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양비론이 거론되길래..
양비론에 대해서 한마디 써 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상반이론이 존재합니다.
비관론/희망론이 존재합니다.
좌파/우파가 존재합니다.등등
이 와중에 중간입장에서 양쪽을 비판하거나/동의하는 것을 양비론/양시론이라 하는데요..
이게 우리나라 정치적 역사의 영향을 받아서 상당히 안좋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 해방후 혼란기에
좌파는 자기에게 동조안하는 중간 양비/양시론자를 회색분자라 하며 죽였고
우파도 마찬가지로 자기에 동조안하는 자는 적이다며 암살하고 다녔죠.
그 중간에서 서로 연합시키고자 노력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당시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제압하려던 시기니까요.
그 희생중엔 우리가 잘 아시는 "김구선생"님이 계시지요.
이처럼 양비론/양시론은
어느 한쪽만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라도 상대편으로 돌아설 수 있는 잠재적 적으로 인식됩니다.
6.25때도 그렇게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죠.
좌파가 우파가 뭔지도 모르던 우리의 조상들이 그렇게 학살되었죠.
이런 역사적 경험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양비론/양시론은
책임회피나 집중/선택의 모호성이라는 문제적 관점으로 많이들 보여지는게 사실입니다
정치적인 상황에서 양비론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죠
특히 약자 입장에서 양비론은 강자의 편을 든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층을 형성하고 있는 약자편에서 더욱 안좋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가 양비론/양시론을 혐오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예전에는 좋은 덕목의 하나로 구전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황의정승의 양시론 얘기는 굉장히 유명한 얘기죠.
태종부터 세종까지 24년간 장기집권을 역대 왕들이 준 이유도
이 양시론이 큰 집권/정치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실제로는 청백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청백리로 포장되어 후세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거죠.
잇권과 책임이 있는곳엔 양비론/양시론이 안좋겠지만,
분쟁과 싸움이 있는 곳에서는 양비/양시론을 통한 화합은 필요합니다
즉, 양비론/양시론이 꼭 필요한 상황과 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따로 있다는거죠.
황희정승은 그걸통해 큰 덕망을 얻었고 여러 왕들의 신임을 얻게 되죠
(이게 중재가 가능한 사람이 사용해야만 효과를 본다는 제한사항이 있는듯합니다.
그럴 권한이 없는 사람이 중재하면, 사뭇 자기의 적으로 인식하고 반발하는듯 )
가끔생각해봅니다. 해방후 우리나라가 좌파우파로 갈라지지 않고
우리나라만의 새로운 민주주의 중도파가 집권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러면 양비론/양시론이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을까 하는생각을 해봅니다.
양비론/양시론을 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죽여야만 이 역사는 언제까지 되풀이 될까요?
하루에도 몇십번의 선택을 해야하는 회사나 개인이
모든걸 양비론없이 선택하며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양비론에 묻혀 살면서도,
누가 나에게 양비론으로 접근하는건
거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게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머리속 깊이 박혀 있는 오래된 선입견을 아닐까요?
황의정승의 예를 생각해보면서 양비론/양시론이 필요한 시점은 언제인지,
필요하지 않을때는 언제인지,
한번쯤 구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