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는 결국 말하지 못했다.
주말에 부모님 집까지 갔다.
아버지와 마주 앉아 밥도 먹었고, 어머니가 깎아준 과일도 먹었다.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했다.
“엄마, 나 사실….”
하지만 그 뒤가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그때마다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집을 나왔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현우는 자기 자신이 너무 싫었다.
아버지가 되겠다던 사람.
미정에게 도망가지 않겠다고 말했던 사람.
그러면서 자기 부모에게는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진짜 말한다.’
또 같은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에게 다음 기회는 생각보다 늦게 찾아왔다.
---
사흘 뒤 새벽 2시 17분.
미정은 깊은 잠에서 눈을 떴다.
처음에는 왜 깼는지 알지 못했다.
방 안은 어두웠고 여인숙 전체가 조용했다.
천천히 몸을 돌리려던 순간—
아랫배가 단단하게 뭉쳤다.
“으….”
미정은 그대로 멈췄다.
임신 막달이 되고부터 이런 배 뭉침은 몇 번 있었다.
병원에서도 불규칙하고 금방 가라앉으면 가진통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정은 침대 머리맡의 시계를 바라봤다.
2시 18분.
한 손으로 배를 감싸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얼마 뒤 통증이 사라졌다.
미정은 다시 누웠다.
‘역시 또 가진통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십여 분 뒤.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배가 단단하게 조여드는 것과 동시에 허리까지 묵직하게 당겨왔다.
미정은 눈을 떴다.
“잠깐….”
시계를 확인했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세 번째 통증.
미정의 얼굴에서 잠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설마.’
심장이 빨라졌다.
병원에서 들었던 설명이 머릿속을 스쳤다.
규칙적인 통증.
점점 짧아지는 간격.
강해지는 진통.
미정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바닥에 발을 내딛자 손끝까지 긴장이 퍼졌다.
“오늘이야?”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몇 달 동안 기다렸던 날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날이 정말 찾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기다림과 공포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정말 애 낳는 거야?’
미정은 자신의 커다란 배를 내려다봤다.
그 안에 있던 아이가 이제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기쁨이 아니었다.
공포였다.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쉰여섯.
병원에서 수없이 들었던 말.
고위험 임신.
혈압.
출혈.
응급수술 가능성.
혹시 모를 합병증.
평소에는 일부러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어두운 방 안에서 한꺼번에 떠올랐다.
미정은 급하게 현우에게 전화했다.
첫 번째.
받지 않았다.
“제발….”
두 번째.
신호가 몇 번 울린 뒤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현우야.”
현우의 목소리가 즉시 깨어났다.
“미정 씨?”
미정은 숨을 한번 골랐다.
그리고 말했다.
“나… 아무래도 시작한 것 같아.”
잠깐 정적이 흘렀다.
“뭐가요?”
“진통.”
몇 초 뒤 현우의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이요?”
“응.”
“병원 가야죠.”
“그럴 것 같아.”
현우는 거의 소리를 질렀다.
“바로 갈게요.”
---
병원에 도착했을 때 미정은 이미 말수가 줄어 있었다.
진통이 올 때마다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현우는 옆에서 출산 가방을 들고 따라다녔다.
얼굴이 미정보다 더 하얬다.
분만실 쪽으로 이동한 뒤 간호사가 빠르게 상태를 확인했다.
태아 심박동 모니터가 미정의 배에 연결됐다.
두두두두두—
빠른 심장 소리가 들렸다.
미정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조금 안심했다.
‘있다.’
‘괜찮다.’
‘우리 애 살아 있어.’
그러나 곧 진통이 다시 시작됐다.
“아….”
미정이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에는 참을 만했던 통증이 점점 파도처럼 몰려왔다.
배 전체가 강하게 조여들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묵직했고 골반 아래로 엄청난 압박감이 내려왔다.
간호사가 말했다.
“숨 길게 내쉬세요.”
미정은 시키는 대로 하려고 했다.
후—
하지만 통증이 최고조에 올라가자 호흡이 흐트러졌다.
“아파….”
현우가 손을 내밀었다.
미정은 그대로 그의 손을 붙잡았다.
평소라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조차 싫어했을 미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체면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현우야.”
“네.”
“나 무서워.”
그 한마디에 현우의 가슴이 철렁했다.
늘 자신보다 침착했던 미정.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도 결국 자신을 달래주었던 사람.
그런 미정이 처음으로 어린아이처럼 무섭다고 말했다.
현우는 그녀의 손을 양손으로 감쌌다.
“저 여기 있어요.”
“혹시 잘못되면….”
