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6월 14일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은 프랑스령 전 동맹항에 대한 공투를 결정합니다.
프랑스는 당시 과테말라, 코피아포(네덜령)를 제외한(과테말라는 하루 전 베네치아가 점령했습니다) 중남미 서해안의 모든 항구와 귀금내성항 제노바를 보유하고 있던 국가입니다.
투자방식 패치와 수에즈 칙명을 골자로 한 오스만 업데이트가 3일 앞으로 다가온 입장에서, 각국이 필요한 항구에 투자전을 벌이는 것은 사실 이 시점에서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리우 – 나폴리를 모두 점유하고 있던 포르투갈 귀금방측은 제노바를 추가로 점령해서 안정적인 수익을 얻으려고 했었고, 잉글랜드 입장에서도 툼베스는 보석무역을 위해 꼭 필요한 중요한 항구였으니까요.
이 항구들은 모두 프랑스 항구였고, 투자 패치가 되면 1시간에 올릴 수 있는 점유율 퍼센트가 제한됩니다. 어차피 먹어야 할 항구라면 17일의 패치 이전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명분이 해적국가 응징이었으므로 툼베스 / 제노바 이외에 프랑스의 다른 모든 동맹항에 대한 투자도 계획됩니다.
지도상에서 프랑스령 동맹항을 지우는 것이 그 목표.
시간은 6월 14일 토요일 0시.
이 당시 베네치아는 남미 서해안의 오팔항 과테말라를 점유하고 튀니스 – 시라쿠사 – 칼리아리를 놓고 프랑스와 공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공투 2시간 전. 포르투갈에게 연합 공투 계획을 전해들은 베네치아는 급하게 회의를 소집합니다. 잉 – 폴 동맹측은 프랑스의 모든 항구를 점령하는 것이 목표였고 중남미는 잉글, 동남아 및 내항은 포르투갈의 몫이 됩니다. 내항에서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베네치아에게 포르투갈측이 밝힌 입장은 당시 아래와 같습니다.
‘피사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포르투갈이 피사를 점령한다’
1시간여의 의견 교환 끝에 베네치아의 공격 목표가 피사로 정해집니다. 당시 서버의 최강국 포르투갈이 제노바를 계속 확보한다면 피사는 그다지 큰 희생 없이 얻을 수 있는 항구입니다.
피사는 대해전 당시 잃은 항구였고 사실 베네치아 입장에서 당시까지 이용도가 떨어져 투자전이 벌어지지 않았던 항구입니다만, 이 때의 공투 이후 프랑스 – 베네치아간의 주요 전장이 됩니다.
6월 14일 0시부터 포르투갈이 제노바 – 칼비에 대한 투자를 단행. 잉글측은 개인 거상의 투자도 포함해서 중남미 서해안의 전 항구를 큰 출혈 없이 점령합니다.

14일. 이 날은 지금까지의 디케 역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하루입니다. 여기서 자세하게 적기는 어렵습니다만, 포르투갈의 제노바 공투를 기회로 삼은 에습이 리우 – 나폴리 – 마술리파탐에 대한 공격을 단행하고, 결국 그날 밤에 터진 마술리파탐 대투자전에서 승리합니다. 이 사건은 이후 에습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됩니다.
문제는, 당시 제노바 공투를 준비한 포르투갈 귀금방측의 자금 규모가 생각보다 너무 작었다는 것입니다. 포르투갈측의 프랑스령 항구에 대한 공투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납니다.에습의 대대적인 공투를 받게 되자 포르투갈은 귀금라인 / 동남아 항구 중 하나에 우선 집중해야 할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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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이 에습의 공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베네치아는 난감해집니다. 전쟁이 주로 제노바에서 벌어지고 피사는 큰 출혈 없이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상황이 다르게 돌아갑니다.
피사는 이전까지 베네치아 입장에서 활용도가 떨어지는 항구로 이전까지는 투자전 대상이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 벨벳 구매용으로 40%정도의 점유율을 확보했으니 이 정도에서 만족하자는 주장과 섭초에 피사가 베네령이라는 주장이 맞섭니다. 피사 대신 나폴리를 도모해보자는 주장도 나왔지만 프랑스와의 전쟁에 중심을 두자는 측이 우세합니다.
15일 저녁. 프랑스가 제노바 – 피사 – 칼비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칼리아리 – 튀니스 – 트리폴리 – 시라쿠사까지의 서지중해 항구를 점령합니다. 프랑스는 포르투갈이 에스파니아와 투자전을 벌이고 있는 시점에서 베네치아와의 1:1이 가능하다고 보고 우선 서지중해 회복을 시도한 것입니다.
베네치아의 반격이 필요한 시점. 포르투갈은 에습과의 전쟁이 당장 급했지만 제노바에 라르가 뜨기 직전이기도 한 시점.
일단 폴투 거상의 투자가 제노바, 그리고 지분이 있던 칼비에 들어가고 이것이 포르투갈의 프랑스 내항을 향한 마지막 투자가 됩니다. 칼리아리 / 튀니스 / 트리폴리 그리고 피사는 밤까지 베네가 다시 회복합니다.
