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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잭스X소나 팬픽-가로등과 별 49화

아이콘 강철안개
댓글: 4 개
조회: 2190
추천: 5
2020-04-24 14:01:19

***

 “연회는 잘 즐기셨나요?”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인.”
 “아무렴 입과 눈에 귀까지 즐거우셨을 텐데 좋은 시간을 보내셨겠죠. 만족스러우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

 우여곡절 끝에 만난 레스타라 부인은 뭔가 은근히 딱딱거리고 있었다. 하긴 첫인상부터 썩 좋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늦은 밤이었다. 부인과 잭스가 있는 정원 한 구석에는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다. 주변엔 산울타리가 교묘하게 쳐져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한 보이지도 않을 곳이었다. 즉,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는 용도로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연회는 이미 끝났고, 여사제들을 비롯한 소나와 레오나 일행은 잠옷 파티를 벌인다며 저택 안으로 우르르 들어간 상태였다. 그거야 물론 공작 영애쯤 되는 아가씨가 하기엔 상당히 기품 떨어지는 모양새였지만, 소나는 그런 걸 털끝만큼도 신경 쓰는 아가씨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죽이 잘 맞는 또래 친구들과 생전 처음 그런 일을 해본다는 사실에 엄청 흥분하고 있었다. 

 어쨌든 잘 된 일이었다. 그녀에게나, 그리고 잭스에게나.
 그리고 레스타라 부인에게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정식으로 인사도 못 드렸군요. 소나의 어미되는 레스타라 부벨르라고 합니다. 이전에 협곡에서 딸아이를 구해 주신 건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잭스라고 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 너무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스스로를 꽤 과소평가하시는군요.” 부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보통 그런 상황쯤 되면 누구나 자기 몸을 먼저 챙기겠죠. 그게 사람으로서의 본능이니까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라는 의무감만으로 남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를 받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호감도가 바닥을 기는 것과는 별개로 레스타라 부인은 잭스를 추켜 세워줬다. 싫은 건 싫지만 그게 좋은 점을 나쁘게 말할 이유는 안 된다는 의미이리라. 어째 소나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면, 기분 탓일까. 과연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잭스는 생각했다.

 “그간의 모양새가 좀 나쁘긴 했지만, 어쨌든 내일 왕세자 전하를 뵙게 되면 더 이상 이번 사건의 용의자니 뭐니 하는 걸로 귀찮으실 일은 없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은혜를 갚게 되어 다행입니다.”

 부인은 미리 선을 그었다. 협곡에서 소나를 구해준 건을 가지고 은혜니 뭐니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이 남자가 그런 걸로 구질구질하게 매달릴 성격처럼 느껴지진 않지만, 어쨌든 화근을 남겨둬서 좋을 건 없었다. 끊을 때는 단칼에 자르자는 게 그녀의 원칙 중 하나였다.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데마시아와 전쟁학회 사이에서 정치적 소모품으로 쓰일 위기에서 구해준 걸로 충분히 은혜는 갚은 셈이었다. 물론 자의가 아니라 레오나의 부탁이라는 타의에 의해서였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저울추는 얼추 맞았다. 아무리 부벨르 가문이 유서 깊고 고귀하다 해도 잭스 하날 위해 앞에선 대놓고 가문의 마차까지 빌려줬고 뒤로는 거의 온 나라를 들쑤셨는데 눈치가 안 보일 리가 없었다. 얼굴에 좀 철판을 깔면 해결될 문제긴 하나 가문의 위상이란 건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인 법이었다. 

 소나에게 가장 완벽한 형태로 이 가문을 물려주려 했는데, 하필 자기 대에서 가문의 위상에 이런 균열이 발생하다니. 부인의 마음속에선 이 남자만큼은 꼭 딸에게서 떨어뜨려놔야겠다는 결심이 더더욱 굳어지고 있었다.

