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오카이의 앞에서 열심히 스킬연습을하고, 리신과 대련하는 시간을 가진뒤에는 어제와같이 한없이 긴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어제처럼 별일없이 뒹굴거리기만해도되지만 카사딘과의 접점이후로 그녀의 심정은 그럴 처지가 되지못했다.
'내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큰것이지.'
감정을 잃었어도, 기억을 잃었어도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올바른 행동이라고 배우거나 들은적은 없었다. 썩은 아귀가 어떻게 엘리스를 넘어가게만들었는진몰라도, 그 정도의 존재가 엘리스에게 살인의 정당성같은걸 부여해줄 필요성도 없을테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엘리스는 자신이 거미교활동을 하면서 했던 행동들이 올바르지않다고 인식한 때는, 행위에 대한 평가조차도 묻어버릴정도의 증오심을 느끼고있던 마오카이의 질문아닌 질문을 들었을때였다. 사람을 죽이는게 그렇게 중죄라는걸 알고있다면 카사딘의 일침이 제대로 통했을것이다.
"...그냥 나가있을까."
인류의 재구성 이후 생겨난 국가들은 모두 대륙횡단열차로 이동할수있도록 만들어진 기차역이 존재하는데, 기차역을 중심으로 반경 1km정도가 현대사회의 기술과 문명이 적극 반영된 시설들이 들어서있다. 이러한 영역을 '경제특구(* 외국 자본과 기술 도입을 목적으로 자국 내에 설치하는 특별지구)'라하는데, 아이오니아역시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 엘리스와 마오카이가 역에서 벗어났을때, 엘리스가 리신의 추천으로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을때도 이 영역안에있었는데, 오늘도 이 영역으로 향하고있다.
사실 '경제특구'라는말이 무색한 점이있는게, 아이오니아의 통치체계가 최고권력기구가없고, 10개의 자치구로만 나뉘어져있어 상식적인 국가로 여기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으며, 물질적 삶보다 정신적 통찰을 추구하는 이곳이 경제특구를 삼게된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전쟁 학회에서 국가간의 원활한 소통을 목적으로 아이오니아에게 압력을 넣었기 때문. 그래서 아이오니아 경제특구의 주 소비층은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주로 머무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분명 경제특구에서의 수입은 해당 국가의 수입으로 모조리 환원되고있으며, 해당국가의 문화를 보존하고 부흥하는 활동을 하고있기때문에 마냥 자국민들도 나쁘게만 보지는 않고있다.
그런 경제특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걷고있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올사람은 보통인연을 가진사람은 아니다. 대체 어디에서 숙식을 해결하는지 몰라도 엘리스에 대해 끈질기게 취재하려는 기자가 그 예일까.
"실례합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으로선 한명밖에없고 그 한명이 누군지는 그녀도 알고있다.
"그레고리...씨?"
엘리스의 말꼬리가 올라간것에비해 왜 자신에게 접근했는진 대충 짐작이 갔기에 자신을 찾은 목적을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자신에게 접근을 금하고 취재를 피하라고 했던 마오카이나 리신과는 달리 그녀는 그 기자를 배척하거나 냉대할 이유가 부족했다. 때마침 아무목적도없이 어딘가로 무작정 걸어가는것이 달갑지않던 그녀에게있어서 이런 만남은 행운이라 표현하기 충분했다.
"저... 당신에 대해 물어볼게 몇가지 있는데..."
그 대가(?)라고 치부하기엔 이상하지만 엘리스는 그레고리의 취재와 인터뷰를 받아들여야했다.
"가장 근본적인것부터 여쭤보겠습니다. 어째서 그림자 군도에서 나온것이죠?"
처음부터 쉽게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들어왔다. 천운덕분에 군도에서 빠져나왔지만 빠져나온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를 대든 그녀는 '정신 기생'과 마오카이의 조건을 말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그레고리가 일부러 대답을 피하는건지 생각할쯤에 겨우 생각해낸 답은 이랬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청문회에서의 안좋은 일까지 겹치니까 군도에서 조용히 지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에요."
"그럼 왜 필트오버에 갔고 아이오니아에 머물고있는거죠?"
"마음을 진정시키기위한 여행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거같아요."
"그렇군요. 그런 여행길에서 리신과 마오카이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어...'
"두 챔피언 모두 엘리스님과는 별 인연이 없던걸로 알고있습니다만."
달리 돌려말할 여지가없는 물음에 그녀는 입을 다물고있었다. 대충 얼버무리면서 자기가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지않는한...
"아."
"?"
"심신을 안정시키기위해 서로 대련하는 관계정도입니다. 그리고, 제가 요즘 관심있는 분야가있는데 제 물음에도 답해주시겠어요?"
