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유비식 오픈 월드'는 정말 구린가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92개 |
"'유비식' 오픈 월드는 구리다"

적어도 오늘날 이 표현이 쓰는 이들과 그 주장을 보면 정말 그렇다. 난잡하게 떠 있는 맵 마커. 의미 없이 모아야 하는 장비. 아무런 효과도 없어 수집을 위한 수집품. 게이머, 그리고 언론도 잘못된 장르로서의 기준이며 비판 대상으로 이 물음표 가득한 세상을 꼽는다. 야숨식 오픈 월드는 옳고 유비식 오픈 월드는 별로라는 해석도 게임 포털 기사에서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유비식은 야숨식보다 정말 더 나쁜가. 더 정확하게 두 오픈 월드 사이에 우위가 존재할 수 있는가.근본적으로 오픈 월드를 그 게임의 완전무결한 특징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부터 출발해야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오늘날 오픈 월드는 게임의 특징을 단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마법의 장르로 그려진다. 엘더스크롤, 폴아웃, 레드 데드 리뎀션, GTA, 마인크래프트, 다잉라이트, 배트맨 아캄 시리즈 등은 그저 오픈 월드라는 표현 아래 쉽게 뭉뚱그릴 수 있다. 유비소프트의 오픈 월드 어쌔신 크리드나 파 크라이, 야숨식 오픈 월드라는 표현을 만든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일명 '야숨'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럼 반대로 이 오픈 월드라는 표현으로 게임의 플레이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게임 잘 아는 이들이야 제목만 들어도 이 게임이 오픈 월드 게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설명한다면?

여기부터 오픈 월드라는 단어가 표현할 수 있는 폭이 얼마나 한정적인지를 알 수 있다. 엘더스크롤 스카이림과 파 크라이는 같은 오픈 월드지만, 사실 액션 RPG와 슈터로 구분해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유비소프트의 오픈 월드 슈터라지만 파 크라이는 성장 요소가 가미된 스토리 기반 FPS고 고스트리콘은 전술 기반의 TPS다.

오픈 월드는 하나의 거대한 장르적 구분보다는 게임을 구성하는 특징에 더 가깝다. 대신 그 특징이 개발자가 의도하는 게임의 진행 방향을 그려내는 가장 거대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픈 월드는 게임플레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임 디자인으로 보는 게 더 적합할 듯하다.




오픈 월드를 게임 디자인으로 본다면 그 세부적 특징을 관찰하는 게 쉬워진다. 미리 말하지만, 이런 관점으로 이치를 따져본다고 해서 오픈 월드를 단순히 유비식, 야숨식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당장 2월 오픈 월드 기대작으로 꼽혔던 엘든 링과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프롬소프트웨어가 소울류에 드러낸 철학은 타협 없는 난이도와 플레이어가 성장하며 깨닫는 전투의 쾌감. 그리고 게이머가가 유추해나가며 해석하는 세계관이다. 그리고 이런 세계를 게임으로 완성하는 건 철저하게 짜인 월드 구성이다.

프롬의 소울본 게임의 맵 디자인은 크게는 단방향 게임이지만, 특정 구간을 클리어하면 중간 단계까지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지름길(숏컷)을 만들어준다. 이 길은 한쪽에서는 막혀 있어 반대편에 도달해야 열리는 식으로 구성된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진행하고 있는 길이 이전에 플레이하던 곳과 연결되도록 구성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흔히 다크 소울의 맵 디자인을 3D 매트로바니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매트로바니아는 수많은 길이 새로운 능력이나 진척도, 플레이어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 연결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짜여있다. 그걸 3D로 해내기 위해서는 더 철저한 플레이 분석과 맵 구성이 필요했다.



▲ 난이도 만큼이나 지독하리만치 치밀한 맵 디자인은 소울본 게임이 찬사를 받은 진짜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은 오픈 월드로 확장된 엘든 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는 프롬소프트웨어의 특성상 게임은 어디로 가야할 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공략 없이 게임을 즐긴다면 유저는 한 줄 뿜어져 나온 빛줄기에 의지해 고난을 맞아야 한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없는 세계를 탐험하고, 또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엘든 링의 월드 디자인은 어느 정도 플레이 적정 구간을 마련했다. 플레이하기 적합한 강화 단계와 레벨을 설정하고 이를 맞추지 않는다면 플레이가 어렵도록 조정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좁은 림그레이브에서 지역이 확장되어 가며 수많은 던전과 숨겨진 요소를 탐험하게 되는데 그 적정 단계라는 걸 알려주지 않으니 플레이어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아야 한다.

보스의 패턴을 죽어가며 배우듯, 플레이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죽어가며 익히도록 만든 셈이다. 그래서 십수 시간 플레이만으로는 게임의 맛을 제대로 살필 수 없을 정도. 대신 게임에 간략하게 떠오르는 힌트로 진행의 앞뒤를 짜맞춘다. 맵 디자인 자체를 넘어 정보를 통한 이야기의 구성을 채우는 식이다.