 “부인께서 힘써주신 덕에 수월하게 일이 풀렸습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갚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쯤해서 딸과의 인연을 끝내주시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

 차 한 모금 정도 마실 짧은 시간. 정적이 흘렀다. 레스타라 부인은 티 테이블에 턱을 괴고 그를 바라봤다. 부인의 목소리는 조용했고, 한겨울의 바위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딸이 그대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모르시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 그 아이는 남의 감정은 예리하게 알아채면서 자기 감정을 숨기는 데엔 서투르니까요. 그 아이는 순수합니다. 그리고 사람 보는 눈이 있죠. 그러니 그대도 분명, 딸의 호감을 살 정도로 깨끗한 품성을 지닌 분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소나가 실은 남의 감정을 ‘듣는’ 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도 부인은 부인 나름대로 소나를 파악하고 있었다. 부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딸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듬뿍 묻어나고 있었다. 가면을 통해, 잭스는 부인의 눈을 바라봤다. 

 그는 그 눈빛을 알았다. 에트왈의 눈빛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분노를 산다 해도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런 눈빛. 그것은 분명 부담스러울 정도의 사랑이자 과보호였지만,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역시 축복받은 인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대도 남자인 만큼, 아리따운 아가씨가 다가오는데 마음도 안 동하는 목석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정도가 어떻든지, 마음이 분명 혹한 적이 있겠죠. 안 그렇습니까? 최근 딸아이와 만날 일이 많으셨을 텐데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솔직한 점은 좋군요. 미안해하실 것 없습니다. 딸아이가 매력적이란 건 어미인 제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여기서 부정하셨으면 오히려 화를 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이러는 이유는 굳이 말 안 해도 아시겠죠?”

 레스타라 부인의 눈이 독수리처럼 번뜩였다. 

 “그 아이는 아직 어립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겠죠. 어쩌면 당신과 비슷한 성격의 사람을 만나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아이 옆에 설 사람은 그 아이를 진정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배우자로서도, 그리고 귀족으로서도 말이죠. 죄송하지만, 당신은 그 어느 하나도 절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화가 날 것도 불쾌할 것도 없이 사실이었다. 신분, 종족, 나이 등 모든 점에서 그는 소나와 빈말로라도 어울린다고는 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정확히는 과연 어울리는 점이 있기나 할는지 의심스러운 관계였다. 레스타라 부인의 태도가 좀 과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아무래도 딸이 처음 데려온 남자랍시고 하는 놈이 어디서 굴러먹다 온 줄도 모르는 이런 용병 나부랭이니 경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잭스도 거리를 조절하고 있는 거였다…나름대로는. 
 “많이 걱정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가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맹세코 흑심이 있어 따님께 접근한 건 아닙니다. 단지 그 때묻지 않은 순수함에,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올곧음에 잠시 취했던 것뿐입니다.”

 레스타라 부인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통 사람들은 소나는 그저 착하고 여리며 수줍음이 많은 아가씨인줄로만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언뜻 보기엔 그렇게 보일 만도 했고 말이다. 거기에 좀 더 살이 덧붙는다면 외모에 대한 예찬과 외모만큼이나 예쁜 성격이라는 둥, 외모와 성격을 묶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건 소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자들의 어림짐작에 불과했다. 레스타라 부인은 소나를 단순히 여리게만 키우지 않았다. 소나가 고아에 입양되었단 사실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여건상 자기가 죽고 나면 소나를 지탱해줄 집안의 어른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하녀들이 물심양면 도와주긴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에 불과했다. 그러니 홀로 서는 연습이 필요했다. 많은 사랑을 주며 키웠지만, 그 이상으로 엄격해질 땐 독한 마음을 먹고 엄격해졌다. 소나는 서운한 적이 있었을 텐데도 탈선 한번 안 하고 잘 커준 사랑스런 딸이었다.

 그런데 그 딸의 내면을 이 용병 나부랭이가 알고 있다니. 레스타라 부인은 자기만 알고 있던 아름다움을 남에게 강제로 보인 것 같아 섭섭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딸아이의 내면을 똑바로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딸아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계시긴 하군요.”
 “어쩌다보니 따님과 말이 통하게 되어 그렇게 됐습니다.”
 “벌써 그 아이의 수화까지 알아들으시나요? 레오나 양도 그렇고 당신도 대단하시군요. 보통 수화와는 완전히 체계가 달라서 어지간하면 배우기도 힘들 텐데.”

