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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희생 1부

Leetaehee
조회: 1731
2020-11-14 08:36:06

상처
I

자발라 사령관은 서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책상 뒤에서 오시리스를 맞이했다. 구름으로 뒤덮인 장막 너머에서 다시 벼려진 여행자의 은은한 빛이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오시리스. 그대가 무사히 돌아오다니 정말 기쁘군. 자, 앉게."
 
스트레스 때문에 자발라의 얼굴에는 깊은 골이 패어 있었다. 걱정과 희망, 사명감과 우정, 생존과 멸종이 치열하게 다투는 전장이었다. 오시리스는 자발라의 눈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서 배신자이자 추방자, 이단자를 보는 눈빛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눈은 지혜를 찾고 있었다. 짐의 무게를 알고 있는 상대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사람의 눈이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오시리스는 선 채로 불쑥 말했다. "무언과 어둠의 세력과 교신하고 있다. 에라미스 때문에 우리의 경계까지 다가온 다른 위협을 보지 못 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  그의 불길한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작전 지원은 할 수 있네. 하지만 그게 전부야. 선봉대는 유로파에 집중하고 있네. 모호한 징조 때문에 직면한 위협을 포기할 수는 없어."

오시리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선봉대가 언제부터 한 가지 임무만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이었지?" 그는 자발라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손가락을 창처럼 내밀었다. "그들의 교신을 감청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왜 모르는 거야?"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잖나. 자원이 부족해서 행성계 전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수는 없네. 나는 에리스를 믿고 있어…" 자발라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수호자 57명이 도시로 돌아오지 않았네. 사망자도, 연락이 두절된 이들도 있어. 회의 진영에서는 이번 사태를 감안하여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네. 솔직히 말해서, 난 자네도 부름에 응해 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네."

"내가 이렇게 왔는데 아무 계획도 없다고 하는 건가. 그러면 차라리 내가—"

"제자리를 지킬 줄 모르는 수호자들과 탁상공론하는 멍청이들의 잔소리를 듣고 있을 생각은 없어." 자발라는 천천히 책상 위에 손을 얹었다. 당장이라도 손에 잡히는 걸 부숴 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 같았다. "그대가 가져온 정보는 충분히 조사할 가치가 있네. 그대도 돕고 싶다면, 이 단서를 추적할 수 있는 전권을 위임해 주지. 도시의 기록과 지원 시스템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아. 하지만 추가 우주선이나 인력을 할당해 줄 수는 없네."

오시리스는 더 요구할 것이 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하지. 고맙다." 그는 창문의 강화 유리를 향해 손짓했다. "여행자가 다시 벼려지는 모습은 정말이지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경외감이 실려 있었다. 

자발라는 여행자의 창백한 빛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래. 그보다는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이 되길 바랐는데."

"이 모든 사건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어, 자발라. 내가 예견했어야 하는데… 난 그저 내 잘못을 바로잡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돕겠네, 오시리스. 계속 연락하게. 그리고 상황이 심각해지면, 전력을 동원하여 그대가 찾아낼 마귀를 공격하겠네."

II


원예학

사이렌은 오랫동안 이오 위에서 흐느끼며 한때 살아 있던 세계의 죽음을 애도했다.

잠자며 남겨진 생명은 요람 깊은 곳에서 수풀을 깨울 바람을 기다렸다.

불사조는 불길과 황금 타래의 날개를 펄럭이며 구원을 위해 내려앉았고,

타오르는 부리 안쪽 깊은 곳에는 피어나 감시자들을 이끌어 올 씨앗이 묻혀 있었다.

"아주 좋은데요. 그게… 자기애가 조금만 덜 드러나면 좋겠지만, 몇십 년밖에 연습할 시간이 없었으니 이해해야죠." 사기라가 그를 자극했다.

 "완성된 게 아니야." 오시리스는 투덜거렸다. "내 개인 드라이브를 읽는 건 그만둬라."
 
우주를 가르며 이오를 향해 비행하는 오시리스의 도약선 위에서 찬란한 색상의 프랙탈이 반짝이며 갈라졌다.

