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컷! (현재=코지코드)
인구는 43만 6527명(2001)이다. 옛 이름은 캘리컷(Calicut)이다. 마드라스에서 서남쪽으로 666km 떨어진 말라바르 해안에 위치한다.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서 처음으로 인도에 발자취를 남긴 곳이다. 처음에는 포르투갈의 영토였으나 그 후 영국·프랑스·덴마크 등의 영토가 되었다. 예전에는 면포(綿布)의 생산이 활발했으며 면포를 ‘캘리코’라고 부른 것은 이 도시명에서 연유한다. 현재는 항구가 얕아 거룻배를 이용해서 코코넛·커피·향료·목재 등이 거래된다. 해안에는 코코야자가 많으며 옛 그리스도 교회와 유럽인의 묘지 등이 있다.
->비스코 다 가마 가 케이프타운->말린디->캘리컷으로 인도에 처음으로 도착한곳이
캘리컷 이라는군요
물의도시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본래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 지방 사람들이 기원전 5~6세기경 이민족의 침략을 피해 세운 해상도시이다.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일찍이 해운업이 발달했고 수세기에 걸쳐 동지중해 국가들과의 무역을 독점했는데, 6세기 후반 동로마제국이 인근 라베나에 총독부를 두자 그곳에 소금을 공급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9~13세기에는 아드리아해에 본거지를 둔 슬라브 해적과 사라센인들의 견제를 받았으나,
십자군의 지원을 받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후 15세기
전반까지 강력한 해상왕국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신대륙이 발견되고 나폴레옹에게
패하여 오스트리아에 합병되면서 천년영화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산마르코 성당
말라가!
항구 도시이며 지중해에 속한 말라가만(灣)에 면한다. 페니키아·그리스 이래의 오랜 도시이며, 당시의 성채는 로마의 수복(修復)과 이슬람의 지배를 거쳐 남아 있다. 이 성채와 성벽으로 연락되어 있는 지브롤파로는 14세기에 건설된 지성(支城)에 해당하며, 전망이 아름답다. 이슬람의 지배는 1487년 그리스도교도가 탈환함으로써 끝났으며, 스페인의 ‘가톨릭의 두 왕’(카스티야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영지가 되었다. 성의 남쪽에는 항구와의 사이에 아늑한 시가가 이어져 있으며, 서쪽에는 16∼18세기에 건축된 대성당이 있고 중심가가 전개된다. 북쪽으로 수km 들어간 핑카델라콘셉시온에는 로마의 유적이 있으며, 그 열대적 정원이 유명하다. 항구에서는 포도·올리브\·오렌지와 그 가공품, 설탕·목화\·납·철광 등 주변지역의 산물을 수출한다. 화가 피카소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피카소의 출생지 이기도한곳이었군요.
로즈마리~~ 발렌시아!
주위는 기름지고 관개시설이 잘된 농업지대로 쌀·목화\·뽕나무·오렌지\·올리브 등이 재배되며, 투리아강 하구의 빌라누에바 델 그라오항(港)을 통해 쌀·올리브 등의 농산물이 수출된다. 그 밖에 조선업을 비롯한 근대공업이 발달해 있다. 역사적으로는 그리스·카르타고\·로마·고트\·아랍 등의 지배를 받아 왔으며, 1094년에 국민적 영웅 엘시드가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자 다시 엘아랍의 발렌시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1238년에야 아라곤왕(王)이 탈환하였다. 19세기에는 프랑스의 지배와 이에 대한 저항운동·시민전쟁, 때로는 공화파의 철저한 저항으로 파괴가 심했으나, 성당을 비롯하여 역사적 건조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현재는 상공업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종교·교육\·문화의 중심지이며 후스티시아궁전·예술 및 도자기박물관·식물원\·고생물박물관 등이 있다. 또한 기후가 쾌적하여 관광객이 찾아든다.