 레스타라 부인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어찌 됐건 하녀들과 자신 외에 수화를 가르쳐 준 건 레오나와 잭스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소나의 수화는 가르쳐 준다고 해서 쉽게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가르쳐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수화가 아닙니다, 부인. 제겐 따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꽤나 문학적인 표현도 할 줄 아시는군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잭스의 그 담담한 말에 부인의 표정이 점차 차게 식어갔다. 처음엔 이 용병 나부랭이가 자길 놀려먹는 건가, 의심하는 표정이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농담치곤 워낙 조용하자 뭔지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오는 듯 점차 얼굴이 딱딱해지고 있었다.

 “부인, 협곡 사건에서 따님이 납치당할 뻔했다는 건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챔피언들이 정체불명의 힘으로 조종당했다는 것도.”
 “크라운가드 영애가 그렇게 말했긴 했습니다. 헌데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 겁니까?”
 “거기서 저희 둘만 조종당하지 않았습니다. 소환 마법이 강제로 끊기면서 저희 둘에게 걸렸던 마법이 엉켜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엉켜버렸다뇨? 소나와? 당신이?” 레스타라 부인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딸이 머릿속과 당신 머릿속이 연결이라도 돼 있다, 이런 말씀이란 건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뭐?”

 잭스는 레스타라 부인의 경악에 찬 표정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끝까지 말해야 했다. 베사리아도 이 복잡하게 꼬인 연결이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데, 그녀에 비한다면 마법적 지식 따윈 모기 눈알만치도 없는 그가 그 영향을 추측할 리 만무했다. 소나는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기분에 들떠서 별로 신경 안 쓰는 눈치였지만(여기엔 잭스나 베사리아에 대한 깊은 신뢰가 깔려 있었지만, 불행히도 은근히 낮은 자존감 덕에 그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잭스에겐 상당히 심각한 문제 중 하나였다. 그 덕에 목숨을 무려 두 번이나 건졌지만, 거꾸로 말하면 그건 소나의 목숨을 두 번이나 걸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이건 그의 양심의 문제였다. 

 잭스는 소나와 얽혔던 모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협곡에서 소환사들과의 연결이 끊겼던 것부터 시작해, 소나를 우연히 만났던 것, 겨우 탈출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병원에서 소나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던 일까지 전부 다 말이다. 물론 분별없이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하진 않았다. 맨드레이크가 세뇌를 당했었다는 소리는 해봤자 좋을 리가 없었고 베사리아가 그를 구하기 위해 소나를 꼬드기기도 했다는 얘기 역시 좋을 게 없었다. 에트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소나가 밝힐 일이었다. 그녀가 먼저 말하지도 않은 걸 그가 먼저 말할 수는 없었다.

 그가 얘기를 마쳤을 땐 깊은 밤이 더 깊어져 있었다. 정원 너머로 저택의 불빛도 꺼져 있었다. 하지만 레스타라 부인과 잭스는 은은하게 내리는 달빛을 맞으며 정원 한 구석 정자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오붓한 분위기였다.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기에만. 

 얘기 시작 전과는 달리 그들 앞엔 찻잔 대신 포도주 한 병과 술잔이 있었다. 레스타라 부인이 얘기 도중 잠시 실례하겠다고 한 뒤 가져온 물건이었다. 병은 반 이상 비어있었지만 레스타라 부인의 얼굴엔 취기 따윈 보이지 않았다. 잭스는 뭐 말할 것도 없었다. 이보다 훨씬 더 독한 술도 벌컥벌컥 잘만 마시는 마당에 그가 고작 포도주 반 병 따위로 취할 리가 없었다.

 문제는 분위기였다.

 포도주는 한눈에 봐도 돈 주고도 못 얻을 상등품이었다. 거기에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었으니 기분이 당연히 좋아야 하건만, 불행히도 아니었다. 억울하게도 그는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부인 역시 마찬가지인 눈치였다. 솔직히 마시려고 가져왔다기보다는 바짝바짝 타는 입술과 목을 축여라도 보겠다고 되는 대로 집어온 것 같았다.
 “…내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군요.”

