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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23살 현우 여인숙에 가다 [8편]

월가리
댓글: 1 개
조회: 187
추천: 1
2026-10-07 18:57:26
그날 밤.

여인숙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

복도 끝의 비상등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고, 미정의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방바닥 한쪽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미정은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잠옷 위로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한 배가 보였다.

한 손은 자연스럽게 그 위에 놓여 있었다.

낮에 병원에서 들었던 심장 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두두두두두두.

빠르고 힘찬 소리.

그때는 현우가 옆에 있었다.

손을 잡아주고 있었고, 초음파 화면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신도 웃을 수 있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가 되자 달랐다.

어둠 속에서는 애써 밀어두었던 생각들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미정은 천천히 배를 쓰다듬었다.

‘쉰여섯에 아이를 낳겠다고 한 게.’

입 밖으로 말하면 너무 무모하게 들릴 것 같았다.

병원에서 의사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나이 때문에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말.

검사를 계속 받아야 한다는 말.

일반적인 임신보다 위험을 더 신경 써야 한다는 말.

낮에는 담담하게 들었던 문장들이 밤이 되자 하나하나 무겁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혹시 내가 잘못되면?’

미정의 손이 멈췄다.

그 생각만큼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한번 떠오른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한테 문제가 생기면?’

‘내 몸이 버티지 못하면?’

‘출산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미정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괜찮을 거야.”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잣말을 했다.

그러나 곧 스스로에게 물었다.

‘뭘 믿고?’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아주 멀리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지금쯤 기숙사에 있을 것이다.

아니면 친구들과 있을지도 몰랐다.

미정은 문득 현우가 병원에서 초음파 사진을 들고 웃던 얼굴을 떠올렸다.

“진짜 제 애네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웃음이 났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애는 저렇게 좋아하는데.’

‘현우는 앞으로 어떻게 하지?’

스물셋.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나이.

친구들은 취업을 준비하고, 연애하고, 여행을 다니고 있을 나이였다.

그런 현우는 갑자기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정은 눈을 감았다.

‘내가 저 애 인생을 붙잡은 건 아닐까.’

현우는 자기가 낳고 싶다고 말했다.

도망가지 않겠다고 했다.

병원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정의 마음에서는 계속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좋아서 그러는 거야.’

‘현우가 서른이 됐을 때는?’

‘마흔이 됐을 때는?’

그때 자신은 몇 살이지.

미정은 계산하다가 그만두었다.

계산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저 애보다 먼저 늙을 텐데.’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이까지 생기고 나니 그 차이가 전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현우가 서른 살일 때 자신은 예순셋.

현우가 마흔 살이면 자신은 일흔셋.

아이의 학교 행사에 나가면 사람들은 자신을 엄마라고 볼까.

할머니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시선을 자신은 견딜 수 있을까.

더 무서운 질문은 따로 있었다.

‘아이는?’

아이가 자라서 부모의 나이 차이를 알게 되는 날.

엄마가 친구들의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날.

그 아이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미안해할 일은 아니잖아.”

미정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말끝에 자신감이 없었다.

배를 감싼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너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 순간 마음이 이상해졌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벌써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선택 때문에 아이가 언젠가 상처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부모의 나이 때문에.

현우와 자신의 관계 때문에.

미정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병원 화면 속 작은 아이.

팔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이고.

빠르게 심장을 뛰게 하던 아이.

그 모습을 떠올리자 아까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두려움 사이로 아주 작은 따뜻함이 스며들었다.

‘살고 있잖아.’

자신의 안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

미정은 두 손으로 배를 감쌌다.

“엄마가 너무 걱정이 많지?”

처음이었다.

혼자 있을 때 자신을 ‘엄마’라고 부른 것이.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낸 순간 가슴이 이상하게 울렸다.

미정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

자신이 다시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것.

아니, 이 아이에게는 처음부터 자신이 엄마라는 것.

조금 전까지 느꼈던 두려움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내가 결정했어.’

‘현우도 결정했고.’

‘그러니까….’

미정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겁먹더라도 내가 버텨야지.’

그런데 곧 또 현실적인 걱정이 밀려왔다.

돈.

출산.

병원.

