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님]
˝복도 많아!.. 어디서 저런 복이 나왔을까?˝
무슨 소리냐구요? 제 주변 사람들이 절 보고 하는 말이지요.
결혼 29년째, 가정안에서 집안일과 식구들 돌보기,
시집 대소사에 참여하여 인사하는 등
이 시대 가정 주부로서 한점 부끄럼없이 살아온 저에게
주변의 이런 말들은 가장 큰 보상이 랍니다.
그것이 옳고 그점에 일말의 후회도 없이 숨가쁘게 달려오다
어느날 문득 뒤돌아 내 자리를 살펴보니 여기가 어디인가?
23살.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와 2년 후에 아들을 낳았지요.
큰며느리로서 첫아이를 아들로 낳았다는 것은 기쁨보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게 하는 일이었어요.
그것으로서 이 집안에 들 어와 해야하는
중요한 일중에 가장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하였는데
산넘어 산이라고 했든가…….
워낙 몸이 약했던 저로서는 젖이 나오지 않아 아이가 많이 보챘어요.
그때 옆에 계시던 시어머니 말씀
˝밥은 왜 처 먹어! 젖도 안나오는데……눈을 흘기시며 제게 던지셨지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눈물속에 섞여 녹아드는지 모르게
어거지로 삼키며 보채는 아이를 산후조리도 못한채 들쳐업고
동네 사람들게 어렵게 부탁하여 동냥젖도 얻어 먹였지요.
우리 아이 생일이 10월. 강원도 산골은 그 맘때만 되어도 강물은 얼음같이 차갑답니다.
그물에 아이낳고 이틀만에 기저귀를 빨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니 시어머니와 시집식구들은 안방에서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고 있더군요.
숨을 돌려 아이를 보러 작은방에 들어서 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얼굴 전체에 먹은 우유를 토해내고는 버둥거리며
아이가 울고 있더라구요.
제가 없는 사이 아이가 울자 그냥 먹이기만 하면
만사형통인줄 알고 배가 부른 아이를 막무가내로 우유를
또 먹인 후 방으로 되돌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것이었어요.
우는 아이를 안고 가슴에서
복받치는 서러움과 돌아가신 친정엄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속으로 속으로 통곡을 했답니다.
시어머니는 항상 이런 식이셨죠.
며느리인 저에게는 형식적, 의무적인 모든 것을 바라셨고
본인께서는 더한 시집살이도 했다면서
저보고는 편한 세상에 태어나 이정도는 별것아니라는
식으로 치부해버리셨답니다.
저 또한 그것들이 그저 당연하고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이며,
어른들께는 평생을 속썩인 제 남편의 일들이 알려지면
그것이 불효인줄 알고 감추고 또 감추고 드러날때에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시부모님께서 모르시게하고
자식걱정 하게 해드리지 않으려는 일까지…
시집일을 가슴으로 덮고 남편일이 알려질까봐 조마조마하며
그위에 또 한으로 덮어 지금 이 마음에 병만 남았답니다.
그 긴 세월동안 몸이 약한 저는 3번의 대수술을 했답니다.
그럴 때마다 시집어른들의 눈빛은 음음처럼 차가웠고
혹여라도 손을 벌릴까, 병신 며느리 되어 도리어 시부모님께서
시중들어야 될까 걱정하며 멀리 멀리 친정 옆으로 가라는 말씀까지
하셔서 아들과 친정옆으로와어살면서
올케에게 온갖 병수발 다 받아 지금은 건강해졌답니다.
그렇게 살아와 우리 아이가 어느덧 어른이 되었지요.
결혼도 해서 저도 시어머니라는 위치에 서게 되었답니다.
우리 며느리는 직업이 있어 아이를 낳고 2개월만에
직장에 나가야 되었답니다.
물론 요즘 많이들 그러듯이 아이보기는 제 차지가 되었어요.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남편과의 세월동안 한집에 살뿐
남과 다름없던 것을 며느리에게 들킬까봐 또 감추어 봤지만
아들은 몰라도 여자인 며느리는 아무리 감추어도 다 알아버리더군요.
