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임을 지휘하고, 편곡한다. 플래직 진솔 지휘자, 정재민 편곡가

인터뷰 | 박희수 기자 |


▲ 사진 제공: 플래직


그저 게임을 즐기는 것에만 만족한 20대 여자 게이머가, 더 깊은 덕후로 진화하는 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게임의 엔딩을 N 회차로 보면 자연스럽게 굿즈에 관심이 가고, 어느덧 전시용과 실제 사용하기 위한 용도로 2개씩 구매하는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관심 있는 게임의 팝업스토어가 생겼다 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방문하려고 집에서 최단 루트를 검색하기도 하죠.

최근 저는 좋아하는 게임을 다른 방법으로도 즐기기 위해 게임 음악 공연에 갔다 왔습니다. 게임과 오케스트라, 마치 요즘 핫한 '약과 쿠키'처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개의 분야가 만났지만, 맛있는 재료가 또 다른 맛있는 재료를 만나면 그 시너지는 두 배가 되어 터지게 됩니다. 지난 1월, 국내 최초로 진행된 'Pokémon the Orchestra: 신화의 땅에서' 공연은 저에겐 정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게임에서만 듣던 음악들이 다양한 악기들과 밴드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 맞춰 편곡되어 연주되는 것을 보니 또 색달랐습니다.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전율이 밀려왔고,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떠한 부분에서 감동하였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공연장 분위기는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습니다.

포켓몬스터 팬들은 물론 음악 원작자까지 만족한 이번 공연, 그 뒤엔 모든 곡의 총괄 편곡을 맡은 편곡가와 그 곡을 극대화해주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있었습니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그들을 직접 만나 뒷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 진솔 지휘자, 정재민 편곡가(좌, 우)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진솔 지휘자: 플래직 대표이자 예술 감독으로 있으며, 평소에는 클래식 음악 지휘를 하는 진솔 지휘자라고 한다.

정재민 편곡가:플래직에서 편곡을 맡고 있으며 평소에는 현대음악이나 다른 여러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고 있는 정재민 편곡가이다.


2. ‘플래직’은 어떠한 일을 하는 곳인가?

진솔 지휘자: 다양한 게임사와의 정식 계약을 통해 스크린 속의 게임 음악을 실황 공연으로 연주할 수 있게끔 모두 편곡해서 무대에 올리는 일을 하고 있다. 녹음과 촬영 같은 것도 겸해서 저희가 작업하고 있지만, 주된 활동은 실황 공연에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3. 해당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진솔 지휘자: 지금도 게임을 정말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의 지휘자로서 스크린 속에만 들어 있는 음악이 아쉬웠다. 그래서 연주자, 편곡자들이 함께 작업했을 때 무대에서 얼마나 큰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4. 다른 다양한 분야의 음악들이 있는데, 게임 음악을 고른 이유는?

진솔 지휘자: 이전에는 전문 음악 단체가 게임 음악에 진심을 담아 공연하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인으로 활동하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접목해서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이 분야를 선택했다.

정재민 편곡가: 게임 배경 음악은 듣기만 해도 그 당시의 추억을 나눌 수 있는 마법 같은 힘이 있는 음악이라 생각해서 선택하게 됐다.




▲ 국내 최초로 진행된 포켓몬스터 콘서트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출처: Pokémon the Orchestra 공식 홈페이지)


5. 국내 최초로 진행된 포켓몬스터 오케스트라 공연의 곡을 선정하는 데 기준이 따로 있는지?

진솔 지휘자: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편곡하더라도 최대한의 연주 효과를 내며, 유저분들이 좋아하고 귀에 오래 남아있을 것 같은 곡들을 검색해 보면서 댓글 반응이나 커뮤니티 의견들을 찾아보는 과정을 통해 선정했다.


6.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진솔 지휘자: ‘자전거 테마’를 좋아한다. 포켓몬스터는 자전거를 얻기 전까지는 강제로 느린 속도로 플레이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자전거를 획득하게 되면 드디어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면서 진행할 수 있는 것에 기분이 좋아져서 그 테마를 좋아하는 것 같다.(웃음)


7. 보통 연주회에 들어가는 곡을 편곡하는 데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는지?

