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서버 준준 입니다. 리니지 클래식 기다리면서 한번 써봤어요.
26년 1월,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배달 대행 조끼를 걸친 40대 중반의 남자, 용진은 낡은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을 벗었다. 매서운 칼바람에 튼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팔자주름은 깊게 패어 있었고, 며칠은 깎지 않은 수염이 턱에 지저분하게 남아 있었다.
차가운 공기에 손을 비비는 순간,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아빠 오늘 올 때 치킨 사 오면 안 돼?”
큰딸의 목소리였다.
“치킨은 무슨. 어제 먹다 남은 찌개나 데워 먹어.”
“치... 오늘 눈도 오는데. 응? 아빠, 안 돼?”
“안 돼. 아빠 바쁘다, 끊어.”
무심하게 전화를 끊었지만, 용진은 습관처럼 헬멧 쉴드에 묻은 눈을 장갑으로 닦아냈다. 입 밖으로는 안 된다고 못 박았지만, 손가락은 이미 배달 앱의 수익 현황을 계산하고 있었다. 앞으로 서너 번. 딱 서너 번만 더 찬바람을 뚫고 달리면 치킨 한 마리 값은 만들어졌다.
용진은 다시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사실, 낮부터 자꾸만 시선이 느껴지긴 했다. 오버핏 후드티를 깊게 눌러쓴 정체불명의 인물이 그가 배달을 가는 곳마다 멀찍이 서서 미동도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세 블록 전부터 계속 보였다. 오토바이보다 빠를 리가 없는데 어떻게 가는 곳마다 서 있지?'
불안한 생각이 스쳤지만, 당장 눈앞의 배달이 급했다. 용진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내려놓은 뒤 다시 내려왔다. 그때였다. 오토바이 옆에 아까 보았던 그 후드티가 서 있었다. 바이크에 다가서자 후드티 속의 인물이 먼저 낮게 입을 열었다.
“너… 레오… 맞지?”
잠깐의 침묵.
“많이 변했다….”
후드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가늘고 묘했다.
“네? 레오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용진은 고개를 저으며 시동을 걸려 했다. 그 순간.
“꺄하하! 여기 있었네!!”
차가운 겨울 공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길 건너편에서 검은 머리의 여자가 나타났다. 영하의 날씨에 오프숄더와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난 섹시한 복장. 그녀는 한손에 든 기괴한 형상의 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르더니, 비어 있는 다른 한손의 손가락을 복잡하게 꼬며 낮게 주문을 읊조렸다.
“깊은 대지에 잠든 마그마여, 침묵을 깨고 나의 부름에 응답하라.”
공기가 먼저 숨을 삼켰다. 지팡이 끝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기운이 바닥으로 스며들자, 발밑의 아스팔트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땅이— 갈라졌다. 가느다란 균열 하나가 목표를 향해 뻗어나가더니, 미친 속도로 용진을 향해 달려왔다. 균열 아래에서 붉은 빛이 꿈틀거렸고, 지면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찢어졌다.
“레오!! 조심해!!!”
오버핏 후드의 인물이 용진을 끌어안듯 몸을 던졌다. 둘은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땅바닥을 굴렀다. 그 순간, 대지가 폭발했다.
콰아앙—!
지면이 솟구쳐 올라가며 터져 나왔고, 화염과 파편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근처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이 폭발의 압력에 엎어지고 뒤집히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불꽃 섞인 마그마는 타오르기보다, 지면 아래에서 거칠게 분출되며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몸을 던지며 벗겨진 후드 아래로 노란 긴 생머리, 반짝이는 눈, 그리고 뾰족하고 긴 귀가 드러났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용진은 잠시 넋을 잃었다.
폭발음이 잦아들자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이들은 비명을 지르기보다 휴대폰을 먼저 꺼내 들었다.
“와, 뭐야? 영화 촬영인가?”“와, 저 불꽃 대박이다. 저기 엎어진 차들 봐, 진짜 같아!”
구경꾼들의 웅성거림 사이로 용진의 시선에 산산조각 난 자신의 오토바이가 들어왔다. 은빛 파편들이 길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아이고… 내 바이크….”
용진의 입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탄식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