“그런 말 하지 마요.”
“들어.”
미정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혹시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애는….”
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생겨요.”
“현우야.”
“둘 다 괜찮을 거예요.”
현우는 그렇게 말했지만 자기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사실 누구보다 무서웠다.
의료진이 오가는 모습.
계속 확인되는 혈압.
모니터에 올라갔다 내려가는 수치.
의사들이 미정의 연령과 상태 때문에 더 자주 들어와 확인하는 모습.
그 모든 것이 지금까지의 일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현우에게 일깨우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갑자기 그런 생각도 들었다.
미정이 아픈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신이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던 말이 너무 쉽게 느껴졌다.
낳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몇 달 동안 아이를 품은 것도.
지금 몸이 찢어질 듯한 통증을 견디는 것도.
모두 미정이었다.
현우는 그녀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제발.’
‘둘 다 살려주세요.’
누구에게 하는 기도인지도 몰랐다.
---
시간이 흘렀다.
새벽이 아침으로 바뀌었다.
진통은 훨씬 강해졌다.
미정은 이제 통증이 올 때마다 침대 난간을 붙잡았다.
“하아… 아…!”
땀이 이마와 목을 타고 흘렀다.
머리카락은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몇 시간째 반복되는 통증 때문에 온몸의 힘이 빠지고 있었다.
진통이 잠깐 가라앉으면 미정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곧 다음 파도가 찾아왔다.
‘또 온다.’
이제는 시작되기 직전부터 알 수 있었다.
배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조여드는 느낌.
그리고 순식간에 몸 전체를 덮치는 압박.
미정은 이를 악물었다.
‘못 하겠다.’
그 생각이 몇 번이고 들었다.
‘정말 못 하겠어.’
‘그만하고 싶어.’
그런데 그만둘 방법은 없었다.
앞으로 가는 것밖에는.
미정은 울면서 말했다.
“나 진짜 못하겠어….”
의료진이 차분히 말했다.
“잘하고 계세요. 거의 다 왔어요.”
미정은 속으로 소리쳤다.
‘그 말을 몇 번째 듣는 거야.’
하지만 다음 진통이 시작되자 그런 생각조차 사라졌다.
온몸이 통증 그 자체가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느낌이 달라졌다.
아래로 강하게 밀어내고 싶은 압박감이 생겼다.
몸이 본능적으로 힘을 주고 싶어 했다.
의료진이 상태를 확인한 뒤 분만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조명이 더 밝아졌다.
주변 사람들이 움직였다.
현우는 미정 머리맡에 있었다.
그의 손은 이미 미정이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빨갛게 변해 있었다.
미정이 숨을 몰아쉬었다.
“현우야.”
“네.”
“나 얼굴 엉망이지.”
현우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예뻐요.”
“거짓말.”
“진짜예요.”
미정도 힘없이 웃었다.
그리고 바로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온다….”
의료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통 올 때 힘 주세요.”
미정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힘을 줬다.
온몸의 힘을 아래쪽으로 모았다.
목까지 핏줄이 설 정도였다.
“으으으…!”
몇 초.
힘을 풀었다.
미정은 숨을 몰아쉬었다.
“또 해야 돼?”
“네. 아주 잘하고 있어요.”
다음 진통.
다시 힘.
현우는 옆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손을 잡고 이름을 부르는 것뿐이었다.
“미정 씨.”
“조금만 더요.”
“진짜 조금만 더.”
자신도 믿지 못하면서 계속 같은 말을 했다.
미정은 어느 순간 울고 있었다.
통증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드디어 아이를 만난다는 사실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제발.’
‘제발 건강하게만.’
이제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나이를 걱정했던 것도.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했던 것도.
현우 부모님을 걱정했던 것도.
모두 사라졌다.
‘살아서 나와.’
미정은 속으로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또다시 진통이 왔다.
미정이 힘을 줬다.
의료진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아기 머리 보여요.”
그 말을 들은 순간 현우의 눈이 커졌다.
미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울먹였다.
“진짜요?”
“네. 한 번만 더 잘해볼게요.”
한 번.
그 한 번이 세상에서 가장 길게 느껴졌다.
미정은 남은 힘을 끌어모았다.
현우의 손을 거의 으스러뜨릴 만큼 세게 잡았다.
“으아아아…!”
몸 아래쪽이 강하게 벌어지는 듯한 압박과 뜨거운 통증이 몰려왔다.
미정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갑자기 느낌이 달라졌다.
강한 압박감이 한순간 풀리는 것 같았다.
짧은 정적.
미정은 숨을 몰아쉬며 천장을 바라봤다.