정재민 편곡가: 빠르게 하면 한 곡에 3~4일 정도 걸리며, 정말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곡은 한 달 넘게 걸릴 때도 있다. 이번 포켓몬스터 디 오케스트라 공연은 두 달 반이라는 시간을 갖고 다른 편곡가들과 함께 작업했다.


8. 게임 음악은 특히나 팬층이 두꺼운데, 편곡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지?

정재민 편곡가: 편곡할 때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원곡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 하면 드라마틱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또한, 게임의 맥락, 분위기를 알지 않으면 게임 스토리와 연결성을 고려한 편곡이 불가능해져서 때문에 게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 신오지방의 옛 모습, 히스이지방을 볼 수 있는 레전드 오브 아르세우스
(출처: '한국닌텐도' 공식 유튜브)


9. 지금까지 많은 곡을 편곡했는데, 그중 가장 어려웠던 곡과 가장 만족하는 곡을 고르자면?

정재민 편곡가: ‘포켓몬스터 DP’ 곡들은 밴드 기반이고 음악적으로 비어있지 않은 탄탄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어서 원곡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으로 작업했다. 그런데, ‘레전드 오브 아르세우스’ 같은 경우엔 잔잔한 BGM의 성격이 강해서 원곡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편곡된 곡들도 있다. 어쩌면 고대 ‘히스이지방’이다 보니 일부러 공허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흑요들판’이나 ‘안쪽 숲’ 같은 경우, 첼로랑 바람 소리가 나오고 나서 음악이 복잡하게 발전하지 않고 공허한 상태로 진행된다. 그래서 레전드 오브 아르세우스 음악 대부분이 풍성한 오케스트라 느낌을 살리기 정말 어려웠다. 최대한 원곡을 해치지 않으며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전할 수 있게끔 편곡했다. 걱정과 달리 좋은 후기들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10. 2부 아르세우스 공연 때 기대했던 월로 테마를 비롯한 스토리 후반부 BGM들은 프로그램이 없어서 아쉽다는 평이 많은데.

진솔 지휘자: 아르세우스 후반부 BGM은 내부 사정상 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했다. 다만, 1부의 챔피언 난천 테마 등, 이에 못지않은 곡들을 통해 조금이라도 아쉬움을 덜었길 바란다.




▲ 실제로 지금 쓰고 있는 핸드폰 케이스를 보여준 정재민 편곡가


11. 좋아하는 포켓몬을 한 마리 고르자면?

진솔 지휘자: 솔직히 예쁜 포켓몬을 좋아한다.(웃음) 신뇽이 망나뇽으로 진화시키기 싫을 정도로 맘에 든다. 하지만 플레이는 못생겼지만, 강한 포켓몬들을 주로 사용한다.

정재민 편곡가: 제 핸드폰 케이스도 이브이로 끼울 정도로 좋아한다. 전투는 꽝이지만 뭐든지 될 수 있어서 너무 매력적이다.


12. 오늘 여기 오기 전에 들었던 음악은?

진솔 지휘자: 주로 쉴 때 게임을 해서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 음악을 듣는다. 그 외에 음악을 따로 찾아서 듣지 않는다.

정재민 편곡가: 주로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듣기 때문에 쉴 때 애니메이션, 영화, 현대 음악 위주로 듣는다.


13. 2년 전 스타크래프트 라이브 콘서트 앵콜 공연 영상이 합쳐서 무려 227만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그때 당시 지휘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진솔 지휘자: 조금 진지하게 얘기를 하자면 서브 컬쳐 유저들과 클래식 음악가들의 연결고리 역할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아서 꿈을 이뤄가는데 첫발을 내디딘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안 되긴 했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봤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게임들의 공연을 할 수 있어서 되게 뜻깊었다.




▲ 엄청난 에너지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진솔 지휘자
(출처: '플래직 FLASIC' 공식 유튜브)


14. 무대에 오르기 전에 어떤 마음가짐인지?

진솔 지휘자: 게임 음악 공연은 하나의 종합 예술이라고 보기 때문에 음향, 영상, 연주자 컨디션,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한 대처 등 생각할 부분이 많아서 부담을 안고 무대에 서는 편이다. 근데, 이번 공연은 되게 편안했다.


