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 초이스
두 번째 출근.
밤 아홉 시가 조금 넘었을 때 서윤은 대기실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첫날과 같은 검은 원피스였지만 오늘은 한 가지가 달랐다.
“그거 말고 이거 신어.”
언니 한 명이 서윤 앞에 검은 스타킹 한 켤레를 던졌다.
“스타킹이요?”
“응. 맨다리보다 손님들이 좋아해.”
얇은 검정 스타킹.
포장을 뜯어 허벅지까지 천천히 끌어올리자 부드러운 천이 피부에 밀착됐다.
서윤은 괜히 거울을 쳐다봤다.
검은 스타킹 때문에 다리가 평소보다 훨씬 길고 매끈해 보였다.
거기에 대기실 한쪽에 놓여 있던 검은색 하이힐까지 신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굽은 거의 10cm 가까이 됐다.
서윤은 몇 걸음 걷다가 휘청했다.
“조심해.”
언니가 웃었다.
“처음엔 다 그래.”
“이렇게 높은 걸 꼭 신어야 해요?”
“손님들이 좋아한다니까.”
또 그 말이었다.
손님들이 좋아한다.
서윤은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봤다.
얇은 스타킹 안으로 발등의 선이 비쳤고, 검은 하이힐이 발을 꽉 감싸고 있었다.
평소 학교에 갈 때 운동화만 신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그때 문이 열렸다.
“얘들아, 초이스.”
대기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여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윤만 무슨 말인지 몰라 주변을 바라봤다.
“초이스가 뭐예요?”
옆에 있던 언니가 립스틱을 고쳐 바르며 말했다.
“손님 앞에 들어가서 줄 서는 거.”
“…줄을 서요?”
“응. 보고 마음에 드는 애 고르는 거지.”
순간 서윤의 표정이 굳었다.
“우리를요?”
언니가 피식 웃었다.
“그럼 누굴 고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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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를 걷는 동안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울렸다.
서윤의 심장도 그 박자에 맞춰 뛰는 것 같았다.
앞에 여자 세 명.
자신까지 네 명이었다.
문 앞에서 실장이 작게 말했다.
“웃어. 표정 너무 굳히지 말고.”
문이 열렸다.
안에는 남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모두 마흔은 넘어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양주와 과일 접시가 놓여 있었고, 방 안에는 진한 담배 냄새와 향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여자 네 명이 소파 앞에 나란히 섰다.
서윤은 그 순간 처음 경험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시선.
세 남자의 시선이 자신들의 몸을 천천히 훑고 있었다.
얼굴.
가슴.
허리.
다리.
그리고 다시 얼굴.
서윤은 자기도 모르게 허벅지에 힘을 줬다.
짧은 원피스 아래로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옆에 있는 언니들은 익숙한 듯 한쪽 다리를 살짝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서윤도 어설프게 따라 했다.
그러자 하이힐 때문에 종아리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가장 오른쪽에 앉아 있던 남자의 눈이 서윤의 다리에 멈췄다.
오십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깔끔하게 넘긴 머리.
흰 셔츠.
손목에는 값비싸 보이는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그는 다른 여자들은 거의 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서윤의 다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스타킹과 하이힐을.
남자의 시선이 발목에서 종아리를 타고 천천히 올라왔다.
서윤은 그 시선을 알아차리고 발가락을 구부렸다.
이상하게도 스타킹 너머로 피부를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남자가 손가락으로 서윤을 가리켰다.
“난 저 친구.”
실장이 웃었다.
“서윤이요?”
“응.”
서윤의 심장이 철렁했다.
선택됐다.
그 사실이 기분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몸을 평가받고 선택됐다는 사실 때문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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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은 남자의 옆에 앉았다.
“오늘 처음 봤는데.”
남자가 말했다.
“며칠 안 됐어요.”
“그럴 줄 알았어.”
“티 나요?”
“많이.”
남자는 웃으며 잔에 술을 따랐다.
“특히 앉는 자세가.”
서윤은 순간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봤다.
무릎을 딱 붙이고 앉아 있었다.
검은 스타킹을 신은 두 다리가 가지런히 붙어 있었다.
“왜요?”
“너무 얌전히 앉잖아.”
남자의 시선이 다시 다리로 내려갔다.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조금 내렸다.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근데 그거 계속 당겨봤자 안 길어져.”
첫날에도 들었던 생각과 똑같았다.
서윤의 얼굴이 빨개졌다.
남자는 꽤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을 함부로 만지지는 않았다.
대신 계속 바라봤다.
그게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특히 다리를.
몇 분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남자가 갑자기 물었다.
“스타킹 원래 자주 신어?”
“아뇨.”
“오늘 처음?”
“이런 건 거의 처음이에요.”
남자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그래서 어색해 보이는구나.”
그는 서윤의 하이힐을 바라봤다.
“구두도?”
“네.”
“발 아프지?”
“조금요.”
“굽 꽤 높네.”
서윤은 괜히 발목을 움직였다.
하이힐 굽이 바닥에 작게 부딪혔다.
딱.
남자의 눈이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
그제야 서윤은 알았다.
이 사람은 확실히 평범하게 자신의 얼굴만 보는 게 아니었다.
“저기…”
서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자꾸 다리만 보세요?”
남자는 숨기지도 않았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해서.”
“어떤 거요?”
“스타킹.”
