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방치형 성공 신화, '레전드 오브 슬라임'의 다음 목표는?

인터뷰 | 김규만 기자 | 댓글: 2개 |
캐주얼 방치형 RPG, '레전드 오브 슬라임'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에 '키우기'의 재미를 전달한 로드컴플릿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게임의 흥행 이후 여러 국내 기업에서 방치형 RPG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한 것. 특히,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과는 전혀 다른 환경인 글로벌에서도 높은 성과를 기록한 덕분에 주목이 더해졌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GDC 2024에서도 그러한 관심은 증명됐다. 올해 로드컴플릿은 레전드 오브 슬라임에 대한 강연과 함께, AI를 활용해 테스트 자동화를 구축한 사례까지 두 개의 강연을 진행했다.

로드컴플릿이 준비한 모든 강연이 마무리된 이후, 강연자 바깥에서 배수정 대표를 만나 '레전드 오브 슬라임'의 성공과 최근 국내외 모바일 게임 시장 상황 등 여러 방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 배수정 로드컴플릿 대표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 그리고 고민

배 대표는 '레전드 오브 슬라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요인으로, 북미 권역에서는 과거 '탭 타이탄' 이후 이렇다할 동종 장르 게임이 등장하지 않았던 점이 크다고 진단했다. 2014년 출시된 '탭 타이탄'은 말하자면 1세대 방치형 게임으로, 10년이 흐른 후 글로벌 시장에서는 오히려 방치형 게임이 신선함을 불러 일으켰다는 이야기다.

확실히 한국 모바일 게임 사장과 비교해 보면 '레전드 오브 슬라임'은 방치형 RPG 중에서도 굉장히 캐주얼한 측에 속한다. 배 대표는 "일단은 가볍게 만들어야 글로벌 이용자들이 게임의 특징을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며, "처음부터 랭킹을 강조하거나, 어려운 시스템을 선보일 경우 이용자 풀만 작아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레전드 오브 슬라임을 통해 글로벌 시장의 문을 연 로드컴플릿은 지난 1월 해외 퍼블리셔 앱퀀텀과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 앱퀀텀은 사이프러스에 본사를 둔 캐주얼 게임 전문 퍼블리셔로 다수의 방치형, 타이쿤, RPG 작품 등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2022년에는 꿈의 집 등 글로벌 매출 상위권 게임을 보유한 유럽 퍼블리셔 플레이릭스와의 제휴를 통해 그로스 및 서비스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

이처럼 퍼블리셔와 협업을 판단한 데에는 글로벌 시장의 라이브 운영이 국내 환경과는 차이가 있다는 고민이 바탕이 되었다. 로드컴플릿의 지향점은 장기적인 라이브 서비스를 글로벌에서도 잘 수행할 수 있는 DNA를 갖추는 것이다.

배 대표는 "글로벌 시장의 라이브 운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각 유저에 맞춘 서비스가 고루 갖춰져 있다. 마치 편집샵 같은 상점이 고객의 니즈와 동선에 따라 상품의 진열을 달리 하듯, 경험이 각기 다른 이용자의 여정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를 제안하는 구조의 툴을 직접 만드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사업적 관점으로 봤을 때는 퍼블리셔와 협업하며 총 매출은 줄었지만, 오히려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외 퍼블리셔, 게임사들의 협업 분위기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해외 개발사/퍼블리셔는 서로 자신의 주요 데이터를 공유하고, 함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 보이면 즉시 실무진이 모여 협업을 하는 데 스스럼이 없다고 전했다. 이처럼 빠른 교류 이뤄지는 환경과 분위기 덕분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트렌드에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배수정 대표의 의견이다.



▲ GDC 2024에서 강연자로 참석한 배수정 대표

글로벌 모바일게임 시장, 작은 차별점이 좋은 기회 만든다

마치 철옹성만 같던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순위 모바일 MMORPG 장벽에 지난해 말부터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중국산 방치형 RPG인 '버섯커 키우기'가 리니지M을 제치고 1위를 굳히는 모습도 더러 볼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배수정 대표는 이러한 이러한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의 변화를 '외세의 침략'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한편, 그간 너무 하나의 장르에만 자본과 관심이 집중돼, 글로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반적인 변화에 대응하는 데 상대적으로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진단했다.

배 대표에 따르면 시장이 고착화되어 있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매치3, 카지노를 중심으로 한 다수의 위너 앱들이 매출 순위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약간의 변화를 준 신작들이 치고 올라는 경우가 있는 만큼, 의외로 전략적이 방향으로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국내에서는 캐주얼 게임은 돈을 못 번다는 인식이 아직 강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파이를 놓고 보면 가장 높은 성과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캐주얼 장르다. 배수정 대표는 오히려 미드코어 게임 이용자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디자인, 그리고 재미가 캐주얼 팬들에게는 여전히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물론 캐주얼 게이머가 이해할 수 있는 속도나 콘텐츠의 깊이를 고려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조금만 다른 신선함으로도 좋은 성과를 낼 기회가 열려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높은 성과를 보인 '버섯커 키우기'에 대한 감상도 전했다. 최근 가장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지만,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전개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경이다. 배 대표에 따르면 '버섯커 키우기'의 경우 초반 성장 곡선이 레전드 오브 슬라임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만큼, 북미 지역은 물론 일반적인 '키우기' 게임 보다는 오래 그 위치를 사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잠재적 기회,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캐치하기 위해선 기민한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하지만, 빠르게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팀의 규모 또한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로드컴플릿은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개발 환경을 기민하게 구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GDC 현장에서도 제한된 QA 인력 상황에서 AI 플레이테스팅 환경을 구축한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배수정 대표는 추후에도 다양한 개발 분야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을 전했다. 그는 "이용자들이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일러스트부터 AI의 유행이 시작해 반감이 있는 것 같다"면서도, "프로덕션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을 최적화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다만, 아직 AI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사람이 해야만 하는 작업들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주의다. 누가 해도 상관 없는, 반복적인 작업등은 자동화를 통해 작업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했다.

로드컴플릿의 목표는 '레전드 오브 슬라임'을 차트를 열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큰 변화가 없는, 이른바 에버그린 IP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용자 모객뿐 아니라, 얼마나 운영을 잘 구축하느냐가 핵심이다. 배수정 대표는 해외 퍼블리셔 협업을 통해 글로벌 서비스의 경험을 다지는 한 편, 역량 있는 인재 채용을 통해 글로벌 시장 영향력 확대에 속도를 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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