15. 어떠한 점 때문에 그랬는지?

진솔 지휘자: 한 곡이 끝나면 연주자들끼리의 다음 곡을 준비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때 연주자들의 표정이 온화하면 저도 마음이 편한 상태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수하거나 연주에 만족하지 못하면 그 표정이 드러나는데 이번 공연에는 그런 게 없었다.


16. 연습 시간이 많이 필요할 거 같은데? 하루에 어느 정도로 연습하는지?

진솔 지휘자: 오케스트라는 이미 다 개인 연습을 마친 상태로 전체 연습에 오기 때문에 여러 번 맞춰 보기보다는 몇 번 만에 집중해서 맞추는 형태로 진행한다. 장인들을 한곳에 모아 공연을 위해 일주일 정도 연습한 다음에 무대에 올린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게다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만큼 공연을 하기 위해선 최소 1년 반 전부터 저희 ‘플래직’이 착수에 들어간다. 특히, 안 보이는 뒤에서 행정진들의 노고가 매우 많은 편이다.




▲ 한국에 깜짝 방문한 마스다 준이치
(출처: 마스다 준이치 SNS)

17.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진솔 지휘자: 이번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번 공연은 말할 필요 없이 원작자 ‘마스다 준이치’도 매우 만족했으며, 편곡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매우 힘들었는데 이 순간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온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문해주신 팬분들이 너무 즐거워하셔서 너무 뿌듯하고 행복했다.

정재민 편곡가에게도 부담을 많이 드린 거 같은데, 잘 따라와 줘서 감사하고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끄집어낸 공연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다.

정재민 편곡가: 큰 건인데 믿고 맡겨 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저 역시 포켓몬스터 테마곡을 만든 분 앞에서 제가 편곡한 곡을 선보여서 너무나도 좋았다. 사실 편곡보단 작곡에 더 애정이 가기 마련인데 이번 공연은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다.


18. 기회가 된다면 어떤 게임의 곡을 편곡 또는 지휘해보고 싶은지?

정재민 편곡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공연용으로 제가 ‘포켓몬스터 금, 은’ 버전을 무척 좋아해서 작업하면 좋을 거 같다. 두 번째는 굉장히 어렵겠지만, 다음 차기작 포켓몬의 인게임 음악을 저희가 편곡하고 연주해서 메이킹 필름까지 나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진솔 지휘자: 정재민 편곡자가 말한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를 하며, 지난 공연 2부에서 못 들려 드린 곡들을 모아서 다시 공연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19. 현재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이 있다면?

진솔 지휘자: 포켓몬 게임은 정식 발매될 때마다 사고 닌텐도를 계속해서 플레이하고 있다. 최근엔 스위치로 ‘문명’과 모바일 게임 ‘우마무스메’를 했다.

정재민 편곡가: 최근 포켓몬 편곡 끝나고 닌텐도 3DS로 ‘포켓몬스터 울트라 썬, 문’을 하고 있다.






20.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수많은 게임 유저에게 한 마디

진솔 지휘자: 지금, 이 인터뷰를 봐주고 계시는 인벤 독자님들께도 감사드리고, 지난 포켓몬 공연에 자리해주신 유저분들이 좋은 피드백을 주셔서 ‘저희’들만의 공연이 아니라 다 함께 즐기는 ‘우리’의 공연이 될 수 있었던 거 같다. 훌륭한 예술가들과 협업해서 좋은 무대를 선보이는 진솔 지휘자가 되겠다.

정재민 편곡가: 다음번에 플래직 공연에 올 때 차려진 격식보단, 좋아하는 테마곡이 나올 때 기립 박수를 치고 환호해주시면 공연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21. 마지막으로 진솔 지휘자에게 지휘봉이란? 정재민 편곡가에게 악보란?

진솔 지휘자: 놓쳐서 안 되는 것, 실제로도 공연 중에 놓치면 안 되겠지만, 지휘봉은 저와 관객, 연주자 모두를 간접적으로 이어주는 선이기에.

정재민 편곡가: 악보는 셰프의 수년간의 노하우와 비법이 녹아 있는 레시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