‘뭐지?’
현우도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응애—!”
작고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분만실을 가득 채웠다.
현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미정 역시 움직이지 못했다.
“응애—! 응애—!”
두 번째 울음.
그제야 미정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나왔어…?”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의료진이 말했다.
“네. 잘 나왔어요.”
미정은 울면서 웃었다.
“건강해요?”
그 질문이 가장 먼저였다.
“지금 잘 울고 있습니다.”
현우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눈물이 그대로 흘러내렸다.
조금 뒤 누군가 말했다.
“따님이에요.”
현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딸이요?”
그 목소리에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네. 딸이에요.”
현우는 갑자기 아이처럼 웃었다.
“미정 씨.”
그는 울면서 미정을 바라봤다.
“딸이래요.”
미정은 이미 눈물을 닦을 힘도 없었다.
“들었어.”
“우리 딸이에요.”
‘우리 딸.’
그 말에 미정은 다시 울었다.
몇 달 동안 자신의 배 속에서 움직이던 아이.
초음파 속에서 조그맣게 손을 흔들던 아이.
어두운 밤마다 괜찮을까 걱정하게 했던 아이.
그 아이가 지금 울고 있었다.
얼마 후 간단한 확인을 마친 아기가 미정에게 가까이 왔다.
작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얼굴은 붉었고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작은 입을 벌려 울었다.
미정의 가슴 위에 아이가 조심스럽게 놓였다.
그 순간 미정은 숨을 멈췄다.
따뜻했다.
조그마한 몸이 살아 움직였다.
미정은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등을 만졌다.
“안녕….”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기의 울음이 조금 잦아들었다.
미정은 아이를 바라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네가 여기 있었구나.”
현우는 옆에서 계속 울고 있었다.
미정이 그를 바라봤다.
“왜 네가 그렇게 울어.”
현우는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좋아서요.”
그는 아이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손가락 하나가 움직였다.
현우가 새끼손가락을 가까이 가져갔다.
작은 손이 우연히 그의 손가락을 감쌌다.
현우의 얼굴이 다시 무너졌다.
“잡았어요.”
미정이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그거 그냥 반사야.”
“그래도 잡았잖아요.”
현우는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짜 우리 딸이네.”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했다.
마치 반복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처럼.
미정은 그런 현우를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현우의 부모님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자신들에게 손녀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자신들의 스물세 살 아들이 병원 분만실에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도.
미정은 그 생각에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품 안의 아이가 작게 몸을 움직이자 다시 시선을 내렸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현우도 마찬가지였다.
휴대전화에는 어머니에게서 온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전화 좀 해.]
현우는 그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화면을 껐다.
오늘만큼은 부모님에게 말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보다 눈앞에 있는 딸이 더 컸다.
그는 미정 옆으로 몸을 숙였다.
미정과 아이를 한꺼번에 바라봤다.
“미정 씨.”
“응.”
현우가 웃었다.
“저 진짜 아빠 됐네요.”
미정도 힘없이 웃었다.
“그러게.”
현우는 딸의 작은 머리를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아빠가 늦었지만 제대로 할게.”
미정은 그 말을 들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다만 눈을 감기 직전 현우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그 사이에는 갓 태어난 딸의 작은 손이 있었다.
세 사람의 손이 처음으로 한곳에 겹쳐졌다.
딸이 태어난 지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현우는 부모님 집 앞에서 십 분 넘게 서 있었다.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화면에는 갓 태어난 딸의 사진이 떠 있었다.
눈을 꼭 감고 있는 작은 얼굴.
분홍색 담요에 싸인 몸.
그리고 사진 구석에는 미정의 손가락이 조금 보였다.
현우는 화면을 껐다.
다시 켰다.
또 껐다.
‘오늘은 해야 해.’
이제는 미룰 수도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이미 손녀가 생겼다.
그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로 두는 것은 더 이상 두려움이라는 말로 변명할 수 없었다.
현우는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빅.
문이 열렸다.
“엄마.”
거실에서 TV를 보던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왔어?”
평범한 목소리였다.
그게 현우에게는 더 괴로웠다.
아버지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웬일로 먼저 왔냐.”
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현우의 얼굴을 보더니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너 왜 그래?”
“뭐가?”
“얼굴이 왜 그렇게 죽었어.”
현우는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양손을 무릎 위에서 깍지 꼈다.
손끝이 떨렸다.
아버지가 TV 음량을 줄였다.
“할 말 있다며.”
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응.”
“뭔데.”
현우의 입이 마르는 것 같았다.