이오를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때의 일이 아직도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맹렬하게 흐르는 목성 대기의 띠 아래에서 위장한 채 푸른 위성과 함께 떠돌던 때가 떠올랐다. 두 천체 사이에 깊이 박혀 양쪽을 가르던 쐐기가 떠올랐다. 

그의 앞에 있는 피라미드로부터, 음탕한 들불과 같은 빛의 촉수가 요람을 붙잡으려는 손아귀처럼 뻗어 나왔다. 정신적 외상이 재현된 듯 명료한 광경이었다. 대기권에 버티고 있는 검고 각진 덩어리와 대조되어, 이오는 아주 왜소해 보였다. 그때도 그는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다시 접근하는 지금도 그 검은 중력으로 떨어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인트에게는 아직 안 보냈나요?" 사기라가 펄럭이며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가 오시리스를 다시 우주를 가로지르는 현실로 끌어내렸다.

"아니. 얘기했잖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얘기는 했고요? 그러면 그분도 할 말이 아주 많을 텐데요."
 
"그만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안 그래도 자꾸 귀찮게 군단 말이지." 오시리스는 불쑥 투덜거렸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우린 할 일이 있다."

그들은 흔들거리며 도약에서 빠져나왔다. 목성의 위용이 타오르는 불길처럼 앞을 가득 채웠다. 수십 개의 위성이 신중하고 우직한 리듬으로 거대한 행성 주위를 돌며, 수천 년에 걸쳐 우주를 중력 마찰로 잘게 쪼갰다. 그중에 이오는 없었다. 오시리스는 좌표를 거듭 확인했다. 사기라도 현재 좌표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들은 함께 기이한 풍광을 바라봤다.  

태양계 천체들의 궤도 측정값은 그대로였다. 중력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행성계 자체는 움푹 패였다. 네 개의 천체가 우주에서 사라졌다. 그의 눈이 이오의 자리에 도사린 영원한 심연의 아귀를 응시했다. 어둠의 이상 현상. 오시리스는 화장터에서 피어오르는 장작불을 보는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봤다. 어딘가 사체와 닮은 듯했다. 흐릿하게만 기억하는 이방인의 모습. 

이오가 사라진 자리에는 도려낸 흔적만 남아 있었다. 깨달음이 속삭이고 떠나갔다.

III


토성은 타이탄의 상실을 슬퍼했다. 한때 심연의 식도 안으로 가라앉았던 진청색 보석. 그 자리에는 중력렌즈 때문에 빛으로 감싸인 어둠과 함께 이상 현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시리스는 억지로 눈을 돌려 형제와도 같은 공허를 바라봤다. 굴복자 전쟁에서 오릭스의 칼날이 토성의 고리를 잘라낸 자국이었다. 그 고리 안쪽, 이상 현상의 궤도에서 고독한 드레드노트 한 척이 희미한 속삭임으로 응답하고 있었다.

"저 소리 들리나?" 오시리스는 사기라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는 우주선의 스캔 장치를 이상 현상 쪽으로 돌렸다. "반스가 얘기한 음조와 같아. 첨탑에서, 그리고 피라미드에서. 이오의 자리를 빼앗은 이상 현상에서도 나오고 있었어."

"아무것도 들리진 않지만, 분명히 느껴져요." 사기라는 의체 덮개를 잔뜩 움츠렸다. "오싹한 한기가 제 가상의 척수를 따라 흘러내려요."

오시리스는 시선을 내렸다. 그들의 실패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사람의 목숨을 희생하여 지키고자 했던 요람의 나무와 숲, 모든 황금기의 보물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모든 승리가 적의 손아귀에 강탈당해, 모든 의미가 사라졌다.

