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렌시아 - 순례자의 성소-겸손
남을 존중하지 않고 나 자신만 내세웠던 적을 후회한다.
신의 눈동자를 보게 된다면 내 죄를 씻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곳을 찾아갔다.
그곳에 있는 가장 높은 제단에서 나는 기도했다.
신의 눈동자는 볼 수 없었지만 내 죄를 잊지 않기 위해 제단 뒤에 재물을 묻어 두기로 했다.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2 하이델 - 핏빛 수도원
붉은빛으로 물든 이곳은 누구에게는 아름다운 곳이겠지만 누구에게는 무서운 곳…
섬뜩한 기억이 떠오른다. 다리 밑 세 개의 문. 그 가운데 문에 내 기억을 묻어두었다.
#3 일리야 섬
어디를 둘러봐도 바다가 보인다. 가장 높은 바다. 봉화대에서 동쪽으로 열 걸음.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가장 좋았다.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묻어 놔야지.
#4 하이델 - 글리시 폐허
그곳을 떠난 지 몇 해가 흘렀는지… 어렸을 적 친구들과 그렸던 낙서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우물에 있는 낙서까지 옮겨 놓지는 않았겠지...
#5 알티노바 - 라이칼 폭포
내 발밑부터 시작되어 떨어지는 물줄기는 답답했던 마음마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이 물줄기의 끝을 보고 싶지만, 돌로 변하는 게 두려워 포기했다.
다시 오기는 힘들 것 같으니 내 발아래 기억을 묻어두겠다.
#6 알티노바 - 투기장
환호하는 사람들. 오른손에 네 개, 왼손에 다섯 개.
피와 살이 없으니 도끼로 내려찍어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구나.
#7 타리프 - 오마르 용암 동굴
사막에서는 그나마 낮에만 더웠지… 이곳은 하루 종일 더웠다.
그 붉은 광경을 보고 싶어 아래를 내려다보다 타들어 가는 열기에 뒷걸음질 쳤다.
조금만 더 갔으면 작은 구멍에 빠질 뻔했군. 마지막 여정이 될 뻔한 이곳에 기억을 묻어 놓을 것이다.
#8 칼페온 - 지하 감옥
하루 세 번 그 울림은 모두를 평등하게 만든다.
하지만 깊은 곳에는 울림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잔인한 곳.
그곳 가장 깊은 벽에 잔인한 기억을 묻어 두겠다.
#9 칼페온 - 마녀의 예배당
동화 같은 이야기만 생각한다면 시작조차 하지 마라.
두 손 모아 사슬에 묶인 채 불에타 버린 세 개의 시체는 자랑스러운 제물이 된 것 인지 사슬 때문에 발버둥 칠 수 없던 것인지 그녀만이 알 것이다.
#10 보아 섬
이곳 가장 높은 곳에서 수많은 크리오들의 모습을 보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같다.
가끔 낚시하는 크리오들을 보면 언젠간 인간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1 월드보스 카란다 장소
그들은 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온순했다. 높은 곳에서 보는 이 광경은 장관이 따로 없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이 가운데에 아름다운 기억을 묻어두겠다.
욕심을 버려라. 하늘에서 땅바닥으로 추락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12 하이델 - 세렌디아 신전
피를 갈망하는 두 마리의 뱀이 너의 목을 물지 않았다고 안심하지 마라.
피 냄새를 맡았다면 더 큰 두려움이 너를 집어삼킬 것이다.
#13 아레하자 마을 - 아레하 야자숲
사막과 바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
사막을 지나 더위에 지친 나는 이 오아시스 같은 곳을 보자마자 뛰어들었다.
더위를 식히고 가운데 가장 큰 바위에 올라섰을 때 비로소 우화 속 소년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14 모래알 바자르 - 초승달 신전
초승달, 아름다운 이름의 이면에 숨겨진 척박함과 날카로움 그리고 고독함을 모른 채..
자연이 만들어준 바위 그늘에 혼자 앉아 사색에 잠겼다.
#15 알티노바 - 폐허도시 룬
성문에 들어서는 순간 사막의 오아시스보다 찬란한 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역사 속 무수한 도시들이 지금은 한 줌의 재가 된 것처럼 어느 날 이곳도 그렇게 사라진다면..
아마도 이 도시를 시기한 아알님의 질투일 거라고.
#16 아레하자 마을 - 등대
발렌시아에서, 아니 전 대륙에서 가장 먼저 내일을 맞이하는 마을.
태양만큼 밝은 빛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등대 밑에 내일에 대한 기대를 묻고 간다.
#17 알티노바 - 노병의 협곡
비록 육신은 늙어 힘을 잃었으나 정신은 오롯이 생생한 이들이 마지막 꽃을 피우는 이곳에서 서글픔이 밀려왔다.
노병들이 쉬어가는 협곡의 바위에 그들의 이름을 새겨넣으며 감정을 달랬다.
#18 발렌시아 - 라크샨 천문대
별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밤하늘이 검기 때문이오.
이토록 아름다운 빛을 볼 수 있다면 밤하늘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소!
그 어느 곳보다 당신들과 가까운 이곳에서 영원히 함께하고 싶소.
#19 발렌시아 - 아크만
우상숭배라는 끔찍한 광경을 목도함에 있어 또 한 가지의 깨달음을 얻었소.
이들 또한 아알님의 자비 아래 존재함을.
그분의 자비는 끝이 없기에 우매한 자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적나라한 우상숭배가 담긴 비석에 통탄과 깨달음의 마음을 담아서.
#20 벨리아 - 약탈의 숲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내게 웃음을 지어 보였고.
두 번째로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세 번째로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내게 칼을 겨누었다.
비열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나는 원하는 대로 보물을 주었고.
원하지 않았을 업보를 남겼다.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돌 밑에.
#21 발렌시아 - 가비냐 대분화구
온몸이 바스러질 듯한 열기를 지나 도착한 분화구.
징벌의 정화인지 창조의 탄생인지 모르는 삶과 죽음, 그 가운데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