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리즈 '라스트 오브 어스' 에피소드1 리뷰

기획기사 | 강승진 기자 | 댓글: 11개 |
게임 미디어화의 성공과 실패는 이제 굳이 재차 언급하는 게 색다를 게 없을 정도로 반복됐고, 복제됐다. 그간은 대개 불만에 그 방향이 맞춰져 있었는데 플레이어의 조작 배제, 플레이어인 나를 대체하는 존재를 통해 이루어지는 내러티브와 렌즈를 통해 확인하는 내러티브의 전달 방식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게임이 영상 미디어로 치환됨에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 게임의 핵심 요소만이 배경 설정으로 남아 뼈대를 이루는 방식이 선호됐다. 실제 이야기는 게임이 아니라 뼈대에서 새롭게 붙은 근육과 살결이 됐다. 수퍼 소닉, 명탐정 피카츄, 아케인: 리그 오브 레전드,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등 근래 좋은 성과를 낸 게임 원작 미디어는 그 새로운 이야기로 승부를 봤다.




개발사 너티 독의 닐 드럭만이 직접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HBO의 '라스트 오브 어스'는 그간의 게임 미디어화에서 정답이 된 이런 전개를 완벽하게 반박했다. 작품은 철저하게 게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러면서도 영상화라는 과정을 거치며 '카메라 연출'과 '배우들의 행동 연기'라는 달라진 내러티브 전달 방식을 위해 필요한 축소와 확장을 가했다. 닐 드럭만과 극본을 함께 쓴 크레이그 메이진은 '체르노빌'에서 선보였던 엄청난 화면 연출을 군데군데 다시 선보이며 시각적 만듦새를 높였다.

국내 서비스 일정이 확정되지 못하며 그동안 잠자고 있던, 여타 OTT보다 훨씬 비싼 HBO 맥스 계정 구독을 오로지 드라마 '라스트 오브 어스' 단 한 에피소드를 위해 되살려야 했다. 그리고 분명 그럴 가치가 있는 에피소드였다.



▲ 사라와의 관계, 나아가 엘리와의 관계로 이어지는 고친 시계 선물

순탄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딸 사라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 20년 전의 조엘. 그가 감정을 잃은 듯 사람을 밀어내는 인물이 되는 계기를 그린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1'의 프롤로그는 굉장히 거친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감정을 몰아붙이는 구간이다.

조엘과 사라의 짤막한 일상, 곰팡이균에 좀비처럼 변해버린 감염자, 사라의 죽음. 게임 시작 후 십수 분 만에 이루어지는 격정적인 사건의 연속은 교통사고를 당하듯 급박하게 밀려오고 플레이어들이 짧은 시간 게임에 집중하는 훌륭한 돌입부로 그러졌다.

TV 시리즈에서는 30분이라는 늘어난 시간을 통해 일상 안에서 물에 젖듯 조금씩 밀려오는 긴장감을 더했다. 숨 막히게 몰아치는 구간 직전까지는 정적인 구간을 꽤 길게 배치하고 그 안에서 카메라 연출력으로 색다름을 냈다.



▲ 감염자의 존재가 불확실한 시기에는 옅은 심도로 표현

사라 시점에서 일상적인 부분은 정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잡고 딥 포커스와 옅은 심도, 둘을 극도로 대비시키며 분위기의 전환을 자주 시도한다. 이웃집 할머니가 감염자가 된 듯 입을 벌리고 기괴한 모습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카메라는 사라에 초점을 잡아 배경을 모두 날려버린다. 사라 바로 뒤에서 감염자가 변하고 있는데 화면 너머 시청자는 그 모습을 코앞에서, 그저 뿌연 형태로만 확인할 수 있다.

이 배경날림은 구간구간, 조엘이나 사라에 중심을 잡고 멀리서 무언가 사건이 발생할 때 곧잘 쓰인다. 곰팡이균에 의한 감염이라는 것 자체를 영상 도입부 토크쇼 구간을 더하며 깔고 시작했지만, 조엘과 사라 입장에서는 여전히 미지의 존재다. 그렇기에 그 모습조차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모습은 긴박한 상황의 조엘과 토미, 사라에게 감염자의 존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존재라는 부분을 강조한다.

반대로 이 감염자의 존재가 위험한 인물임을 분명하게 알아챌 수 있는 구간에서는 다시 화면 전체의 또렷함을 더해 위협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 명백한 세계의 위험이 된 시기의 감염자 모습

감염자를 통한 위험의 확대를 미장센으로 그려내는 점 역시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연출이다. 조엘과 사라가 아침 밥을 먹는 장면에서 TV 뉴스는 일종의 폭력 사태를 언급한다. 그게 감염자 탓인지도 제대로 모를 상황에서는 그저 먼 자카르타의 이야기로 다뤄진다.

