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메타버스 쿠데타

칼럼 | 이두현 기자 | 댓글: 2개 |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황정민 분)의 인상깊은 말이다. 영화에서 전두광은 성공을 이루기 위해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려 애쓴다. 결국 대통령 재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 전두광은 혁명으로 마무리 짓고 영화는 끝이 난다.

최근 비교적 조용히 추진됐던 법이 있다. 상황을 지켜보던 국회 관계자는 "이건 사실상 법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거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영화와 다른 점은, 재가(법사위 의결)를 받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해당 법은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안(메타버스진흥법)의 '임시기준'이다. 임시기준은 메타버스 관련 사업에서 적절한 법률이 없으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정할 수 있단 개념이다. 산업 진흥을 위해 우선 허용하잔 데에서 비롯됐다. 상임위인 국회 과기위 단계에선 별 논의 없이 통과됐다.

제동은 법원행정처가 걸었다. 법원행정처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표현을 쓰며 해당 조항에 우려를 표시했다. 임시기준이 권력분립주의와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어긋나지 않는지 추가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무원 언어로 추가 검토 권고는 '이대로 통과되면 안 된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려는 헌법 강의부터 시작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권력분립주의에 입각하여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중요한 사항은 원칙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국회에 의하여 법률의 형식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임시기준에서 '장관이 마련할 수 있다'를 지적하는 부분이다. 임명직인 장관이 선출된 기관인 국회의 역할을 대신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법원행정처는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중앙행정기관의 장"이라 꼬집어 표현하며,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제정할 수 있고"라 지적하면서, "포괄위임금지원칙이 준수되었는지를 엄격히 살필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엄격히 살펴달라는 것도 반대한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특히 "임시기준 마련의 절차와 방법이 사실상 대통령령에 '백지 위임'되어 있다"라며 "국민주권주의나 권력분립주의가 훼손될 우려가 상대적으로 크다"라고 사실상 만류했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 헌법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단 설명이다. 앞서 국회 관계자가 '쿠데타'라는 표현을 쓴 이유다.

적어도 '메타버스 산업'을 진흥시켜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메타버스 산업 진흥'으로 눈을 가리는 건 의미가 다르다. 국민이 임시기준으로 무엇이 정해지고, 어떤 변화가 초래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미 일각에선 임시기준을 통해 그동안 게임산업법으로 규제한 온라인 카지노와 P2E(play to earn) 등이 풀어질 거란 우려도 제기됐다. 최소한의 예상치다.




다행스러운 점은 법사위 단계에서 법원행정처 우려가 반영돼 문제의 법률이 삭제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임시기준은 메타버스진흥법의 핵심 개념 중 하나다. 삭제된 내용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법사위에 계류된 메타버스진흥법 추이를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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