그 모든 힘이, 그 모든 영웅적 업적이 결국 이런 운명을 초래했다. 그리고 그 운명이 닥쳐왔을 때, 그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포보스와 데이모스가 화성의 무덤 주위를 공전했다. 그곳에서 술렁이며 짓무르는 심연이 자신의 영향력에 붙잡힌 작은 위성들에게 굶주린 손을 뻗고 있었다. 전쟁지능은 붕괴되었으나, 어딘가 숨어 가까스로 명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또한 다시 생존자가 되었다. 

아나는 여전히 죽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녀도 구시대의 귀감으로서 다시 전장에 나서야 한다. 불안정한 신참들을 이끌고 전방으로 돌진해야 한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도시로 물러나 자발라의 근심을 키우고 있다. 라스푸틴을 완벽하게 복원하여 공격해 오는 밤의 공포를 격퇴하겠다며 공허한 약속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지능은 피라미드를 막지 않았고, 지키지 않은 약속은 오시리스를 지치게 했다. 적어도 슬론과 애셔는 적의 공습에 직접 맞섰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가 그토록 단호한 침착함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앞길을 알려면 횃불을 들어야 하지." 그는 중얼거렸다.

사기라는 말이 없었다. 오시리스는 사라진 행성 하나하나의 무게가 사기라의 희망을 이 끔찍한 현실로 끌어내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계속해서 여기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우주선은 태양의 맹렬한 태양풍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등 뒤에서 찬란한 불길이 타올랐다. 오시리스의 희망은 여전히 여기에서 피라미드의 모난 그림자 아래에 억눌린 수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 희망이 거짓임을 알았다. 눈에 보이는 건 상처뿐이었다. 불길에 둘러싸인 구덩이. 그는 무한의 숲에서 보았던 광대한 무를 떠올렸다. 그 암호화된 전당 안에서 예지력을 잃었던 것을 한탄했다. 혹시 거기에서라면, 그가 사기라에게 묻고 싶었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우리를 이 길로 이끈 걸까?"

그는 마지막 방문이 분노에 이끌렸던 것임을 상기했다. 사기라도 그가 갑자기 등대를 찾아가 반스의 물품을 뒤졌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건 내 성물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사기라의 입을 다물게 했다. 사실 그때 오시리스를 수성으로 이끌었던 건 지금과 똑같은 감정, 공포였다.

"왜 자발라에게 등대에 관해 얘기하지 않은 거예요? 나무에 대해서는요?" 사기라가 물었다. 오시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움을 줄 사람들이 있어요. 지금은 암흑기가 아니에요. 혼자서 하실 필요는 없다고요."

"보여 줄 게 생기면 얘기할 거다. 지금은 의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오시리스는 모니터에 흐르는 분석 데이터를 바라봤다.

"이제 어디가 남았죠?"

"마라의 메시지 때문에 이 무모한 여정이 시작됐고, 난 그녀가 부탁을 따랐다. 각성자가 답을 줄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친밀한 거리

꿈의 도시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텅 빈 자수정 동굴 안에서, 오시리스는 호박색 물방울이 땅에 떨어져 터지며 흐릿한 수증기를 피어 올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희미한 충격음이 수정 벽에 반사되고 서로 합쳐지며 점점 더 커져서 어느새 동굴을 뒤흔드는 혼돈의 공명을 일으켰다. 따끔한 가속도가 예측할 수 없는 최후로 그를 잡아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그걸 통과할 기회는 단 하나뿐이다.

"아름답네요. 여기 비가 내리는 모습은 처음이에요." 사기라의 목소리가 상념에 잠겨 있던 오시리스를 깨웠다.

빗방울의 황갈색 색조는 젖은 지면에 떨어져 사라졌다. 그는 잠깐 사기라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느냐고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대신 자기 생각을 뱉었다. "페트라는 쓸모 없었어."

"마라처럼 당신에 관해 잘 알지 못하니까요." 사기라는 도약선 안으로 돌아오며 아쉬운 듯 말했다. "좋아요. 또 다시 우주선에 들어왔네요."

"우리 데이터를 읽던 그녀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봤잖아. 뭔가 알고 있지만 우리에게 밝히지 않는 거야."

"그냥 조심하는 건지도 모르죠."

