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넷마블그룹노조'가 바꾸고 싶은 노동자의 하루

인터뷰 | 이두현 기자 | 댓글: 3개 |
넷마블에 노조가 생긴 계기는 최근 연봉협상 때문이다. 넷마블 자회사 '넷마블엔투'에서 스톤에이지 아트를 맡은 이해미 개발자는 자신의 평가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담당 파트장에게 설명이나 자료를 요구했다. 파트장은 자신의 권한이 아니라고 했다. 이후 이해미 개발자는 인사팀장에게 연락해 같은 질문을 했다. 인사팀장 역시 답을 주지 못했다. 대표에게까지 물었지만 똑같았다. 연봉협상에서 회사가 정해주는 것 외에 직원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이해미 개발자는 생각했다. 주변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게 넷마블의 법"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아니다 싶었던 이해미 개발자는 다른 게임회사는 어떻게 하는지 찾아봤다.

노조가 있는 게임사는 교섭을 통해 임금인상률이 정해진단 것을 알게 됐다. 협상 과정과 조합원 투표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걸 보고, 이해미 개발자는 넷마블도 그렇게 하길 바랐다. 그렇게 넷마블에 노조를 만들기로 했다.



▲ 넷마블그룹노조 이해미 지회장

지난 3월 이해미 개발자는 익명 앱에 노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글을 올렸다. 직후 넥슨노조 배수찬 지회장과 연락이 닿았다. 배 지회장은 "한 명 더 모아오세요"라며 노조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그 한 명을 모으기가 정말 힘들었다. 이해미 개발자는 "기적적으로 한 명을 모았고, 그렇게 두 명이서 노조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넷마블에 노조가 생겼단 소식은 지난 7일 알려졌다. 이때부터 스톤에이지 아트를 그리던 이해미 개발자는 '넷마블그룹노조'의 지회장이 됐다. 다른 게임노조는 별칭이 있다. 넥슨노조는 스타팅포인트, 엔씨소프트노조는 우주정복 등이다. 넷마블노조는 별칭을 짓지 않고 그대로 했다. 이는 넷마블의 특성과 연관이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노조가 설립될 때에는 '본사'의 '개발자'가 총대를 멘다. 넷마블은 넥슨, 엔씨소프트 등과 달리 본사의 개발자가 총대를 메기 어려운 구조다. 본사는 경영 관련 업무를 주로 맡고, 퍼블리싱 역할을 한다. 게임 개발 자체는 자회사가 한다. 게임사에선 현실적으로 부당함을 느끼는 인사 담당자나 경리 담당자가 노조를 시작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넷마블노조는 이름에 '그룹'을 강조했다. 넷마블의 여러 자회사의 노동자가 뭉친다는 의미다. 노조 설립 당시 이해미 지회장은 본사가 운영하는 건지, 또는 이 지회장이 있는 넷마블엔투 직원만 가입할 수 있는지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넥슨노조처럼 시작점(스타팅포인트)이 안 되어도 좋고, 엔씨노조처럼 우주정복을 안 해도 좋다"며 "그냥 모이자는 마음으로 '넷마블그룹노조'라 지었다"고 소개했다.

다른 노조 지회장, 넷마블그룹노조 사이에서 이 지회장은 어리고 저연차인 편이다. 그가 지회장으로 총대를 메기 전, 초기 멤버끼리 누가 대표로 나설지 회의가 있었다. 그는 "현실적으로 넷마블이 넷마블인 만큼 엄청난 불이익이 올 수 있다"며 "나는 경력이 여기서 끝나도 좋으니, 그냥 내가 지회장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짧으며, 여성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그냥 각오의 문제였고, 나는 그만큼 각오했다"고 밝혔다.

이 지회장은 넷마블의 여러 노동 문제를 고민하다, 석식 문제를 전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넷마블이 제공하는 저녁밥 지원을 받으려면 오후 8시까지 근무해야 한다. 만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야근 때 저녁밥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상급자 결재를 받아야 한다. 이 지회장은 "이처럼 회사가 번거롭게 만든 이유는 직원이 야근을 안 했으면 좋겠지만, 일은 많이 시키고 싶고, 저녁밥도 안 먹으면 좋겠단 생각이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넷마블에 쉴 곳이 부족하단 지적이 이어졌다. 이 지회장은 "특히 빌드 관련 개발자는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새벽근무를 할 때가 꽤 있는데, 회사에 수면실이 없다"고 소개했다. 이어 "반드시 새벽에 일해야 하는 개발자들이 많은데 쉴 곳이 없어서 회의실에서 새우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다"며 "수면실뿐만 아니라 휴게실조차 다른 회사에 비해 확실히 부족하다고 여겨진다"고 전했다.

지각과 엘리베이터 문제도 있다. 얼마 전 넷마블은 1분이라도 지각하면 1시간 연차를 쓰도록 했다. 기준은 자신의 컴퓨터로 출석한 시간이다. 그런데 회사까진 제시간에 와도 엘리베이터에서 정체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때문에 지각으로 처리된 게 억울하단 소리가 나오자, 회사는 "엘리베이터 속도를 빠르게 하겠습니다"라는 공지만 냈다. 이 지회장은 "그런 공지에 사람들이 많이 포기하더라"며 "노조가 생긴다는 소문이 돌 즈음에 1분이 10분으로 개선되긴 했다"고 소개했다.



