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C24] 사이버펑크 출시 후 3년, CDPR이 걸어 온 구원의 여정

게임뉴스 | 김규만 기자 |


▲ 카롤리나 니에베글로스카(Karolina Niewęgłowska) CDPR 플레이어 경험 및 안전 책임자

"이건 팬텀 리버티가 출시된 이후, 몇몇 지역에 있는 로봇들이 사람처럼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인터넷에 퍼진 영상입니다. 과연 이건 버그일까요? 아니면 저희의 의도에 따라 게임에 포함된 것일까요?"

GDC와 같이 큰 강연장에서 전 세계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발표를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한 카롤리나는 강연 시작 직후, 아래와 같은 게임 속 모습을 보여주며 청중에게 물어봤다. 사실, 누가 봐도 버그처럼 보이는 모습이지만, 카롤리나는 그 답을 강연 마지막에 밝혀줄 것을 약속하며 본격적인 강연을 이어나갔다.

2020년, 그전까지 세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사이버펑크 2077'의 출시 직후 모습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게이머들에게 약속했던 콘텐츠도 대부분 포함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버그와 안정성 문제는 정상적인 게임플레이를 힘들게 하는 수준이었다. 콘솔 버전 타이틀을 전량 회수하는 결정까지 내려가며 게임을 고칠 것을 약속했던 CDPR의 결단은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게임 업계의 일반적인 케이스를 살펴보면, 라이브 서비스가 진행되지 않는 게임인 경우 이를 끝까지 붙들고 있는 사례가 희박하다. 하지만 CDPR의 결정은 일반적인 것과는 달랐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사이버펑크 2077에 기대했던 게이머들에게 끝까지 게임을 고치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한 패치와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2.0 패치와 함께 출시된 확장팩을 통해서는 실망했던 게이머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CDPR의 플레이어 경험 및 안전 부서는 플레이어로부터 불편 사항 리포트를 접수하고, 개발사 내 관련 부서와 긴밀한 협업을 진행해 해당 문제를 고치는, 기술 지원 팀이라고 볼 수 있다. 카롤리나는 지난 3년간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마침내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사이버펑크 2077'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이어나갔다.



▲ 담배를 피우고, 발로 비벼 끄기까지 하는 로봇이라니?

CDPR의 시작, 그러나 너무 거대해진 팀

그의 이야기는 CDPR이 폴란드에 정식 출시 되지 않은 게임들을 불법 복제 카피로 만들어 유통하던 먼 옛날로 돌아갔다. 회사의 모태인 CD 프로젝트는 폴란드 국민들이 전 세계의 우수한 게임들을 자신의 언어로 플레이하길 바랐고, 당시 시대 여건 상 정식 출시보다는 직접 게임을 들여와 현지화를 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리고 세상은 점차 달라졌다. 1999년, 발더스 게이트는 폴란드에서 완전한 현지화와 함께 출시된 최초의 사례가 되었고, CD 프로젝트의 야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제 폴란드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릴 차례가 된 것이다. 그렇게 2002년에 CD 프로젝트 '레드', CDPR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회사의 성장 여정에서, 카롤리나는 꽤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CDPR에 몸담아 온 인물이다. 그가 처음 CDPR에 입사했을 당시에는 100명 남짓했던 직원이, 지금은 그 10배로 늘어났다. 회사의 설립 배경으로 인해 비즈니스 파트와 개발 부서가 초창기부터 긴밀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큰 강점이었지만, 직원의 수가 늘어날수록 세상의 기대와 회사의 야심, 부서 사이의 이해관계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누군가는 이것을 조정할 필요가 생겼다.



▲ 게임 하나를 만드는 데 긴밀한 협업은 아주 중요하다, 그렇기에 모든 부서 사이를 잇는 누군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합심(togetherness)이 모든 것의 힘이라고 생각한다는 카롤리나는 CDPR의 초창기엔 이것이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고 전했다. 누구와도 스스럼 없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만들어진 끈끈한 유대관계는 협업 상황에서도 기민함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자연적인 발생에만 의존할 수 없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합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보다도 의도적으로, 모두가 한 몸처럼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카롤리나는 '사이버펑크 2077'의 처참한 실패는 전사적인 심각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회사의 초창기부터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긴밀한 유대감, 모든 임직원들의 비전과 목표가 일치한다고 느껴왔던 지난 날들이, 되돌아보니 너무나도 커져 버린 회사의 큐모 때문에 하나 둘씩 어긋나고 있었던 것이다.