 한참 만에 부인의 입을 비집고 나온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당장 챔피언 따윈 그만두게 할 겁니다. 그리고 왕실 쪽에 요청해서 딸아이를 보호해달라고 할 겁니다.”
 “부인.”

 잭스가 불렀지만, 부인에겐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냥 보호해 달라는 건 모양새가 이상하겠죠. 좋아요, 자르반 왕세자께 딸아이를 거둬달라고 말씀드릴 겁니다. 그 아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맘껏 할 순 없겠지만 그게 최선일 테니까요. 아니 자르반 왕세자 정도면 충분히 그 아이를 이해해 줄 겁니다. 그래요,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부인, 진정하…….”
 “조용히 하세요.” 

 레스타라 부인이 씹어뱉듯 말하며 잭스를 노려봤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증오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감히 내 딸이 목숨을 걸게 했다는 겁니까?”
 “…….”
 “당신과 내 딸, 어느 쪽의 목숨이 값어치가 더 있을진 말 안 해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딸아이가 자의로 목숨을 걸었건, 누군가 옆에서 부추겼건 그 문제에 대해선 덮어두겠습니다. 중요한 건 그 애가 그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바로 당신이고요.”

 에트왈과 베사리아의 얘기를 쏙 빼니 남은 화살이 죄다 잭스에게 향하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부인의 말투로 봐서 에트왈까진 그렇다 쳐도 베사리아가 소나를 꼬드겼단 건 대충 눈치 챈 모양이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것도 결국 원인을 따지고 보면 잭스일 테니까. 

 “죄송합니다, 부인. 오늘은 그걸 사과드리고 싶었습니다.”
 “사과는 받겠습니다.”

 부인은 더 얘기할 필요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도 딸을 구해줬고 딸도 당신을 구했습니다. 당신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줬으니 가문의 힘을 써서 도와준 것도 호의를 베푼 걸로 치겠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두 번 다시 내 딸과 만나지 않으시길 바라겠습니다.”
 “…….”
 “그리고 당신과 딸아이 사이에 생긴 마법 사고는, 내 맹세컨대 가까운 시일 내에 전쟁학회 쪽으로 엄중히 항의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부인,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부인은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옷자락을 휘날리며 가버리려는 찰나, 잭스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부인은 멈춰 섰다. 하지만 등을 돌리진 않았다. 들어는 줄 테니 빨리 할 말이나 하고 꺼지란 뜻이 역력했다.

 “협곡과 학회를 습격했던 적들의 이름은 에스트렐이라는 놈들입니다. 그놈들은 강력한 세뇌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은 전쟁학회의 허를 찌를 정도로 강력합니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입니까?”
 “그러니 따님을 부디 리그 챔피언으로 남겨 주십시오. 챔피언에 대해선 수많은 보호 주문이 걸려 있으니 그편이 훨씬 더 안전할 겁니다.” 잭스는 그녀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

 그가 고개를 숙이건 말건 부인은 가버렸다. 아마 지금은 그가 하는 말,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가증스럽게만 보일 터이니 그럴 만도 했다. 잭스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사과하러 왔고, 또 각오는 한 바였지만, 막상 겪어보니 마음이 상상 이상으로 심란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소나와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엔 챔피언을 그만 두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나중엔 그녀를 인정했고,
 그 뒤엔 어느새 그녀를 자신과 대등하게 생각해버렸다.

 “…미련은 내 쪽에 있었나보군.”

 그는 남은 잔을 죽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자기 맞춤 정장이 참을 수 없이 갑갑하게만 느껴져 옷깃까지 다 풀어헤쳤으나 여전히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가 휘청거렸다. 술에 취해서가 아니라 아직 몸 상태가 다 호전되지 않았다는 반증이었다.
 
 [강한 척, 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

 비틀거리는 그를 누군가 가만히 부축해줬다. 녹아내릴 것 같은 달콤한 목소리, 그리고 비단결처럼 보드라운 손길.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 느낌을 잭스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걱정과 슬픔이 섞인 표정으로, 소녀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소나가 있었다. 




















Lv74 강철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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