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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럽. 선박과 대포의 발달 (1)

레몬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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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529
추천: 14
2011-06-22 12:30:05

1452년 5월 28일.

 

역사적으로 엄청 중요한 이날에 유럽인들은 신식무기인 "대포"를 앞장세운 투르크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내줘야했다.

 

 

설마 설마 하던 유럽인들은 그것이 사실이 되어버리자 곧 유럽이 투르크의 공격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전율 하게 되었지만... 사실 유럽이 이렇듯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는 것을 미리 밝혀야 겠다.

 

 

실상 유럽은 군사적으로 매우 취약해 매번 만성적인 목숨위험병(?)에 시달리고 있었고, 진짜 그 많은 중증 병에서 유럽을 살린것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유럽 만세! 였던 것일 뿐이었다. (완전 운빨이었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유럽이 그동안 놀고 먹은 것은 아니었다.

 

중세 초기에 대외적으로 너무 시달린 유럽은 이후에 이슬람세력을 프랑스남부, 이탈리아남부, 이베리에 반도에서 완전히 축출 시키는데 성공하고, 그들이 바이킹이라고 부르던 존재들과 엘베강 동쪽의 넓은 지역을 유럽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덩치만 큰 솜주먹 유럽은 여전히 동방의 국가에 대해서 매우 수세적인 위치였다.

(대항해 3에 보면 이베리아반도에 이슬람세력의 마을이 있는 이유)

 

 

 

 

“우리의 이 자그마한 땅덩어리는 난폭한 투르크인들과 사라센인들 틈바구니에 끼어 압박당하고 있다.”

 

 

흔히들 십자군 운동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십자군 운동도 역시 오해하면 절.대 안된다.

 

그들이 말하는 신의 가호가 함께하신 십자군 1차 운동의 성공은 실상 무슬림의 무정부 상태에 군주제가 승리한 완전 반짝 이벤트 였었고, 더군다나 금새 무슬림세력이 재편되자 십자군들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11세기에 들어서 서양 유럽은 상업부분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군사정치에서는 성과를 별로 올리지 못했다.

그야말로 돈 많은 봉이 된 것이다.

 

 

1241년 발슈타르 전투에서의 대참사는 유럽의 군사들이 몽골족에 대항할 능력이 1%도 없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때마침 몽골족의 수장인 오고타이칸이 죽어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안죽었으면 지금쯤 유럽은 동양인들로 넘쳐나고 있을수도 있었다.

 

 

단기적으로야 그렇고, 장기적으로는 오고타이칸의 제국이 동쪽(동북아시아)과, 남쪽(인도)에서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한번의 구원을 받은 셈이되었다. (제일 큰 이유는 역시 동북아시아였다. 그들은 몰랐지만.)

 

 

 

다음세기 1396년. 니코폴리스에서의 기독교들의 패배는 또 한번 유럽이 동방의 침략자에 대한 유럽인의 군사적 취약성을 보여주었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이, 유럽인들은 그당시 인구가 1억을 넘지 못했고, 분열되서 서로 지지고 볶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동방의 침략자를 대항하기위해 연합군을 만들면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탕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엄청났기 때문에 대응 능력은 거의 0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이 취약성에 화룡정점을 찍은것은 그들이 흔히 말하는 중무장한 기병때문이었다.

 

눈이 호강하지만 몸이 힘든 이 군사들은 전투에 나가면 거의 생존율이 희박할 정도로, 화려하지만 느린.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과녘 1 2 3 4 였다.

 

뭐 이런 저런 이유로 유럽이 동방에 대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말 신의 손에 달려있었다.

 

 

 

콘스탄티노플이후 유럽의 사태는 정말 걷잡을 수 없게 된다.

 

1459년 세르비아 북부 침략.

1463~1466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침략

1470년 베네치아인들의 도시 네그로폰테 빼앗김

1468년 알바니아 침략

 

그야말로 폭풍 돌격으로 유럽 전역을 싹슬이 하고 다니던 투르크 인들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 와중에 정말. 투르크의 옆구리에 이쑤시개를 확 박아버리는 혁명적 변화가 유럽에서 일어났다.

 

 

 

"바다로 가자!"

 

 

이 같은 기치아래 바다에서 성공을 거둔 국가들은 몇세기만에 전세계적인 유럽 지배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그 국가는 바로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 영국

 

우리 몇몇은 유럽의 팽창과 대양탐사가 투르크가 진출, 유럽에 향신료를 막으면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사실은 전적으로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의 진실은 있겠지만.)

 

 

 

사실 이슬람의 봉쇄를 우회하여 향신료제도에 도착해야할 필요성은 이미 13세기 14세기에도 있었다.

 

 

벗뜨  (BUT!!!!!)

 

 

13세기 제노바의 항해자 출신 탐험가인 비발디형제 (반디노 비발디, 우골리노 비발디-음악 하신 그분 아닙니다)가 인도로 가기 위해 지중해를 벗어난 이후 영원히 행방불명(이라고 쓰고 고인이 되셨다고 읽는다.) 된 사례는 아직 유럽이 대양을 건너야하는 동기는 부여되었지만 수단이 아직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각해보자.

 

그들은 갤리선을 타고 대양을 건너려 했지만 실상 갤리선은 대양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현대에 와서 우리는 유럽의 배라하면 범선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들은 지중해라는 온화한 바다를 끼고 굳이 거대한 배를 만들 필요성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에스파냐가 무적함대라 부르던 그 시절에도 대부분의 선박들은 갤리선이 담당하고 있었고, 범선은 14세기 후반, 15세기 초반이 되어서 대양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서서히 등장하게 된다.

 

 

 

유럽의 선박의 발달과, 대포의 발달에 의한 범세계적인 지배에 관해서 쓰려고 합니다.

다음편 2부 부터는 좀더 세부적인 대포의 발달에 대해서 -ㅅ-

Lv34 레몬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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