이후 사라를 카메라 아래 두고 머리 위로 비행기, 헬기가 날아가는 장면을 다수 그려내는데 이 역시 감염자 사태를 암시하는 화면 연출로 쓰인다. 밝은 낮 등장한 첫 비행기 장면은 빠른 속도로 사라 위를 지나가 멀리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헬기가 멀리 눈에 보이는 장소로 이동하는 수준으로 목적지가 가까워졌고 차를 타고 이동할 때에는 낮은 고도의 비행기가 겨우 코앞에 다다른다.

마지막 비행체 등장은 사라를 지나치는 대신, 멀리서, 사라와 조엘이 탄 차 뒤로 떨어지게 된다. 이 추락한 비행기가 조엘과 사라가 탄 차를 전복시킨다. 게임에서는 갑자기 달려온 차와 충돌해 전복되지만, TV 시리즈에서는 미장센을 활용해 꾸준히 사고를 암시하고, 끝내 사라를 위험에 직접적으로 빠트리는 장치가 된다. 크게 보면 멀리 자카르타에서, 사라에게 위험이 근접하는 것을 화면 연출로 담아낸 셈이다.



▲ 점점 가까워져 오는 비행기는 위협이 머지 않음을 암시한다

연이는 비행기의 등장 과정이 복선을 전달하고 시청자의 불안감을 키우는 방식이라면 조엘, 토미, 사라가 차를 타고 탈출하는 구간은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게임과 동일하게 토미가 운전하는 차와 조엘, 사라는 역삼각형 형태로 카메라안에 잡혀 불안한 균형을 이룬다. 이때 공황 상태에 빠진 도심지의 모습을 담아낼 때는 화면은 자동차 안에서 외부를 찍고 있음에도 철저하게 유리 밖을 잡아낸다.

분명 시야 안에는 앞좌석에 앉은 조엘과 토미가 담겨있지만, 여기에는 초점을 날려 주목도를 떨어트린다. 이는 마치 카메라가 사라의 시점으로, 화면 밖의 위협을 피해야 할 것처럼 담아낸다.

흔히 게임의 주인공 직접 시점이라 할 수 있는 1인칭 시야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뒷좌석에 앉은 사라의 시야로 화면을 보듯 그려낸 셈이다. 영리한 방식으로 게임적 연출을 담아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분명하게 사라를 향해 날아와 추락한 비행기는 카메라의 초점이 맞춰진 유리 밖 공간에서 터져버리고 이내 암전으로 끌어오른 긴장의 끈을 끊어버린다.

촬영 감독으로 크레이그 메이진과 함께 작업했던 크세니야 세레다는 '체르노빌'에서는 넓은 시야로 여러 인물 하나하나를 화면에 담았다. 다수의 인물 감정이 중요하게 그려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시리즈 특성에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라스트 오브 어스'의 초반 부분은 반대로 제한된 시점을 통해 시청자가 된 플레이어의 관점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체르노빌'과는 꽤 다른 방식으로 극의 집중도를 훌륭하게 높여준 셈이다.



▲ 주인공 일행이 아니라 화면 밖에 포커스를 맞춰 시청자의 눈으로 위험을 인지하도록 표현한 구간

재밌게도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극 안에서 그려지는 내용과 구성은 적당히 살이 붙고, 극 진행에 달라진 부분도 많지만, 게임과 완벽하게 일치해 팬들을 위한 장면이라 생각될 부분도 더러 있다. 집에서 차를 타고 삼거리를 빠져나가는 장면은 먼저 지나가는 경찰차, 길 모양까지 유사하다. 조엘의 차를 보고 태워달라 외치는 가족과 이를 보고 매몰차게 지나가는 장면도 게임 속 그 모습과 온전히 같다.

반대로 사라의 특징은 좀 더 엘리를 닮았다. 아빠에 대한 애정을 꽤 냉소적인 척 어른스러운 유머로 주고받는 모습은 마치 '엘리가 평화로운 세상에서 태어났다면'이라는 가정에 원작보다 더욱 가깝다. 이런 변화가 조엘이 20년이 지난 현재 엘리라는 인물에 자식의 감정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는 데 더 적합한 형태가 되지 않을까.



