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잘못 알려진 바와는 달리 컬럼버스의 항해 당시 글을 읽을 줄 아는 유럽의 식자층 사이에서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견이 없었습니다. 르네상스에 의한 합리적 사고관의 확산으로 생긴 인식의 변화도 아니고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서쪽에서 교회와 세속을 막론하고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지구가 평평하다는 착각을 믿어 본 적이 없었다지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서는 17세기까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것은 세계의 중심에 중원이 있다는 중화의 권위을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한 그 문화와 정치 중심에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땅만 엄청 비옥하고 해군력은 거의 전무한 대륙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아시아의 해안선은 서반구에 비해서 훨씬 단조로워서 중국을 중심으로 해서 일본과 자바,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주변 나라들과 바다를 거치지 않고도 거의 최단거리로 교류하는 게 가능하지요. 땅이 비옥하고 바다는 거칠다면 굳이 배를 만들어 원양까지 나설 필요가 없고 땅 위에서만 여행하는 경우 별자리를 통해 위도 경도를 측량하지 않고도 강하고 산맥 등 지형만을 인식하며 목적지까지 가는 게 더 편합니다. 반면에 땅이 거칠고 만과 반도가 많은 유럽권의 경우 흑해에서 발트해까지 통틀어서 바다를 너머 물품을 교환하지 않으면 번영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민족이라도 어느 수준의 항해술을 익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파도가 심하게 몰아쳐서 바다에만 나갔다 하면 배가 좌초하기 십상인 아시아와는 달리 서양에서 가장 먼저 해운업이 발달했던 지중해의 경우 거의 내해와도 같아서 항해하기 훨씬 수월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고요. 표식이 없는 망망대해에서 위치를 알려면 별자리가 지평선에서 어느 방향 어느 높이로 떠 있는지를 관측하는 방법밖에 없었고 그러한 관측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평면이 굽어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전제해야 합니다. 또한 지정학적으로 중원에 힘이 밀집될 수 밖에 없었던 동아시아와는 달리 서양의 경우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그리스와 페니키아, 로마와 이후 북해권의 게르만 왕조들에 이르기까지 패권을 쥔 민족과 그 중심지가 끊임없이 이동했기 때문에 설령 로마 황제나 교황이라도 신이 지구 중앙에 로마를 창조했다거나 하는 망상을 주장할 권위도 동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요. 뭐 중세 T-O 지도의 엉성함을 보면 이 인간들이 정말로 지구가 접시 위에 떠 있다고 믿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이기는 하지만 동그라미 안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유럽 북아프리카와 인도까지만 나타냈던 것은 당시 유럽인들이 문헌 등을 통해서 잘 알고 있던 세계가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뿐 정말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가 그 동그라미 안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적도 아래로 아프리카가 계속 이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리지 않은 것은 적도가 너무 뜨거워서 타 죽지 않고 횡단하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고 도달할 수 없을 곳을 상상해서 그리는 것은 의미 없는 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나요. 측량 기술이 더 발달하고 마르코폴로를 비롯한 수많은 여행자들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횡단하며 기록을 남긴 중세 말에 이르러서는 항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정확한 지도들이 나오면서 구대륙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함은 물론 당시 거리를 알고 있던 두 도시 사이가 몇 도 차이인지를 관측해서 지구 둘레가 얼마 정도인지도 비교적 정확히 산출해 냅니다. 고대 그리스의 에라스토테네스가 계산한 지구 둘레가 거의 정확하고 또한 당시 기록을 통해 알려진 세계가 그 지구 둘레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게 당시 유럽 지리학자들의 중론이었는데, 실제로 당시 문명권에서 탐사되었던 구세계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아조레스 섬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일본 북서단 쿠릴 열도까지를 재면 경도 180도 정도가 되지요.