"리프의 의심이나 풀고 있을 시간은 없다."

"그들도 정말 오랜만에 당신을 다시 만났잖아요, 오시리스."

"그건 여왕도 마찬가지지." 오시리스는 콧방귀를 뀌고는 조종석에 들어섰다. "페트라가 줄 수 있는 정보라고는 군체의 불규칙적인 활동에 관한 것뿐이었어. 놈들이 그러지 않은 적이 있었나?"

"다음엔 제가 얘기할게요. 그편이 나을지도 몰라요."

"거기로 돌아간다면 마음대로 해도 좋아. 지금은 탑으로 간다."

"그거 정말 끝내주는 생각이에요. 드디어 느긋하게 의체의 힘을 뺄 수 있겠네요." 사기라가 덮개를 펼쳤다. "탑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제페토가 자꾸 의자 밑을 확인해 봤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녀는 작은 의체 조각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아니."

사기라는 비행 전 확인 작업을 시작하는 오시리스에게 홍채를 고정했다. "일부러 더 피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정말 아니야."

"제가 볼게요." 사기라는 덮개를 펄럭이며 그의 정강이를 지나쳐 조종사 좌석 아래로 들어갔다. 먹먹한 "찾았어요!" 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 왔다. 그녀는 연보라색 리본으로 묶고 불타오르는 새 모양의 조악한 밀랍 인장으로 봉인된, 구겨진 쪽지를 갖고 나타났다. 

"인장을 만들어 줬어요!" 잔뜩 들뜬 기분에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뭐라고 적혀 있어, 사기라?"

"오, 이제는 궁금하신 모양이죠?"

"사기라."

"별로 관심 없으신 것 같네요. 그냥 제가 읽어볼게요—"

"돌아가면 그가 물어볼 거야."

"정 그렇게 알고 싶으시다면… 당신의 새로운 시가 마음에 든대요."

"사기라!"

황혼 무렵에도 탑의 밀집된 인파는 활기가 넘쳤다. 자발라의 사무실 밖에서, 오시리스는 두꺼운 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아이코라의 침착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사려 깊은 표현을 신중하게 골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시리스는 그들을 방해해도 괜찮을까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그들의 어깨에는 이미 너무 무거운 짐이 놓여 있었다. 격납고로 가자.

"세인트를 만나러 가는 거라면 저도 같이 갈게요. 그게 아니면, 그냥 우주선에서 기다리고요." 사기라는 말했다.

"먼저 아나를 만나고, 세인트는 그다음이야."

"왜 항상 그를 마지막에 만나는 거죠?"

"가장 참을성이 강하니까."

"아주 바빴던 것 같은데." 오시리스는 탑과 도시 사이에 가림판을 세워 급히 만들어 놓은 아나의 작업장을 둘러봤다. 각종 도구와 설계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세요, 아니면 혼잣말이에요?" 아나는 분해된 엑소 몸체 아래에서 굴러 나오며 물었다. "가끔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녀는 일어서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아나."

"자주 안 오시니까 그렇죠." 그녀는 어깨 너머를 흘긋 돌아봤다. "꾸짖을 일이 있을 때만 오시네요." 

"우리 둘 다 바빴던 것 같군. 네가 탑에 돌아온 걸 보니 기쁘다."

아나는 입을 우물거렸다. "가끔은 도망치는 걸 멈춰야 할 때도 있더라고요." 

오시리스는 엑소 몸체를 바라봤다. "그런가?" 

"왜 오신 거예요, 오시리스? 또 사고를 치고 제게 뒷수습을 맡기시려는 건가요?"

"전쟁지능이 제압되었을 때, 어둠의 공격으로부터 공명하는 음조가 들렸나? 이런 소리 말이야." 오시리스는 그렇게 물으며 녹음된 등대의 노래를 재생했다.

"그때는 좀 바빴어요. 그래도 미심쩍은… 음조는 못 들은 것 같아요."

"넌 어둠의 공격을 직접 경험했다. 그런데 그 경험을 활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시체를 붙들고 여기 틀어박혔구나."

