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애널리스트가 게임산업을 보는 법

인터뷰 | 이두현 기자 | 댓글: 12개 |
일을 하다 보면 여러 자료를 보게 된다. 최근 가장 눈에 띈 자료는 미래에셋증권 임희석 애널리스트가 쓴 '판호실록' 보고서였다. 게임 리포트 중 흔치 않은 119쪽 분량에는 과거부터 최근까지 중국 판호 발급 패턴이 기재되어 있었다. 결론은 우리나라 게임에도 판호 발급 청신호가 켜졌다는 것이다. 3월 15일 리포트가 발간되었고, 5일 후인 3월 20일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 게임 5종 판호 발급 소식이 전해졌다. 오비이락일 수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임희석 애널리스트의 판호 예상은 적중했다.


애널리스트가 게임산업을 보는 법
미래에셋증권 임희석 애널리스트




▲ 미래에셋증권 임희석 애널리스트

애널리스트는 증권사에서 산업과 기업을 분석해 적정 가치를 산출한다. 결과적으로 투자자가 현시점에서 어느 기업을 살지 말지를 추천하는 직업이다. 그는 게임 자체를 좋아하면서 애널리스트가 된 경우다. 임 애널리스트는 대학생 시절 카오스(워크래프트3 유즈맵)와 스타크래프트2를 즐기며 게임에 대한 애정도를 키웠다.

"게임을 좋아해 대학교 시절까지 엄청 많이 했어요. 새벽 3~4시까지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집에 가는 게 일상이었죠. 대학생 때 카오스(워크래프트3 유즈맵)를 주로 하다가, 스타크래프트2 플레이와 리그 관람을 했습니다.

애널리스트가 된 이후에는 대학생 시절처럼 게임을 많이 못 하지만, 그래도 하루 1시간씩은 꾸준히 하려고 해요. 최근 가장 오래 한 것은 '탕탕특공대'입니다. 애널리스트 관점에서 게임을 보니 심리학자 수십 명이 달라붙어 '탕탕특공대'를 개발한 느낌이었어요. 무과금, 저과금에도 유저에게 큰 만족감을 주려고 고민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탕탕특공대'는 라이트 유저를 많이 끌어모아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것으로 봐요"


최근 게임산업을 다루는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많아지는 추세다. 과거에는 증권사 관점에서 분석할 만한 게임사가 엔씨소프트 정도밖에 없었다. 2017년 5월 넷마블 상장 이후 펄어비스, 카카오게임즈, 크래프톤 등이 차례로 상장했다. 증권사가 주목할 정도의 게임 섹터가 형성된 셈이다.

"증권사에서 게임산업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 이유는 2개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사람이 여가 시간에 더 많은 가치와 비용을 게임에 투자할 것으로 예상하는 거죠.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상향할 성장성 있는 산업으로 봅니다. 그리고 섹터 자체가 크래프톤 등이 들어오면서 커지고 활발해진 면도 있습니다"

임 애널리스트의 대표 리포트인 '판호실록'은 판호 이슈는 매번 불거지는데, 10년이 넘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중국 판호 발급, 중국 시장을 분석한 리포트가 없다는 데 착안해 준비됐다. 그는 2011년 이후 당시 광전총국에서 발급한 2만 건의 내자판호, 1,400건의 외자판호를 전수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판호 발급 빈도, 발급당 횟수, 발급 이후 출시까지의 평균 소요 시간, 게임 산업 정책 및 시장 성장률과 판호 발급과의 상관성 데이터를 도출해 냈다.

이어 중국 시장에서 잘할 수 있는 게임사가 어디인가를 찾기 위해 지난 10년간의 매출 Top 50 게임들 500개를 전수조사하여 매출, 장르, 퍼블리셔 등을 재분류하며 중국 게임시장 트렌드를 정리했다.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며 중국에서도 가능성이 존재하는 국내 서브컬쳐 스튜디오의 가치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였고, 넥슨게임즈를 탑픽(top-pick)으로 꼽았다.



▲ 전수조사를 통해 새로운 데이터를 보여준 '판호실록'

최근 임 애널리스트가 게임산업에서 주목하는 점은 매출 순위 변화다. 임 애널리스트는 매출 순위를 100위까지 넓혀 봤을 때, 현재 유저가 돈을 쓰는 장르에 분명한 변화가 있다고 추정했다. 2017년부터 시작된 MMORPG 고착화 이후 새로운 성장 가능성이다. 임 애널리스트는 '라이트 유저의 복귀'를 게임산업의 새로운 성장 포인트로 꼽았다.

"대중교통에서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무엇을 하는지를 봅니다. 개인적으론 열에 하나 정도가 게임을 하고, 나머지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틱톡 등을 보는 거 같아요. 10년 전을 생각해 보면 라이트한 게임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애니팡이나 드래곤플라이트 등이요. 그때랑 비교하면 요즘은 전철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이 부쩍 줄어든 느낌이에요.

2010년대 중반 이후 우리 게임사는 모바일 MMORPG 개발에 전사적 역량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게임산업 파이 자체는 커졌을지 몰라도, 라이트 유저가 많이 떠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라이트 유저가 떠나고 헤비 유저의 MMORPG 과금만 남은 게 현재 게임산업이라고 봐요.