남자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천천히 두드렸다.
“그리고 하이힐.”
너무 태연하게 말해서 서윤이 오히려 당황했다.
남자는 웃으며 덧붙였다.
“이상해?”
“…조금요.”
“남자들 취향 별거 다 있어.”
그는 다시 서윤의 다리를 바라봤다.
“근데 넌 잘 어울린다.”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싫어해야 하는 것 같은데,
몸 한쪽이 묘하게 간질거렸다.
자신이 누군가의 취향에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는 사실.
그것도 얼굴이 아니라,
자신의 다리와 스타킹, 구두 같은 부분이 남자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남자가 말했다.
“다리 한번 꼬아봐.”
“…네?”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바라봤다.
“싫으면 안 해도 돼.”
남자는 웃었다.
“그냥 지금보다 편할 것 같아서.”
분명 핑계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서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오른쪽 다리를 왼쪽 위로 올렸다.
스타킹끼리 스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짧은 원피스가 조금 올라갔다.
서윤은 바로 손으로 치맛자락을 눌렀다.
남자의 시선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거 봐.”
그가 낮게 말했다.
“훨씬 예쁘잖아.”
서윤의 입술이 살짝 굳었다.
“아저씨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맞아.”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했다.
“예쁜 다리 좋아하고, 스타킹 좋아하고, 하이힐 좋아해.”
그리고 잠깐 멈춘 뒤 덧붙였다.
“특히 너처럼 이런 거 익숙하지 않은 애가 신으면 더.”
그 말에 서윤의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마치 자신의 어색함까지 남자의 취향에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서윤은 괜히 발끝을 흔들었다.
하이힐 끝이 까딱거렸다.
남자의 눈이 또 따라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이번에는 서윤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장난처럼 발목을 한 번 더 움직였다.
구두가 살짝 흔들렸다.
남자의 시선도 그대로 움직였다.
서윤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처음이었다.
손님의 시선을 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그 시선을 움직였다는 느낌.
이상한 기분이었다.
“왜 웃어?”
남자가 물었다.
“아니에요.”
“일부러 그러지?”
“뭘요?”
서윤은 모르는 척하며 다시 발끝을 흔들었다.
딱.
하이힐 굽이 바닥을 건드렸다.
남자가 웃었다.
“생각보다 금방 배우네.”
그 순간 서윤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남자의 시선이 무섭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자신이 어떻게 앉느냐.
어떻게 다리를 움직이느냐.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돈이 된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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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지나고 남자가 계산을 마칠 때쯤 실장이 방으로 들어왔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서윤에게 말했다.
“다음에 나 올 때도 그 스타킹 신어.”
서윤은 황당한 얼굴로 웃었다.
“왜요?”
“내 취향이라니까.”
“싫은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리에는 아까처럼 경계심이 강하게 묻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명함 하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갔다.
문이 닫힌 뒤,
서윤은 한동안 명함을 바라봤다.
옆에 있던 언니가 말했다.
“야.”
“네?”
“너 오늘 제대로 물었네.”
“뭘요?”
“저 손님 여기서 돈 엄청 써.”
서윤이 다시 문 쪽을 바라봤다.
언니가 웃었다.
“너 다리 계속 보던데?”
서윤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좀 이상해요.”
“이상하면 어때.”
언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너 만지지도 않고 돈 잘 쓰면 좋은 손님이지.”
그 말에 서윤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뒤 대기실로 돌아온 서윤은 소파에 앉아 하이힐을 벗었다.
발뒤꿈치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서윤은 발목을 주물렀다.
그리고 무심코 자신의 다리를 바라봤다.
아직도 검은 스타킹이 허벅지부터 발끝까지 피부에 붙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단순히 불편한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스타킹을 바라볼 때마다 조금 전 남자의 눈빛이 떠올랐다.
발목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오던 시선.
다리를 꼬았을 때 달라지던 표정.
서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진짜 이상한 아저씨네…”
그때 실장이 문을 열었다.
“서윤아.”
“네?”
“아까 그 손님 있잖아.”
“네.”
“너 다음 주에 언제 나오냐고 벌써 물어봤어.”
서윤의 손이 멈췄다.
“저를요?”
“응. 너 지명하겠대.”
지명.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의미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다음에도 자신을 찾겠다는 뜻.
실장이 말했다.
“지명 붙으면 돈 더 받아.”
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돈.
또 그 단어였다.
월세를 내고도 아직 등록금과 카드값이 남아 있었다.
서윤은 천천히 자신의 스타킹을 바라봤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벗어 던지고 싶었던 하이힐을 다시 내려다봤다.
그 순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도 이걸 신고 나오면,
얼마를 벌 수 있을까.
그날 퇴근하면서 서윤은 편의점 앞을 지나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밤새 일하며 시급을 계산하던 자신이 떠올랐다.
그리고 휴대폰이 울렸다.
실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아까 3번방 손님 다음주 금요일 예약. 서윤 지명.」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검스 + 검정 하이힐 부탁한다고 함ㅋㅋ」
서윤은 걸음을 멈췄다.
“미쳤나 봐…”
입으로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이상하게도 메시지를 지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또각.
또각.
밤거리를 걷는 하이힐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서윤은 아직 알지 못했다.
다음 주 금요일,
자신의 스타킹과 하이힐에 유난히 집착하던 그 중년 남자가 단순히 술자리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