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의 여대생 지희는 서울의 작은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아 서울에 올라온 뒤부터 카페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병행했지만, 월세와 관리비, 교통비에 식비까지 빠져나가고 나면 통장에는 늘 몇 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
그날도 지희는 책상 위에 놓인 고지서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월세 납부일까지 닷새.
통장 잔액은 17만 원.
다음 달 등록금 일부도 마련해야 했다.
“하아…”
지희는 침대에 걸터앉아 휴대폰 계산기를 두드렸다.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카페에서 근무 시간을 늘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사장은 이미 아르바이트생이 충분하다며 어렵다고 했다. 과외도 방학이 끝나면서 하나가 끊겼다.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구인 사이트를 지희는 그날 밤 몇 시간째 넘겨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 공고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강남 라운지 직원 모집.’
근무시간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그리고 시급이 지희가 카페에서 받는 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았다.
지희는 처음엔 광고를 그냥 넘겼다.
하지만 몇 분 뒤 다시 그 페이지로 돌아왔다.
‘초보 가능.’
‘대학생 환영.’
‘당일 지급 가능.’
그 세 문장이 이상할 정도로 눈에 들어왔다.
지희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가끔 이야기하던 강남의 유흥업소.
술을 마시는 손님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분위기를 맞춰주는 곳.
지희에게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술도 잘 마시지 못했고, 남자를 상대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소개팅을 나가도 상대방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이런 걸 어떻게 해…”
혼잣말하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시선은 다시 월세 고지서로 향했다.
잠시 후 지희는 결국 휴대폰을 다시 집었다.
지원 버튼을 누르기까지 거의 십 분이 걸렸다.
이름.
나이.
사는 지역.
간단한 자기소개.
마지막 전송 버튼 앞에서 지희의 엄지손가락이 멈췄다.
‘딱 한 달만.’
지희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생활비 조금 모으면 바로 그만두면 돼.’
전송.
몇 분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잔뜩 긴장한 지희가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생각보다 친절한 여자 목소리였다.
“지원하신 지희 씨 맞으시죠? 혹시 오늘 면접 가능하세요?”
“…오늘이요?”
“네.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처음 일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지희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네.”
그날 저녁.
지희는 옷장 앞에서 거의 한 시간을 서 있었다.
평소 학교에 입고 다니던 청바지와 후드티밖에는 마땅한 옷이 없었다.
결국 작년에 친구 결혼식에 입으려고 샀던 검은색 원피스를 꺼냈다.
거울 앞에 선 지희는 낯선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화장을 조금 진하게 하고 머리를 풀었을 뿐인데 평소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이상하다…”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그대로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강남으로 향하는 동안 지희의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뛰었다.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질수록 불안은 더 커졌다.
‘그냥 돌아갈까?’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지희는 강남역에 내렸다.
화려한 간판과 사람들.
밤인데도 거리는 대낮처럼 밝았다.
지희는 휴대폰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며 골목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건물 앞에서 멈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복도 끝에 커다란 문이 보였다.
문을 열자 지희가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어두운 조명.
잔잔하게 울리는 음악.
짙은 향수 냄새와 술 냄새.
화려하게 꾸민 여자들이 복도를 오가고 있었다.
짧은 드레스와 높은 구두.
자신감 있는 표정들.
지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원피스 자락을 내려다봤다.
너무 평범해 보였다.
“면접 오셨어요?”
직원 한 명이 다가오자 지희가 화들짝 놀랐다.
“네… 네.”
지희는 안내를 받아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면접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나이와 학교 생활, 가능한 출근 시간 정도를 물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죠?”
지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에는 누구나 긴장해요. 손님하고 이야기 잘하고 분위기 맞춰주면 됩니다.”
지희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꼭 맞잡았다.
“제가… 말을 잘 못하는 편인데요.”
직원은 웃었다.
“그것도 하다 보면 늘어요. 오히려 지희 씨처럼 순한 이미지 좋아하는 손님도 많아요.”
‘순한 이미지.’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잠시 뒤 직원이 물었다.
“오늘부터 해볼래요?”
지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두 가지 생각이 싸우고 있었다.
나가야 한다.
하지만 돈이 필요하다.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당장 월세를 내야 한다.
결국 지희가 아주 작게 대답했다.
“…해볼게요.”
얼마 후 지희는 대기실의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직원이 건네준 옷은 자신이 입고 온 원피스보다 훨씬 화려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희는 어색하게 팔을 감쌌다.
주변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화장을 고치고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두 익숙해 보였다.
그곳에서 어색한 사람은 자신뿐인 것 같았다.