프랑스 본거지 마르세유
파리 남쪽 797km, 지중해 리옹만(灣) 내의 크론곶과 크르와제트곶 사이에 있는 천연의 양항으로 프랑스의 무역항이며 대도시이다. BC 600년경부터 그리스의 포카이아시(市)의 식민지가 되어 마살리아(라틴어로는 마실리아)라고 불렀다. 그 후 갈리아로 문화를 전달하는 중심지가 되었으며, 지중해 연안에는 마살리아 자체의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제2포에니 전쟁에서는 로마와 동맹하였고, 후에 로마의 속주(屬州)가 되었으나 BC 49년 카이사르에게 반항하여 영토를 상실하였다. 5세기부터 서고트·동고트\·프랑크 등의 지배를 받았고, 10세기에는 사라센인·노르만인의 약탈을 받아 침체하였다. 그 후 십자군의 영향으로 번영을 회복하고 13세기에는 자치도시를 이루었으나, 1481년 프랑스에 통합되었다. 17세기에는 동방무역을 독점하고 공업도 발달하였다.
19세기의 산업혁명, 알제리 정복, 수에즈 운하 개통 등에 따라 항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동시에 종래의 단순한 중개무역지로서의 기능에서 해상무역과 밀착되는 각종 가공공업·화학공업\·도기제조 등의 공업도시로서의 기능도 갖추었다. 또한 지중해 항로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통과지점으로서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또 대주교구청 소재지이다. 시가는 마르세유만의 안쪽에 있고 배후는 석회암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항외(港外)에는 포메그섬을 비롯하여 고대 그리스인(人)의 거주지였던 라토노섬과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이프성(城) 등이 있다. 구항구 북부는 구시가로 밀집지대였으나, 1943년 독일군이 대성당 ·시청 등만 남기고 모두 파괴하여 옛 도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구항구에서 동쪽으로 뻗은 칸비에르 대로와 이와 직각으로 뻗은 베르잔스 대로·롬 대로가 중심가를 이루고 있다. 남쪽 언덕 위에는 예로부터 뱃사람들이 수호신으로 받들고 있는 노트르담 성당(19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이 있고, 그 남쪽에는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단지(團地) 등 주택지가 전개되어 있다. 북부의 해안에는 에스타크 언덕까지 방파제·정박지가 이어져 있고, 석유 전용항 라베라로부터 파이프라인이 각지로 뻗어 석유화학의 대공업지대를 이루고 있다. 이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하고, 북아프리카에서 과일·야채, 중동·사하라(북아프리카)에서 원유, 서아시아에서 목화, 서아프리카에서 커피 등을 수입하고 있다.
갤리스 건조지~ 제노바!
제노바만(灣)에 면한 항구도시로, 영어로는 제노아(Genoa)라고 한다. 이탈리아 쪽의 리구리아해(海) 중앙에 위치하는 이탈리아 제1의 항구이며, 밀라노·토리노와 더불어 북부 이탈리아 공업지대의 중심을 이룬다. 아펜니노 산지가 바다까지 다가와 있기 때문에 시가지는 산허리에 있으며, 시를 통과하는 철도의 대부분은 터널을 지나간다. 시 서쪽에는 포르체베라강(江)이 있으며, 그 하구의 매립지가 공장지대와 비행장이다. 공업으로는, 서쪽 교외에 있는 코르니리아노의 제철업을 비롯하여 석유화학·기계공업 등 임해형(臨海型)이 많다. 밀라노·토리노의 공업지대가 배후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수출입항으로서도 중요하며, 전통적으로 많은 선박회사가 이곳에 본사·지사를 두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 C.콜럼버스, 음악가 N.파가니니, 이탈리아 통일운동 때의 공화주의자 G.마치니 등의 출신지로서 알려져 있다. 16세기에 건축된 시청사(콜럼버스의 편지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이 보존되어 있음), 12세기의 성(聖)로렌초 성당, 흰 궁전(16세기), 붉은 궁전(17세기) 등을 비롯한 많은 옛 건조물과 대학·미술학교\·카를로페리체 극장·곡물거래소 등이 있다

호박 산지 코펜하겐!
덴마크어로는 쾨벤하운(Kbenhavn)이라고 한다. 셸란섬의 북동안에 있는 무역항으로 대안에 있는 스웨덴의 말뫼 사이에는 철도연락선이 오간다. 코펜하겐의 이름은 1043년에는 하운(Havn) 또는 하프니아(Hafnia:항구)라는 기록되었다. 1167년에 최초로 성채가 축조된 뒤에 발전하여 13세기 중엽에는 수륙 교통의 요지를 차지하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쾨벤하운(去來港)이라고 하였다. 13~16세기에 한자동맹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으나, 1422년 도시권을 획득하였고, 1443년 이후 덴마크의 도시가 되었다. 1658∼1659년 스웨덴의 공격을 받았으며, 1660년에는 이곳에서 코펜하겐 조약이 체결되었다.

주조랭업의 성지 함부르크
정식명칭은 자유한자도시 함부르크이다. 엘베강(江) 하구 110km 상류의 양안에 걸쳐 있다. 베를린 다음가는 제2의 도시로서 항구와 함께 국제공항도 있으며, 유럽 교통의 요지이다. 811년 카를 대제가 교통이 매우 편리하고, 알스터강(江)이 엘베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하마부르크성(城)’을 쌓은 것이 시의 기원이다. 831년 주교구가 되었다가 834년에는 대주교구로 승격되었다.
1189년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상공업에 특권을 주었다. 1241년에 뤼베크와 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독일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기초를 굳히고, 그 후 300년 이상에 걸쳐 한자동맹에 속해 있으면서 특히 노르웨이·네덜란드\·영국·에스파냐\·포르투갈과 관계를 맺어 왔다. 함부르크 증권거래소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고, 함부르크 은행의 기원도 30년전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중엽 신대륙과의 무역이 번영의 기초가 되었다. 1815년 자유국가가 되었고, 1937년 읍·면을 합병하여 대(大)함부르크가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