▲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자연적'인 유대 관계에 더 이상 기댈 수 없게 된다

전사적인 각성, RED 2.0의 시작

2020년 말, '사이버펑크 2077'이 출시된 직후를 기억하는 게이머라면 당시 CDPR이 얼마나 많은 공지문을 발표했는지 또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카롤리나에 따르면 외부적으로 보이는 것 외에도 CDPR 내부에서는 매일같이 회의가 열렸다.

2021년, CDPR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완전한 쇄신을 목표로 하는 전략을 발표했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개발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전략이다. 내부적으로는 RED 2.0이라고 명명된 가치 아래에서, 모든 임직원이 회사의 비전과 뜻을 함께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목표가 정해졌다.




'사이버펑크 2077'의 문제를 고치기 위한 미팅도 매일같이 열렸다. 지술 지원 부서가 처음부터 QA, 프로덕션 팀과 함께 매일같이 협업하며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불편사항을 정리한 문서를 만들었다. 이러한 목소리들은 측정 가능한 지표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관련 부서 어디서든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과정에서 결정이 필요했던 사항이 하나 더 있었는데, 새로운 콘텐츠를 먼저 선보일것인지, 아니면 현재 게임에 존재하는 무수한 문제를 먼저 고치는지 하는 것이었다. 이 결정 과정에는 심리학이 크게 작용했는데, 사람들은 어떤 상황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훨씬 빨리 인지하는 편이다. 결국 CDPR은 무언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금 사람들이 마주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안정성과 버그 픽스를 우선으로 하게 된다.

그렇게 추가된 사이버펑크 2077의 1.3 패치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버그 픽스가 진행됐다. 당시 패치 노트 또한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게이머들에게 신규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고 버그 픽스에만 몰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했지만, 결국 3년 뒤에 와서야 이것이 옳은 방향이러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카롤리나는 덧붙였다.



▲ 이건 아직 시작도 안 한 수준, 정말로 긴 패치 리스트가 이어졌다

전사적인 체질 개선, 그리고 끝을 모르는 버그와의 사투 끝에 3년 뒤 CDPR은 확장팩 '팬텀 리버티' 출시와 함께 이용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마주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합심'을 유지하고, 지금의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변화들을 모두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카롤리나는 다시 한 번, 기업의 모든 부서가 긴밀한 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의식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발현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천 명의 사람이 한 몸처럼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앞으로의 여정은 너무 빠르고,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수 많던 '버그'는 어떤 과정을 통해 고쳐졌을까?

이후 카롤리나는 자신이 속해 있는 기술 지원 팀의 입장에서 여러 유관 부서와 협업하는 과정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강연을 이어나갔다.

CDPR이 사이버펑크 2077를 고치는 데 몰두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게임은 한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플레이했고, 특정 부분에서 발견한 문제와 버그 에 대한 리포트는 계속 날아들었다. 때문에 개발사의 입장에서는 플레이어들의 피드백을 접수 단계에서부터 구조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이, 어디에서 발생했고, 이 문제와 관련된 유관 부서는 어디인지 빠르고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말이다.

문제는 더 있었다. '사이버펑크 2077'은 약 11개 국가의 언어를 지원한다. 이들은 그저 기계적으로 번역된 것들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영어로 'Automatic Love'라는 퀘스트의 이름이 있는데, 이는 북미 사람들에게 익숙한 노래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 스페인 언어에서는 다른 노래 제목으로, 심지어 폴란드 언어에서는 같은 퀘스트 이름이 '인형의 집'이라는 노래 제목으로 사용됐다.

