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과 천을 솜씨좋게 얽어서 나무로 기둥을 세운 화려한 몽골식 천막은 가운데 오목하게 파인 화덕에 불이 피워져 제법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불위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스튜가 보글보글 소리를 내면서 끓고 있었다.
솜씨좋은 사냥꾼이 있는지 돌로 된 상판이 있는 원탁 테이블에는 질 좋은 고기와 채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야채들이 올라가 있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튼튼한 선반에는 올가미나 쇠로 된 추가 달려있는 펼쳐지는 그물, 다양한 깃이 분류되어 있는 화살통 등 사냥을 위한 도구들과 가죽을 벗길때 사용하는 무두칼이나 날카롭게 갈려있는 근육을 가르는 칼, 정 등 사냥감을 손질하는 살벌하게 생긴 여러 도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그러나 이 천막에서 정리가 되어있는 곳은 선반과 테이블 뿐 나머지 장소는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여기저기 대충 널부러져있는 옷들은 어떤 옷이 세탁 된 것인지 빨래거리인지 할 수가 없었고, 요리에 썼던 그릇들은 설것이가 되어있지 않아 음식찌꺼기가 묻은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마 그 중 새 그릇도 있을 것이다.
옷가지에 전부 점령당하기 일보직전인 복잡한 솜씨로 짜여진 아름다운 카페트 위에 하얀색 토끼귀가 소담하게 솓아있는 작은 머리통과 귀 색과 똑같은 백색의 머리카락 하얗기 그지없는 가느다란 손발 그리고 거적데기에 가려졌지만 왜소하기 그지없는 소년이 거기 있었다.
몸을 옹송그리고 있는 소년의 몸뚱이는 이 방의 주인인 바트보다 훨씬 작았다.
이 방의 주인인 바트는 단단해 보이는 짙은 회색의 피부와 진청색의 전갈을 닮은 꼬리
그리고 둥글게 휘어져 앞으로 뻗어있는 한쌍의 멋진 뿔을 자랑으로 삼고있는 여성 아우라족이다.
외모는 빈말로라도 강해보인다고 할 수 없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큰 눈과 갸름한 얼굴 늘씬하게 뻗은 팔 다리 균형잡힌 몸.
짙은 회색의 머리카락은 부족의 방식으로 땋아져 알록달록 아름다운 짐승들의 부속물로 꾸며져 있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유랑가희처럼 생겼지만 대충 걸친 색이 잘 맞지 않는 옷 사이로 몸 곳곳에 세겨져 있는 흉터는 짐승에게 깊이 찢긴 상처도 칼에 베인 상처도 그로 인해 사경을 해메어도 충분할 만한 흉터 뿐이다. 작은 손에는 칼과 활을 쥐며 생긴 굳은 살이 가득하다.
부족의 강인한 전사이자 사냥꾼인 바트는 지금 방에 있는 제법 값비싼 하지만 관리되어있지 않아 보풀이 일어있는 자수가 놓아진 방석에 앉아 머리를 부여잡고 자기가 주워온 어린 비에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천막은 부족에서 세번째로 큰 천막이다. 부족장인 사두의 천막과 부족 술사의 천막 다음으로 큰 천막이라고 할 수 있다.
난 이름 높은 천인살의 바트의 환생으로 여성이긴 하지만 부족에서 첫손에 꼽히는 전투기술과 사냥기술의 긍지높은 전승자다.
근데 저걸 왜 주워왔을까?
여러번 고민해 봐도 잘 모르겠다. 저것은 작고 연약하고 아우라도 아닌데…다 뒤진 여자가 고개를 든 걸까?
어린 것을 보호하는 본능이 있다는 말을 언뜻 들었던 것 같다. 끝도없이 상념이 이어졌다.
긍지높은 도탈족의 전사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는 법이다.
대초원의 바람은 항상 변덕스럽다. 그래서일거다.
저걸 주워 온 건.
그렇지 않다면 초원의 딸인 내가 이렇게 눈에 띄는 토끼를 주웠을 리 없다.
토끼는 마르고 작고 하찮고 게다가 하얗고 엄청 약해보였다.
내 구역에 있는 사냥감들은 하나같이 강대한 놈들 뿐 짐승에게 먹힌 토끼 찌끄러기를 보고 싶진 않았다.
…내가 주워왔으니 책임을 져야지.
바트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근데, 애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거지?'
이제 갓 스무살이 된 바트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별아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