“처음이야?”
옆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물었다.
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처음 며칠만 그래. 너무 긴장하지 마.”
그때 문이 열렸다.
직원이 말했다.
“지희 씨.”
지희가 고개를 들었다.
“들어갈게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지희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높은 구두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 걸음이 어색했다.
직원을 따라 복도를 걸으며 지희는 계속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지희가 처음 안내받은 곳은 생각보다 작은 방이었다.
밖의 화려한 복도와 달리 안쪽은 평범한 사무실에 가까웠다. 책상 하나와 소파, 작은 냉장고, 벽에 걸린 출근표. 책상 위에는 계산기와 장부, 휴대전화 두 대가 놓여 있었다.
“여기 앉아요.”
마흔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업소에서는 모두 그녀를 ‘마담실장’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지희는 조심스럽게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이름이 지희라고 했죠?”
“네.”
“스물두 살?”
“네.”
“학교 다니고?”
“…네. 대학교 다니고 있어요.”
실장은 지희를 잠시 바라보았다.
“처음이지?”
지희는 괜히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런 데는… 처음이에요.”
“알겠어. 처음이면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내가 하나씩 설명해줄게. 중간에 궁금한 거 있으면 바로 물어보고.”
실장은 책상 위의 장부를 덮었다.
“일단 제일 궁금한 건 돈일 거고.”
그 말을 듣자 지희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사실 맞았다.
지희가 여기까지 온 가장 큰 이유도 결국 돈이었다.
실장이 말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출근했다고 시간당 월급처럼 계산하는 방식은 아니야. 하루 정산 개념에 더 가까워.”
“하루 정산이요?”
“응. 그날 근무한 시간하고 업무에 따라서 계산해서 퇴근할 때 확인해. 초보는 처음 며칠 동안 적응기간이 있어서 다른 사람하고 똑같이 잡지는 않고.”
지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하루에 보통 얼마 정도 벌어요?”
실장은 바로 금액을 말하기보다는 지희를 한번 바라보았다.
“사람마다 정말 달라. 몇 시간 일하느냐도 다르고, 주중이냐 주말이냐도 다르고. 처음부터 인터넷 광고에 적힌 최고 금액을 그대로 받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지희는 살짝 실망한 얼굴을 했다.
“광고에는 꽤 많이 적혀 있던데…”
“그건 말 그대로 많이 일하는 경우까지 포함해서 적어놓은 거야.”
실장은 계산기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래도 일반 카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는 훨씬 높아. 그래서 대학생들도 많이 오는 거고.”
지희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물었다.
“정산은… 바로 받을 수도 있어요?”
“원하면 당일 정산도 가능해. 계좌로 받을 수도 있고. 다만 출근 전에 정산 방식은 정해두는 게 좋아.”
“저는 당일로 받고 싶은데…”
“생활비 때문에?”
순간 지희는 조금 창피해져 시선을 내렸다.
“…네.”
실장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오는 사람들 대부분 이유 있어. 학비 때문에 오는 사람도 있고, 월세 때문에 오는 사람도 있고. 굳이 설명 안 해도 돼.”
그 말이 오히려 지희를 조금 편하게 했다.
실장은 이번에는 출근표를 꺼냈다.
“다음은 시간.”
종이에는 여자들의 이름과 시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평일은 보통 저녁 일곱 시쯤부터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건 아홉 시 이후고.”
“몇 시까지 해요?”
“늦으면 새벽까지.”
지희의 눈이 조금 커졌다.
“새벽이요?”
“응. 대신 학생이면 매일 끝까지 있을 필요는 없어. 수업 있는 날은 미리 얘기하면 돼.”
“저 다음 날 아침 수업 있는 날도 있어서…”
“그러면 그날은 일찍 출근해서 자정이나 한 시쯤 빠지는 식으로 조정하면 되고.”
지희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 몇 회 정도 해야 돼요?”
“우리는 일단 주 세 번 정도는 나오는 걸 권해. 그래야 너도 적응하고 우리도 스케줄을 잡을 수 있으니까.”
“꼭 정해진 요일이어야 하나요?”
“아니. 학교 시간표 있으면 매주 말해줘도 돼. 대신 온다고 해놓고 당일에 연락 없이 빠지는 건 안 돼.”
“네.”
실장은 펜을 들었다.
“학교 몇 시에 끝나?”
“월요일이랑 수요일은 다섯 시쯤이고요. 화요일이랑 목요일은 세 시쯤…”
“금요일은?”
“금요일은 오전 수업만 있어요.”
실장이 바로 말했다.