수개월 동안 머릿속에서 수백 번 연습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실제 부모의 얼굴을 보자 모든 문장이 사라졌다.
“엄마.”
“응.”
“아빠.”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왜 뜸을 들여.”
현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 만나는 사람 있어.”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여자친구?”
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한숨을 놓듯 웃었다.
“난 또 무슨 큰일 난 줄 알았네.”
현우의 가슴이 더 아팠다.
큰일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물었다.
“같은 학교야?”
“아니.”
“그럼 직장인이야?”
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현우를 빤히 바라봤다.
“몇 살인데.”
그 질문이 결국 나왔다.
현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쉰여섯.”
정적.
TV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소리가 작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눈을 깜빡였다.
“뭐...?”
현우는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말했다.
“쉰여섯 살이야.”
어머니의 얼굴에서 웃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누가?”
“제가 만나는 사람이.”
“쉰… 뭐?”
아버지가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거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물었다.
“지금 장난하냐?”
“아니.”
“너 스물셋이야.”
“알아.”
어머니가 현우를 멍하니 바라봤다.
“쉰여섯이면….”
말을 하다 멈췄다.
계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보다도…많...”
현우는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몇 초 후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우야. 지금 엄마 놀리는 거 아니지?”
“아니야.”
“어디서 만났는데?”
현우는 그것까지 말해야 했다.
“여인숙.”
어머니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뭐?”
“그 사람이 여인숙을 운영해.”
아버지가 낮게 말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이야기해.”
현우는 주먹을 쥐었다.
이제 돌아갈 수 없었다.
“제가 우연히 그쪽에 갔다가 알게 됐고… 계속 만나게 됐어.”
아버지의 얼굴이 점점 딱딱해졌다.
“얼마나 됐어.”
“몇 달.”
“몇 달?”
아버지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몇 달 만난 쉰여섯 살 여자를 왜 지금 처음 이야기해?”
현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현우야.”
그 목소리가 떨렸다.
“설마 그것만 있는 거 아니지?”
현우의 눈이 어머니와 마주쳤다.
어머니는 이미 알아챈 듯했다.
자기 아들이 단순히 나이 많은 여자를 사귄다는 이야기만 하려고 이렇게까지 떨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또 뭐 있어?”
현우는 숨을 들이마셨다.
“아이도 있어.”
이번에는 침묵조차 이상할 정도로 길었다.
어머니가 입을 조금 벌렸다.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현우가 말했다.
“아이 생겼어.”
어머니가 거의 속삭였다.
“임신했다고?”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바로 다음 말을 해야 했다.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근데….”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미 낳았어.”
어머니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졌다.
“뭐?”
“나흘 전에.”
아버지가 벌떡 일어났다.
“야!”
현우도 움찔했다.
“애를 낳았다고?”
“응.”
“네 애를?”
“응.”
“그런데 우리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현우만 바라봤다.
얼굴이 창백해졌다.
“잠깐만.”
어머니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잠깐만, 잠깐….”
현우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엄마.”
“오지 마.”
그 말에 현우가 멈췄다.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너 지금 엄마한테….”
목소리가 떨렸다.
“손녀가 태어난 지 나흘 됐다고 말하는 거야?”
현우는 고개를 숙였다.
“…응.”
어머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나왔다.
“세상에.”
그리고 곧 울음을 터뜨렸다.
“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현우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미안해.”
“미안해?”
어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임신한 것도 숨겨.”
“…….”
“몇 달 동안 애가 크는 것도 숨겨.”
“…….”
“애 낳는 것도 숨겨놓고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하면 끝이야?”
“엄마.”
“난 네 엄마잖아!”
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가장 아팠다.
아버지가 벽 쪽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화가 난 것 같았지만 동시에 충격을 받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 여자….”
아버지가 물었다.
“정말 쉰여섯이야?”
“응.”
“네가 스물셋이고?”
“응.”
아버지가 헛웃음을 쳤다.
“서른세 살 차이네.”
현우가 작게 말했다.
“응.”
“네가 미쳤냐?”
현우는 고개를 들었다.
“아빠.”
“뭐?”
“그렇게 말하지 마.”
그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금 네가 나한테 그 말을 해?”
“미정 씨 잘못 아니야.”
“이름이 미정이야?”
“응.”
“넌 지금 그 사람 편을 들 상황이 아니야!”
현우도 조금씩 감정이 올라왔다.
“편드는 게 아니라 사실이잖아.”
“무슨 사실?”
“내가 좋아했어.”
어머니가 울면서 현우를 바라봤다.
현우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먼저 찾아갔고.”