카보베르데 서쪽에서 일본 동쪽 사이에 신대륙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으니 당시 수준의 배를 몰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합친 크기의 망망대해를 항해해서 지팡그에 이르겠다고 말하는 크리스토발 콜론의 계획을 듣고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미쳤다고 조소했던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럼 왜 콜론은 그런 미친 일에 목숨을 걸었냐고요? 지구 둘레를 실제의 절반 정도로 생각한, 당시에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잘못된 학설을 철썩처럼 믿고 카리브해 서인도 제도보다도 가까운 곳에 일본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거든요. 발견한 땅이 인디아스가 아니라 신대륙이라는 사실이 동시대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 증명되었는 데도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곳을 인디아라고 믿고 있었다는 건 역시 자기기만인데, 자기가 최고인 줄로만 알고 명예와 재물을 위해서는 사기와 갈취도 절대 마다하지 않던 이 인간의 성격을 보자면 충분히 스스로를 기만하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쨋든 그런 인간의 막무가내가 새 시대를 여는 시발점이 되었으니, 뭐랄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해야 할까요. 지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 넓은 공간에 새로운 대륙이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게 의아하다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곰곰히 생각해 보면 새로운 대륙을 가정하지 않는게 당연히 더 합당한 일이었습니다. 기원전 10세기 즈음에서부터 시작해서 민족들간의 이동과 정복, 상업적 이윤과 학문 전파를 위한 탐험가들의 발견이 가속화되어 15세기에 이르러서는 저 멀리 인도 뿐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까지도 육로와 뱃길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 가능한 지구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깡촌 몽골에서 유럽으로 정복군이 오고 이슬람 군대와 상인들이 사하라 너머 툼부투나 남아프리카 소팔라까지 가는 시절이었는데 이슬람권이나 중화권에서도 일절 이야기가 없는 미지의 거대한 대륙이 유럽하고 중국 사이에 있을 거라고 상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죠.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칸의 명을 받아 원황실 왕녀를 항주에서 호르무즈까지 모셔간 게 이백년 전, 그 정도의 항해기술을 가진 중국이 유럽 코 앞에 있는 카리브해 정도에 위치해 있는데도 한번도 서쪽에서부터 유럽쪽으로 찾아오지 않아서 자기가 대서양 건너 중국을 찾아가는 최초의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콜론의 망상은 물론 더더욱 사리에 안 맞습니다. (자기가 신의 권위를 받아 중국에 도달하면 대원제국의 황제가 스페인 왕의 특사인 자기 아래로 알아서 무릎을 꿇을 거라고 생각한 환타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뭐 그렇지만 콜론이 완전히 미치광이라고만 단정할 수만도 없는게 서남으로 흐르는 카나리아 해류와 동쪽으로 흘러오는 멕시코 만류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가능한 한 가장 적은 거리와 시간 내에 신대륙을 찾고 돌아온 것을 보면 해류가 꺾이는 양상을 통해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 내에 어떤 식으로는 큰 육지가 있을 거라고 직감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젊은 나이치고는 에게해에서 아이슬란드까지 많은 항해 경험을 쌓은 우수한 항해사기도 했고 어쨋든 자기 꿈을 추구하는 집념 하나만은 진성덕후니까 이교도들의 침략을 피해 대서양 저쪽으로 항해한 수도사들이 기묘한 피라미드들을 발견했다던가 바이킹 용사가 그린란스 넘어 와인 많이 나는 낙원을 발견했다던가 그런 민간 전승들을 이곳저곳에서 줏어 들으며 참고하기도 했겠죠. 콜론이 신대륙을 발견하기도 이미 다섯 세기 전에 바이킹인들이 뉴펀들랜드에 식민지를 세우며 상당히 오래 정착하기도 했고 아조레스에 살던 포르투갈 어부들이 이미 뉴펀들랜드 근처에서 고기 잡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익을 위해서 새로운 땅의 정보를 비밀로 했다는 설도 있으니 열심히 찾아 나선다면 대서양 건너 대륙의 존재를 암시하는 이야기들을 충분히 얻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 그의 저술 대부분이 소실되었지만 분명 콜론은 문헌을 찾거나 자신의 경험을 기술하는 데 있어 매우 꼼꼼하고 부지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욕심이 너무 많고 인간성이 더러워서 사실을 해석하고 기록하는 데 있어서 그 합리성이나 정직성을 언제나 의심해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고대 그리스 이래로 서양의 지식층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우리는 이째까지 중세 유럽인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었다는 잘못된 루머를 듣고 자랐을까요? 19세기 초 미국의 유명한 역사가이자 컬럼니스트인 워싱턴 어빙이 콜론의 위인전을 쓰면서 신대륙의 영웅 콜론을 미화하기 위해서 당대의 주변 인물들을 멍청이들이었던 것처럼 멋대로 묘사하며 대비시켰던 게 잘못된 루머의 근원인데, 뭐 그 당시 신생 미국의 인문학이 과학적 고증 없이 사람들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그럴듯하게 떠들어 대서 인기를 얻으면 그게 바로 진실이 되어버리는 돌팔이 수준인게 문제이기도 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당시 산업화와 제국주의를 향해 돌진하던 미국과 여타 서구인들의 뒤틀린 욕망이 그런 거짓말을 비판없이 수용하는 환경을 조성했던 거라고 생각됩니다. 