“그럼 금요일이 제일 좋겠네. 금요일, 토요일이 아무래도 바쁘니까.”
“토요일도 꼭 나와야 해요?”
“꼭은 아니야. 근데 돈 벌려고 온 거면 주말 하루 정도는 하는 게 좋아.”
지희는 속으로 계산했다.
월세.
관리비.
통신비.
식비.
등록금.
결국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금요일이랑 토요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일 하루 더 하고?”
지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수요일 정도요.”
실장이 출근표에 적었다.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단 이렇게 해보자.”
그다음 실장의 시선이 지희가 입고 온 검은 원피스로 향했다.
“복장은 지금 입은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여기서는 조금 더 신경 써야 해.”
지희가 순간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다.
“제가 이런 옷이 별로 없어서요.”
“처음에는 다 그래.”
실장이 웃었다.
“오늘은 대기실에 있는 거 몇 개 입어보고, 계속 일하게 되면 본인한테 맞는 걸 조금씩 준비하면 돼.”
“많이… 화려해야 해요?”
그 질문에 실장이 지희를 보며 말했다.
“너는 너무 과하게 꾸미는 것보다 지금 이미지 살리는 게 나을 것 같아.”
“제 이미지요?”
“응. 좀 순해 보이잖아.”
지희는 묘하게 민망해졌다.
실장은 계속 설명했다.
“머리랑 화장은 깔끔하게. 운동화나 슬리퍼 신고 들어오는 건 상관없는데 일할 때는 구두 신는 게 기본이고.”
지희가 자신의 발을 내려다봤다.
높은 구두를 거의 신어본 적이 없었다.
“저 구두 잘 못 신는데…”
“처음부터 높은 거 신을 필요 없어. 낮은 걸로 시작해.”
지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술도… 많이 마셔야 해요?”
이 질문은 들어온 순간부터 가장 걱정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술 약하면 처음부터 말하면 돼.”
“저 진짜 약해요. 소주도 한 병 못 마셔요.”
“그러면 억지로 마시려고 하지 마.”
지희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실장을 바라봤다.
실장이 덧붙였다.
“취해서 정신 못 차리면 일도 못하고 사고 나. 그게 더 골치 아파.”
“아…”
“마실 수 있는 만큼만 하고, 힘들면 직원한테 얘기해.”
지희는 조금 안심했다.
실장은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약간 진지하게 바꿨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지희가 자세를 바로 했다.
“싫은 거 있으면 정확하게 말해.”
“네?”
“처음 온 애들이 제일 많이 하는 실수가 뭔지 알아?”
지희는 고개를 저었다.
“싫은데도 분위기 때문에 그냥 참는 거.”
실장은 지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기는 네가 익숙한 학교나 카페랑 분위기가 달라. 그러니까 애매하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직원 부르면 돼.”
지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취해서 귀가 힘들 것 같으면 그것도 얘기하고. 혼자 무리해서 돌아다니지 말고.”
그 말을 듣고서야 지희는 자신이 정말 낯선 곳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에는 오로지 돈밖에 없었다.
하지만 출근시간이며 복장이며 술이며 정산 이야기를 하나씩 듣다 보니 이것이 단순히 며칠짜리 아르바이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장이 물었다.
“여기까지 궁금한 거 있어?”
지희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궁금한 것은 많았다.
그런데 막상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혹시 해보고 저랑 정말 안 맞는 것 같으면…”
“그만두고 싶다고?”
“…네.”
“그건 네 선택이지.”
지희는 그 대답을 듣자 조금 안심했다.
실장이 웃으며 덧붙였다.
“오늘은 일단 분위기부터 보고 판단해. 처음부터 돈 욕심내서 무리할 생각하지 말고.”
“네.”
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 쪽을 가리켰다.
“그럼 오늘은 정식 출근이라기보다는 적응한다고 생각하자.”
지희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문을 열기 직전, 실장이 다시 지희를 불렀다.
“지희야.”
“네?”
“생각보다 긴장 많이 했네.”
지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티 나요?”
“엄청.”
지희는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실장은 웃으며 문을 열었다.
“괜찮아. 오늘 처음인 사람한테 능숙한 걸 기대하는 사람 없어.”
지희는 대기실로 이어지는 긴 복도를 바라보았다.
면접을 받으러 들어올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긴장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안도감도 있었다.
적어도 근무시간과 돈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막연했던 공간이 조금은 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희는 속으로 다시 계산했다.
일주일에 세 번.
그렇게 한 달만 일하면 밀린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딱 필요한 돈만 모으자.’
지희는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만두는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지희는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5추 시 다음편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