“그만해.”
“내가 계속 만났고.”
“현우야.”
“임신한 것도 둘이 같이 결정해서 낳기로 한 거야.”
아버지가 노려봤다.
“그 결정할 때 부모는 생각도 안 났냐?”
현우는 입을 다물었다.
“왜 대답을 못 해.”
현우가 겨우 말했다.
“생각났어.”
“그런데?”
“무서웠어.”
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무서워?”
“응.”
현우의 눈에도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나 싫어할까 봐.”
어머니의 울음이 잠시 멎었다.
“실망할까 봐.”
현우가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그래서 애가 태어날 때까지 숨겨?”
어머니가 물었다.
현우는 고개를 숙였다.
“응.”
“그게 더 나빠.”
“알아.”
“엄마가 네 여자친구 나이가 많아서만 이러는 줄 알아?”
현우가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눈물을 닦았다.
“너한테 애가 생겼는데.”
“…….”
“너 혼자 몇 달을 겪고 있었는데.”
“…….”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잖아.”
현우는 그제야 부모가 왜 이렇게 충격을 받았는지 조금 다르게 이해했다.
나이 차이.
갑작스러운 아이.
그것도 컸다.
하지만 자신이 부모를 철저히 바깥에 세워두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아버지가 소파에 다시 앉았다.
아까보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애는 건강해?”
현우가 잠시 놀랐다.
“응.”
“산모는.”
“괜찮아.”
“딸이라며.”
현우의 표정이 아주 조금 변했다.
“응.”
어머니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현우가 딸 이야기를 하는 순간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사진 있어?”
어머니가 물었다.
현우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휴대전화를 꺼냈다.
딸의 사진을 열었다.
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머니는 화면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없었다.
작은 얼굴.
감긴 눈.
조그마한 코와 입.
어머니의 손이 떨렸다.
현우가 말했다.
“태어날 때 많이 울었어.”
어머니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이게….”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손녀야?”
현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머니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충격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분노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사진 속 아이는 그런 감정들과 전혀 상관없는 존재였다.
그저 갓 태어난 아기였다.
아버지도 한참 망설이다 휴대전화를 받아 들었다.
사진을 확대했다.
다시 줄였다.
말은 하지 않았다.
현우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잠시 후 아버지가 물었다.
“이름은?”
“아직 정식으로 안 정했어.”
“그 여자… 미정 씨는 뭐래.”
아버지가 처음으로 ‘그 여자’ 대신 이름을 붙였다.
현우는 그것을 알아챘다.
“같이 생각하고 있어.”
다시 침묵.
어머니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현우를 바라봤다.
“엄마가 지금 당장 잘했다고 할 수는 없어.”
“알아.”
“너한테 화도 많이 났어.”
“응.”
“그분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응.”
“근데….”
어머니의 시선이 휴대전화 속 사진으로 다시 향했다.
“애한테 무슨 죄가 있겠니.”
현우의 눈이 붉어졌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현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번 만나줄래?”
부모 모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미정 씨하고.”
현우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기.”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 침묵은 현우에게 몇 분처럼 느껴졌다.
결국 어머니가 말했다.
“오늘은 못 보겠다.”
현우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곧 말을 이어갔다.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아기는 어디 있어?”
“병원.”
“미정 씨도?”
“응.”
“혼자야?”
현우가 대답했다.
“지금은.”
그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화가 났다가, 걱정했다가, 다시 복잡해졌다.
“출산한 지 나흘밖에 안 된 사람을 혼자 두고 여기 온 거야?”
현우가 당황했다.
“말하러 온 거잖아.”
“그러니까 빨리 가.”
“엄마?”
“오늘 당장 용서했다는 뜻 아니야.”
어머니는 눈물을 닦았다.
“근데 산후에 혼자 있으면 안 되잖아.”
현우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낮게 말했다.
“가.”
현우가 아버지를 바라봤다.
“나도 생각 좀 해보자.”
아버지는 사진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그리고….”
한참 말을 고르다가 물었다.
“애 사진은 나한테도 보내.”
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메었다.
“응.”
그날 현우가 현관을 나설 때까지 누구도 웃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부모는 여전히 엄청난 충격 속에 있었다.
미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앞으로 싸울 일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우는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음으로 부모님과의 메시지방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뒤 어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병원 어디야?]
현우는 한참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병원 이름을 보냈다.
몇 초 후 다시 메시지가 왔다.
[아기 사진 다른 것도 있으면 보내줘.]
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났다.
딸의 사진첩을 열었다.
몇 장을 골랐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가족에게 자신의 새로운 가족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