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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로체스트 대 활극 서사시-이웨카의 밤 1

청아요
댓글: 3 개
조회: 1045
2011-06-27 08:32:39

  여름이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성큼 다가오는 6월의 어느날이었다. 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관 -주로 그 대상은 조금이라도 어긋난 행동을 하면 당사자의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때까지 기사가 어째서 개인의 판단을 저쳐두고 원리원칙을 따라야만 하는지 설명하는 벽창호, 루더렉-이 다가오는 모습을 손쉽게 관측할 수 있으며, 동시에 상대방은 이쪽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지리적 이점을 가진 기사단 사무실 2층의 테라스에는 오늘도 여지없이 많은 기사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분명 알코올이 다량 함유된 음료가 담긴 것으로 의심되는 텀블러를 들고있는 사람부터, 기사에게 공짜로 제공되는 간단한 스낵을 몇 접시나 앞에 두고서 정신없이 먹어대는 무리, 큰 목소리만으로는 주의를 끌기 부족했는지 아예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떠드는 사람까지 그야말로 평범한 점심시간의 기사단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콧수염을 멋드러지게 기른 30대 중반 정도의 사내가 테라스에 들어서자 정신없이 요란했던 테라스는 금새 조용해졌다. 그는 영주의 인장이 찍힌 서류를 흔들어대며 방금 전까지의 기사들 못지 않게 무언갈 열심히 떠들어댔다. 아마 오늘 기사들이 모인 것은 단순히 떠들고 마시기 위한것이 아니라 무언가 상부 지시때문인듯 싶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늘의 테이블에는 평소처럼 빠지지 않고 테이블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던 말판과 주사위도 보이지 않았다.


 ".....해서 금일은 우리 중대에 야간 순찰임무가 내려졌다. 소대 별 담당 구획과 행동지침을 전파할테니 각 소대장들은 소대원 교육 제대로 시키고, 애들 똑바로 배치시켜! 그럼 1소대부터."

 

 "예."

 

 "니네 애들이 제일 중요해! 선착장하고, 주변 성벽이다. 알았지? 넌 애들 데리고가서 오후부터 활동 시작해라."

 

 "예?"

 

 "예에~?"

 

 "아, 아뇨... 그 오후말입니까?"

 

 "거 있잖아. 선착장에 있는 배 전부 주인 확인하고. 짐있으면 검문하고... 그럼 오밤중에 사람 불러내서 할겨?"

 