현재 헤비 유저의 과금만으로 게임산업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게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봤는데, 많은 학생이 '탕탕특공대'를 엄청 재밌게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얼마나 재밌나 궁금해서 해봤는데, 너무 재밌었습니다. 라이트 유저를 끌어들인 경우로 봐요.

해외로 눈을 돌리면, 미국이나 중국, 일본 시장에서는 여전히 라이트 유저의 리텐션이 높게 나타납니다. 가볍게 즐길 게임이 많다는 거죠. 국내 게임사도 이미 이점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부터 다변화가 국내 게임사의 중요한 목표가 됐어요. 장르의 다변화, 플랫폼의 다변화, 유저층의 다변화요. 이 전략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라이트 유저가 게임에 복귀해 국내 게임시장이 다시 성장할 거라고 기대합니다"


임 애널리스트는 구조적으로 라이트 유저 복귀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수혜 게임사로 카카오게임즈를 탑픽으로 꼽았다. 카카오게임즈가 지금까지 쌓은 퍼블리싱 능력이 빛을 발휘할 것란 기대다. 카카오게임즈는 다른 대형 게임사와 비교해 자체 게임보다는 퍼블리싱 위주로 회사를 운영해 왔다. 특히 모회사의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 능력은 타 게임사보다 우수하단 평가다. 임 애널리스트는 카카오게임즈를 두고 '카카오톡이란 다이아 수저를 물고 태어난 게임사'라고 평가했다.

게임사 평가에 임 애널리스트는 '확장성'을 중요하게 본다. △엔씨소프트는 콘솔 및 지역의 확장성 △크래프톤은 콘솔 및 PC 확장성 △넷마블은 자체 IP의 확장성 △카카오게임즈는 퍼블리싱 외 자체 게임의 확장성 △위메이드는 플랫폼 확장성 △펄어비스는 콘솔 확장성 △넥슨게임즈는 장르 확장성이다.

확장성을 평가할 때는 히트율이 중요하다. 예로 지금까지 10개의 게임을 냈을 때, 히트한 게임은 몇 개냐는 것이다. 새로운 서브컬처 게임을 평가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이전 작품이 인기를 끌었을 때, 후속작에 대한 기존 팬들의 기대가 반영되어서다. 그럴 경우 증권사는 게임의 성공 확률을 높게 책정한다. 이 관점에서 콘솔로 확장은 히트율이 불분명하다. 게임사가 증명해 내야 하는 과제다.


게임주 판단에 필요한 것들
판호, 인공지능, 콘솔, 글로벌...




▲ 그래도 판호

임희석 애널리스트는 게임주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 판호, 인공지능, P2E를 차례로 꼽았다. 과거에는 판호만 받으면 게임주가 상한가를 칠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판호를 받은 게임사들은 기존 예상만큼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

임 애널리스트는 중국 게임사들의 역량이 많이 올라와 판호를 받아도, 쉽지 않을 거란 우려가 적용된 것으로 봤다. 또한, 최근 판호를 받아 중국에서 서비스를 했음에도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못 낸 게임사 사례가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래도 판호'라는 평가다. 여러 요소 중에서 게임사 주가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서다. 역설적으로 우리 게임이 중국 시장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사례 덕분에, 중국 당국이 안심했을 거란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제 한국 게임이 큰 위협이 되지 않으니, 마음 놓고 판호를 줘도 되겠다'와 같은. 이 같은 평가는 앞으로 우리 게임 판호가 더 많이 나올 거란 기대감을 준다.

생성형 AI 도입은 장기적으로 게임산업 성장 가속화에 영향을 미쳐,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콘솔로의 확장은 좋지만, 콘솔만으론 주가 상승이 어려울 것으로 평가됐다. 우리나라 게임사 관점에서 콘솔 시장이 PC, 모바일에 비해 고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이 열린 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콘솔로만 수십 년간 성장한 전문 게임사들조차 최근 성장세가 둔화한 것을 참고해야 한다.

P2E에 대해 임 애널리스트는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의도와 무관하게 정치적 이슈가 되어서다.

"P2E가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게임 산업의 새로운 사업이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아요.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죠. 유저가 자신의 캐릭터로 돈을 벌고, 엑싯(exit)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P2E는 유저 친화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존 아이템, 효과 등을 팔던 게임사들 입장에서는 매출이 떨어지게 됩니다. 굳이 기존 게임사들 입장에서는 넘어올 유인이 없죠. 글로벌 유저들이 각광할만한 어떠한 P2E 게임의 흥행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크래프톤이 집중하는 인도 시장은 먼 미래에 유의미한 시장이 될 거란 데에 이견이 없지만, 수년 내 짧은 시간으론 어려울 거라 판단했다. 인도에서 1위를 게임을 하는 게임 일매출이 4억 원 수준에 불과하고, 2위가 1억 원, 나머지는 일매출 수천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인도가 인구는 많으나 1인당 GDP로는 100위 밖에 위치해 게임에 쓸 수 있는 돈이 절대적으로 작다는 분석이다. 임 애널리스트는 인도가 유의미한 게임시장이 되기까지는 최소 5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 봤다.

임 애널리스트는 게임주주들에게 "게임 개발에만 진심인 게임사에 투자를 추천한다"라며 "그중에서도 성장하는 장르에서 두각을 보이는 곳에 투자를 권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출시 전 기대감 선반영이 너무 크게 되었을 경우에는 비중을 낮추어 리스크를 조절하는 것이 좋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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