여인숙 운영.

아이를 키울 공간.

현우의 학교.

현우 부모님.

아직 해결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휴….”

미정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생각하면 끝이 없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이런 상황 자체를 비웃었을지도 몰랐다.

쉰여섯 살에 스물셋 남자의 아이를 임신해 어두운 방에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니.

소설에서도 너무 과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현실이었다.

미정은 침대 옆에 놓인 초음파 사진을 집어 들었다.

어둠 속이라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 화면을 켜 그 위에 비췄다.

희고 검은 작은 형태.

어디가 얼굴인지도 여전히 정확히 모르겠는데 현우는 아까부터 얼굴이라고 우겼다.

그 생각에 미정이 아주 작게 웃었다.

“네 아빠는 아직 철이 없어.”

말하고 나니 또 이상했다.

‘네 아빠.’

이제 너무 자연스럽게 나온다.

미정은 사진 속 아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근데 좋은 사람인 것 같아.”

현우가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미정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둘 다 준비된 사람들은 아니었다.

어쩌면 한참 부족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현우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도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미정은 초음파 사진을 가슴에 올려놓았다.

그때였다.

배 안쪽에서 아주 작게 무언가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정의 눈이 커졌다.

손바닥을 바로 그곳에 가져갔다.

“너야?”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몇 초를 기다렸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미정은 조금 허탈하게 웃었다.

“엄마 겁먹지 말라고 그런 거야?”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미정의 얼굴에는 조금 전과 다른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걱정할 것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두려움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대도 있었다.

궁금함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미정은 옆으로 천천히 누웠다.

불은 여전히 켜지 않았다.

한 손은 계속 배 위에 두었다.

‘무섭다.’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보고 싶어.’

그것 역시 솔직한 마음이었다.

‘잘 자라줘.’

미정은 눈을 감았다.

‘엄마도 어떻게든 해볼게.’

어두운 방 안에서 그 말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처음에는 손바닥을 대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미정의 배가 어느새 옷으로 가릴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임신 막달.

예정일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미정은 예전처럼 여인숙 계단을 빠르게 오르내리지 못했다.

한 층을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고, 밤이면 발목이 붓기도 했다. 누웠다가 몸을 일으키는 일조차 시간이 필요했다.

배는 앞으로 둥글고 묵직하게 나와 있었다.

아이가 움직일 때면 겉에서도 형태가 미세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아이고….”

미정은 카운터 의자에 앉아 허리를 받쳤다.

배 안에서 아이가 세게 움직였다.

“너도 이제 좁지?”

손바닥으로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조금 전까지 움직이던 아이가 잠잠해졌다.

그럴 때마다 미정은 신기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임신했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했던 자신이었다.

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 나오자.”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생각했다.

‘정말 얼마 안 남았네.’

그 생각을 하는 순간마다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출산.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기다렸던 날이면서 동시에 가장 무서운 날이었다.

병원에서는 출산 시기와 방식에 관해 계속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미정 역시 자신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

쉰여섯.

젊은 산모와 똑같이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가방도 미리 싸두었다.

병원 서류.

세면도구.

갈아입을 옷.

아기에게 필요한 작은 물건들까지.

방 한쪽에는 언제라도 들고 나갈 수 있도록 출산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현실감이 밀려왔다.

곧 아이가 나온다.

정말 자신과 현우의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그런데 미정에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현우였다.

요즘 현우는 이상할 정도로 말이 줄었다.

여인숙에는 여전히 자주 왔다.

병원에도 같이 갔다.

미정이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면 대신 물건을 들었고, 밤이면 배를 만지며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가끔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날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현우는 203호 창가에 앉아 휴대전화만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엄마’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전화가 왔다가 끊겼다.

현우는 받지 않았다.

잠시 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번 주말에는 집에 오는 거지? 요즘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

현우는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못했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몇 달 동안 같은 고민을 반복했다.

말해야 한다.

오늘은 말해야 한다.

이번 주에는 반드시 말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벌써 몇 달이었다.

하지만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

현우는 속으로 상상했다.

‘나 할 말 있어.’

거기까지는 가능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여자친구가 있어.’

그것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쉰여섯 살이야.’

