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녀와 게임, 이성을 내팽개치지 말아주십시오

칼럼 | 이동원 기자 | 댓글: 60개 |
경향신문에 칼럼이 하나 실렸습니다. '청소년 게임중독 방치하는 업계'라는 제목의 칼럼입니다.


칼럼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글쓴이는 아이가 둘 있는 학부형입니다. 그런데 두 아이가 요즘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걱정인 모양입니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사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느라 학교 숙제를 하지 않는 둘째 아이와 말다툼을 합니다. 두 아이가 서로 노트북을 차지하려고 난투전을 벌이는 것을 보며 가슴이 찢어진다고 합니다.


결국, 글쓴이는 구토가 날 지경인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이내 이성을 내팽개칩니다. 게임은 마약이라는 일갈. 그리고 인터넷 게임중독 예방과 치료를 위한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 이야기가 따라나옵니다. 게임사로부터 일정 금액을 징수할 수 있도록 했으니, 군소리 말고 내라는 겁니다.


칼럼에 따르면 그가 게임을 '마약'처럼 싫어하게 된 것은 자녀의 게임 이용에 대한 불만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논조는 동 세대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진한 공감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이 시대 청소년을 자녀로 둔 대부분의 부모가 겪고 있는 공통의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셧다운제를 도입한다고, 게임사에서 돈을 몇 푼 더 걷는다고, 게임을 좋아하는 자녀가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셧다운제니 기금 법안이니 하는 건 잠시 접어두고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글쓴이가 바라는 것이 자녀가 적절하게 게임을 이용하고 스스로 게임 이용 시간을 콘트롤하는 모습을 보여 부모의 마음을 안심시켜주는 것이라면, 다른 좋은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 왜 우리 자녀는 이렇게 게임을 많이 하는 걸까?


많은 전문가가 셧다운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하니까 못하게 하자'가 아니라, '왜 그렇게 많이 하게 되었느냐'를 먼저 살펴야 하지 않느냐고요.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셧다운제를 하든 무슨 다른 국가적 규제가 가해지든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청소년인권행동단체 아수나로의 공현 씨는 청소년들이 처한 우리나라의 환경에 주목합니다. 그는 이런 환경을 크게 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사회심리적 요인으로 구분해 설명합니다.


우선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세계적으로 긴 학습시간에 높은 사교육 비율로 여가를 누릴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집에 오면 짧은 시간 몰입해 즐길 수 있는 최선의 놀이로 게임을 선택한다는 것이 시간적 환경요인입니다. 공간적으로는 청소년들이 지역 사회에서 즐기며 놀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하다는 점, 경제적으로는 친권자에게 종속된 청소년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놀이 문화가 게임밖에 없다는 점이 꼽힙니다. 또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입시, 진로 스트레스에 대한 해소책으로 온라인 가상 사회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 사회심리적 요인입니다.


재미있는 연구자료가 있어 소개합니다. 2008년 문화사회연구소의 조사로는, 사실 게임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20대로 10대들의 게임 이용시간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이는 학교나 학원 등 게임을 할 시간이 애초에 제약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 20대 - 30대 - 10대 순으로 게임이용시간이 나타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노동 또는 학습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게임 이용시간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어떤 특정한 수준이 되면 오히려 게임 이용시간이 늘어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그 변곡점은 노동시간이 주당 48시간을 넘어서는 순간, 학습시간은 주당 26시간을 넘어서는 순간에 나타났습니다.


이는 과도한 노동이나 학습이 오히려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해, 이를 없애기 위해 게임에 더 몰입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줄어들던 게임시간이, 노동/학습시간이 과도해지는 순간 늘어나는 모습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고요?


어쩌면 게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도한 학업, 경쟁, 스트레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식이나 여가가 될 만한 다른 문화적 요소나 배려가 없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의 선택은 굉장히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관련기사 : [칼럼] 셧다운제, 차단과 규제 논리로 풀어갈 수 없는 것



▣ 게입업계 종사자들은 게임 이용 교육을 어떻게 할까?


물론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리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게임이 이토록 인기가 있는 것은, 게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재미와 흥미 요소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세대에서 게임이 이토록 중요해진 것은 단순히 게임이 가지고 있는 '중독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게임'을 제외하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게임은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소재가 되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친구들과 다시 만나게 하는 가상의 놀이터이기도 합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집 앞 놀이터에 동네 친구들과 모여 구슬치기하던 것이, 지금은 온라인 공간 특히 게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게임은 어떤 '기호품'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분이자 '환경' 그 자체가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글쓴이는 마지막에 게입업체 대표들에게 '당신 회사가 만든 게임을 자녀에게 권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텔레비전 방송에 15세 이용가 이렇게 나오는 것처럼 게임도 연령 정보를 제공하는 등급제도가 있다고 알려 드리고 싶지만, 별개로 글쓴이의 질문에 다른 이야기로 답해보겠습니다.







