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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아이콘 밴쿠버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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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76
2010-10-03 21:30:59
벤쿠버라는 지명을 유래시킨 조지 밴쿠버 4
 
캐나다서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도시는 단연 밴쿠버이다. 그러나 이 밴쿠버라는 지명이 영국의 한 선장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밴쿠버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조지밴쿠버(1757~1798) 선장이다. 1757년 6월 22일 영국의 노포크(Norfolk)주에서 태어난 밴쿠버는 열세 살 때 해군에 입대하여, 캡틴쿡이 수행한 2차항해(1772~1775)와 3차항해(1776~1780)에 참가하여 해상경력을 쌓기 시작하였다.
18세기 말까지 캐나다 북서부 지역에 대해서는 유럽의 어느 나라도 확고하게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유럽 각국의 상인들은 캐나다 북서부 지역의 원주민이나 식민지 개척민들과 자유롭게 무역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789년에 스페인인들은 이 지역의 점유권을 주장하며 캐나다 밴쿠버 섬의 누트카 해협(Nootka Sound)에서 영국의 존 매어즈(John Meares) 선장이 소유한 배 4 척을 나포하여 누트카 해협 사태를 촉발하였다. 이에 매어즈 선장이 1790년 4월 영국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게 되자, 누트카 해협 사태는 영국과 스페인간에 외교분쟁으로 비화되었다. 스페인은 1493년에 교황이 발부한 칙서에 따라 아메리카 북서해안 전체가 자기들의 영토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영국은 실질적으로 점유한 영토에 대해서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이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강경하게 나오자 스페인은 프로이센의 중재를 통해 영국과 누트카 해협 약정(Nootka Sound Convention)을 체결하였다(1790.10.28). 누트카 해협 약정에 따라 모든 나라는 태평양에서 자유롭게 항해하고 어로행위를 할 수 있었고, 아직 점유되지 않은 영토와 무역을 하고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누트카 해협 사태를 겪은 영국 해군성은 누트카 해협에 대한 점유권을 확립하기 위하여 배 2 척을 파견하여 체계적으로 탐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탐사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밴쿠버 선장이다. 당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북아메리카의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통하는 수로와 북 아메리카 중심으로 통하는 내륙항로를 탐색하면서, 북위 30도에서 60도 사이의 북아메리카 해안을 지도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1791년 4월 1일, 디스커버리(Discovery)호와 채덤(Chatham)호 두 척에 탐사대원 180명을 태우고 팔머스(Falmouth)를 출항한 밴쿠버선장은 희망봉을 경유하여 호주까지 항해한 뒤, 호주 남서해안과 뉴질랜드해안을 탐사하였다. 뉴질랜드연안을 가장 체계적으로 조사한 사람은 타스만이나 캡틴 쿡이 아니라 밴쿠버였다. 뉴질랜드는 이미 1642년에 타스만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캡틴쿡에 의해 섬이라는 사실이 최종적으로 확인된 바 있었지만, 이들은 뉴질랜드 연안을 밴쿠버 선장만큼 자세히 조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호주와 뉴질랜드 탐사를 마치고 타히티와 하와이에 잠시 기항한 뒤 북아메리카로 향한 밴쿠버선장은 1792년 4월 17일 북아메리카의 북위 39° 27'인 지점에 도착하였다.
밴쿠버는 이 곳에서부터 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지도를 작성하고, 허드슨만으로 통하는 항로를 탐색하다가 밴쿠버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큰 섬에 도달하였다. 이 섬이 바로 밴쿠버의 이름이 붙여진 밴쿠버섬이다. 밴쿠버항을 가로막고 있는 3만 1,284제곱킬로미터의 이 섬은, 캐나다에서 제일 큰 섬으로 오늘날 목재산지로 유명하다.
밴쿠버는 환드푸카(Juan de Fuca)해협으로 진입하여 퍼짓 만에서 한달여 동안 머물며 지도를 작성하는 한편, 시애틀 쪽으로 통하는 수로를 탐사하도록 피터 퍼짓(Peter Puget) 중위를 파견하였다. 밴쿠버는 탐사가인 퍼짓 중위를 기념하여 이 수로를 퍼짓수로(Puget Sound)로 명명하였고, 밴쿠버항과 밴쿠버섬 사이의 조지아해협에 있는 만은 조지아만이라고 이름지었다. 또한 1792년 8월까지 이미 북아메리카에 대한 선점권을 보유하고 있던 스페인인들로부터 밴쿠버 섬에 연해 있는 누트카(Nootca)섬을 감싸 돌고 있는 누트카해협에 대한 이용권을 얻기 위하여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1793년 4월 해안탐사를 재개한 밴쿠버선장은 북쪽으로는 북위 56°44'까지, 남쪽으로는 캘리포니아의 상루이스오비스포(San Luis Obispo)까지 조사하였다. 1794년 알래스카 남단의 쿡 하구(Cook's Inlet)쪽으로 항해하였다가 다시 남하한 밴쿠버선장은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안을 조사한 뒤, 케이프혼을 경유하여 영국을 출항한 지 4년 6개월만에 귀환하였다(1795.10.20). 그가 항해한 거리는 7만마일 이상이었다.
귀국 후 밴쿠버선장은 정신질환에 시달려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지 않다가 1798년 5월 런던 근교의 리치먼드(Richmond)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항해기는 북태평양과 세계전역으로의 발견항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밴쿠버선장은 항해가로서는 그다지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밴쿠버항에 자신의 이름을 남김으로써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밴쿠버항이 처음부터 밴쿠버라는 지명으로 불렸던 것은 아니다. 밴쿠버는 처음에 목재산지로 개발되어 1870년대에는 그렌빌이라고 불렸다가 1886년 밴쿠버로 개명되었다. 1884년 캐나다 퍼시픽 철도(Canadian Pacific Railway)가 이 지역을 체계적으로 탐사한 조지 밴쿠버의 이름을 기려 도시명을 밴쿠버로 명명하도록 제안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1886년 이 지역이 하나의 시로 통합되면서 밴쿠버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미국에도 밴쿠버라는 지명이 있다. 미국 오레곤주의 포틀랜드와 마주보고 있는 도시가 바로 그 곳이다. 미국의 밴쿠버는 1824년 영국 허드슨만회사의 기지로 개발되어 밴쿠버선장의 이름을 따서 밴쿠버요새로 명명되었다.
밴쿠버 선장은 단 한번의 탐사항해로 그의 이름을 후세에 남겼다. 지리사학자인 스켈톤은 “밴쿠버선장은 다른 어느 항해가들보다 더 세심하게 해안을 조사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사실 밴쿠버선장은 북위 39°에서 61°의 쿡섬까지 복잡한 북아메리카 북서해안을 3년여에 걸쳐 조사하였다.
북아메리카를 관통하여 태평양으로 통하는 수로를 발견하는 작업은 16세기 중엽부터 프로비셔․데이비스․허드슨․배핀 등에 의해 150여 년 동안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수로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실제로 북아메리카를 관통하는 수로가 없었기 때문에 탐험가들이 이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밴쿠버선장의 탐사는 북아메리카를 관통하는 북서항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출 저 : 한국해양사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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