▲ 넷마블

넷마블 신사옥에는 구내식당이 없다. 지역과 상생하기 위해서라는 게 외부에 알려진 이유다. 구내식당이 없지만 회사 내에는 여러 식당이 입주해 있다. 이 지회장은 회사가 높은 임대료를 책정해 식당과 직원 모두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최근 식당 주인이 높은 임대료로 인해 더 이상 운영을 하지 못하겠다고 알린 일이 넷마블 직원 내에서 이슈였다. 일부 직원은 식당이 높은 임대료를 내야 해서 음식값이 비싸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구내식당이 없는 게 결국 회사만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여겨졌다. 직원이 월급을 받으면 사옥 내 식당에 가 비싼 밥을 먹는다. 식당은 다시 넷마블에 높은 임대료를 지급한다. 이로써 회사는 직원에게 준 월급 일부를 회수한다는 주장이다.

노조 설립의 시발점이 된 연협(연봉협상)도 문제로 나왔다. 이 지회장 설명에 따르면 넷마블의 연협은 이의 제기 방법이 없는 통보식이다. 평소처럼 근무하면 어느 날 연협 관련 메일이 오고, 클릭하면 관련 페이지가 뜬다. 거기에 서명하면 연협이 끝난다. 그 전에 면담은 없고, 이후에 이의 신청 절차가 없다. 그는 "불만이 있으면 나가라는 느낌이다"라고 설명했다.

비교적 최근인 2020년 연협 때에는 그래도 인사 담당자의 얼굴은 보면서 서명했다. 이 지회장은 "연협이지만, 사실 협상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 팀에서 인정받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고 여긴 이 지회장은 협상을 시도했지만, "그 부분은 협상으로 결정을 바꿀 수 없고, 면담을 하더라도 같을 것이다"라는 답만 들었을 뿐이다.

이 지회장은 그동안 넷마블에 노조가 생기지 않은 게 의아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회사의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여기에 익숙해진 게 그 이유라고 생각했다. 넷마블 시스템에 못 참는 사람들은 이직을 선택하곤 한다. 그는 연봉협상 시기가 되면 이직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는 거 같다고 느꼈다.

그가 생각하는 회사의 가스라이팅 사례는 사측이 정기적으로 직원을 모아 '회사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리던 일이다. 경영진이 약 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지표를 보여주며 회사가 힘든 상황임을 알린다. 이 지회장은 속으로 '회사가 잘 될 때에도 저렇게 하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힘든 것을 같이 떠안자는 것인데, 그것을 거부할 직원이 있을까 싶다"며 "어렵고 힘들 때에만 자료를 보여주고, 진짜 잘 될 때에는 그만큼 알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 왼쪽부터 이상윤 사무장, 이정헌 부지회장, 이해미 지회장, 이정훈 수석부지회장

노조 설립 직후에 그는 일부 직원으로부터 불편하단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도 넷마블이 바뀌겠냐"며 "더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거 아니야?"라는 반응이다. 그렇지만, 이 지회장은 "대부분의 반응이 호응이었고, 우리 회사도 사람이 살 곳으로 바뀌는구나"라는 응원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경영진의 반응은 상냥했다. 비공식 상견례에서 넷마블 사측은 웃으며 인사하고 앞으로 잘 지내잔 인사를 건넸다. 이 지회장은 "우리는 너무 울분에 차 있어서 웃으며 인사할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렇지만, 그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넷마블이 노조가 생겨 뭔가 적극적으로 변했다"며 "앞으로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면 회사가 더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단 희망을 보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만약 상견례에서 노조를 무시하거나 탄압하는 자세였다면 오히려 걱정이 컸을 텐데, 사측의 반응은 그러지 않았다"며 "우리도 회사와 싸우려고 만든 게 아니니, 앞으로 적극적인 자세로 협상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사측에 투명한 소통을 바랐다. 그는 노조 창립선언문을 통해 "사람들은 '넷마블은 한 번쯤 거쳐가는 회사'라고 말한다. 과도한 마케팅 비용 지출 대비 직원 복지는 소홀히 다뤄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장기간 근무하기가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언제쯤 평생 다니고 싶은 회사가 될 수 있을까? 인센티브 정책, 연봉 인상률, 수익 등 뭐든지 투명하게 공개되고 공정하게 결정되어야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회사가 직원의 목소리를 듣길 원했다. 하나의 예는 셔틀버스다. 넷마블은 구로디지털단지역부터 회사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이 지회장은 "불편한 곳에 사옥을 지어놓고 그 짧은 게 무슨 셔틀버스냐"며 "직원이 많이 거주하는 낙성대역이나 서울대입구역까지는 가야지..."라고 전했다. 이 의견은 노조 설립 전 회사가 운영하던 '열린 협의회'에서 말이 나왔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 게임노조, IT노조가 넷마블그룹노조와 연대했다

'노동자의 하루'를 이 지회장은 강조했다. 넷마블에 다니는 노동자의 하루는 불행하단 것이다. 그는 "1분 늦으면 1시간 연차를 쓰게 하고, 개선을 요구하면 엘리베이터 속도를 빠르게 해주겠단 공지가 나오고, 구내식당이 없어 비싸게 밥을 먹는데 식당도 비싼 임대료에 불만이고, 밤새워 일해야 하지만 수면실은커녕 제대로 된 휴게실조차 없는 회사가 있다고 한다면 괴담으로 여겨질 것이다"라며 "그런 불행한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는데, 더 이상 불행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넷마블 개발자가 여러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도 게임을 사랑하고, 업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다녔다"며 "이제는 노동자의 인권과 존엄을 존중하는 회사가 되게끔 행동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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