기자는 게임업계에 일하면서 자녀를 두고 있는 분들에게, 부모로서 자녀의 게임 이용을 어떻게 교육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해봤습니다. 대답은 다양했습니다.


어떤 게임사 대표는 자녀와 명확하게 약속을 해서 하루에 2시간 이상은 게임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 게임매체 편집장님은 아예 자녀와 함께 게임을 한다고 했습니다. 같이 게임을 하기 때문에 더 좋은 게임을 알려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개발자는 집에 게임이 매우 많아서, 오히려 자녀가 질려 적당히 즐기게 되더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게임학을 전공하는 박사님은 상당히 수준 높은 게임들만 골라서 권하면 결국 자녀도 게임을 보고 가려낼 수 있는 눈이 생겨, 오히려 게임을 적당히 즐기게 된다는 교육철학을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분들을 게임 전문가라고는 할 수 있어도 자녀 교육 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정답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나름대로 찾아낸 방법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게임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라져야 할 어떤 공공의 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건전한 놀이 문화로 인정하고 어떻게 잘 이용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는 점입니다.


부모의 가슴이 찢어지고 구토가 나고 이성이 실종되는 지경까지 가지 않은 것은 이런 관점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요. 이분들의 자녀는 게임을 이용하는 데 부정적인 느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건전하게 게임을 이용하는 길이 열렸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런 부분이 바로 전문가들이 권하는 게임 이용 교육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 자녀의 게임이용. 전문가들이 권하는 해결방법은?


말린다고 듣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는 자녀의 게임 이용.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먼저 부모님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자녀의 게임 이용은 문화를 넘어서서 환경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학교에 가고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드는 것과 같이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녀의 게임이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예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나면, 자녀들에게 무엇을 길러주어야 하는 것은 명확해집니다. 게임에 대한 조절능력, 자기 통제능력을 길러주는 것. 그것은 가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문가들이 자녀의 게임 이용 조절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제안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출발점은 부모가 함께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혼자 게임을 하게 하지 말고 함께 게임을 하고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자녀가 어떤 게임사이트에 누구의 명의로 접속하는지, 또 어떤 게임을 하는지 살펴볼 수 있게 됩니다.


적어도 자녀가 하는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는 알아야 대화가 성립합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직접 부모가 자녀들에게 게임을 배워보는 시간을 갖길 권합니다. 자녀들이 하고 있는 쉬운 게임에서 시작해 점점 자녀가 즐기고 있는 게임까지 단계를 밟아보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자신이 하는 게임을 가르쳐주는 것을 굉장히 재미있어 합니다. 또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부모가 직접 느끼고 나면, 자녀들이 어떤 면에서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함께 해보고, 배우기도 하면서 게임을 소재로 대화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그 이후는 훨씬 선택지가 넓어집니다. 게임일지를 기록하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컴퓨터를 끄는 날로 정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을 즐기는 시간을 합의해서 시간을 스스로 지키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게임은 하게 해라, 그러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해라. 이것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자녀 게임 이용의 원칙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컴퓨터 빨리 꺼라'가 아니라 '지금 한참 재밌겠구나, 이번 판은 언제 끝나니'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느껴지십니까?





▲ 게임이용확인서비스 (http://gamecheck.org)




▣ 놀이문화는 '악'? 내팽개친 이성을 주워들며...


그래서 위 칼럼의 글쓴이가 '게임사를 문 닫는 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라며 적의를 드러낸 것을 보고, 굉장한 걱정이 들었습니다. 글쓴이의 자녀가 말입니다.


한 때는 영화도 호환 마마와 비교되는 '악'이었습니다. 만화책은 어린이날이 되면 길 한복판에서 '화형식'을 당해야 했습니다. 새로운 미디어는 늘 '마녀'처럼 취급당해왔고, 그게 지금 시대에는 '게임'이 되었습니다. 놀이문화를 억압하는 세력은 늘 있었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악'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동안은, 우리 아이들은 악에 물들어 있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인식은 게임을 긍정적으로 이용할 가능성 마저 빼앗아 가버립니다.


부모가 게임을 싫어하면 게임을 하는 자녀의 마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게임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게임을 해야 하는 자신의 심경과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 부모가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무조건 게임 시간을 줄이고 줄여야만 하는 가족의 분위기에서, 건강하게 여가를 즐기고 스트레스를 없애려는 자녀의 바람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더욱더 게임에 집중하려 할 것입니다.


게임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해버리고 싶은가요. 얄미운 게임사에 세금폭탄이라도 던지고 싶은가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디어 탄압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며, 게임과 아이와 학부모를 갈라놓는 일이 아닙니다.


간곡히 부탁합니다. 적어도 소중한 자녀가 걸려 있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이성을 내팽개치진 말아주십시오.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의 그런 인식 때문에, 스스로 '악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괴롭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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