당시 포르투갈의 명분은 사략국가에 대한 처벌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프랑스가 베네치아에 대한 사략으로 혜택을 보고 그로 인한 당연히 돌아올 불이익은 받지 않겠다는 건 유산은 상속받겠지만 빚은 넘겨받기 싫다는 주장이며 통용되지않는 상속법과 같다."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1886&query=view&p=1&category=&sort=PID&orderby=&where=&name=content&subject=&content=&keyword=%C1%A6%B3%EB%B9%D9&sterm=&iskin=&l=3404 )
17일은 오스만 업데이트가 있는 날로, 프랑스 – 베네치아의 전쟁은 칙명 관계로 잠시 소강 상태를 보입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빠르게 칙명을 완수하지만 프랑스의 칙명은 지지부진한 상태였고, 9월 5일에야 끝납니다.
6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프랑스에게 안정적으로 남겨진 항구는 포르투갈이 포기한 제노바 하나뿐입니다. 하지만 지중해에서 동맹항 하나로는 버티기가 쉽지 않지요.
이 시점에서 프랑스는 몇 가지 가능성을 바라봅니다.
- 베네치아와 전쟁을 계속해서 칼리아리 / 튀니스를 포함한 서지중해를 회복한다.
- 베네치아와 협상해서 최소한 피사 - 마라카이보선까지를 얻고 마라카이보 금을 띄워 귀금라인에 힘쓴다.
- 마라카이보가 힘들 경우 피사만 점유한 상태에서 외항을 도모한다.
어떤 상황에서건 피사 / 칼비는 지키는 것이 프랑스의 기본 목표입니다.
7월 초. 이 당시 리우가 에습령으로 굳어지고 마술리파탐, 그리고 카사블랑카에서까지 투자전이 벌어지면서 포르투갈 향료방측은 프랑스 - 베네치아와의 연합을 생각합니다. 두 국가의 전쟁을 중재해본 다음 대 에습전선에 참가시키려는 계획입니다. 우선 프랑스에 비공식적으로 의사를 타진하지만 불과 20일 전에 있었던 포르투갈측의 공투에 분노하고 있던 프랑스측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1886&query=view&p=76&category=&sort=PID&orderby=&where=&name=&subject=&content=&keyword=&sterm=&iskin=&l=3947
당시 제의는 프랑스측에 먼저 들어갔고 베네치아쪽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측이 바로 이 제안을 거부했으니 결렬과 마찬가지지요. 다만, 이후에도 프랑스에게는 에습과 연맹할 것이냐, 폴투측과 연맹할 것이냐를 놓고 내부적으로 논쟁이 벌어집니다.
7월 12일, 프랑스는 에습측에 대 베네치아 중재협상을 요청합니다. 조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프랑스는 현재 프랑스령인 제노바 / 칼비 외에 칼리아리 / 피사 중 1항구를 프랑스령으로 유지하는 조건 하에 베네치아와의 정전을 요구합니다'
당시, 베네치아에서는 피사를 주고 프랑스와 정전한 이후 교역루트 및 상인 육성에 힘쓰자는 주장과 피사를 차지하고 프랑스를 계속 압박한 후 최종적으로 승리를 얻어내자는 주장이 맞섭니다. 베네치아에는 당시 마라카이보에 금을 띄우는 문제, 카라카스 중추 문제 등이 남아 있었고 생각보다 상인의 힘이 약해 정비도 필요한 상태였지만 , 어쨌거나 당시 베네치아 단일길드 강경론자들은 '프랑스 문제 처리가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를 최우선과제로 삼습니다. 프랑스에게 계속 우위를 보여야 협상이 유리하다는 생각이었지요. 물론, 협상장에 나오느냐 안나오느냐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어쨌거나, 베네치아는 중재를 맡은 에습측에 다음과 같이 전달합니다.
(에습측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프랑과의 1:1 협상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필요시 프랑스가 직접 협상 제안을 해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7월 19일, 프랑스측의 요청으로 1:1 협상 자리가 마련됩니다. 4월 말 이후 3번째이자 마지막 협상입니다.
프랑스 - 베네치아간의 공식적인 협상은 이 이후 없었습니다.
이 당시 프랑스가 내놓은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당시는 칼비 - 피사 선까지 베네치아가 점유한 상태입니다.
1. 프랑스측은 칼비 - 제노바 - 피사까지를 프랑깃으로 유지하는 조건 하에 동지중해 전역 및 서지중해의 기타 도시인 칼리아리 / 튀니스 / 트리폴리 등 기타 베네치아령 도시에 대한 공투를 중지합니다. (칼비 / 제노바 / 피사는 프랑스측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항구로 베네치아측의 이해를 요청합니다)
2. 과거, 사략 활동 등으로 프랑스가 베네치아에 입힌 피해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인벤에 사과 게시물을 게재합니다.
3. 이후 프랑스와 베네치아는 전쟁을 종식하고 불가침 협정을 맺습니다.
베네치아는 이 제안을 거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