따라서 CDPR은 전 세계 플레이어의 피드백이 게임 내 어떤 부분에 해당하는지 분리할 수 있는 툴이 필요했고, 이 또한 긴밀한 부서간 협업을 통해 직접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특히, 여러 부서에서 함께 활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서로 다른 구조에서도 사용 가능한 호환성을 갖는 데 집중했다.



▲ 제출된 버그는 게임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다른 우선순위를 갖는다

다음으로 카롤리나는 사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로 뽑힌, H10 아파트에서 라디오가 작동하지 않는 문제를 예로 들어 기술 지원의 여정을 설명해 나갔다. 이는 특정 아파트에 있는 라디오 오브젝트에 상호작용이 제대로 되지 않은 문제였는데, 게임 진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문제였기에 초기 우선 순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5명의 플레이어가 같은 증상을 호소했고, 이는 개발진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이 문제가 사내에 공유되자 퀘스트 팀과 QA 팀에서는 해당 문제가 플레이어의 전반적인 경험과 연관되어 있는 만큼 픽스 우선 순위를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카롤리나는 이처럼 게임을 고치는 것의 목표는 이용자가 느끼는 확실한 장애물은 제거하는 것이며,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플레이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을 이해하고,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다음으로는 여러 부서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 관리 제품인 지라(jira) 내부에서 특정 이슈를 일치시키는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플레이어의 불편 사항을 접수하는 기술 지원 팀이지만, 이 문제를 보고하고 개발 부서와 협업하기 위해서는 개발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공유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게이머: 두 번째 스나이퍼한테 가려니까 게임이 꺼진다니까요?
개발자: red::StaticArrary가... GrowNoConstruct가...

그러나 개발자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듯, 게임의 무언가를 수정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무언가를 고쳐도 플레이어가 과거 세이브 데이터로 게임을 플레이하면 이것이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며, 무언가를 고친 여파로 다른 부분에서 고장이 발생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게임 내 npc들과 통화를 하는 시스템인 '홀로콜'이 대표적이 사례다. 사이버펑크 2077 초창기부터 홀로콜은 각종 버그의 온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수정하기에는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너무 높은, 리스크가 큰 작업이었다.

버그의 문제는 모든 환경에서 일률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주 크다. 플레이어가 보내준 세이브 데이터로 검증을 하려 해도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고, 누군가는 편안하게 게임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고통을 받으며 버그를 마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상황에서 문제라고 제기된 무언가를 고친다는 것은, 어쩌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홀로콜의 경우에는 어떤 QA 대가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져와 해결이 가능했다. 바로 문제를 마주한 플레이어만 고칠 수 있도록 게임 속에 해결 툴을 심어놓는 방안이었다. 이 방법을 통해 빌드를 완전히 고쳐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대신, 일부 이용자에게만 도움을 줄 수 있었는데, 그 방법 또한 매우 획기적이어서 많은 팬들의 칭찬을 받은 사례가 되었다.

그 방법은 바로 이렇다. 게임 속에 있는 전화기를 활용한 것이다. 전화기와 상호작용한 뒤 특정 번호로 전화를 걸면 '홀로픽서'라는 프로그램을 실행해 홀로콜 버그를 고치도록 한 것인데, 고객 지원 부서에 전화를 한 이용자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게임 속 전화기로 게임을 고친 경험이 아주 매력적이었다는 피드백도 남길 정도였다고 한다.



▲ 여기다 전화 걸면 버그가 고쳐진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이처럼 하나의 버그를 고치는 데 조차 많은 과정과 고민이 함께하는 법인데, CDPR은 3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플레이어의 리포트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게임을 고친 끝에 2.0 패치와 확장팩을 기점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카롤리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달라진 이용자의 반응이 담긴 소셜 네트워크 갈무리를 보여주며, 강연 초반에 질문했던 담배 피우는 로봇에 대한 정답을 이야기했다. 화면에는 담배 피우는 로봇을 "내 인생 최고의 업데이트야"라며, "절대, 고치지 마 CDPR"이라고 말한 한 유저의 반응이 나타났다.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이게 버그인지 의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절대 고칠 필요가 없는지' 아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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