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이제 조선 11랭...
4랭 정도야..-ㅅ-
바스코 다 가마
포르투갈의 향료/향신료 무역을 본격적으로 개척한 사람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ma 1469~1524)입니다.
다 가마는 마누엘 1세의 인정을 받아, 희망봉 발견이후 인도항로 개척의 원정대장이 됩니다.

에스파냐의 콜럼버스에 비해 다 가마는 국가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받았습니다. (콜럼버스는 에스파냐 편에서..)
기함인 상 가브리엘호(São Gabriel)를 건조하기 위해 1년전부터 목재를 건조시켰고, 무력충돌을 고려하여
배의 흘수선(물에 잠기는부분) 윗부분을 선판 두겹으로대고 철갑을 입혔습니다.
모든 승무원은 포르투갈 해운 분야의 통상월급인 5크루사도스가 아닌 7크루사도스를 받았습니다.
또한 60명의 승무원은 고도로 숙련된 선원과 수병, 장인만으로 엄선했는데, 목수, 돛 기술자, 대장장이, 밧줄 기술자,
요리사..등등 항해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상 가브리엘호와 3척의 보급선(상라파엘호, 베리오호, 선박명미상1척)은 1497년 7월 8일에 출항합니다.
다 가마의 함대는 지금까지 알려졌던 아프리카 내륙을 따라가는 항로를 택하지 않고, 서쪽으로 향하다가
순풍지역에 들어서서 항로를 남쪽으로 돌립니다. 희망봉까지 4500해리를 3달 하루라는 최단시간에 항해하였고,
이 항로는 현재까지도 아프리카를 일주하는 범선의 항로로 쓰입니다.

말린디 에서 인도까지는 무역풍을 타고 평균속도 4.1노트(산타마리아호 보다 2배정도 빠른속도...''>)로 27일만에
도착합니다. 아라비아 상인의 견제와 싸구려 교역품을 싣고 온 탓에 약간의 견본용 향료와 보석만을 가지고
1499년 9월9일에 리스본에 도착합니다.
다 가마의 원정이후 포르투갈은 1510년 고어를, 1500년 말라카를, 1515년 호르무즈를 점령하여
아시아 해역을 장악합니다. 이후 100여년동안 포르투갈의 황금시대가 지속됩니다.
카락(carrack, 카라케, 나오)

사실상 여러장의 돛을 층층이 단 전장범선(全裝帆船 : full-rigged ship) 의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선체에 선루가 결합되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수백년 동안 발전될 범장의 기본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어 마스트와 메인 마스트에 가로돛을 갖추고, 미즌 마스트에 세로돛을 갖추고 있습니다.
카락은 나오(nao)라고도 하는데 배(ship)을 뜻하는 스페인 고어이며, 뚱뚱한 선체로 인해 좌우로의 요동이
심하여 항해성은 떨어졌지만, 적재공간이 넉넉해서 대항해시대의 주력으로 등장했습니다.

상 가브리엘호 (이 그림이 맞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같은 시대의 카락입니다 )
건조년도 : 1496~1497
유형 : 카라케선
적재량 : 100톤
제원 : 길이 21.3m 폭 7m 흘수 2.7m
돛장비 : 돛대3개, 포어마스트/메인마스트에 사각돛2개씩, 미즌마스트에 삼각돛 1개
승무원 : 60명
무장 : 중대포 20문, 포가에 설치한 구포
카브랄
인도가 영국과 네덜란드등 후발주자에게 빼앗긴 후에도 오랜 시간동안 포르투갈의 밥줄로 남아있는
브라질은 1500년 포르투갈의 카브랄( Pedro Alvares Cabral, 1467/8~1520) 에 의해 발견됩니다.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한 인도항로 발견 후 최초로 조직된 인도파견선단의 대장이 됩니다.
1500년 3월 9일 리스본을 출항하여 희망봉을 향하던중 폭풍을 만나 서쪽으로 표류하여
4월 22일 브라질 서해안에 도착합니다. 그곳을 포르투갈 국왕인 마누엘 1세의 영토로 선언하고,
다시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하였고, 이듬해에 귀국합니다.

(폭풍에 떠밀려서 브라질을 발견해놓고는 바이아에서 항해기술을 가르치고 있다죠..-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