반대로 던전이나 성처럼 한정된 구역에서는 기존의 게임을 떠올릴 수 있는 복잡하고, 서로 연결된 매트로바니아식 맵 디자인을 취했다. 즉, 작게는 소울본 시리즈의 확장판으로 볼 만하며, 개방된 필드에서는 프롬소프트웨어의 철학으로 그려낸 오픈 월드로 기존 소울본 시리즈의 면광을 넓혔다.



▲ 엘든 링의 오픈 월드는 개방된 필드에 적정 구간을 제공하고 이걸 죽어가면서 습득하도록 만든다

눈치 빠른 이라면 엘든 링은 해외 여러 언론이 비견한 야숨과의 비교가 썩 적합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야숨은 자유롭게 필드를 탐험할 수 있는 액션 게임이라는 점은 엘든 링과 같다. 게임 진행에 플레이어의 전투 숙련도가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벤트나 수집품이 담긴 맵 마커도 최소화했다. 이런 부분만큼은 두 게임을 비슷하게 볼 요소다.

월드를 구성하는 방식과 그 안에서 플레이어의 플레이 요소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야숨과 엘든 링 모두 다음 진행 방향이나 던전을 플레이어의 탐험과 유추로 찾아내고 풀어내도록 했다.

대신 야숨은 스토리 자체는 명확하게 이야기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월드에서의 이동 제약은 적다. 춥거나 더워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구간 정도도 거기에 맞는 장비나 아이템만 갖춘다면 진행 순서나 이벤트 상황에 개의치 않고 얼마든지 플레이어를 반긴다. 마음만 먹는다면 시작 후 곧장 최종 보스인 가논으로 향할 수도 있다.

엘든링이 이야기 자체에도 모호함과 유추의 영역을 담는 대신 월드 구성은 레벨에 따라 꽤 치밀하게 단계를 구성한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 야숨은 생존 게임의 요소를 섞어 꼭 이야기 플레이가 아니더라고 불과 바람, 주변과의 상호작용으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샌드박스식 요소를 담아냈다.



▲ 시작하자마자 눈에 보이는 최종 보스에게로 곧장 달려가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엘든 링 속 오픈 월드가 주는 재미가 야숨 만큼 훌륭하다는 평가는 가능하겠지만, 전혀 다른 기준으로 만들어진 두 세계를 비교하는 건 어디가 더 내 취향에 맞는지의 영역이다. 각자의 의도를 반영한 두 게임의 월드 중 누가 '더 옳은지' 판단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말이다.

엘든 링과 비교하면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는 유비식 오픈 월드의 표준에 근거해 제작된 듯 보인다. 맵 위에 떠 있는 물음표와 빠른 이동 구간, 톨넥으로 밝히는 맵은 어쌔신 크리드의 동기화 포인트나 파 크라이의 탑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실제 게임플레이에서 오픈 월드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SF 요소가 강하긴 하지만, 세계 자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기를 다룬 게임답게 경제는 교환으로 이루어진다. 샤드라는 화폐가 존재해도 무기나 장비 구매에는 이 샤드와 함께 기계나 야생동물에서 얻은 여러 재료 부품이 필요하다. 이 부품은 장비 강화나 탄약 제작에도 똑같이 필요하다.



▲ 필드에서의 사냥 전리품은 탄약이고 성장이다. 그리고 지금 꼭 필요한 전리품은 직접 해당 적을 찾아야 한다.
성장과 모험을 하나의 고리 안에서 엮이게 만들었다.

플레이어가 보다 강력해지거나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사냥이 필요하고, 또 더 높은 단계의 사냥을 위한 성장에 이 재료들이 쓰이게 된다. 성장과 사냥을 보다 체계적으로 한데 묶어낸 셈이다. 이건 메인 이야기 줄기를 따라가는 데에도 필수적인 과정이 된다. 게임 자체가 탄약을 소모하는 슈터 기반 액션 전투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던전 등으로 부를 수 있는 가마솥 등 한정된 공간에서의 이벤트는 엘든 링과 달리 어드벤처의 향이 더 짙게 뿜어져나온다. 암벽, 점프, 도구활용, 퍼즐까지 고려한 파트는 오히려 고전적인 액션 어드벤처에 더 가깝다.

맵 어느 곳에 어떤 이벤트가 존재하는지 맵 마커로 미리 다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흔히 말하는 유비식 오픈 월드와 같다. 반대로 말하자면 세부적인 구성, 맵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전투, 액션 요소를 다루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의 오픈 월드 구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에서 월드 탐험의 욕구를 가장 충족시켜주는 건 훌륭한 그래픽과 말 그대로 미칠듯한 디테일이었다.



▲ 눈에 많은 요소를 담아내기에 충실한 그래픽 역시 오픈 월드를 디자인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이렇듯 오픈 월드라는 표현 하나로 게임을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 잇 테이크 투나 하데스처럼 오픈 월드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평가를 받는 게임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AAA 게임에 오픈 월드로의 확장이 눈에 띄는 건 AAA에 대한 높아진 기대치와 그걸 만족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오픈 월드기 때문이다.

F2P 게임이 늘어나고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인디 게임의 만듦새가 높아지며 인력과 자본이 풍부한 게임사가 풀프라이스 게임의 내실을 채우는 용도쯤으로 오픈 월드가 쓰이는 셈이다.