그것이 마음아파 또 병이되고 우울증까지 겹쳐.....
한여름 찜통더위에 직장 다니는 며느리 집안일 하지않게 하려고
아이보며 살림하며 저녁준비까지 완벽하게 해놓았지요.
게다가 집안에서 부업으로 하루 4-5시간 일을 했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는데
그것보다도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당신 어디 아파?˝,˝밥 먹었어?˝,
˝오늘이 당신 생일이지?˝
이 세마디를 들어볼 수 없었던 외로움이었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 두가지 입장에 모두 서있는
저는 자식노릇, 부모노릇, 할머니 노릇,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작게나마 부업까지
하다보니 부모노릇이 우선이더라구요.
얼마전 시부모님과 시누이가 저희집에 오셨는데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유난히 자질한 병이 많은 남편
병간호를 한 제게 ˝니 남편 그때 죽게 놔두지,
왜 그 고생하면서 살려놓았느냐,˝ ˝차라리 죽었으면
너 팔자나 피었을텐데……˝
그동안 제가 어떻게 살은 것을 다 아시고 하신 말씀이셨지요.
우리 며느리 자랑좀 해야겠어요.
이 세상에서 제가 제일 사랑하고 내 인생의 전부인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사랑해주는 며느리 또한 너무 사랑해요.
백화점 쇼인도에 걸려 있는 옷을 보면서
어머니 저옷 애기아빠 사주고 싶어요.
나 대신 내아들을 사랑해주는 며느리 안이뻐할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누가 무어라해도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이
며느리를 사랑합니다
또한 아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해야겠어요.
아니 했습니다.
˝여자는 아무리 강해도 여자야 조그마한 것에 상처받고
아주 작은것에 감동을 받아 너 때문에 눈에서 눈물 나게 만들지말고
오직 사랑은 한여자와만 해야하며 너의 아빠처럼 살면 안되
네 아내에게 잘하는 것이 이 엄마한테 잘하는 거야˝
가정이란 세상의 수없이 많고 많은 모래 알갱이처럼 흔하지만
그 속의 모습들은 저마다 제각각인 것 같아요.
그중 여자들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해내는 역할이란 얼마나
막중한지 모른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많은 사람들이 꺼려하고
왠지 적대시하는 요즘의 세태에 비해 우리집은 시집식구와 며느리라는
그런 관계를 탈피하고 서로 위해주고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답니다.
제가 며느리일 때 받았던 가슴아픈 기억들을 다시 제 며느리에게
심어 주고 싶지 않아 무던히도 노력을 했답니다.
딸이 없는 저는 우리 며느리를 딸처럼 대하였어요.
아들은 큼직한 일들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만
며느리는 섬세하고 작은 집안일 들뿐만 아니라
같은 여자로 고민과 상담을 서로 할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었답니다.
5년 동안 노력의 결과를 얻었지요.
어느새 어른이 된 아들. 엄마를 가슴 아파하더군요.
아들과 며느리가 엄마를 세상밖으로 내보내주더군요.
무언가 즐거운 생활를 해보라고요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는 타이틀을 걸고 컴퓨터 인터넷 모임 10개월,
좋은일도 있고 힘든일도 겪으면서 세상에 처음 나와보니
하고싶은 것이 너무 많더라구요.
그리고 그동안 말하지 않고 꾹꾹 참고 살았던 일들이 부끄럼도 없이
그냥 줄줄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하고싶은 것들은 어찌하여 그다지도
많은지...... 하지만 다른사람
사는것을 보고 느끼면서 또 다른 욕심 가질 수도 없고 할수도 없는데,
그래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우리 아이들과 이런 농담도 하지요. ˝엄마 남자친구 하나 사귈까?˝
어느 날 장난스레 던진 한마디에 우리 아들, 며느리 왈.
˝멋있는 남자 만나서 우리집 위층에 살면서 아기 좀 봐주세요.˝
친구 같은 우리 아들, 며느리 덕분에 새내기 할머니는 행복하답니다
(등불님이 아름다운이야기 홈 ´쉼터게시판´에 올려 놓으신 글입니다.
너무 감동이 와서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등불님 메일주소 cwt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