교황이 지배하던 유럽의 온갖 구식 부조리에서 벗어나서 합리성에 기반한 새로운 나라를 새로운 대륙에 건설했다고 믿고 나아갔던 게 청교도들의 개척 시절부터 독립 이후 급속한 팽창에 이르기까지 미국민들의 망상적인 자긍심이었고 그들의 건국 아이콘으로 추앙하는 데 있어서 신대륙의 인디언들을 멋대로 노예로 삼아 착취하면서 도리어 미개인들의 득실대던 암흑의 땅에 문명을 전파했다고 큰소리쳤던 콜론만큼 그 저돌적인 태도라던가 철저히 이기적인 욕망이라던가 근거없는 선민의식이라던가 여러가지로 정서가 잘 맞는 위인도 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하며 아메리카 신화를 만들어내던 언플러 워싱턴 어빙이 미국 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게 당연했던 것은 당시 유럽도 하늘과 바다에 매연과 오물을 쏟아내고 고아원 아이들을 공장과 탄갱에서 매일 헐값에 16시간 노예처럼 부려먹고 처분하던 공장주들이 국력을 신장시키는 합리적 근대인들이라고 칭송받던 현대 쭝궈 수준의 막장 대륙이었거든요. 그 막장 물신주의가 훗날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도 많지만 그 쪽은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니 생략하도록 하고, 나중에 더 상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그래도 당대 가장 신앙심이 깊은 성군이셨던 이사벨 여왕께서는 뒤늦게나마 이 콜론이라는 작자의 됨됨이를 파악해서 신대륙 총독의 직위를 파면하고 수갑을 채워 압송하며 이후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수많은 원주민들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옛사람들의 신중함은 모두 어리석은 관습일 뿐이고 잘못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의 ‘진취정신’만이 새 시대를 열 수 있다고 멋대로 뽐내면 그로부터 오백년이나 지난 지금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지구의 후미진 구석’에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 십자군을 보낸다고 삽질하고 ‘국력을 지탱하는’ 오염산업에 매달리다가 정작 자기나라에 태풍이 불어닥칠 때 제방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집 잃은 빈민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지함 무능함을 드러내게 될 뿐이지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걸까… 우리는 어릴 때 ‘콜론의 달걀’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읽으며 창의성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습니다. 술집에서 콜론이 자신의 신대륙 발견을 자랑하는데 원래 콜론의 정적이었던 무리들이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아시아에 도달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라고 별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조소합니다. 그러자 화가 난 콜론이 누가 이 달걀을 세울 수 있겠냐고 내기를 걸지요.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 달걀 한 쪽 끝을 깨서 세운 콜론, 기가 막혀하는 정적들이 “아니 달걀 끝을 깨서 세우는 건 누가 못하냐고” 항의를 하는데 “이렇게 단순한 방법도 생각해서 실천하지 못하면 소용없는 거 아니냐”고 콜론이 응수하지요. 근데 한쪽 귀퉁이가 깨진 달걀은 조심스럽게 부엌까지 옮겨서 라면에 풀어 먹지 않는 한에는 썩어서 악취가 나기 때문에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야 합니다. 냄비 속에 달걀을 세워 놓고 끊이면 노른자가 한 귀퉁이로 가라앉은 채로 굳어서 굳이 생계란 껍질을 깨지 않고도 댤걀을 세우며 동시에 한 사람 아침 식사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남들에게서 비판받는 걸 참지 못하는 콜론이 식탁 위에서 바로 달걀을 깨지 않고 그렇게 참을성 있게 이십분을 느긋히 기다리며 있었을 리가 없지요. 작은 달걀을 다루는 모습에서부터 큰 대양을 가로지르는 대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해득실과 부작용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단시간 내에 목적을 달성해 내서 남들 앞에서 으스대면 그게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던 콜론, 아무 것도 없는 깡촌에서 월남에 군대도 보내고 무대포로 빨리빨리 노가다 삽질해서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살아야 했던 우리 윗세대들에도 분명 그는 영웅이었습니다. 필자는 수학 전공입니다. 하지만 어릴 때의 믿음과는 달리 수를 잘 이해한다고 해서 합리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더군요. 삶의 목표를 찾기 위해서 그 이후 문학 수업들을 들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문구를 인용하며 교양 있는 척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세계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진실을 직시하고 현명해지기 위해서 문학을 공부하는 거지요.
제가 예상했던 것 보다도 다루어야 할 측면들이 훨씬 많아서 글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만 마치고 다음 글에서는 콜론이 어째서 당시 해상 선진국이었던 포르투갈이 아니라 신흥강국 에스파니아의 지원을 받아 서쪽으로 향했는지, 그리고 이후 이베리아 나라들에 의해서 어떻게 아메리카 식민이 진행되었는지를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짧게 몇몇 키포인트들만 적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의 조안 2세나 에스파니아의 이사벨 1세 두 사람 다 역사상에서 그와 같은 왕을 다시 찾기 힘들 정도로 정말 강하고 지혜로운 군주들이었지만 성격은 물론 자기의 다스리는 나라의 입장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서로 사촌간이었던 에르난 코르테스나 프란시스코 피사로 둘 다 현재 온갖 오명을 뒤집어 쓴 바와는 달리 적어도 콜론보다는 훨씬 나은 꽤나 괜찮은 인간들이었지요. 자기가 아는 진실을 모두 이야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고 또한 세간에서 믿고 싶어하는 전설과 실제 역사적 진실 사이에는 언제나 상당한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