얼렁뚱땅 넘어간다고 여겼지만 현재 그녀의 관심분야도 하나의 기사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레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에겐 몇 가지의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네?"
'정신 기생'과 '여정'을 밝히지 않는선에서 엘리스가 부담없이 말할 수 있는 주제는 감정이었다. 그레고리는 예상외의 질문에 놀랐지만 성의있게 말하기위해 일부러 엘리스의 시선을 피한 채 머리를 굴렸다.
"음... 너무 많은거 같은데요?"
"이곳 아이오니아에선 크게 7가지의 감정으로 나뉘어져있다고 믿는대요. 그런데 최근 제가 본 영화에서는 5가지의 감정밖에 등장하지 않아서요. 혹시 영화 <인사이드 아웃> 보셨나요?"
"...아뇨. 그게 그런 소재로 만든 영화인가요? 최근에 영화를 볼 여유가 없어가지고..."
그의 말을 듣고 엘리스는 남은 하루를 보낼 방법을 찾아낸듯 그레고리에게 제안을 했다.
"같이 볼래요?"
"이 영화를 보려하는데요."
엘리스에게 있어선 같은 영화를 두번보는 셈이 되었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이런 활동 외에는 당장 할것이 없었으니까.
"네. 가장 빠른 영화는 5분뒤에 상영합니다. 성인 두분이시죠?
"네 여기 계산 부탁드릴게요."
몇년동안 쌓은 막대한 부로 그레고리의 티켓값까지 계산! 느닷없는 호의에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우와... 감사합니다."
"무슨소리를. 제가 같이 보자고한건데요."
서로를 안지 오래되지도않았지만 두사람 사이의 관계는 소원하지않았다. 수다를 떨면서 같이 영화관에 들어가는 뒷모습까지도.
'저 여자 며칠전에 이 영화보지않았나? 이번에는 남자랑 같이보네? 무슨 사이지?'
오히려 엘리스를 알아본 직원이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최근에 본 영화이기 때문에 엘리스는 해당 작품의 줄거리를 다 알고있는상태. 주제는 이해하지못했어도 이미 그녀가 이 영화를 봄으로써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은 높지않았기에 그레고리에게 영화의 해당 장면을 설명해주기로했다.
ㄴ빙봉,빙봉!ㄱ
"와...저 캐릭터 귀엽다~"
"저 분홍색 코끼리는 여자아이가 어렸을 적에 만들어낸 상상속 캐릭터에요."
"아 그래요?"
ㄴ난 라일리가 만들어낸 친구야.ㄱ
"으음, 그러네요."
"그런데 나중에 죽어요."
"..."
가끔가다가 맥빠지는 스포일러까지 해버리면서.
"엘리스님은 그러고보니까 이 영화를 두번이나 본셈인데 느낌이 어때요?"
"뭐... 결국 기쁨이의 행동이 어리석었다는걸 더욱 실감했어요."
"...그게 끝인가요?"
"네? 그렇잖아요. 그러기때문에 저런 사건들이 생겼잖아요."
"그렇긴 하죠. 저 영화는 그래서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걸까요?"
"네? 우리 모두의 머리속에는 감정을 컨트롤하는 본부가있다는거 아닐까요?"
엘리스는 분명 같은 영화를 두번이나 보았고 줄거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있었지만 정작 그녀가 공감하고 느껴야할 주제나 감정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말할 수 없었다.
"분명 두번이나 보셨는데도 왜 한번본 저보다 내용파악이 안되시는거죠...?"
"제가 아직 잘 이해를 잘 못한것같아서 그런가봐요."
분명 자기가 영화를 추천했고 본인은 두번이나 봤는데도 정작 이해도는 남보다 더 떨어지는 상황! 오히려 그레고리가 처음부터 등장인물의 특징과 여러 장면들에서 나타난 사건들의 의미를 설명한걸 엘리스가 들어야했다.
"그러니까 제 말 이해하셨죠?"
"응.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표출되는 감정이 좋다는 것과, 한 감정을 지나치게 추구하는게 안좋다는것과 또..."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더 다양한 감정표현을 하게된다는 것, 그리고 또 뭐라고했는지 기억나요?"
이쯤되면 그레고리가 엘리스에게 영화감상문을 제대로 쓸 수있는지 떠보는수준이다.
"분노와 소심과 까칠만으론 살 수 없다?"
"아니요 그게아니라..."
시원시원하게 말하지못하는 엘리스를 보면서도 그레고리는 차마 한숨을 쉴 수 없었다.
"차라리 어딘가에다 적어놓는게 낫겠네요. 혹시 종이나 수첩있어요?"
"아뇨."
"하하... 그럼 지금 마트에가서 사는게 낫지않을까요?"
<계속>
<글쓴이의 말>
공백입니다.