현우는 눈을 감았다.

그다음 문장은 더 끔찍했다.

‘그리고 임신했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곧 출산해.’

현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미치겠다….”

이제 와서 말하면 부모님은 무엇부터 물을까.

왜 이제야 말했냐고 할 것이다.

당연했다.

임신 사실을 안 것이 언제인데.

배가 이만큼 커질 때까지 왜 숨겼냐고 할 것이다.

그 질문에는 변명할 말조차 없었다.

무서웠다.

딱 그것뿐이었다.

현우는 부모님이 화내는 것보다 실망하는 것이 더 무서웠다.

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

어머니가 충격받아 울어버리는 모습.

그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전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현우는 머리를 숙였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검진 때마다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뻤다.

초음파 사진도 휴대전화에 모두 저장해 두었다.

미정의 배 위에서 아이가 움직이는 것을 처음 느낀 날에는 그 감각이 한동안 손바닥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도 이제는 싫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자기 부모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우에게는 그것이 점점 죄책감으로 변했다.

‘난 도망가지 않는다고 했잖아.’

미정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정말 도망가지 않고 있는 것인가.

미정 곁에만 있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인가.

자신의 가족에게 아무것도 알리지 않은 채 모든 현실을 미정과 둘만의 방 안에 가둬두고 있는 것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도망치는 것 아닐까.

현우는 휴대전화를 다시 들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통화 버튼 바로 위에 엄지손가락이 멈췄다.

심장이 빨라졌다.

‘지금 하자.’

‘그냥 말해.’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현우야.”

뒤에서 미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우가 황급히 화면을 껐다.

미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있었다.

“뭐 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미정은 현우를 잠시 바라봤다.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부모님 생각하고 있었지?”

현우가 움찔했다.

“……네.”

미정은 천천히 침대에 앉았다.

커다란 배 때문에 앉는 동작 하나도 조심스러웠다.

현우가 바로 일어나 미정의 팔을 받쳤다.

“괜찮아요?”

“응.”

미정은 자리에 앉은 뒤 숨을 한번 골랐다.

그리고 현우를 바라봤다.

“아직도 말씀 못 드렸어?”

현우는 고개를 숙였다.

“네.”

미정은 예상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게 현우에게는 오히려 더 힘들었다.

“미안해요.”

“나한테 미안할 일은 아니야.”

“아니에요.”

현우가 말했다.

“미정 씨는 이제 애 낳을 때 다 됐는데….”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우리 부모님은 제가 아빠 되는 것도 모르잖아요.”

미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우가 주먹을 꽉 쥐었다.

“저 진짜 겁쟁이 같아요.”

“현우야.”

“처음에는 조금 있다가 말하려고 했어요.”

현우의 말이 빨라졌다.

마치 몇 달 동안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 같았다.

“임신 안정되면 말해야지 했고.”

“…….”

“그러다가 배 조금 나오면 말해야지 했고.”

“…….”

“또 다음 검진까지만 기다리자고 했고.”

현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계속 미뤘어요.”

미정이 조용히 물었다.

“왜?”

현우는 대답을 알고 있었다.

“무서워서요.”

잠시 침묵했다.

“엄마가 저 되게 믿거든요.”

현우의 눈이 붉어졌다.

“저 사고 안 치고 학교 잘 다니는 줄 알아요.”

미정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내가 사고야?”

현우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니에요!”

“알아.”

미정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냥 물어본 거야.”

현우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부모님한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잖아요.”

스물셋 아들이 어느 날 나타나서.

자신보다 서른세 살 많은 여자가 있고.

그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고.

곧 출산한다고 말한다.

현우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충격일 것 같았다.

“아버지가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반대하시겠지.”

미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에 현우가 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미정은 천천히 배를 쓰다듬었다.

“당연한 거야.”

“미정 씨.”

“나라도 내 스물세 살 아들이 갑자기 이런 얘기하면 바로 받아들이기 힘들 거야.”

현우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미정이 씁쓸하게 웃었다.

“나이 차이가 서른세 살인데.”

그 숫자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방이 조용해졌다.

미정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이제 너무 익숙한 나이 차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익숙한 숫자는 아니었다.

