한 전시장이
관광지에 조성되다 보니 사람들도 친절하죠.

그리고 취재로 간 게임 행사는 종류, 형태를 막론하고
'일인데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즐겁습니다.

사실 이게 문제예요.





해외의 내로라하는 게임 컨퍼런스나 하나의 게임으로 진행되는
단일 행사 모두 정말 '축제'라는 느낌이 듭니다.
뭔가 그럴싸한 수준의 행사에 갔을 때 쓸 표현이 없어서 적는
'ㅇㅇㅇ의 축제'라는 그런 상투적인 표현 말고요.
축제라는 말은 이럴 때 쓴 다는걸
해외 게임 행사에 올 때마다 느낍니다.

독일 게임스컴은 그야말로 최신 게임과의 첫 대면식입니다.
E3때 나온 게임들 여기서 다 시연하니 말 다했죠.
점심도 선배들만 없다면 몰래 맥주로 배를 채우던 제가
(이건 오늘 이후로 잊어주세요.)
독일 맥주까지 마다하고 게임을 위해 행사장을 찾았으니까요.

참가 기업 수나 규모 면에서는 지스타 급에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PAX는 유저가 만들어나가는 행사입니다.
거대한 홀 하나 비워놓으면 알아서 컴퓨터를 가져와 PC방을 만들고
킨텍스 홀 하나 규모의 공간이 처음 보는 이와
보드게임을 하러 모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버리죠.



▲ 우리나라 대통령도 본 적 없는데
독일 총리를 게임스컴에서 봤습니다
그만큼 게임에 대한 정부 관심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죠



▲ 수백 석의 자리가 보드 게임 하러 혼자 온 사람,
친구랑 온 사람 가리지 않고 가득 찼던 PAX East


이번에 참석한 '그랑블루 페스'도 비슷합니다.
모바일 게임 '그랑블루 판타지'를 위한 행사로 시작한 페스티벌은
도쿄게임쇼가 열리는 마쿠하리멧세의
홀 5개를 빌려 성대하게 진행됐습니다.

사실 현장에 오기 전에는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랑블루 판타지'가 최근 매출 감소세가 눈에 띄기도 했고
화려한 3D 그래픽이나 연출 없는,
RPG 감성을 섞은 모바일 소셜 게임이니 말이죠.
이런 게임을 위해 얼마나 많은 팬이 모일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현장을 찾은 관객은 웬만한 국내 종합 게임쇼와
비교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고 현장 규모는
지스타의 2배, 혹은 그 이상쯤으로 느껴졌습니다.





한 게임만을 위한 행사는 보통 굿즈, 쿠폰이 메인이 되기 쉬운데요.
'그랑블루 페스' 역시 이벤트 대부분에 아이템 코드를 얻을 수 있는
교환 코인이나 스탬프를 후하게 퍼주긴 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게임의 인기 캐릭터를 눈앞에서 만날 수 있는
비매용 VR 게임 'VR사기사'를 만들고
기공정이라 불리는 게임 속 비행선을 본떠
놀이공원을 방불케 하는 어트랙션 체험 기구도 준비했습니다.
또 대전 격투 명가로 꼽히는 길티기어 개발사
아크시스템웍스와 협업해 만드는
'그랑블루 판타지: 버서스'도 현장에서 즐길 수 있었죠.

참 재밌는 게 사이게임즈는 모바일 게임 IP를 바탕으로
AAA급의 콘솔 액션 RPG
그리고 콘솔 대전 격투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식어갈 수 있는 IP 확장의 볼쏘시개'라는
상업적인 측면에서의 가능성도 보았겠지만
그저 바라만 보던 소셜 게임 속 캐릭터를
빼어난 그래픽과 함께 직접 조작한다는,
원작 팬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게임을 만든 거죠.

흔히 온라인 IP에 기대 접근성이 좋은
모바일 게임 이식에 열을 올리는
어디 모습이 떠오르는 게 저만은 아니겠죠?

게임을 지탱하는 팬들의 열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업.
그리고 이 둘의 시너지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게임 페스티벌.
어느 나라, 어떤 행사를 가든 진짜 게이머들로 가득한
열기에 취해 취재를 잊고 전율을 느껴보는 것 같습니다.
'규모가 크고 사람이 많다'에서만은 느낄 수 없는 그런 감정 말이죠.



▲ 현장에서는 '그랑블루 판타지: 버서스'의 시연이 가능했고

▲'그랑블루 판타지: 리링크'의 신규 정보도
행사 기간 공개됐습니다


이런 감격과 놀라움은 언제나 즐겁지만
이는 곧 덜한 재미에 대한 지루함과 실망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벌어들이는 돈은 '그랑블루 판타지'를 뛰어넘지만
몇몇은 돈 잘 쓰는 고급 고객을 모셔놓는
접대 행사에 그치는 때도 있고
종합 게임쇼는 때때로 게이머보다는
기업이나 스트리머를 위한
홍보행사쯤으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자이기 이전에 게이머로서 즐거워야 할 행사를
해외의 것과 비교하게 되고 실망감에 그저 일로 취재하게 됩니다.
왜 역치 값이 높아진다고 하나요?
단 초콜릿을 먹은 다음에는 달콤한 과일도
그저 씹는 무언가밖에 안 되는 것처럼요.

물론 국내 기업도 이런 멋진 축제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다수의 GOTY를 수상하며 배틀로얄 장르 대중화의 시발점이 된
'배틀그라운드'는 국제적인 e스포츠 대회를 열고
그에 걸맞은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유저들이 직접 2차 창작물을 공유하는 넥슨의 네코제나
팬 행사로는 규모와 질을 달리하는 던전앤파이터 페스티벌도 있죠.

그러니 이런 게이머들을 위한,
또 참여했을 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국내 행사가 많이 등장해 외국 거대 게임쇼를 가더라도
'우리나라 게임쇼랑 비슷하네'라는 감정이 드는 그날까지는

부디, 제발 저를 해외에 보내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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