▲ 게임과 TV 시리즈

눈 앞에서 딸의 죽음을 맞았던 조엘. 그리고 20년의 시간이 흘러 2023년이 됐다. 파괴에 가까운 사태 이후 먹고 살기 위해 어린 아이의 사체를 치우는 조엘에게는 딸을 품에 안고 보였던 감정적인 모습은 찾기 어렵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모진 세상에서 여러 고난을 겪은 듯 욕설로 인사를 대신하는 엘리의 모습은 꽤 통제하기 어려운 모습이 강조된다.

엘리를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 조엘과 낯선 조엘을 따라가는 엘리. 둘의 만남은 꽤 축약하고, 변형되어 그려진다. 조엘과 그의 파트너 테스의 액션 구간 자체를 들어냈기 때문인데 그에 따라 엘리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항체를 가진, 화물, 항체 보유자로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이러한 변화 덕에 엘리가 조엘에게 대하는 태도 역시 더욱 거칠게 그려졌고, 그들 관계의 변화를 아는 게임팬으로서는 새롭게 이야기에 몰입할 힘을 낸다. 여기에 마릴린이 DLC에 등장하는 라일리와 엘리의 관계를 언급하며 팬들에게는 보다 폭넓게 이야기를 구현하는 내러티브를 기대할 수도 있게 만들었다.




배우로서 다양한 얼굴을 지녀 조엘 역에도 적합하다 평가받은 페드로 파스칼과 달리 엘리 역을 맡은 벨라 램지는 게임 속 모습과는 비슷하지 않은 외모로 영상 전달 전, 캐스팅 공개 당시부터 우려를 샀다. 활자 매체의 영상화와 달리 아무래도 엘리라는 인물 자체가 플레이어의 동반자, 후속작에서는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익숙한 인물인 만큼 외형적 유사함과 차이를 짚지 않고 넘어가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거친 욕을 달고 사는 모습에 특유의 세상 다 산듯한 모습이지만, 조엘에게 툭툭 장난을 던지거나 은연중에 감정적 불안함과 의지하고픈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표정 연기는 실사 배우이기에 가능한 수준 높은 연기를 선보였다.

오히려 외형적 싱크로율은 더 높다 할 수 있는 페드로 파스칼의 연기 결이 꽤 다르다. 일찌감치 게임 플레이는 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 그답게 연기의 기반은 단순히 게임 속 모습을 흉내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극본 안에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해석한 조엘의 모습을 그린다.



▲ 원작이 게임이기에 외형적 차이가 두드러지지만, 벨라 램지의 연기는 짧은 등장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다

물론 디렉션에 따라 어느 정도 유도되는 방향이 존재하고, 그게 게임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려진 1화였지만, 감정의 억제, 그리고 사라의 죽음과 함께 터져 나오듯 폭발하는 모습은 페드로 파스칼만의 조엘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사라가 죽기 전 선물로 준 고장 난 시계를 엘리가 언급하는 부분처럼 닐 드럭만이 직접 극본을 맡아 원작의 이야기를 담아낸 장면들은 게임 속 장면도 많다. 이들은 게임 연출이 영화적인 연출 안에서도 훌륭히 구현될 수 있었는지를 되짚게 한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영상물에 맞게 여러 추가, 변경점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을 기반으로 충실하게 쌓아 올려졌다.

닐 드럭만이 선호하는, 폭력적으로(플레이어에게 거칠고 사납게) 이야기와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은 게임에서는 그 방향에 따라 호오가 분명했다. 특히 상실에의 극복을 전달하기 위해 복수라는 극단적인 방법과 주요 인물의 죽음을 강조하는 방식은 전달 효율성과는 별개로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몰입해온 주인공. 즉, 플레이어 자신에 대한 업적과 인격의 죽음으로 비치는 결과까지 낳았다.

어찌보면 라스트 오브 어스가 가진 여러 주제의식과 비극은 게임보다 영상일 때 제삼자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슬픔을 통해 심리적 치유를 얻는 (본래 의미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더 적합한 형태일지 모른다. 마치 플레이어가 게임 속 인물을 자신과 동일시되지 않은 극초반 단계에서 발생한 사라의 죽음처럼 말이다.

어찌됐든 초반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특유의 기괴한 모습을 가진 감염자의 위협도 적었고, 뒤이을 액션을 위한 빌드업 단계 수준에서 에피소드1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정도 만으로도 에피소드2, 3의 이야기를 기대하기 충분했다. 아울러 '게임에 적합한 이야기'라는 게 '영상 각색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보여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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