현우가 물었다.

“부모님이 미정 씨한테 심한 말 하면 어떡하죠?”

“들을 수도 있지.”

“전 그게 싫어요.”

“그래서 계속 숨길 거야?”

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정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현우야.”

“네.”

“이제는 우리가 둘만 생각하면 되는 때가 아니야.”

미정의 손이 배 위에 머물렀다.

현우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내려갔다.

“조금 있으면 얘가 나와.”

그 말에 현우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러면 진짜가 되는 거야.”

“지금도 진짜예요.”

“알아.”

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태어나면 더 이상 숨겨둘 수 없다는 뜻이야.”

현우는 미정 옆에 앉았다.

그리고 배에 손을 올렸다.

안쪽에서 아이가 움직였다.

현우의 손바닥 아래로 작은 움직임이 지나갔다.

둘 다 동시에 말을 멈췄다.

현우가 아주 작게 말했다.

“움직였어요.”

“응.”

잠시 후 또 한 번.

툭.

현우는 배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났다.

자신도 이유를 몰랐다.

“왜 울어?”

미정이 놀랐다.

현우는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야.”

“그냥….”

현우가 눈가를 닦았다.

“얘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 말에 미정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렇지.”

“우리 부모님한테 말하기 무섭다고 제가 계속 미루는 것도 모르고.”

현우는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냥 태어날 준비만 하고 있는데.”

미정은 아무 말 없이 현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현우가 말했다.

“말할게요.”

“…….”

“진짜 이제 말할게요.”

미정은 바로 기뻐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오늘?”

현우는 순간 멈췄다.

그리고 미정이 웃었다.

“거봐.”

현우도 결국 씁쓸하게 웃었다.

“무섭다니까요.”

“알아.”

미정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해야 해.”

현우가 한참 고민하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엄마와의 채팅방을 열었다.

마지막 메시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번 주말에는 집에 오는 거지?]

현우는 한참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답장을 썼다.

[엄마, 이번 주말에 집에 갈게. 엄마 아빠한테 꼭 할 말이 있어.]

손가락이 전송 버튼 위에서 멈췄다.

현우가 미정을 바라봤다.

미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꽉 잡았다.

현우가 전송 버튼을 눌렀다.

메시지가 보내졌다.

몇 초 뒤 ‘읽음’ 표시가 사라졌다.

곧 답장이 왔다.

[무슨 일인데?]

현우의 심장이 다시 빨라졌다.

미정이 화면을 보고 말했다.

“지금 다 말하려고 하지 마.”

“그럼요?”

“얼굴 보고 해.”

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미정이 갑자기 표정을 찡그렸다.

“잠깐.”

현우가 바로 몸을 일으켰다.

“왜요?”

미정은 배를 감싸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배가 좀 뭉치네.”

현우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진통이에요?”

“아니야. 아직 그런 것 같진 않아.”

“병원 갈까요?”

“잠깐만.”

미정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잠시 뒤 배의 긴장이 풀렸다.

“괜찮아.”

하지만 현우의 표정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정이 그런 현우를 바라봤다.

“왜 그렇게 겁먹어.”

“예정일 얼마 안 남았잖아요.”

“그러니까.”

미정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진짜 언제 나올지 몰라.”

현우가 잠시 굳었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출산 가방을 바라봤다.

그 순간 현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이의 출산.

부모님과의 고백.

미정의 건강.

자신의 미래.

며칠 안에 모든 것이 동시에 터질 수도 있었다.

현우는 미정의 손을 잡았다.

“미정 씨.”

“응.”

“저 무서워요.”

처음으로 숨기지 않고 말했다.

미정도 그의 손을 꽉 잡았다.

“나도 무서워.”

“…….”

“근데 어떡해.”

미정이 자신의 커다란 배를 내려다봤다.

“여기까지 왔는데.”

현우 역시 배를 바라봤다.

아이에게는 부모의 두려움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배 안에서 다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현우는 그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는 도망가지 말자.’

부모님이 화를 내더라도.

자신에게 실망하더라도.

이제는 말해야 했다.

왜냐하면 며칠 뒤면—

자신은 누군가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었으니까.

Lv10 월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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