"오시리스, 역시 혼자서 신 노릇을 할 때만 만족하시는군요." 아나는 옆의 작업대에서 용접 토치를 들어 올렸다. 
"칼루스를 한 번 만나 보시지 그래요. 두 사람, 아주 잘 어울리겠는데요."
"이 음조를 네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해 봐라. 네가 작업 대상에 관련 정보가 있다면—"
"그렇게 할게요." 아나는 빈정대는 투로 내뱉고는 다시 엑소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손가락으로 태양의 불꽃을 튕겨 토치에 불을 붙였다. "다음에 또 할 얘기가 있거든 그냥 고스트 정보망을 이용하세요."

탑 격납고는 고요했다. 모든 우주선이 지상에 정박해 있었다. 정비공들과 조종사 모두 잔뜩 긴장한 채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긴급 출동 스피커는 선봉대 고위 지휘부의 명령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 희미한 잡음이 윙윙거렸다. 오시리스는 격납고 안에서 홀로 반짝이는 광원을 향해 다시 돌아섰다. 

"이 코드는 정말 하나도 모르겠군. 제페토의 특기 같은데." 세인트-14는 허리를 굽히고 서서 데이터 태블릿으로 뒤덮인 넓은 책상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등대의 홀로그램 이미지가 격납고의 빛 속에서 아른거렸다. "지금 시련의 장을 이용하면 좋겠어. 네 시험 말이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계속 여기 있을 거지?"

"그래. 네게 시뮬레이션 적용 방법을 보여줄 때까지는 있어야지. 하지만 오늘 밤에는 떠나야 해." 오시리스가 말했다. 

"벌써?"

오시리스는 억지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코드를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반스가 찾아낸 것이 걱정스럽다."

세인트가 묵직한 손을 오시리스의 가슴에 얹었다. "이제 집착은 좀 버려. 또 유령을 쫓아 가 버리진 말라고." 

"유령이라… 어둠이 벌써 만족했을 거라고 생각해? 이건 첫 번째 움직임에 불과해. 다시 움직이기 전에 뭘 하려는 건지 알아내야지." 

"혹시 두려운 게 있으면, 내가 도와줄게. 함께 맞서는 거야."

오시리스의 생각은 어둠의 이상 현상을 향해 멀어져 갔다. 세인트가 짐을 더 짊어져야 할 필요는 없었다.

"네게 가장 안전한 곳은 이 탑이야, 세인트. 시간은… 자기 선물을 앗아가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럼 위험한 임무라는 거야?"

오시리스는 잠깐 거짓말을 할까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 가지 마. 어차피 선봉대가 유로파를 정찰하고 있어. 나의 불타는 새여, 숲은 이미 사라졌다고." 세인트는 어색하게 웃고는 오시리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도 다른 사람을 찾느라 사라질 필요는 없어." 

오시리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숲은 사라졌다. 남아 있는 소박한 즐거움을 모두 합해도 그걸 대체할 수는 없다. 사기라가 예전에 삶에는 성쇠가 있다고 했었다. 쇠퇴기인 지금, 그는 여전히 길을 잃은 채였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삶의 목적이 다시 그를 찾아 나설 때까지?

"내가 사라진다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인트를 바라봤다. "그러진 않을 거야. 돌아와야지. 그리고 계속 자발라가 날 따라오도록 끌고 가야지."

"나도 그렇고." 족쇄를 아무리 많이 채워도 그를 떼어 놓진 못할 것이다.

"그래, 너도."

"내 편지에 답장도 좀 하고."

오시리스는 약속을 피했다. "할 수 있으면."

"안 그러면 내가 이 옥수수 사탕을 더 보내 버릴 거야. 사기라가 억지로라도 네게 먹일 거고."

"그러지 마라."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맛있다니까."

오시리스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세인트가 그를 안았다. 오시리스의 마음은 여전히 별들 사이를 떠돌았지만, 왠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는, 이걸로 충분하겠지.

Lv3 Leeta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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