대신 게임의 규모가 커지며 총괄 프로듀서, 혹은 제작자가 개발 과정의 모든 부분을 이전만큼 신경 쓸 수 없게 됐다. 많은 대형 게임사가 스토리와 캠페인, UI, 오디오, 오브젝트, 그래픽, 퀘스트 등 오픈 월드를 넘어 게임 구성하는 각 부문에 따로 디렉를 두고 이를 협업하며 더 높은 단계에서 방향을 잡는 형태로 해결하는 이유다.




오픈 월드라는 특징 그 자체보다는 그 특징을 어떻게 활용할지 디렉팅하고 조합하는 프로듀서의 역량이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레드 데드 리뎀션2와 야숨은 이런 오픈 월드 요소의 조합이 매끄럽게 드러난 게임으로 꼽힌다.

레드 데드 리뎀션2는 이동 구간에서 의도치 않은 이벤트를 만나도록 구성해 게임의 큰 특징인 살아있는 세계. 그걸 더 살리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건 무작위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 이벤트, 혹은 구간 이동 시 발생하도록 만들어졌다. 플레이어의 진행을 보이지 않게 유도하는 내러티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의미다.

야숨은 명확한 스토리 라인 위에 자유도를 얹었다. 플레이어의 진행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게임 내에서 얻은 능력과 장비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모두 마련해두고 있다.

두 게임 모두 자유도라는 오픈 월드의 기본 명제를 따르는 듯 보이지만, 수많은 상황과 진행 과정을 모두 예측 가능한 상황 안에 두고 제작되었다.



▲ 그저 우연에 기반을 둔 듯 보이는 이벤트도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그걸 발견했다고 착각하도록 만드는 치밀한 구성으로 만들어진다

재밌는 건 유비식 오픈 월드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유비소프트의 많은 개발자도 각자 자신들의 게임에서 오픈 월드 요소를 살리기 위한 디자인을 깊이있게 고심했다. 그리고 그게 게임에 드러난 경우도 많았다.

유비소프트의 오픈 월드 게임의 핵심은 대개 탐험이나 여정이 아닌 테마와 이야기다. 어쌔신 크리드를 예로 든다면,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바이킹 시대 등 특정 시기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적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 시대의 모습을 한 NPC와 이곳저곳에 있는 물음표를 지워나가며 여러 건물과 지역을 방문하는 시간은 그 시대, 그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플레이어의 몰입을 유도하되 이야기의 중심은 플레이어가 다루는 영웅의 서사에 기반을 둔다. 더 많은 탐험 과정은 영웅과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느낌을 주는 데 집중했다.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의 게임 디렉터 스콧 필립스는 이러한 디자인을 위해 게임 내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추락 피해를 없애고 거의 모든 곳을 오를 수 있게 만드는 식으로 진행의 속도를 높였다. 매력적인 이야기, 캐릭터 디자인을 오픈 월드 플레이 진행의 동기를 주는 방식이다.



▲ 수많은 빠른 이동 포인트는 게임이 추구하는 몰입을 해치지 않기 위해 낭비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배치됐다
그러면서도 그 장소를 게임의 핵심인 테마에 어울리는 동상이나 상징물들로 채운다

유비소프트의 이러한 오픈 월드 구현 방식은 명확한 이야기를 제시해주지 않거나 창발적 플레이가 필요한 게임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에게 보다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목표가 어떤 게임에서는 효과를 내기도 했고, 또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개발진의 오픈 월드 활용과 추구하는 게임 플레이의 방향이 게임 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었느냐에 따라 달랐다.

눈에 보이는 구성의 유사함과 성장 부족에 평점을 깎아 먹긴 하지만, 이런 유비소프트의 여러 오픈 월드 게임 중 몇몇은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유비소프트의 이브 기예모 CEO는 2020년 팀 각각에 개별 권한을 주고 게임을 만들도록 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전까지는 유비소프트 내 모든 게임 제작의 최고 책임자였던 세르지 아스코엣의 손을 거쳤다면, 이제는 팀마다 정체성을 더 뚜렷하게 확립하도록 한 셈이다. 개발자 각각의 성향에 따라 게임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같은 오픈 월드 게임이라도 얼마든지 다른 결과물을 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결국 오픈 월드라는 디자인은 단순히 맵을 크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큰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어떤 방식으로 게임을 체험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 넓은 단계로 확장해 보다 오래 함께할 수 있도록 플레이 타임. 즉, 여정을 이어가는 게임 디자인이다.

오픈 월드의 불만족은 게임에 이 도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억지로 플레이타임을 늘리려는 목적에만 치중하는 어설픔에서 나온다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유비식이나 야숨식, 혹은 락스타식인가, 베데스다식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복잡한 디자인의 요소와 게임 제작에 대한 여러 프로세스의 산물을 한 단어로 압축시켜 버리는 유비식 오픈 월드라는 말은 그래서 한없이 편리하다. 그리고 그만큼 본연의 게임 그자체를 보는 시야를 가려버리는 매혹적인 함정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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