순찰은 밤이라고 했건만 오후부터 시작하라는 중대장의 지시에 1소대장의 얼굴은 키츠키츠의 술이라도 마신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의 표정이 썩어나던 활짝 펴지던 아랑곳 하지 않고서 콧수염 중대장은 다음 소대에게 임무전달을 이어갔다.
  3소대를 맡고있는 청아의 담당구역은 기사단 사무실 뒷골목의 거주지역이었다. 중산층이 모여사는 평범한 이곳은 로체스트의 화려한 조각상과 장식으로 둘러쌓인 법황청과 달리 굉장히 수수하고, 목가적이기도 한 곳이었다. 한가족의 옷가지가 다정하게 걸려있는 빨랫줄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주고 있었고, 집들은 하얗고 깔끔하기 보다는 조금은 색이 바랬고 또 조금은 금이 가있기도 했다. 따스함이 내리쬐는 나른한 점심이 되면 허공에서 팔랑이는 빨래에 배인 팔라라의 포근한 향이 골목 가득히 퍼졌고, 남자아이들은 골목을 누비며 칼싸움을 하곤 했다. 힘쎈 아이가 기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혹은 가위바위보로 기사와 마족을 정했다. 아이들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머리엔 수건을 몸에는 검은 천을 배배 두르고서 여름마다 퍼지는 괴담인 사신을 흉내내거나, 조잡해보이는 종이갑옷을 걸치고서 기사의 열연을 펼쳤다. 그렇게 뜨거운 팔라라 아래서 역할을 나누어 하루종일 뛰어놀던 아이들의 땀이 선선한 저녁 바람에 말라갈 때가 되면 거미줄처럼 펼쳐진 빨랫줄의 빨래도 보송보송하게 마르고, 엄마들은 아이를 불러 함께 빨래를 걷었다. 노을빛이 누렇게 색바랜 담벼락을 에르그처럼 투명하고 빨간 빛으로 물들일 즈음이 되면 골목에는 집집마다 풍겨오는 저녁준비의 냄새로 가득차곤 했다. 고소한 스프의 향을 맡는 3소대원들은 입맛을 다시며 골목 여기저기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평범한 소시민의 복장(이라고 해봐야 그들의 평소 옷과 크게 다르진 않은 옷)을 입고서 램프 아래 신문을 보는 사람, 테라스에서 하늘을 보며 담배를 태우는 사람,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 등으로 위장한 채 골목의 사각이 최소화되는 형태로 배치되어있었다.
  위장까지 하고서 얼마나 성실한 친구들인가. 그들의 모습 또한 도무지 잠복근무 중이라는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자연스레 일상의 풍경에 녹아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뛰어난 대원들을 이끄는 소대장은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의 지붕 위에서 대기중이었다. 한정된 성벽 내부의 공간때문에 주거지역의 건물들은 촘촘하게 모여있었고, 지붕과 지붕 사이는 힘껏 도약하면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붙어있는 곳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마치 또 다른 로체스트의 거리같았다. 조금 과장된 이야기지만 심지어는 땅에서 쓰는 지도 말고도 지붕 위에서 쓰는 지도가 따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 실제로 이름을 날린 대도나 암살자들은 지붕 위의 지리를 머릿속에 익히고서 애용한다고 하니 말이다. 오늘 밤에 누군가와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면 지붕에서 지붕으로 몸을 날려야 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라는 것은 청아의 보기 좋은 구실이었고 실제로 그는 어느 관공서 건물의 지붕 꼭대기 쪽방에 숨어있었다. 실제로, 지붕 위에 올라가있으면 지상에서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고 오직 더 높은 성벽위의 보초만이 가능했는데, 그 역시도 들키지 않도록 몸을 숨기고 있었기에 보초들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심연과도 같은 까만 밤하늘엔 구름 한점 없었다. 빨아들일 것만 같은 끝없는 검은색의 밤하늘엔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고, 이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자면 혹시 하늘에 가득히 매달린 저 반짝이는 보석들이 쏟아져내리지는 않을까 바보같은 걱정이 들었다. 어쩌면 머리 위에 있음에도 깊고 맑은 연못같은 밤하늘에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착각도 들었다. 아름다운 곡선과 장식을 자랑하는 명관은 아니었지만 요충지의 방어요새답게 정직하게 쭉쭉 뻗고 투박한 모습을 자랑하는 로체스트의 외벽과, 멀리서도 볼 수 있는 '드레곤의 둥지'라는 별명을 가지기도 한 중심부의 높은 성, 그리고 멀리 콜헨의 여관 지붕에도, 이제는 사람 한명 없는 쓸쓸한 오르텔의 폐허에도 이웨카는 포근한 은빛을 공평하게 나누어주었다. 괘씸하지만 지붕의 쪽방에 누워 선잠을 자고있는 청아에게도 포근한 빛이 내려왔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 은은하게 뿌려지는 이웨카빛을 밟으며 그 속에서 지붕위를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건너다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이웨카를 바라보며 감상에 빠져들지 않은 성실한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했고 날카로운 호각소리와 함께 밤하늘 높히 또 하나의 이웨카가 솟아올랐다. 또 다른 이웨카의 정체는 쏘아올린 신호탄이었다. 녹색 빛을 내는 신호탄은 다른 별빛을 가리며 밝게 빛났고, 동시에 "잡아라." 라는 외침이 들렸다. 또한 그 소리가 들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황량한 지붕 위로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는 무언가의 모습은 확실하게 드러났다. 요사이 사람들 사이에서 의례 여름철마다 떠도는 괴담에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어둠 속에 녹아들 것만 같은 검은 옷, 그렇지만 그런 위장이 무색하게 만드는, 보란듯이 커다란 낫을 들고서 뛰어가는 모습은 마치 정말 영혼을 데려가는 사신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낫을 들고있는 손은 앙상한 뼈가 아닌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꽉 동여맨듯 하지만 뛸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흔들리는 굴곡있는 가슴은 도망자의 정체가 여성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병사들이 그 모습을 자세히 확인하기 전에 조명탄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민가 밀집지역이라는 이유로 화약무기와 투척무기의 사용이 금지된 덕분에 도망자는 더욱 수월하게 도망칠 수 있었다. 도망자의 도주는 수십명이 넘는 군인들이 밤새 쏟은 고생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도 싱겁게 끝나가는 듯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모험은 이제 눈 앞에 보이는 저 마지막 외벽만 넘어간다면 끝날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외벽 위는 4중대의 담당구역이었고, 또 하필이면 그녀가 통과해야 할 지점에는 동초가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몸은 지붕에서 두어 걸음 벗어난 뒤였다. 다급해진 도망자는 찰나의 순간에 성벽 아래 좌우를 살펴보았는데, 운좋게도 바로 아래 4층정도 되는 건물이 있었고, 지붕에는 쪽방의 창문으로 보이는 것이 열려있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블링크를 시전해서 창문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고, 그녀의 몸이 떠있던 공중에는 잠깐동안 그녀의 옷과 같은 색인 까만 아지랑이가 흔들리다 이내 흔적도 없이 밤하늘에 녹아들었다. 그녀를 쫓던 수 많은 눈은 모두 그녀가 블링크로 성벽 위에 안착했을거라 생각해서 그녀가 몸을 날린 궤적을 쫓아 시선을 옮겼지만 당연히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중대가 오후부터 고생한 결과는 눈뜨고 도망자를 놓치는 것으로 끝났다. 날카로운 호각소리도, 지상에서 골목을 돌며 그녀의 행로를 쫓던 군화소리도, 소대장들의 다급한 고함소리도, 모두 사라졌다. 한 여름 밤의 소동은 잠깐동안 소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끝났고, 후끈한 열기만을 남긴채 이내 고요함을 되찾았다.

 

 

 

 

 

하하 2편 부터는 19금이지!

Lv3 청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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